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참된 선지자

아빠와 함께 2023. 12. 10. 18:50

참된 선지자 

2023년 12월 10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14:13-18

(14:13)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14: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14: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4: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14:17)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14:18)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선지자의 존재는 거짓 선지자와의 대비를 통해서 밝혀집니다. 거짓 선지자는 백성들의 심성을 대변해줍니다. 즉 “우리는 이러이러한 하나님이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라는 뜻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계시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정치적입니다. 사람들의 요구조건에 따라 계시의 내용이 당연히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반면에 참된 선지자를 백성들에게 맞아죽기 위해 선지자된 자입니다. 백성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들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공격성향을 그대로 받아내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인물이 바로 참된 선지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과연 하나님주신 계시대로 현실이 돌아가는지 확인해 봅니다.

그야말로 이스라엘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계시에 합당한 상황을 비참하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그것은 ‘계시의 세상’ 즉 완성된 이상적 세계는 처참하게 황폐한 세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래야지만 그 어떤 인간도 이런 세계를 동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이란, 곧 하나님 나라란 그 어떤 인간도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이 들어설 수 있는 나라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미 모든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살만 자들이 아님을 분명히 말해주는 겁니다. 인간은 처참하게 망하는 세계를 기피한다는 점이 곧 ‘교만함’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친히 만든 세상이라도 자신들이 살고 싶은 세상과 차이가 나면 인간들은 주저없이 거부합니다. 이처럼 천국은 인간 세계와는 다른 철저히 이질적인 곳입니다. 애초부터 인간은 생명나무 있는 데는 근처도 올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면서 생명나무 중심의 나라를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겁니다.

참된 선지자는 땅의 인간들의 의견을 하나님께 아뢰서 부탁하는 자가 아닙니다. 도리어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지시에 따르는 자입니다. 철저하게 교만하지 않아야 하는 겁니다. 수능을 치러는 학생은 출제의원은 의도를 잘 헤아려야 합니다. 이는 자기 견해를 출제된 문제 앞에서 포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지상에서 다른 인간들과 비교해서 덜 교만한 것이라도 하늘나라에서는 안 받아줍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지상에 천국을 만들 때, 같이 한 인물이 단 한 사람도 없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들어설 수 있는 세계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베드로로 따라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신을 향한 최선의 태도를 여러 가지 제안하고 있습니다. 겸손과 청빈과 순결함과 희생 같은 것들이 하나님이 받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체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들 바탕에는 ‘자기 사랑’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시편 73:1-5에 보면, “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특히 시편 73:13에서는 다음과 같이 단정짓습니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즉 이 세상은 교만이 편만하고 보편화되어 있는 실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소위 성도라 할지라도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근히 자신도 건강하고 돈 잘 벌기를 원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세상 분위기는 바로 영원한 ‘교만의 원조’, 아무리 해도 교만을 떨어지지 않는 존재, 사단에서부터 비롯된 겁니다. 스가랴 3:1-4에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입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보다 깨끗해야 하는데 참으로 더럽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즉각적으로 단호합니다. 그 더러운 옷을 벗기는 겁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옷을, 하나님 보는 앞에서 갈아입히게 합니다. 이게 바로 천상회의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참된 선지자는 천상회의에 참석한 자이어야 합니다. 이럴 때,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교만의 물결’임을 파악하게 됩니다.

