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대구강의] 지옥의 하나님 28 - 녹 벗겨내기
23,06,05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 지금은 전쟁 중 !!
오늘은 교재 114페이지를 보겠습니다. 제목이 '세상의 내막' 이라고 되어있는데, 그리고 거기에 보면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의 성경말씀이 나온다는 겁니다.
(계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지금은 전쟁 중인데, 그러면 이 시대를 반영해주고 있는 요한계시록이라는 성경말씀 가운데서, 과연 누가 전쟁을 하고, 들어간 자들이 누구이며, 어떤 명분을 위한 전쟁이냐는 말이죠.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난리인데, 그리고 아프리카의 수단은 내란으로 정신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의 이 전쟁은 과연 무엇에 관한 전쟁이냐는 말이죠. 성경과 관련이 있다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데, 그 전쟁이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그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느냐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전쟁이 지금 우리 눈에는 왜 뜨이지 않느냐는 것이죠.
* '무질서 VS 질서' 전쟁 !!
그것은 바로 무질서와 질서 사이의 전쟁이기 때문인데, 주님께서는 무질서, 즉 마귀가 잡아놓은 체계를 벗겨내려고 하신다는 겁니다. 부산의 영도에 가면 배를 수리하는 조선소가 있는데, 아주머니들이 그 배의 녹을 다 벗겨낸다는 말이죠. 그리고 다시 페인트칠을 해서 배가 깨끗해진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전쟁이란 것이 무질서 위에 덮여져 있는 질서, 이것은 악마가 칠해놓은 질서라는 말이죠. 그래서 그 질서를 벗겨내면 되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원래 질서가 나온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고 질서의 하나님이라는 말이죠.
* 질서의 하나님 !!
사도바울이 그 당시 초대교회에서 설교시간에 이 질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즉 "하나님은 무질서가 아니고 질서의 하나님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교회에서 좀 잠잠해라. 방언을 하더라도 순서대로 해라. 하나님은 이런 혼돈스러운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말이죠.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 3장 8절에 보면, "그냥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놀면서 먹으려고 하지를 말고, 열심히 일을 해서 자기 먹을 것을 챙겨라" 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교회를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죠.
(살후 3: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살후 3: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을 창세기에 나오는 표현대로 하면 '혼돈'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쟁은 무엇입니까? 현재의 질서로 보이는 것을 혼돈으로 돌리는 전쟁이라는 겁니다. 이 혼돈은 무지, 혹은 우연, 또는 무질서라고 할 수 있는데, 성경에서는 이 무지의 대명사로서 어린아이가 등장한다는 말이죠.
(마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무지함의 대명사, '어린아이' !!
어린아이의 특징은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인데, 요즘은 아닌가요? (ㅋㅋ) 그런데 누구든지 이런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천국설교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어떤 정보를 알아야 내가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라고 나오는데, 예수님이 설교를 하시면 제자들도 그렇게 나왔다는 말이죠.
우리교회에 나왔다가 지금은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면 그들이 나올 때는 무엇을 노리고 나왔고, 또한 나오지 않을 때는 무엇 때문에 나오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인데, 그것은 자기가 무지한 자가 되기 싫어서 그러하다는 말이죠. 즉 어린아이가 되기 싫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유능한 자, 유식한 자가 되고 싶습니다" 라는 것인데, 그래서 불교를 챙기고, 또한 몰랐던 기독교까지 챙기려고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알면 무엇을 합니까? 슬기롭다고 자부하는 어른이 되어갈 뿐이라는 겁니다. 즉 천국과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교회를 오래 다녀도, 그것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그들은 똑똑한 자가 되고자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주위의 라이벌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래서 "주님, 우리 제자들 가운데서 누가 더 똑똑합니까?" 라고 나왔다는 말이죠. 즉 자기들끼리의 싸움에 들어갔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셨는데, 그러자 제자들은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다는 겁니다. "누가 누가 더 똑똑하고, 누가 누가 더 성경을 많이 아는가?" 라는 것을 시합해서 주님에게 칭찬을 받고자 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박한 성경지식이 있으면 천국에 간다고 여겼다는 말이죠.
그냥 예수님께서 "너희들도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라" 라고 했으면 제자들도 수긍을 했을지 모르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그게 아니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아주 도발적인 말씀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방향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인데, 즉 "내가 많이 알아서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게 아니고, 그쪽 방향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내가 안다는 것조차도 무지해야 한다" 라고 하는 의미라는 말이죠.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무지한 나'가 아니라, 반대로 '유식한 나'로 무장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도용했다는 것이죠.
* 세리, 창기, 강도 !!
이렇게 무지함의 대명사는 어린아이이고, 그리고 우연과 무질서의 대명사는 세리와 창기와 강도라는 겁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한 세리, "너를 정죄할 자가 없다" 라고, 죄 용서를 받은 간음한 여인, 그리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라고, 그렇게 구원을 받았던 강도, 예수님께서는 잘난 자들보다도 이들이 먼저 천국에 간다고 하셨다는 말이죠.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요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눅 23: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조금 전에 부산의 조선소에서 배를 개조할 때 무엇을 벗긴다고 했습니까? 녹을 벗겨내야 하는데, 즉 덮여있던 과거의 질서체제를 벗겨내는 작업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나도 아프다는 말이죠. 똑똑해지려고 교회에 왔는데 바보가 되어야하고, 아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죠.
* 새로 다시 !!
