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의식

아빠와 함께 2023. 12. 20. 10:48

456강-YouTube강의(의식 예레미야 5:4-5)20231219-이 근호 목사


제456강, ‘의식’. 여기서 말하는 의식(意識)이란 무의식(無意識)의 반대말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말로 하면 ‘안다’. 사람이 죽으면 의식을 못하지만 살아있는 한 의식하게 되어 있어요. 이것저것 알게 되어 있어요. 인간이 의식으로 알면 의식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고 어떤 행동을 개시하게 됩니다. 뭘 알면.

어린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의식적 행동을 하는 게 아니고 그때는 본능대로 움직인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의식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계산하거나 따지지 않고 육신의 욕구대로 그냥 움직이죠. 그때는 의식 차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의식 차원이 아닐 때는 벌 세우고 이런 게 의미가 없어요. 본인이 따져서 행동하는 게 아니고 그냥 나오기 때문에 부모로서는 어린아이가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좀 크면 아이가 무의식에서 드디어 의식으로 나아갑니다. 요모조모 따질 줄 알죠. 따지는데 어떻게 따지느냐? 요게 나한테 이익이 되겠느냐, 손해가 되겠느냐, 그렇게 따지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 우리는 그 말씀을 뭐로 마중 나가느냐 하면 의식가지고 마중을 나가요. 하나님 말씀이 드디어 왔다. 마치 택배 배달받듯이 말씀이 왔다. 벌써 의식하죠. 의식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준수하고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잘 돋보일 수 있고 그리고 말씀을 지키면 내가 얻고자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충분히 채워준다는 그런 계산이 머릿속에서 휙휙 돌아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주셔도 내가 자기 이익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추려서 골라서 받게 돼요. ‘말씀을 내가 지키면 뭐 해줄 건데요?’라는 생각을 우리 마음속에서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정도까지 성의를 표했으면 하나님 쪽에서도 가만있지 않고 내가 필요한 것을 알아서 주실 것이라는 생각, 이 전체가 ‘의식’하는 거예요.

자, 어린아이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어린아이는 의식하지 못해도 필요한 것은 부모가 알아서 주십니다. 이걸 하나님과 연관시키면 우리가 어린아이 같아서,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가니까, 어린아이 같아서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불필요한지 아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자기 백성이 지옥 갈만한 것은 안 주십니다. 그런데 천국 갈만한 것은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식이에요. 그런데 인간은 좀 컸다고, 크면 의식이 있으니까, 의식을 다른 말로 하면 ‘자립성이 단단히 갖추어져 있다’, ‘독자적이고 독립 성향이 강하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게 의식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린아이같이 보시고 무엇이 필요하냐 안 필요하냐를 하나님이 알아서 주시는데, 사람들은 자기가 돋보이는 것대로 그것을 추려서 자기가 의식적으로 가려내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때는 하나님의 본래 취지가 있는데 그걸 받는 인간들은 하나님의 취지와는 완전히 배타적이고 충돌되는 대립이 되는 그런 쪽으로 점점 본인을 굳혀가죠.

이런 일이 오늘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옛날 이스라엘에게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5장 4절,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스라엘은 우준하고 비천해서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취지, 뜻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데 5절에 보면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하면 사람들은 그 말씀이 진리라고 여기고 듣거나 받거나 해야 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받아요. 왜냐하면 나름대로 하나님의 길과 법을 그들이 안다고 우기기 때문입니다. ‘예, 잘 압니다.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는가? 6절에 보면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이 심함이니이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자, 이야기 다시 해보겠습니다. 갓난아이 같으면 갓난아이에게 부모가 뭘 요구하질 않아요. 그리고 갓난아이에게 나쁜 걸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기 백성에게 나쁜 걸 주지 않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좀 컸다고, 자기 나름대로의 자기 인생을 자기 욕망대로 한번 가보겠다고 나서니까, 하나님 보기에는 어린아이 같아야 되는데 자기가 성인이고 어른이 되었어요. 하나님의 말씀도 내가 잘 알아서 내가 처신하겠습니다, 하는 쪽으로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진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말씀을 받을 때에,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요? 말씀을 받을 때. 그래서 다음과 같은 걸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지자 통해서 말씀을 주게 되면 그들은 시건방지기 짝이 없어요. 하나님은 그 이유를 알아요. 항상 인간은 스스로 서면 안돼요. 주의 은혜로 살아야 돼요. 그런데 언제부터 좀 배부르고 하니까 ‘이제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어디가 천국인지도 모르면서, 그들은 하나님 뜻을 빙자하되 자기 뜻을 고집부리는 겁니다. 자기 뜻이 하나님 뜻이라고.

그 내막을 보게 되면 본인의 그 잘남, 자랑거리가 깨질 생각이 없어요. 계속 자기는 잘난 맛에 살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깨어버려요. 이게 사랑이에요. 말씀을 주시되 말씀을 안 듣는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철수하는 게 아니고, 그 말씀대로 해서 그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우리가 살 수 없다는 그런 환경 쪽으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일관되게 밀어붙입니다.

그럴 때 그들은 다시 옛날을 되돌아봐야 돼요. 아, 그때. 그때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는데 우리 고집이 왕고집이었구나. 뭣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내 인생 내가 개척한다고, 주께서 선하게 인도하는데 자기가 자기에게 목자가 되고 말았어요. 목자는 따로 있는데 자기가 목자에요.

자기가 판단해서 자기 인생을 개척하려고 나서는 그 시건방진 것, 그런 인간이 하나님께 와장창 깨어질 때 도리어 그들은 눈물 흘릴 게 아니고 진정으로 제대로 하나님께 고맙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돼요. 인간의 의식이 이처럼 인간에게는 문젯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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