교만한 대중들이 교만한 선지자들만 찾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자진해서 천국에 찾아들어오는 것을 저지하십니다. 열왕기상 22:19-21에 보면, “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속임수만의 세계에 대해서 신약에 오면 역시 하나님께서 신약에 맞는 선지자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사도행전 26:17-18에 보면,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이 시대의 선지자입니다. 결코 자신의 일을 자신이 책임지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주님께서 더러움을 드러내시면 그것 조차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서 알아듣는 식의 교회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81강-예레미야 14장 13~18절(참된 선지자)231210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14장 13~18절입니다. 구약성경 1072페이지입니다.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주신 참된 예언의 성취성이 그 이스라엘의 현지성으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예언과 계시가 이 이렇게 비참함으로 등장해야 하느냐. 왜 이렇게 좋게, 행복이 넘치는 모습이 아니고, 처참한 모습으로 되어야, 이게 하나님의 옳은 계시가 실현된다고 그렇게 단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는 하마스가 더는 사람이 사는 동네가 되지 못하고 황폐하기 짝이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알라신을 믿는 그들 무슬람은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하나님은 위대하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망한 거예요. 하나님은 위대한 것이 아니에요. 그들은 그런 하나님을 여전히 못 버리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위대하다고 외치는 것은 그들이 위대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거짓 선지자라고 하는 겁니다. 과연 하나님이 이 세상을 황폐하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어느 인간의 황폐함보다 더 황폐함을 겪는 그 자체가 자신이 던진 계시의 실현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인간도 감히 안 가려고 한 그 길, 어떤 인간도 싫어 버린 바 되는 그쪽에서, 주님께서는 하나님 계시의 다 이루심을 성취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사람이 찾지 않는 그런 환경, 그 경우를 주님께서는 인간들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오직 주님 홀로 이루어낼 수 있는 그 환경을 따로 구축합니다. 그게 말씀이 완성됨으로 말미암아, 어떤 인간도 말씀의 완성을 기대하면서 따라오는 사람들은 주님의 십자가 가는 길에 다 떨어져 나갔어요. 어떤 인간도 같이 동행한 인간은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겠죠.

따라서 그렇게 하게 하신 이유가 뭐냐. 그 이유는 천국이라는 곳이 사람의 나라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요. 사람들이 살기 좋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나라는 결코 아니어야 해요. 그럼 하늘나라는 어떤 나라냐. 하나님만이 기뻐하고, 하나님의 아들만이 좋아하는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 천사들은 좋지요. 그러나 어떤 인간도 그 나라를 싫어하게 되어있는 나라가 바로 천국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천국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천국이 전혀, 완전히 대립 되고 대치되게 되어있어요. 시편 73편 1절에 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이 선을 행하신다는 말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간섭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말리고 개입하고 있다는 거죠. “그거 아니야. 그거 아니야”라고 단호하게 치고 들어오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한 일이죠.

2절에 계속 읽어보면,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라는 이런 경우에, 하나님의 개입이 이루어짐으로써 실족할 ‘뻔’했고, 미끄러질 ‘뻔’했죠. 실족하지도 미끄러지지도 않았어요. 그러면 여기서 인간이 기대하는 것과 하나님의 선한 일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러면 여기서 인간의 기대하는 것과 하나님의 선한 일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3~4절을 보면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죽을 때까지도 고통이 없는 거예요. 저거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나 안 믿나 관찰하고 검사하려고 딱 지켜봤는데, 죽을 때까지 고통이 없어요. 연상되는 인상이 있으시죠? 금복주 할아버지 또는 미국 켄터키프라이드(KFC) 할아버지, 누가 봐도 복스럽고, 귀는 석굴암 부처처럼 길고 커야 해요. 인상 좋고 관상 좋고 그런 거죠.

오늘 시편 73편 12절 본문에서, 앞부분 떼고 뒤에 부분을 액자로 해도 괜찮을 거예요.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라고 앞부분에 해놓고 뒤에 서술을 이렇게 했어요.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지금 장사하는 사람들 화날 것 같은데, 항상 편안하고 게다가 재물을 더해주는 거예요. 사업에 손만 대면 재물이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그리고 늘 마음이, 내게 강 같은 평화예요.

‘내게 강~같은~평화’ 늘 마음이 평안해요. 그런데 그게 무엇의 서술인가. 무엇의 내용인가. 악인들입니다. 악인들이 이렇다는 겁니다. 그걸 보고 실족할 뻔하였고, 미끄러질 뻔했다는 겁니다. 우리 같으면 벌써 실족했어요. 미끄러졌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선한 일이 긴급상황으로 투입되니까, 미끄러졌는데 ‘뻔’이 되었죠. 아주 미끄러지지는 않았어요.

