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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빠와 함께 2024. 2. 7. 08:20

458강-YouTube강의(마음 잠언 6:19)20240206-이 근호 목사


제458강, ‘마음’. 잠잘 때는 의식 못해요. 깨어있을 때 의식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잠잘 때 하는 행동에 대해서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습니다.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죽은 사람도 의식할 수가 없어서 죽은 사람한테는 모든 경찰 조사가 끝납니다. 종결처리 해버려요. 그리고 의식이라는 것은 의식이 있는 대상을 향하여 그 사람을 문책한다든지 아니면 책임을 요구한다든지 또는 격려를 하든지 칭찬하고 뭐 이런 것입니다.

그럼 이 의식이 뭐냐? 성경에서는 의식을 마음이라고 해요. 그러면 방금 한 말을 다시 정리하게 되면, ‘마음이 살아있다.’ 의식이라는 것은 마음이 살아있다는 겁니다. 마음이 살아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어디를 집중 공략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을 공략해요. 살아있기 때문에. 의식이 있기 때문에. 율법은 인간의 마음을 집중해서 지목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인간의 입장에서 어떤 혼란이 일어나는데요. 인간의 마음을 인간 본인이 다룰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게 난처한 입장입니다. 인간의 의식을 인간이 어떻게 조정할 수가 없어요. 통제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그걸 아십니다. 아시고 어떻게 하시느냐 하면 현재 네가 다루지 못하지만 내가 네 마음을 다룬다. 그 다루는 방식이 율법이나 계명을 줘서 그 마음을 다뤄요. 이렇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성경 보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잠언서 6장 16-19절을 보면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두 가지죠, “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세 가지요, “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네 가지, “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다섯 가지, “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여섯 가지,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라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을 딱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밝혀주느냐. 하나님이 하시는 이 말씀에 대해서 네가 지킬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노출시키고 폭로시켜버려요, 이 말씀이.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 버리면 의식적으로, 마음을 인간이 다룰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것이 육칠 가지니. 싫어하는 것이 여섯 가지, 일곱 가지 되니’라는 말씀이 딱 들어오는 순간, 자기 마음을 하나님이 싫어하지 않는 마음이 되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 해버려요. 이거 가짜죠. 이게 인간 마음이 얼마나 교만하냐, 간사스러운가가 탁 들통나는 겁니다.

율법이 주어진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주받게 하기 위함이에요. 인간의 마음은 본인이 다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의 마음을 중립으로 가져가요. 왜냐하면 선악과를 알았으니까 선악과를 따먹었으니까 ‘이제는 선을 행할 거냐, 악을 행할 거냐 그건 내 마음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조정하기 나름이다.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해드리겠습니다.’ 이런 조로 인간이 나올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문제 삼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특히 여기 16절에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라는 이 잠언서 6장 16절의 말씀을, 뉘앙스를 딱 들어보세요. 그건 무슨 뜻이냐 하면 나 너 싫다는 뜻이에요. 난 네가 밉다는 뜻입니다. 나는 너 밉고 너 싫어. 그런데 너는 너를 안 미워하지? 너는 너를 안 싫어하지?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게.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인간은 원래 죽은 자에요. 죽은 자인데 의식이 있고 마음이 있으니까 의식이 있고 마음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가 살아있다고 여기고요. 두 번째, 살아있는데 착하게 살아있다고 자부합니다. 그 의식은 내가 손댈 수 없는데. 주님 앞에 그냥 노출되는 거예요.

병원에서 엑스레이 찍을 때 엑스레이 기사가 제일 당부하는 게 있습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그냥 딱 서 계세요. 자꾸 움직이지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엑스레이입니다. 내가 찍어줄 테니까 내가 사진 찍을 테니까 그냥 가만있어. 내가 쏘는 대로 네가 거기에 대한 반응이 사진에 현상되어 나올 거야. 그 현상 내용이 뭐냐? 잠언서에요. 잠언서이고 성경 말씀입니다.