새로 오신 분이 있어서 다시 하겠는데, 예수님께서 천국을 말씀을 하실 때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다는 겁니다. 여기의 우리는 모두 어른인데, 그분은 유치원에 갔다는 말이죠(ㅋㅋ). 그런데 유치원에 있는 아이를 데리고 와서는, "누구든지 이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라고 한다면, 그러면 그동안 우리가 천국에 가려고 수고한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린다는 겁니다.
주님의 말씀을 골라서 들으면 정말로 곤란한데, 천국에 가려고 하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고 하는 것은, 이 어린아이의 특징은 무지함에 있다는 겁니다. 아는 것이 없는데, 알고자 해서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 것은 어른적 사고방식이라는 말이죠. 즉 기존 질서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연, 즉 우발적이고 무질서함의 대명사는 누구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세리와 창기와 강도와 같은 자들이라는 말이죠. 그 당시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무시를 많이 당했는지 모르는데, 같이 있어도 사람으로 제대로 취급을 해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 마주치는 '풍경' !!
주님께서 이런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그러면 교재 114페이지에 있는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의 말씀, 여기에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라고 하는데, 이러한 상황, 이게 바로 형제가 등장하는 상황이라는 말이죠. 이것을 지난 주일학교 설교시간에 '풍경' 이라고 했다는 것이죠.
(계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자기가 성도라고 여기는 자들에게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지금 당신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풍경이 어떠합니까?" 라는 겁니다. 과연 어떤 일들이 자기에게 펼쳐지고, 그 가운데서 자기가 과연 성도인지 아닌지, 즉 자기가 어린아이 쪽으로 가는지, 아니면 더 슬기롭고 지혜롭다고 하는 어른 쪽으로 가고 있는지, 그것을 자기에게 펼쳐지는 풍경 속에서 파악을 해보자는 말이죠.
매사에 그러해야 하는데, 교회에 나와서 정보를 좀 알았다고 해서 '에헴' 하면서 살지 말라는 겁니다. 교회만이 풍경이 아닌데, 이 세상에서 마주치는 풍경들이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게 자기가 얼마나 똑똑하고 잘난 것인지를 보여주는 풍경인지, 그게 아니라면 자기를 덮고 있는 기존질서의 녹을 벗겨내라고 주어진 풍경인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느냐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중국집에 짜장면을 시켰는데 8,000원을 받더라는 말이죠. 홀에 가서 먹으면 7,000원인데, 배달을 시키니까 1,000원을 더 받더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렇지요? 그러면 그 풍경은 과연 어떤 의미의 풍경이냐는 말이죠. 그것은 바로, 우리가 속았다고 억울해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자체가 속고 속이는 세상이라는 겁니다.
* '내가 살아있다' 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
제가 지금 칠판에 글을 써보겠는데,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라는 것인데, 혹은 "우리나라가 20세 이하 월드컵 4강에 올랐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라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무슨 의미이겠느냐는 것이죠. 즉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라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느끼는 속임수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런 극단적인 표현을 칠판에 써가면서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여러분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속임수이다" 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적이 있느냐는 말이죠. 그런 적이 있습니까? 한국이 나이지리아를 이기고 4강에 올라갔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존의 질서체제에서 소통되는 의미라는 겁니다. 이런 것이 질서라는 말이죠.
우리는 이런 질서 속에서, "내가 여기 있다" 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어제 오후 설교시간에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은 속임수다" 라고 했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저게 미쳤나? 그러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것인가?" 라고 하지 싶은데 말이죠(ㅋㅋ).
그러면 "독도는 우리 땅이다" 라는 것이 왜 속임수입니까? 그것은 피가 기존의 질서체제 뒤쪽에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를 증거해야 되는데, 그런데 그 피의 내용이 어디에 숨어있느냐는 말이죠. 방금 피가 기존 질서체제의 어느 쪽에 있다고 했습니까? 피는 뒤쪽에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뒤쪽에 있다고 하는 것은, 진짜 진리가 뭔가 인간이 구성한 기존의 질서체제에 가려져 있다는, 그런 의미라는 말이죠. 그런데 그 가려진 베니어 합판 뒤에 누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고 하니, "내가 살아있다" 라는 것이 폼을 잡고 거기에 있다는 겁니다.
* 누가 형제인가?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의 말씀을 다시 보겠는데, 여기에 보면 '어린양의 피' 라고 하면서 그 다음에는 '증거하는 말' 이라고 하는데, 즉 어린양의 피를 증거하는 말을 할 자가 누구라는 겁니까? 그러한 자를 두고 '형제' 라고 비로소 할 수가 있다는 것이죠.
(계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형제는 기존질서를 유지하려는 자입니까? 기존질서 뒤에 가려진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려는 자입니까? 여기서 누가 형제냐는 겁니다. 여기서 "내가 여기에 살아있다" 라는 것은 기존 질서판에 합류된 요소인데, 그것을 진실이라고 하는 순간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어린양의 피가 진짜 하나님의 질서체제인데, 그것을 "내가 살아있다" 라는 것이 가린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일요일에는 교회에 다니고 월요일부터는 직장에 다닌다" 라고 했을 때, 그러면 그것이 속임수가 맞습니까? 아닙니까? 여기에 대해서 "목사님, 억지를 좀 부리지 마세요. 그것은 진실입니다" 라고 하신다면, 하지만 그렇게 일요일은 교회에 가고 월요일부터 직장에 다닌다고 하게 되면, "내가 살아있다" 라는 것이 계속 유지가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베니어 합판의 무늬와도 같은 우리가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의 말씀을 가리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신은 언제 어린양의 피를 증거하다가 죽을 겁니까?" 라고 하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지금 직장에 다닌다고 바쁩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죠.