왜 거짓 선지자들의 인기가 높은 줄 아시겠죠? 왜 민중들은, 군중들은 거짓 선지자들만 찾고 있는지를 시편 73편을 통해서 이해되는 겁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거짓 선지자가 아니에요. 참 선지자게 되겠죠. 그렇다면 여기서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이렇게 단서를 붙였어요.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한다”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는데 그들이 내 이름으로 예언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라사대’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같이 나에게 지시가 내려왔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디 한번 들어보자. 하나님의 지시가 뭔데? 어떤 지시가 내려왔는데? 교회 나오면 차에 빵꾸도 안 나고, 만사가 형통하고, 복을 받고, 이런 지시인가. 단순히 그 사람들이 위로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무엇을 들이대느냐 하면 성경 구절을 들이대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성경에 봐라.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이런 복을 받잖아. 나는 말씀 대로만 한다고. 나는 딴소리 섞기도 싫어. 성경에 있는 그대로만 이야기하는데, 말씀대로 살면 재물이 들어오고 마음이 편하다. 이 말이 뭐냐? 내가 말씀 그대로 하는데, 말씀대로 안 사니까 몸이 아프고, 사는 형편이 꼬라지가 참, 꼬라지 치고는 엉망진창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것이 여호와 이름으로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면 이렇게 되면, 이걸 듣는 인간들은 뭐냐 하면, 반성하거나 개선할 여지를 본인이 갖게 됩니다. 이거는 내 쪽에서 고치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그들이 갖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이건 절망이 아니고, 스물스물 희망이 올라오는 겁니다. 희망이. ‘목사님 뭘 하면 됩니까?’라고 그다음 반응이 나오는 거죠.

오늘 본문의 내용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계시가 계시대로 된다는 말은, 천국은 예수님의 나라예요. 아들의 나라이고 예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왔을 때 천국은 어떤 모습일 수밖에 없느냐. 어떤 모습일 때, 이게 천국이라고 할 수밖에 없느냐 하는 그 자리를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와서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천국이 누구 자리냐 하면, 인간들 다 떨어져 나가고 하나님 본인의 자리예요.

이게 주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 하실 일이에요. 내 이름으로 천국을 만드는데, 그 천국은 너무 처참하고 비참해서 어느 누구도 그것을 소망하지 않는 나라, 그게 바로 천국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인간들이 혹하도록, 왜 사람들에게 구미 당기도록,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해서 마음만 먹으면, ‘저 천국 갈래요~저 천국 갈래요’라고 다 손들도록 유도하면 될 텐데, 의도적으로 왜 천국을 가로막는 그런 천국을 만드는가.

그것은 바로 천국에 들어올 수 없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 천국은 불쌍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 가기 때문에, 제일 거부당하는 자가 누구냐. 교만한 자예요. 그런데 이 교만은 인간 선에서 떨어낼 수가 없어요. 이 교만한 자의 대변자가 있지요. 대표자가 있습니다. 스가랴 3장 1~2절에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그다음에 여호와의 이름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일하심이 나와요.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하나님께서 사탄을 책망한다고 했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탄을 영원히 책망해서 지옥에 보내려면 사탄을 책망할 만한 상황을 지상에 허락을 해주셔야 하겠죠. 사탄의 지배, 이 세상 신의 지배하에, 이 세상에 돌아가는 모든 모습은 하늘나라에서 사탄이 책망받는 것과 똑같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하나님께 책망받는 일이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그게 앞뒤가 맞아요. 그 책망받을 일이 뭐냐. 그 상황을 어떻게 만드는가. 시커멓고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에게 뭐라고 하시느냐 하면, “천사야, 이 옷을 벗겨라” 일방적으로 옷을 벗겨버리십니다. 그 불에서 꺼낸 그슬린 옷을 벗기고 4절에 보면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라는 그 행위, 그 행위에 의해서 영원히 사탄은 책망받아야 하고, 영원히 지옥 갈 모든 인간은 책망받아야 하는 겁니다.

