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강-YouTube강의(새로움 로마서 12:2)20231107-이 근호 목사
제451강, ‘새로움’. 로마서 12장 2절, 딱 들어보면 아, 이거 헌신예배 때 단골 본문이에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서 새롭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새롭다고 하기 위해서 앞서서 미리 전제되는 게 있을 때 새로움이 있어요. 그러면 전제되는 것은 새롭지 않은 것이 전제될 때 새로움과 구별이 되게 되어 있어요. 새롭지 않은 것. 그럼 새롭게 되라, 할 때에는 새롭지 않은 게 뭔지 궁금하죠. 그게 뭐냐 하면 12장 2절에 “이 세대”를 의미합니다.
이 세대. 상당히 어려운 용어에요. ‘이 세대’란 어려운 용어인데 이걸 편하게 쉬운 용어로 바꾸면 ‘이 세상’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그럼 이 세상이라 하면 될 텐데 왜 예수님은 왜 사도 바울은 이 세대라고 했을까?
공간 중심으로 표현할 때는 ‘이 세상’이라고 합니다. 공간 중심. 공간이라 하는 것은 저기 있다, 여기 있다, 어디 지점을 이야기하는 게 공간이에요. 어떤 물건이 여기 놓여있을 때 놓인 장소를 공간이라 합니다. ‘자, 이 커피가 어디 놓여 있습니까?’ 질문 성립가능해요. 테이블 위에 있죠. 그런데 ‘이 커피가 몇 시입니까?’ 질문 성립돼요, 안 돼요? 안되죠. 몇 시입니까,는 성립 안 되죠.
이 세상의 질문은 공간 질문을 하는 거예요. 어디 있는지를.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하면 질문하는 내가 질문할 때는 내가 파악하기 위해서 질문을 하는데 내 자체가 시간적으로 파악하지 않아요. ‘나 여기 있는데 너는 어디 있나?’ 공간의 개념을 가지고 공간의 개념을 찾아나서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총집합을 ‘세상’이라고 이야기하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세상’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더러 ‘이 세대’라고 이야기해요. 이 커피보고 몇 시냐고 묻는 것은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되잖아요. 그러면 세대라 하는 말은 이 세상을 공간적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적 개념으로 파악할 때 세대가 돼요.
질문 한번 해볼게요. ‘이 커피는 몇 시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안 되지만, ‘이 커피는 어느 세대에 속합니까?’ 물으면 답은 나와요. 이 커피는 옛 세대에 속한 겁니다. 옛 세대에 속한다는 말은 천국에는 커피가 없다는 말이에요. 천국에는. 커피는 이 세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다면 오늘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은 이 세대는 시간이 지나면 전부다 사라지고 없어지고 흩어져버리는 것들이에요. 무엇이 주도적으로 작동하느냐 하면 시간이라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갉아먹고 무너지게 하는, 허물어버리는 그러한 힘이 시간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세대가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가? 그 다음 질문은 그거에요. ‘그럼 몇 년 기다려야 다 없어지죠?’ 또 이렇게 되죠. 그게 12장 1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제물)로 드리라” 이렇게 한 거예요.
시간을 앞당기는 거예요. 시간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이 불심판 받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먼저 주님의 지신 그 희생 제물에 합류를 해버리는 겁니다. 합류를 해버리면 내 시간은 종결돼요.
째깍째깍 째깍째깍, 이렇게 요양병원 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고 주님의 십자가에 합류가 되어버리면 이미 우리의 시계, 내 인생의 시계는 멈췄어요. 나이 18세? 멈췄습니다. 끝났어요. 주님의 시계에서는 멈춰졌고 이 세대에서는 18세, 19세, 20세 계속 이어지는 거예요. 이어져봤자 그것은 무의미한 나이에 불과한 겁니다. 숫자에 불과하죠. 무의미한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를 앞당겨서 이 세대에서의 나의 일생을 제로(0)로 만들어버려요. 그러면 우리는 뭐가 되느냐 하면 ㉯로마서 14장에 있는 것처럼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 되는 겁니다.(14:8) 그렇게 되면, 이제 어려운데 ㉰내 안에서 두 개의 세대가 이제는 뿜어져 나와요. 하나는 이 세대, 또 하나는 오는 세대가 뿜어져 나옵니다. 어려워도 하는 수 없어요. 여기서 멈춰버리면 설명하나 마나니까 좀 어렵더라도 어렵게 나가겠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 보면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되어 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은 현재 이 세대에 속했어요. 십자가 지기 전이기 때문에 부활되기 전이기 때문에 이 세대에 속했어요. 그러나 우리에게 오실 성령은 십자가 이후에 오실 영이기 때문에 두 가지 세대를 다 보여줍니다. 이 세대, 오는 세대 다 보여줘요.
그래서 예수님 십자가 전에 이 세대에서 예수님에 대해 ‘아, 나 당신 못 믿겠다. 당신 믿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할 때는 그래도 용서돼요. 아직까지 오는 세대가 안 왔으니까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세대가 오지 않았으니까.
시간이 모든 것이 멈추고 하나님의 정지된 체제 자체, 완료됨이 주어지기 때문에,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거든요, 완료됨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 세상 시간가는 것은 별 의미 없어요. 성령께서는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 성령이 오기 때문에, 이 세대와 오는 세대의 차이를 한꺼번에 다 보여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죄 사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네가 무슨 수로 오는 세대를 알아? 누가 가르쳐줬습니까? 누가? 누가 가르쳐줬어요?
다시 로마서 12장 1절에 와서 제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은, 죄를 누가 갖고 있었어요? 죄 사함 받을 때, 죄 사함을 받기 전에는 죄를 누가 갖고 있습니까? 내가 갖고 있죠. 그러면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제단에 누웠다는 뜻인데 이것은 제단에서 우리를 죽이는 거예요. 우리를 죽여서 죄 사함 받게 해준 거예요. 그냥 죽으면 자살이고, 주와 함께 죽음으로써 죄 사함을 얻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죽이시는 의가 우리 속에 담기게 되는 겁니다.
성경 말씀 로마서 12장 1절, 2절은 되게 간단하거든요. 누가 봐도 ‘아, 예수 믿고 이 세상 세속된 것 끊고 바르게 살아서 빛과 소금의 역할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 그 이야기지. 헌신예배 올 때마다 그 이야기. 진짜 나 다 안다, 이럴 수 있단 말이죠. 본인이 안 죽었는데요. 내가 예수 믿고 난 뒤 15년 지났으니까 15년 지난 만큼 착해질 것이다. 예수 믿고 15년이라는 게 없어요. 예수 믿고부터는 늘 이 세대는 죽었고 오는 세대는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를 15년 동안 반복했을 뿐이에요, 15년 동안.
그러니 참, 성경지식이라는 것이 우리를 변화시켜주지 못합니다. 지식은 그냥 국어시간이에요. 국어시간. 진짜 변화는 성령이 와서 주께서 죄 지은 우리를 이미 죽은 자로 간주하고 그러한 너 안에 내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집어넣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18년, 19년, 20년, 30년, 한 100살 그때까지 예수님은 내 안에 살아있다는 것을 증거하라고 주께서는 성령을 주신 겁니다.
이게 바로 새로움입니다. 옛 세대가 아닌 새로운 세대, 그게 새로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