* 유일한 질서는 '피'로 구성된다 !!
그래서 이것은 칠판에 빨간색으로 쓰겠는데, 즉 "유일한 질서는 피로 구성된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성된 질서, 그런데 이 질서가 인간질서 뒤에 가려져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인간들이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이상, 진짜 질서를 맛볼 수도 없고 구경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아까 "무지+우연(우발)+무질서" 라고 했는데, 왜 주님께서는 말씀을 가지고 이것을 유발시키시느냐는 말이죠. 그래서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또한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하시고 말이죠.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왜 예수님께서 굳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고 하니, 즉 주님께서 이렇게 기존질서를 쑤시는 것은, 피로 완성된 하나님의 완성된 말씀의 질서로 가려고 하면, 이 구멍 외에는 다른 구멍은 없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무지+우연(우발)+무질서" 라는 것을 두 글자로 '혼돈'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혼돈의 구멍이 나지 아니하면 피의 질서를 구경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 질서 → 혼돈 → 질서 !!
앞의 것은 다 지우고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면, "질서 → 혼돈 → 질서",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화살표 방향을 잘 보시라는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기존의 질서를 혼돈으로 바꾸시는데, 그래서 질서가 된다는 겁니다. 이 혼돈은 창세기 1장에 나온다는 것이죠.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요? 마귀가 만든 질서체제를 뭉개버리는데, 그것을 아까 2가지 예로 들었다는 겁니다. 먼저 하나는 "내가 여기 살아있다"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눈에 보이니 말이죠. 이것을 조금 더 확산을 시키면 "내가 아프다. 내가 배가 고프다. 내가 신난다" 라고, 즉 "내가 살아있다" 라는 것인데, 이것은 전부가 다 거짓이 된다는 겁니다.
* '주님의 것'으로서 !!
"내가 이가 아프다" 라는 것이 거짓이 된다는 것인데, 그러면 여러분은 "진짜는 무엇입니까?" 라고 나오지 싶은데, 그렇지요? 진짜는 무엇인고 하니, "주님의 것이 아프다. 주님의 것이 배고프다. 주님의 것이 신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주님의 것이 배고플 때의 지시는 무엇인고 하니, "밥을 먹어라" 라는 것인데, 그렇게 주님의 지시와 마주하게 된다는 겁니다. 주님의 것이 아플 때는 "병원에 가라"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린아이가 되고 세리가 되고 창기가 되게 하신다는 겁니다.
주의 것이 죄를 느낀다고 하면, "피를 바라보라. 주님의 용서하심을 바라보라" 라고 하게 되는데, 그러니 이미 자기의 것이 무엇으로 전환이 되는고 하니, 주의 것이 되는데, 그런 주의 것을 따로 모으면 무엇이 됩니까? 그게 주님의 질서가 된다는 말이죠.
* 피는 새로운 질서판 !!
그 주님의 질서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고 하니, 피가 있는데, 왜냐하면 그게 하나님의 마지막 언약인 새 언약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셔라" 라는 것인데, 주님의 피가 새로운 질서의 판으로 확장이 되어있었다는 말이죠.
(마 26: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니 이런 사람은 목이 잘리는 순교를 당하지 않아도, 배가 고파서 짜장면을 시켜먹고 관절이 좋지 않아서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그 자체가 순교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골프를 치는 것도 순교가 되는데, 물론 그런 순교는 돈이 좀 많이 들겠지만 말이죠(ㅋㅋ).
그래서 직장동료가 "너는 교회집사가 되어서 주말마다 골프를 치러 다니나? 돈도 참 많다" 라고 하면,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이게 순교라고 했어" 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게 순교라고? 저기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총을 맞게 순교가 아냐? 골프를 치는 것은 너의 즐거움이고 오락이잖아. 그게 무슨 순교야? 그 목사도 참 웃긴다" 라고 하지 싶은데 말이죠.
* 나는 바보거든 !!
그러면 이때 뭐라고 답변을 해야할까요? 그것은 딱 하나밖에 없는데, "나는 바보거든" 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즉 "나는 어린아이다" 라는, 그런 의미라는 말이죠. 그러니 자기가 무엇을 따지고 말고 할 것이 없는데, 그것이 바로 어린아이의 특징이라는 겁니다.
지금 여러분은 점점 더 논리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내가 여기 살아있다" 라는 것이 과연 주님의 것이 살아있는지, 그게 아니면 자기가 살아있는 것인지, 그게 중요하다는 말이죠.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부모가 살아있으면 자기는 살아있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엄마가 시장에 가고 없으면 아이는 집에서 무서움에 몸부림을 치는데, "엄마, 어디에 갔어?" 라고 하면서 운다는 말이죠. 그게 어린아이인데, 과연 우리는 주님을 그렇게 찾고 있느냐는 겁니다. "나는 어른스러워야 한다" 라는 압박감은 벗겨내야 하는데, 기존의 악마의 세계에서 훈련을 받고 답습해서 그렇다는 말이죠.
* 우리나라가 4강에 들어갔다 !!
이제 두 번째로 할 것은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들어갔다" 라는 것인데, 이것보다는 "일본이 4강에 들어갔다" 라고 해보자는 겁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나라 뉴스시간에 나올까요? 왜 우리나라가 4강에 들어가면 기쁘고 일본에 들어가면 그렇지 않느냐는 말이죠.