이 사실을 이해 못 하는 것을 가지고 교만이라고 합니다. 교만. 더러운 죄와 의를 바꿔치기함을 모르는 것을 가지고 교만이라고 해요. 사람들은 누가 나에게 손대는 것을 근원적으로 굉장히 싫어해요. 왜냐 하면 평소에 내가 나에게 손을 대 왔기 때문에, 누가 나에게 손댄다는 것은 내가 나에게 손대는 것에 도전으로 간주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가 다 챙겨주지만, 좀 크면 컸다는 티를 내요. ‘내가 할게. 내가 할 게’ 벌써 교만이 시작된 거예요. ‘내가 할게’ 엄마는 타인이라는 뜻이죠. 그러면 우리가 교만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은 주님이라는 타인이 나에게 하는 것은 내가 허락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게 되는데, 문제는 주님이 하시는 일에 우리가 흔쾌히 받아줄 위인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구원은 어떻게 하느냐. 강제조치입니다. 강제로 끄집어내요.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나올 때 믿음 좋아서 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창세기 19장에 보면 질질 끌려 나왔어요. 강제조치였습니다. 안 나가는 것을 가지고 천사가 재촉해서 빨리 나가라고, 나가라고 했어요. 어쩔 수 없이 다 놓고 나왔어요. 이게 선한 하나님의 개입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가 없어요. 2023년도 수능에서 만점자가 딱 한 명인데, 여학생이에요. 만점 맞은 여학생에게 기자가 물었어요. ‘어떻게 해서 대학 수능에서 만점을 맞았습니까?’라고 물으니까, 그 여학생 하는 말이 굉장히 간단해요. ‘출제의원의 의도를 잘 살폈습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집중력이 높은 거예요. 출제의원의 의도를 알려면 내 뜻을 포기해야 해요. 내 뜻을.

이게 교만하지 않죠. 출제의원이 낸 문제지, 내가 낸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 성경이 내가 낸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성경 큐티 하면서 내 뜻을 강제로 들이미는데, 그러면 수능 빵점이에요. 수능 빵점이면 괜찮지, 인생살이 자체가 빵점이에요. 출제의원이 있다고요. 성경을 출제하신 분이 있어요.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에요. 문제를 내는 거예요. ‘너 어떻게 생각해?’

이 땅에 가장 수치스러운 자리에 천국을 만들려고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떠냐고 묻는 겁니다. ‘저는 동의 못 하는데요’라는 이걸 교만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호수아가 뭐냐. 대제사장이에요. 하나님의 대제사장 직분의 예수님이 갖고 있는 일부를 담당합니다. 또 하나는 뭐냐. 스룹바벨이죠. 왕과 제사장직이 예수님 앞에 메시아로 같이 결합이 되어있어요.

그 제사장이 옷이 시커멓다는 말은, 원래 제사장은 시커멓게 하면 안 돼요. 깨끗해야 해요. 레위기에 보면 인간 중에 제일 거룩한 자가 대제사장입니다. 대표로.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대제사장을 가장 시커먼 자로 만드셨어요. 천하에 시커먼 자로. 우리 성도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내심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해야 합니다. 나쁜 일 하는 것이 내 뜻이 아니고 주의 뜻이에요.

새삼스럽게 더 나쁜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고, 있는 나쁜 일을 계속 개발하는 것을 주께서 하시는 겁니다. 왜 하느냐? 교만하지 않도록. ‘우째, 차가 빵꾸가 납니까? 우째.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라는 그것도 교만이에요. 그동안 빵구 안 나고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이참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서너 번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안 난 거죠. 그게 출제의원을 아는 겁니다.

그러면 끝으로 이 출제의원을 알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게 성경에 나옵니다. 출제의원을 아는 것이 열왕기상 22장 19~21절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기서 왕은 세상 왕이죠.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악한 영)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그러니까 거짓말로 꾀어서 죽게 하겠다는 이 장소, 여기가 천상회의입니다. 어떻게 출제의원의 말을 아는가. 진짜 선지자가 무엇인가. 천상회의에 참석하면 됩니다. 그러면 예레미야 너는 뭐냐? 예레미야 23장 22절에 보니까,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예레미야도 천상회의에 참석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 아닌 사람의 공통점은 미가도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인데, 하나님이 회의하는데 거기에 같이 참석한 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참석하면 어떤 결과가 있느냐. 지상에서 노력하고 이바구하는 것이 전부 다 거짓말이 됩니다. 이거는 그냥 ‘모른다’가 아니라, 거짓의 영이 인간을 어떻게 꾀고, 어떻게 천국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해서 그 이야기에 회유당하고 있는가를, 진짜 선지자들은 다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진짜 선지자에게 돌아가는 대가는 뭐냐. 고난입니다. 신약에도 그런 사람 좀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있습니다. 사도바울. 성령 받은 거예요. 성령 받은 사도바울이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사도행전 26장 17~18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다음 18절에 보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이건 우리가 안다고 칩시다.

