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강-YouTube강의(계산 마태복음 25:3)20240402-이 근호 목사
제466강, ‘계산’. 자기 이익을 위해서 요모조모 따져보는 거죠. 특히 계산이라는 하것은 자기 소유가 또는 그 소유에 의해서 자기 자신이 미래에 내 신세가 달라질 것인가, 내가 잘 될 것인가 못 될 것인가를 늘 생각하는 것이 계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인간의 행동은 이 계산을 빼놓고는 행동하지 않아요. 모든 생각은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활발하게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계산하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살아간다면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인간이 계산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로 해서 말씀을 주시겠죠. 그럼 여기서 하나님의 계산법과 인간의 계산법이 당연히 차이 납니다. 인간의 계산법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계산이고 하나님의 계산법은 자기를 위한 계산 자체가 악하다는 것을 규정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가지고 그 허점을 다 들추어내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성경 말씀은 딱 두 종류죠. 하나님 앞에서 계산하는 자와 하나님 앞에서 아예 계산을 그만둔 자가 나누어집니다. 계산을 그만둔 자, 그 사람은 이제 천국 가고 하나님 앞에서도 계속 계산을 하는 자는 지옥 가고.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분류를 하셨습니다.
그 예가 마태복음 25장에 나옵니다.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신랑은 하나인데 처녀는 열 명입니다. 맞으러 나갔는데, 우리 생각에는 ‘열 명 다 신랑을 맞으러 나갔기 때문에 무사히 나중에 혼인잔치에 열 명의 처녀가 다 신랑과 함께 혼인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천국에 대해 설명하면서 탈락, 천국에 대해 탈락된 자를 거론하면서 천국을 설명해요.
아, 이거 상당히 무서운 이야기죠. ‘이런 자는 천국 간다’ 이렇게 설명해도 되는데 ‘이런 자니까 천국에서 탈락하지’라고 하는 거예요. 천국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데 인간은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계산을 하거든요. 계산을 하면서 뭐로 발각되느냐 하면, 천국은 원하지만 내가 천국에 부합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들통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신랑이 온다는 소리를 들을 때 열 명의 처녀가 다 반기면서 신랑을 기다립니다. 과연 열 명 다 신랑과 혼인잔치에 들어설 수 있느냐? 예수님께선 아니라는 겁니다. 2절에 보면 “그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아예 5대 5로 구분 지었죠. 슬기 있는 처녀와 미련한 처녀.
그럼 여기서 그다음 이야기 나오기 전에 궁금한 것은 어떤 처녀가 슬기 있고 어떤 처녀가 미련했을까? 그다음 이야기 3절에 보니까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했다 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따지고 보면 미련한 게 아니고 오히려 이 사람들이 요령 있는 사람이 아닌가. 왜냐하면 아직까지 신랑이 오지 않았다 이 말이죠. 그러면 밤에 신랑이 올 때 분명히 신랑 오기 전에 신랑 왔다는 소리가 있을 테니까 그때 기름을 준비해도 늦지 않다.
이게 무슨 뜻이냐? ‘나를 위해서 시간을 아끼자. 신랑한테 소모될 시간도 아깝다. 신랑 올 때 그때 시간 할당하면 되고 나머지 시간에 기름 준비하는 그런 귀찮은 짓을 하게 되면 내가 그만큼 손해가 아니냐. 아직 오지도 않은 신랑을 위해 기름 준비하는 것이 미련한 짓이지, 이건 지혜롭지 않다.’라는 처녀가 다섯 명이었어요.
그런데 4절에 보면,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 갔”다 이 말이죠. 이 말은 뭐냐 하면 슬기 있는 처녀의 특징은 계산을 해보니까 아직까지 신랑 올 때가 남아 있어요. 그런데 그 계산을 스스로 철회하는 겁니다. 지금 신랑이 왔다고 하는 거예요. 지금.
그러면 아까 미련한 처녀는 신랑이 올 때 신랑을 반기게 되면 그 이전의 시간은 계속해서 자기를 위하여 쓸 수 있는 시간이 되겠죠. 그런데 이 슬기로운 처녀는 아직 신랑이 오지도 않았는데 바짝 쫄아서 긴장해가지고 신랑이 왔다고 치고 기름을 이미 준비한 거예요. 그러니 신랑한테는 슬기로울지 모르지만 자기한테는 어때요? 미련한 거죠.
왜 그 귀한 시간을… 자기 위해서 쓸 걸, 신랑 오는 그때 반기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하느냐? 똑같은 이야기가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라는 데에 나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세 명의 직원이 나와요. 종업원 세 명이 있는데 한 사람은 다섯 달란트, 한 사람은 두 달란트, 한 사람은 한 달란트.
그러나 이 달란트가 세 명 다 본인 게 아니에요. 주인이 달란트를 줬잖아요. 그러면 그 세 명의 종업원들에게 주인이 재산을 맡길 때는, 주인 생각은 이거에요. ‘내가 비록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다 할지라도 먼 타국에 간다 할지라도 내가 준 달란트가 네 안에 있어, 없어? 있지? 있으면 그거는 내가 떠나도 나는 너와 함께 있는 거야.’라는 증표로서 달란트를 준 겁니다.
그러니까 직원들이 일할 동안에 주인이 준 것이 함께 있다는 말은 주인이 같이 있다는 뜻이고, 같이 있는 이상 나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은 일체 용납이 안 된다는 것을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인정해요. 주인이 있든 없든 주인이 주신 그것을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 같이 주인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심판받은 이 종은 ‘주인 멀리 갔지? 이제부턴 내 시간이야.’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내 시간이다.
그러니까 천국을 언급하면서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 두 가지 예를 들었는데 두 가지 예에서 천국을 언급하지만 천국에 어떤 자가 탈락하는지도 아울러 이야기했죠. 어떤 자가 탈락하는가? 자기를 위해서 계산하는 사람이에요.
평소에 얼마나 자기를 위해 사는 생활을 갈급했겠어요? 신랑 있을 때는 신랑 기다리는 척을 했죠. 그리고 주인이 함께 있을 때는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척을 했죠. 그러나 주인이 부재하고 신랑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랑이 부재하죠. 신랑이 안 보이죠. 눈에 안 보인다 이 말입니다.
그럴 때, 둘 다 천국가고 싶어서 환장을 해도 자기의 본색은 본인이 속일 수가 없었던 겁니다. ‘천국 가면 좋긴 좋지만 나는 변하지 않으리. 나를 위한 내 삶에 모든 것을 거기다 다 몰두하는 이 나를 위한 삶은 천국에 있든 주인이 오든 나는 변하지 않겠다.’ 그걸 하나님이 모르겠어요? 그걸 들통내는 타이밍 맞춰서 주님께서 오신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들도 자기를 위해서 계산하지만, 인간이 계산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주님도 계산하는 겁니다. 인간 계산, 주님 계산이 이렇게 차이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