그것은 바로, 피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증거하는 조직판, 베니어판, 그런 기본 질서체제에 우리가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매여있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남의 자식이 못되는 것은 괜찮고 자기 자식이 못되는 것은 용서가 되지 않는 것, 그것은 바로 기존의 질서체제에 그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 과학이 곧 종교 !!
지금부터 좀 어렵게 해보겠는데, "이 기본 질서체제가 어디서 나왔는가?" 라는 겁니다. 물론 마귀가 만든 것인데, 그게 이 시대에서는 과학이라는 말이죠. 이것은 과학이 곧 종교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왜 과학이 기본 질서체제를 진리로 행세하게 하면서, 이 전체에 의해서 꼼짝도 못하게 묶어버리도록 하느냐는 말이죠.
대화를 하다가 잘 되지 않으면 불리한 쪽이 마지막에 뭐라고 하는고 하니, "그게 과학적이야?" 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 과학이 바로 종교라는 겁니다. 과학이 처음이고 마지막인데, 그래서 어릴 때부터 과학적으로 사고하도록 훈련을 받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런 과학적이 아니라고 하면 미신이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과학을 진리로 간주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 과학보다 더욱 센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판매' 라는 말이죠. 이 판매는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것은 시장에서 나오는데, 즉 시장체제라는 겁니다. 그게 소비체제이고, 즉 자본주의라는 말이죠.
그렇게 판매를 하면 무엇이 생기는고 하니, 돈이 생기는데, 그 돈이 인간의 과학을 앞장세워서 돈이 진리가 되는 질서체제를 악마가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식을 키울 때는 목표가 무엇인고 하니, 판매를 잘 하는 자식이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한 판매, 즉 상품화를 시키는 것이 지금의 종교이고, 진리라는 겁니다.
여기에서 벗어날 자가 없는데, 그게 시장체제라는 말이죠. 이렇게 판매를 하려고 하면 구매자가 있어주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돈이 생긴다는 겁니다. 즉 구매자가 살 만한 것으로 잘 만들어서 상품화를 시키면, 그러면 자기에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죠.
* 시장체제의 일부로서 '나' !!
제가 어렵다고 했는데, 정신을 바짝 차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기서 '나' 라는 것은 홀로 있습니까? 그게 아니면 이런 시장체제의 일부로서 있습니까? 단독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판매 가치를 높여서 구매자를 찾고 있는, 그래서 자기에게 돈이 떨어져서 부자가 되려고 하는 의욕에 충만한, 그런 '나'가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면 구매자에게 판매를 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냥 자기 마음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이 과학에 잘 들어맞는, 즉 과학적이고 납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그래야 상품가치가 높아진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사람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오는고 하면 "오늘 말씀은 무엇인지 한번 들어보자.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한 수 배워야지" 라고 하면서 온다는 말이죠. 자기가 시장경제라는 체제에 소속이 되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또는 그것을 감추면서 나온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성경지식을 더 많이 아는 것이 성경지식을 모르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더 매력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야말로 본능적이라는 말이죠. 논리적으로 어떻게 따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성격상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 에이, 그것도 몰라?
예를 들어서, 동창회에 갔는데 성경 이야기가 나오더라는 말이죠. 그래서 동창이 하나 자기를 보고 "너, 교회에 다니지? 이게 무슨 뜻인데?" 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만 "전에는 알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라고 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나' 라는 상품가치는 그만 떨어지고 마는데, 그러면 부끄럽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자기에게 돈이 되는 시장경제에서, 여기에는 물론 동창회도 포함이 되는데, 동창회에 가서 잘 보여야 나중에 상품을 잘 판매할 수 있고, 반대로 구입할 때도 저렴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집을 사더라도 부동산을 하는 동창이 있으면 훨씬 더 유리하고 좋다는 겁니다.
그런 노림수가 있어주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이 세상의 질서자체가 자본이 지배하는 질서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되려고 하면 자기 자신이 매력 덩어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남들이 자기를 찾게 되는데, 그러니 판매를 잘 하려고 하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이 자기에게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 모기와 피 !!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이렇게 모기가 있다고 하면, 모기는 암컷이 물까요? 수컷이 물까요? 암컷이 문다는 겁니다. 모기의 종류는 52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집모기는 8가지이고 말이죠. 그런데 암컷이 왜 무는고 하니, 알을 키우는데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식물의 즙과 같은 것을 빨아먹는데, 그게 모자라면 사람을 물어서 사람 피 속에 들어있는 단백질로 보충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래야 새끼를 잘 낳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기가 인간을 볼 때는 얼굴이 적당한데, 숨을 쉬고 하기 때문에 습기가 많다는 말이죠. 그리고 냄새가 나는 발도 괜찮다는 겁니다. 거기에 빨대를 꽂아서 피를 빨아먹는다는 것이죠.
그러면 방금 제가 한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입니까? 과학 이야기인데, 과학의 특징은 들으면 들을수록 반박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다 들었다고 치면, "내가 이 모기 이야기를 왜 들어야 합니까?" 라고 물어보라는 말이죠. 그러면 "그것은 모기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내가 모기에게 물리지 않아야 합니까?" 라고 하면, "그래야 당신이 건강하게 올 여름을 잘 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제 그 다음이 문제인데, "내가 왜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합니까?" 라는 것인데,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기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게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의 말씀인데, 즉 "어린양의 피를 증거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였다" 라고 하는 이 성경말씀을 그만 외면해버리는 것이 된다는 말이죠.