그다음에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그러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한다는 것이 뭐냐. 디모데후서 2장 26절에 보면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이 말은 성령 받은 성도의 특징은 오늘날에 선지자라는 이 말입니다. 천상회의에 참석한 선지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가는 그 모습은 이 땅에 최저로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고, 이 땅에서 뿌리째 존재의 뿌리가 뽑힌 채로 살아간다는 이 말이에요. 목사의 월급은 나보다 적어야 한다는 그런 소리 하는 것이 아니라, 제일 가난하다는 그런소리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뿌리째 뽑히는 거예요. 나도 한 2천만 원 받으면 좋겠다. 이천만 원 받고 뿌리째 뽑힌 것이 뭔가를 한 번 보여드려요.

인위적인 청빈, 인위적인 낮음, 이게 마귀 짓인 것을 생각 못 합니까?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도 돈사랑 아니에요. 성령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고, 성령 받은 사람에게는 납득이 되는, 구약에서는 실족할 뻔했는데, 신약에서는 실족할 뻔하면 안 돼요. 왜? 그들은 건강하고 부자 되니까 실족할 뻔했잖아요. 그것은 뭐냐. 그걸 바라보는 본인도 구약 성도란 말이죠. 구약 수준밖에 안 돼요.

교회가 선교를 해야 하고, 뭐 어떻고, 어떠해야 하고. 그게 교회입니까? 커뮤니티 아니에요? 종교라는 이름의 친목 단체 아니에요? 인간이 남들 앞에 설득력 있는 내용은 교회에서 나오면 안 됩니다. 철저하게 차단되어야 해요.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한다. 뭣 때문에 비난하는데? 교회가 돈만 밝히고, 교인들이 세상적으로 하고, 그게 진리입니까? 그런 말이 옳은 진리예요?

어려운 사람 놔두고 돌보지 않는다는 그게 진리예요? 그게 마귀 입에서 나온 거 아니에요? 그럴싸한 교회를 흉내 내지 마세요. 교회는 흉내 낼 수가 없어요. 교회는. 이 세상에 마귀가 교회를 만들 때 어떤 교회를 만들겠습니까? 성경에 나와 있는 이대로 흉내 내서 만듭니다.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라고 비치게 만들어요. 선한 일을 해서 ‘야~~너의 교회 같으면 내가 교회 다닐게’라고 교인들이 오도록 유도하는 교회, 거짓 선지자입니다.

진짜 교회는, 남이야 돈을 몇천만 원을 벌든, 남이야 몸이 건강하든 튼튼하든, ‘잘 있거라. 이 세상아’라고 자기는 뿌리째 뽑혀서 이 세상과 헤어질 생각으로 매일 사는 사람, 늘 하루하루가 마지막 생일이죠. 오늘 몇 명 나왔는지 전도사에게 그걸 왜 헤아리라고 하는 거죠? 왜 헤아리는데? 참된 선지자는 이미 알아요. 예수님이 얼마나 비참한 천국을 만들었는지.

어느 인간도 감히 가고 싶지 않은 천국을 만들었다는 거. 따라서 천국에 가게 된 것은 내가 이래저래 계산해서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가졌던 그 마음이 그대로 우리에게 찾아와서 어떤 것도 구애받지 않는 상태에서 구원받는 겁니다. 끝으로 이 말 꼭 드리고 싶습니다. 내일 죽더라도 이 말 꼭 드리고 싶어요. 여러분의 인생에 대해서 여러분이 책임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발 자기 인생에 책임지지 말고 사세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디서 엉뚱한 이야기 듣고, 바른 교회 해보겠다는 짓이, 그게 마귀 짓인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그런 교회 요소가 싹 다 삭제되게 해주시고, 그냥 이 세상 지옥 구경 잘 관람한다는 식으로, 통과하는 식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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