‘아, 나한테 이런 게 있었구나.’ 이러면 돼요. ‘아,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애초부터 착하게 살아있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구나.’ 이러면 된다고요. 하나도 어려울 게 없어요. 주께서 사진 찍듯이 말씀을 딱 찍어버리면 그다음에 여섯 가지, 일곱 가지니, “교만한 눈과” 17절에 교만한 눈이 나오잖아요. ‘맞습니다. 제가 교만합니다.’ 이러면 아무 문제없어요. “거짓된 혀와” ‘거짓된 혀는 제 주특긴데요. 그거 어떻게 알았죠? 제 주특기가 거짓된 혀에요.’ 남 속여먹는 데서 오는 즐거움, 쾌감 그 재미로 사는 거 아닙니까.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인간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남한테 피를 흘리게 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존재하면서 남한테 피해 안주는 방법이 없어요. 내가 여기 있잖아요. 주위 사람들 다 피곤합니다. 나 때문에 피곤합니다. 힘들어해요. 인간은 자기의 의식된 마음이 괜찮은 줄 알고 있어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얼마나 사람을 바늘로 콕콕 찔러요. 장희빈 사극 봤죠? 장희빈이 인현왕후 저주하기 위해서 짚으로 인형 만들어놓고 막 바늘로 찌르듯이 왜 그런 짓 합니까? 장희빈 자기는 살고 너는 좀 죽어줘. 이것 때문에 그짓을 하잖아요. 이건 뭐 장희빈한테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모든 인간들이 다 그래요. 식구가 네 식구라면 나 빼놓고 세 식구가 나 때문에 힘들고 저 사람 때문에 내가 힘들고. 그게 식솔이고 식구라는 겁니다. 식구란 이름, 가족이란 이름이 그런 이름이에요.

그다음에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그냥 ‘떡 먹어라’하면 ‘에이, 맛 없다. 안 먹는다.’ 이렇게 되겠죠. 그런데 엄마가 ‘얘, 선반 위에 떡 얹어놨는데 절대로 너 먹어서는 안돼.’ 하면 벌써 그 떡은 다 날아갔습니다. 선악과 따먹을 때도 그랬거든요. 하지 말라면 기어이 내 마음은 타인의 마음을 위반하는 데서 독자적인 자기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 범죄한 인간의 본성이에요. 그럼으로써 타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다음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하나의 조직이 된다는 거예요. 하나의 공동체가 되면 패 가름, 어느 것이 힘이 세고 어느 것이 권력자인가 봐서 딱 갖다 붙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소외된 사람이 어떻게 되든 간에 힘센 사람에게 아부를 해야 되고 그 사람 편을 들어야 내가 신상에 안정성을 꾀하게 됩니다. 그래서 뭐 힘센 사람이 ‘저 사람 나쁘지?’하면 ‘예. 나쁘고 말고요.’ 서슴없이 자기가 본 것 말고 과도하게 해서 같은 한 패를 먹음으로써 비난하는 겁니다. 야구 같은 것 응원할 때 홈구장에 있는 응원단은 상대방 편에 가서 응원하면 그건 안되죠. 욕 얻어먹습니다. 항상 내 편, 내 편을 조직하면서 자기의 안정성 있는 존재의 바탕을 마련하려고 하는 게 인간입니다.

그다음에 같은 뜻이에요.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누가 더 세냐. 누가 나한테 더 도움되는 사람이냐. 누가 나한테 나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냐.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싫어하는 거고 미워하는 건데 세상에 어떤 인간도 여기서 벗어날 인간 없습니다.

따라서 말씀이 이렇게 지적하시거든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내 손으로 치료가 안되니까, 치료하려고 엑스레이 사진, 말씀으로 탁 찍었다고 보면 돼요. 시작은 이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내 마음, 내 의식 하나님의 손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이게 구원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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