(계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과학이라는 종교가 꽉 잡고 있는 이 세상에서 자본주의, 즉 "남들에게 나는 구매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이다" 라고 하는, 이런 구조에서 자기가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이죠.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 과학도 종교라고 하는데, 그러니 거기서 벗어나야지" 라고 해도, 그게 안 된다는 겁니다.
* 말썽쟁이 !!
그렇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네 글자로 '말썽쟁이'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누가 그렇다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그러한데, 누구에게 그렇다는 겁니까? 그것은 숨어있는 피 중심의 질서체제, 즉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 라고 하는 질서체제에 있어서 우리는 말썽쟁이라는 말이죠.
이것을 "내가 여기 있음으로서 욕망과 욕심이 '뿜뿜'이다"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냄새를 피운다는 겁니다. 마치 발에서 냄새가 나듯이 말이죠. 그런데 주님께선 이런 말썽쟁이를 왜 필요로 하시는고 하니, 혼돈을 배경으로 해서 새 질서가 펼쳐지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말이죠.
그러면 우리는 혼돈이 요소가 되는데, 그러니 "구원을 받았다. 성도다" 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어떻게 본다는 겁니까? 자기를 혼돈의 일부로서 본다는 겁니다. 하늘나라에서 제거가 되어야하는, 마치 티눈과도 같은 존재라는 말이죠. 그런 티눈, 혹은 잡티와도 같은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말썽쟁이가 필요한데, 즉 세리와 창기와 강도가 필요하다는 말이죠.
이 말썽쟁이의 특징은 자기가 소멸되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런데 여기에서 감사한 것은 무엇인고 하니, 성경에 보면 교회는 소멸해도 성도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말이죠.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여기서 이사야서 45장 7절을 보겠는데, 저는 성경해석의 시작점을 여기에서 찾는다는 겁니다. 우리가 다같이 한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사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그러니 마귀도 누가 창조하셨다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데, 마귀가 마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말이죠. 그 다음에는 골로새서 1장을 보겠습니다. 1장 16절의 말씀인데, 이것은 제가 혼자 읽도록 하겠습니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마귀가 만든 주민등록증 !!
그러니 잡티와 같은 우리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데, 주민등록번호에 보면 언제 태어났는지, 그리고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다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남자로 태어났으면 뒤쪽이 1로 시작하고 여자로 태어났으면 2로 시작하는데, 그런데 그런 번호는 누가 붙인 겁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는데,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께서 창조한 마귀가 달려들어서는 그런 분류를 했다는 말이죠. "남자는 1번, 여자는 2번이다" 라고, 그렇게 해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분류를 하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질서' 때문이라는 말이죠.
* 질서 때문에 !!
그렇다고 하면 왜 그렇게 질서를 잡아야하는 겁니까? 분류가 되지 않으면 판매 가치가 없는데, 그러면 왜 판매를 해야하는 겁니까? 그래야 돈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 돈은 곧 힘이 되는데, 마귀가 만든 기존질서를 유지하는데 말이죠. 그러니 돈으로 표현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세상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세상에 살아가고 있으면서, 일요일에 교회에 한번 나왔다고 해서 성도라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래도 주일에 교회에 나왔잖아. 월요일부터는 직장에 다녀야지" 라고 하는, 이것이 과연 성경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말이죠.
* 혼돈으로 돌아가자 !!
"혼돈으로 돌아가자" 라고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인데, 그런데 우리는 어린아이가 되기 싫다는 겁니다. 즉 있다고 없고 없다가도 있는, 그런 우연하고도 우발적인 존재가 되기는 싫다는 말이죠. 나름대로의 체계가 있는 인격과 인간성을 갖추고 싶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을 왜 갖추어야만 합니까? 그것은 남들이 볼 때 구매매력을 끄는 가치가 있는 존재로 살고 싶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이 혼돈을 배경으로 해서 펼쳐지는 새로운 질서, 이것이 바로 전쟁이라는 겁니다. 지금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우리의 힘으로는 피의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러니 전쟁인데, 주님이 벌이시는 전쟁 속에서 전리품으로서, 그렇게 주님의 포로가 될 때 비로소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 '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질서 !!
그렇게 되면 자기가 잡티인 것을, 그야말로 쓸모가 없는 쓰레기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질서,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자기가 죄인으로서 합류하게 된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성도라는 말이죠.
그런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되는데, 즉 "그동안 내가 나를 속여왔습니다" 라고 하게 된다는 겁니다. 남들이 하는 말을 듣고, 교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목사가 하는 말을 듣고, 자기는 살아있는 줄로만 알았다는 것이죠. 그게 모두 거짓말인데 말이죠.
그래서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라고 하는데, 즉 "나는 죽었고" 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뭐라고 합니까? 누가 살았다고 합니까? 자기가 산 것이 아니고, 누가 살았다는 겁니까?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죄인으로서 산다 !!
다시 말해서, "주님이 사셨으니 너도 덩달아 살았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사도바울이 이렇게 외치고 있다는 겁니다. 주님이 사셨다고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주님에게 소속된 죄인으로서 산다는 것인데, 물론 "내가 살았다" 라고 해도 되는데, 단 거기에는 "나는 죄인으로서 산다" 라고 하는 조건이 붙는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당신이 왜 죄인이야?" 라고 묻는다고 하면, "내가 살았다고 우기니 죄인이지" 라고, 그렇게 하면 된다는 겁니다. 물론 상대방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아무리 "그것이 말이야? 막걸리야? 좀 알아듣는 이야기를 해봐라" 라고 해도, 상대방이 알아듣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이죠.
