464강-YouTube강의(순종 출애굽기 16:20)20240319-이 근호 목사
제464강, ‘순종’. 하나님께서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은 인간들이 알고 있는 시간 공간의 환경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시간 공간과의 대비 또는 차이, 차이 남, 다름 이런 목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순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동안 자기가 살아왔던 환경 속에서 노하우라는 게 있어요. 자기가 이렇게 하면 처신이 잘되고 이렇게 하면 내 생존에 불리하지 않고 유리하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살게 만드는가 거기에 모든 초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추방되고 난 뒤에 생긴 성질이죠. 본성입니다. 낙원에서는 특징이 순종이란 게 없어요. 왜 순종이라는 게 낙원에선 성립이 안 되느냐 하면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게 그걸 지키라고 준 게 아니고 그 말씀이 유지되는 조건이 낙원이고 생명나무입니다.
선악과나무, 생명나무 그 두 나무를 옹호하고 보필하고 그걸 지켜내기 위해서 에덴동산이라는 환경이 조성되었어요. 굳이 인간에게 주목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목하는 것은 생명나무와 ‘선악과 따먹지 마라’ 그거였습니다. 선악과는 너희 인간들, 피조물이 따먹을 과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을 위한 낙원이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선악과 따먹고 난 뒤에 어떻게 인간에게 잘해주려는 생각이 전혀 없고 제일 급한 마음에 생명나무 그거 지키기 위해서 아주 가차 없이 인간보고 나가라고 이야기한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던 것은 생명나무와 선악과의 그 취지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데에 의도가 있었고요. 그 취지를 살리는데 필요한 환경이 에덴동산이었습니다. 인간보고 여기서 천년만년 잘 먹고 잘 살라고 준 게 에덴동산이 아니에요.
이 점이 왜 중요하냐 하면 천국도 마찬가지에요. 천국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라고 만드신 천국이 아닙니다.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두 취지를 완성하신 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하늘나라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는 아들의 나라라 하죠. 네 나라 아니란 말이죠. 너 좋으라고 만든 나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나라, 그런 나라는 애시당초 계획도 없고 그걸 만들 생각도 없는데 괜히 인간들이 악마하고 한통속이 되어가지고 종교라는 걸 교회라는 걸 만들어놓고 천국 간다, 천국 간다, 계속 천국 간다고 부추긴 거죠. 인간이 생각하는 천국은 없는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어떤 방안도 하나님께는 없습니다.
이러한 에덴동산의 정신, 에덴동산의 취지가 애굽에서 나오는 히브리인들 이스라엘 나라에서도 그대로 그게 유지돼요. 왜 유지가 되어야 되느냐 하면 생명나무와 선악과의 그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뱀의 후손과 싸울 어떤 분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분이 여자의 후손이죠. 그럼 뱀의 후손과 싸워야 될 여자의 후손은 신약에선 물론 예수님이지만 구약에서는 그 정신이 이스라엘 내부에 들어서게 돼요. 이스라엘 내부에. 예수님의 일하시는 이유가 그 안에 담겨있습니다.
그러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스라엘의 환경이라는 것은 인간 좋으라고 있는 게 아니죠.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행복하라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준 게 아니에요. 행복하기 위해서 율법을 준 게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보고 ‘내 율법에 순종하라’ 하는 그 취지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고 관계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그 순종하는 취지는 인간들이 ‘순종하면 뭐 줄 건데요? 순종하면 복 줄 겁니까?’하는 그러한 거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주신 이유가 뭐냐?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은 안 된다는 거예요. 인간은 순종이 안 된다는 것. 율법을 줘도 순종 못하는 그 여정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계속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그 예가 출애굽기 16장 20절에 나옵니다. 19절, 20절을 보면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만나 이야기입니다.
만나 이야기를 할 때, 모세가 다른 이야기 안했어요. 19절에 보면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만 이야기했어요.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 남겨두면 뭐 썩는다, 냄새난다, 벌레 생긴다, 일체 그 이야기가 없어요. 그냥 아침까지 그걸 남겨두지 말라고만 이야기해요.
모세가 다른 이야기 안하고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남겨두지 말라는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인간이 뭘 먹는다는 것, 인간이 살려면 뭘 먹어야 되지 않습니까, 먹으려면 일을 해야 되죠, 인간이 일을 해서 먹을 것을 생산하고 그것을 온가족이 같이 먹는 때에 어느 인간도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다 내일을 위하여 저축하고 비축해둔다는 거예요. 이러한 인간의 행위가 인간들 보기에는 전혀 생소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것이고 마땅한 거죠. 욕심내서 다 먹어버리면 그럼 내일은 대책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만나라는 계명을, 만나 자체가 계명이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계명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음식물로 생각한 거예요. 음식물. ‘우리가 먹을 게 없으니까 주셨다’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실 때는 만나는 말씀이에요. 내가 네 본색 드러낼 거야. 네가 현재 가야될 약속의 땅의 원리와 네가 나왔던 애굽 원리와의 차이를 벌려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동일하면 안 되죠. 벌려야 되죠.
‘네가 만약에 그것을 아침까지 남겨두면 벌레 생기고 냄새 난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선지자니까, 벌레 생기고 냄새 나면 이건 뭐 우리가 비축하면 안 되지. 이건 또 주실 거니까 남는 건 버리자.’ 이렇게 나오겠죠. 그런데 일체 그런 말이 없고 그냥 아침까지 두지 말라고 한 거예요.
벌칙을 미리 주시면 우리가 판단을 해서 ‘아, 이게 이래선 안 되는구나. 우리한테 손해구나. 이 만나를 잘못 관리하면 우리에게 불행이 오는구나.’ 그렇게 되면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게 아니고, 자기한테 해가 되고 자기가 불행해지는 이것이 말씀보다 우선되는 그런 식으로 애굽에서 이 땅에서 아담의 후손들은 살아온 거예요.
말씀을 지켜도 자기 손해 볼 짓은 안하겠다는 것이 인간이 하나님 뜻에 절대로 순종 못하는 이유입니다. ‘네가 말씀에 순종하면’ 그럼 요즘 교인들 그 뒤에 나오는 게 뭡니까? ‘그러면 천국 보내줍니까?’ 이렇게 나오죠.
천국은 그런 천국이 아니에요. 순종하면 들어가는 천국이 아닙니다. ‘너 예수 십자가 믿는데 순종할래?’ ‘순종하면 천국 보내줍니까?’ 벌써 ‘천국 보내줍니까’가 뒤에 남아있는 상태에서 예수 믿는 것은 그건 전혀 예수 믿는 거 아니에요. 그건 순종 안함이죠. 순종 안함.
그래서 출애굽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줘놓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에게는 음식물로 여겨지는 그것이 실은 하나님의 율법이고 말씀인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알려줍니다. 알려줘서 무엇을 지금 하나님께서는 요구하느냐 하면 순종이란 차원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씀이 말씀대로 된다는 것이라는 것, 말씀을 주신 만나를 주신 오로지 그 뜻 외에는 하나님께 다른 뜻이 없는 거예요.
‘이거 하면 뭐 줄게’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께 주어진 그 말씀이, 네 속에도 말씀이 말씀답게 살아있을 수 있는가를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지고 계속 테스트해 나가시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신약에 누가 순종했어요? 예수님만이 순종했죠. 결론은 뭐냐? 우리 인간은 순종이 없다는 말씀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을 주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