왜 그렇습니까? 이게 뒤쪽에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란 겁니다. 과학이 다스리고 합리성이 다스리는 이 세계에서, 귀가 있고 눈에 있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들과 소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느냐는 겁니다.
여기서 시편 94편 9절을 보겠습니다.
(시 94:9)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여기 보면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라고 되어있는데, 아주 간단하고 짧은 말씀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제 질문에 들어가는데, "귀와 눈이 나에게 소속이 되어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만드신 분에게 소속이 되어있습니까?" 라는 겁니다. 당연히 만드신 분인데, 그렇지요?
* 귀와 눈은 하나의 파이프 !!
그렇다면 우리에게 달려있는 이 귀와 눈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겁니까? 바깥에 있는 겁니까? 바깥에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주인이 만든 질서체제에 소속되어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귀와 눈은 하나의 파이프인데, 즉 통로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여기가 피 중심의 질서세계라고 하면, 즉 새언약에 의해서 구성된 천국이라는 말이죠. 반면에 이 세상은 악마가 지배하는 체제인데, 그러니 여기에도 역시 질서체제가 있다는 겁니다. 피 중심이 아니라는 말이죠. 악마가 인간중심으로 만들었는데, 여기서 인간들은 의미와 개념들을 다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국가도 그렇고, "독도는 우리 땅!" 이라는 것도 여기서 만들어내었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런 질서체제에서 피 중심의 질서체제로 넘어갈 수 있습니까? 전혀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넘어가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는데, 그렇지요? 구원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왜냐하면 구원을 받는 대상이 우리가 아니고, 이 귀와 눈을 파이프로 박는데, 그러니 우리는 이 파이프로 제공된 자라는 겁니다. 즉 주님의 귀와 눈으로 제공된 자들이라는 말이죠.
* 자존심을 말아먹은 백부장 !!
이게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데,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뭐라고 합니까?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어제 집사님이 그런 기도를 하셨는데, 그렇지요? 아닌가요? 물론 기도를 하고 나면 내용을 다 잊어버리지만 말이죠(ㅋㅋ).
(마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마 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를 기존 질서체제에 있는 인간들이 들었다고 하면, 그러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너는 배알도 없어? 자존심도 없어?"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자기 자존심과 자존감이 날아간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고 흐뭇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기존 질서체제에 있는 자들은 이것을 공격한다는 겁니다.
* 당신이 예수의 똘마니야?
지금 제가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들이 이런 백부장과 같은 사람이 있으면 뭐라고 합니까? "너는 그렇게 살면 안 돼. 너는 너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어. 아니 무슨 예수의 똘마니도 아니고, 도대체 그게 무슨 짓거리야?"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죽여버렸는데, 그러자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피를 흘렸다는 겁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인데, 어린양을 증거하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다는 말이죠.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이런 사람이 또 나오는데, 그가 바로 스데반 짐사님이라는 겁니다.
(계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행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 파이프로 꽂혀있는 예수님 !!
이런 자들이 성경에 나오는데, 양쪽의 연결고리에 눈에 보이는 인간이 파이프로 꽂혀있다는 말이죠. 성경을 이런 구조로 보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아버지의 세계와 죄로 가득한 이 세계 사이에 파이프로 꽂아졌다는 말이죠. 예수님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계신 아버지가 지시한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게 요한복음에 한 두 번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요 8: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 죽음의 통로 !!
그런데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너는 어디 출신이야? 어느 신학교를 나왔어? 베들레헴이야? 거기서 무슨 귀한 것이 나와?" 라고 한다는 말이죠. 예수님이 이렇게 꽂혀있으니, 그 예수님을 보고 귀신이 들렸다고 했고, 그리고 왜 율법을 어기느냐고 나온다는 겁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예수를 죽여버리자" 라고 하는데, 이 악마의 질서체제에 의해서 예수님은 죽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숨어있는 하늘나라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유일한 통로는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죽음의 통로' 라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셔서 구원을 하실 때, 즉 자기 백성을 모집할 때는 어느 쪽으로 하겠느냐는 말이죠. 유일하게 뚫려있는 통로는 예수님의 죽음인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피리 부는 사나이 !!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 라고 하는, 즉 피가 보이는 쪽으로 따라가게 된다는 말이죠. 그것을 어제 낮 시간에 '피리 부는 사나이' 라고 했는데, 그것이 무슨 내용의 동화인지는 다들 알지요? 그렇게 피리 소리를 듣고, 아니 피 소리를 듣고 졸졸 따라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식구들이 얼마나 측은하게 여기는지 모르는데, "교회에 가서 미쳤다. 남들처럼 그냥 대충 믿지? 아니 무슨 광신도도 아니고, 왜 그렇게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지 않아? 한 번 따져봐. 제발 정신 차려라"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죠. 그렇게 피 복음을 믿는다고 마구 패면 죽게 되는데, 바로 그 전쟁이라는 겁니다.
* 필터링(Filtering) !!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종합해보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말씀 자체가 곧 "올 사람은 오고, 오지 못할 사람은 오지 말라" 라고 하는 하나의 필터라는 것인데, 즉 '필터링' 인데, 골라내는 작업이 성경말씀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귀가 있고 눈이 있어도 어떻다는 겁니까? 아무리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깨닫게 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자기의 능력이 아니라는 말이죠. 주의 능력이 임하게 되면 눈이 뜨이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말씀인데, 17절과 18절에 보면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라고 한다는 말이죠.
(엡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 1: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엡 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
그러면 그 박혀있는 것은 자기 눈이 아니라 주님의 눈인데, 그러니 주님에게 양도하면 된다는 겁니다. 자기의 눈과 귀, 자기 신체를 주님께 말이죠. 그게 로마서 14장 7절에 나오는데,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다는 겁니다.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는 것이죠.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그러니 우리가 성도라고 하면 이미 주님의 것으로 양도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우리 내부에서는 오직 말씀만 유통될 수 있도록, 자기 것이라고 고집하는 것들이 성령에 의해서 날마다 찢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말이죠.
이제 여기 교재 114페이지를 보게 되면,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서 6절의 말씀이 기록되어있는데, 이것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계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 목 베임을 받은 자들 !!
여기 4절 중간에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라고 하는데, 그리고 그 다음에 보면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과" 라고 되어있다는 겁니다. 이전에는 이것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데, 가지 말라고 하는 이슬람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그만 붙잡혀서 순교를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고, 우리가 골프를 치러 가든, 물론 이런 일은 거의 없지 싶은데(ㅋㅋ), 그리고 목욕탕을 가든, 야외에 놀러 가서 냇가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든, 그리고 거기에서 고디를 잡든, 그것이 그 현장에서 주님이 주신 손으로 물안경을 끼고, 참 고디라고 하면 아마 잘 모르지 싶은데, 그게 다슬기라는 겁니다.
* 다슬기 순교 !!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 그만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서 빠져죽었다고 하면, 그것은 누가 죽은 겁니까? 자기가 죽은 것이 아니고 주의 것이 죽은 것인데, 이게 바로 순교라는 말이죠. 다슬기를 잡다가 순교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상황을 누가 만들었고 하니, 주님이 거기로 보내셨다는 말이죠. 이게 "교회에 가서 철야기도나 하지 왜 놀러갔느냐?" 라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꼭 있는데, "참 자기 합리화를 잘한다. 무엇이든지 주의 뜻이라고 하면 끝인가?"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 가운데 그런 분이 있다고 하면, 그냥 활짝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그대로 돌려주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분도 웃는다고 하면, 그러면 둘 다 성도라는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고, "내가 주의 뜻으로 하는데 당신이 뭔데?" 라고 하면서 화를 낸다고 하면, 그것은 수상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비난조차도 누구의 뜻이라는 겁니까? 주님의 뜻인데, 그러니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말씀에 합치가 된다는 말이죠.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아서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들인데(ㅋㅋ), 아닌가요?
이제 교재 114페이지를 보게 되면, 거기에 마태복음 10장 28절과 18장 8절과 9절의 말씀이 나오는데, 이번에도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 너무나 극단적인 예수님의 말씀 !!
예수님께서 왜 이런 극단적인 말씀을 하시는고 하니, 이런 말씀을 하시게 된 환경, 즉 풍경을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라고 하시는 것은 긴급한 상황인데, 우리가 보기에는 편안하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그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죠.
그리고 18장 8절에서는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라고 하시는데, 같은 상황에서의 말씀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주일 낮 시간에 설교시간에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교인들이 줄줄 빠져나간다는 말이죠.
"우리 목사님이 성경대로 하는 것은 좋은데, 그런데 너무 극단적이다. 오랜만에 전도를 해서 데리고 왔는데, 그런데 목사님이 그런 설교를 하면 충격을 받아서 나오지 않을 수 있지 않는가? 내가 점심도 사주고 투자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는데, 그 비용을 합쳐보니 75만 6천원이나 되는데, 너무 속상하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교인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교회만을 생각한다는 것인데, 천국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죠. 그러면 그 목사는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둘 다 교회라는 환상을 생각한다는 겁니다. 교회는 돈이 있어야 하는데, 교회가 곧 마귀의 전당이라는 말이죠. 주님은 그런 교회의 교인이 되라고 피를 흘리신 게 아닌데, 그런 교회에서 벗어나라고 피를 흘리셨다는 겁니다.
* 혼돈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
그러니 오늘강의의 전체 틀은 무엇인고 하니, "혼돈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이 땅에 마귀를 퍼트렸다" 라고 할 수 있는데, 여름철에 모기가 퍼지듯이 말이죠. 물론 마귀는 "나는 마귀다" 라고 하면서 오는 게 아닌데, 과학적 종교로 온다는 겁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해봐라" 라고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것은 어린아이의 방향이 아닌데, 소위 지혜롭다고 하는 어른방향이라는 겁니다. 세리와 창기와 강도와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똑똑하고 착실하고 성실한 자들의 외침이라는 말이죠. 그러한 질서체제인데, 그들은 극단적인 것을 싫어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은 잘 구슬리고 잘 다독거려 주어야 하는데, "여러분,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갑니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야 그들이 교회에 나올 수 있는데, 그러면 확실하게 지옥에 가는 자로 굳힐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오늘날 교회의 역할이라는 말이죠.
여기 교재 116페이지에도 보면 성경말씀이 나오는데, 이것도 역시나 극단적이라는 겁니다. 베드로후서 3장 3절에서 7절인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벧후 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벧후 3: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벧후 3:6)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벧후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 !!
성경말씀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모르는데, 여기 3절에 보면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라고 하는데, 마지막 때에는 복음을 조롱하는 자들이 나온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들이 뭐라고 합니까? 4절에 보면,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라고 하는데, 즉 "주님은 이제 그만 찾아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그들이 말하길,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지금 마귀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마귀가 숨기지 않고 자기 발언을 했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고마운데 말이죠.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물에서 나와서 계속해서 영원토록 물로 간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성철스님이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 라고 했는데, 여기에 누가 찬양을 하면서 동조를 하는고 하니, 그게 과학자들이라는 말이죠. 모든 과학자들이 그러하다는 것이죠.
그들은 "우주는 137억년 전이고, 지구는 47억년 전이다" 라고 하는데, 과학자들이, 특히 진화론자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주가 있기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라고 하면, 그게 '맞은 편 우주' 라는 말이죠. 현재 우주와 맞은 편 우주 사이에서 중력이 나온다는 것인데, 그게 '평행 우주론' 이라는 겁니다.
요즘은 이게 대세인데, 빅뱅이 있기 이전에 다른 우주가 옆에 있어서, 그래서 밀어서 지금의 우주가 생겨났다고 한다는 말이죠. 이것이 과학이라는 이름의 종교인데, 지금 KBS를 비롯한 모든 방송국에서 이 종교방송을 하루종일 내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 이것이 다 '판매' 전략 !!
그렇다면 이런 종교 이야기를 언론에서 노골적으로 전파하고, 그리고 교과서마다 모두 싣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조금 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그것이 바로 '판매' 때문인데,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물건을 사주지 않는다는 말이죠.
왜 우리가 중국을 무시하면 안 되고 이슬람을 무시하면 안 되는고 하니, 그들이 우리의 물건을 구입해준다는 겁니다. 공산주의라는 이념과 사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기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이죠. 모든 것이 돈이고 곧 시장인데, 그런데 예수, 순교, 이런 것들이 무슨 돈이 되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교회에 가고 오고 합니까? 그것은 주께서 가라고 했기 때문에 가고, 오라고 했기 때문에 온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주님에게 달린 입, 주님에게 달린 귀, 주님에게 달린 코,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의 몸 자체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인데, 모든 것이 말씀에서 와서 말씀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죠.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이제 마지막으로 에스더서 3장을 보겠는데, 1절에서 6절입니다.
(더 3: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
(더 3:2)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더 3:3)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복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더 3: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
(더 3:5)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더 3:6)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 모르드개 VS 하만 !!
여기에 모르드개와 하만이 나오는데, 그러면 모르드개는 어느 질서에 속한 자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질서에 속한 자인데,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을 앞장세워서 질서를 펼치는 분이라는 겁니다.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하만은 어느 질서에 속한 자입니까? 기존 질서에 속한 자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둘이 서로 친하게 지내면 안 되는 겁니까? 각자 자기 종교를 믿으면서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안 된다는 겁니다. 모르드개는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기존 질서이었기 때문에 말이죠.
여기에 대해서 하만이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런데 그만 독이 올랐다는 겁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 그냥 조용히 살면 되는데, 골프나 치면서 말이죠. 우리 가운데 골프를 치는 사람이 없어서 골프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ㅋㅋ), 우리는 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것이 아니니 말이죠. 그러니 굳이 의미를 두고 할 것이 없는데, 그냥 삼겹살을 구워서 맛있게 먹으면 된다는 것이죠.
* 이제 전쟁이다 !!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누가 시비를 건다는 겁니까? 기존의 질서가 우리를 보고, "너는 배알도 없나? 자존심도 없나?"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질서체제 자체를 공격하게 되는데, 즉 전쟁이 일어난다는 말이죠. 유대인들이 권세가 있는 자들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이제는 너희들 차례다" 라고 하면서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어낸 겁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인데, 왜냐하면 녹을 벗겨내야 한다는 말이죠. 기존의 질서체제를 벗겨내야지 혼돈이 나온다는 겁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의하면, 이 혼돈은 천지창조 이전에 있었던 무질서를 의미하는데 말이죠.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런 무질서로 데리고 가서, 이사야서 45장 7절의 말씀처럼 새로운 창조를, 그것을 누구의 손으로 하시는고 하니, 예수님의 피 묻은 손으로, 새언약의 완성된 손으로 우리를 천국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것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일관된 계획이라는 겁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사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여기서 에스더서 5장을 보겠는데, 9절에서 14절입니다.
(더 5:9) 이 날에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나
(더 5:10) 참고 집에 돌아와서 사람을 보내어 그 친구들과 그 아내 세레스를 청하여
(더 5:11) 자기의 부성한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방백이나 신복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더 5:12) 또 가로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 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
(더 5:13)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
(더 5:14) 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가 이르되 오십 규빗이나 높은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나아가소서 하만이 그 말을 선히 여기고 명하여 나무를 세우니라
* 악마다운 하만 !!
5절에서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라고 하는데, 왕이 특별히 자기를 파티에 초청했기 때문에, 지금 하만은 신이 났다는 말이죠. 즉 "내가 왕의 최측근이다" 라는 것인데, 왕과 자기 사이에는 누구도 끼어들 수 없기 때문에, 권력을 그대로 인수를 받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하는 것이 곧 왕이 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도 일단은 참았는데, 물론 끝까지 참은 것은 아니고 말이죠. 그래서 14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그의 아내 세레스와 친구들이 말하기를, "오십 규빗이나 높은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나아가소서" 라고 한다는 겁니다.
오십 규빗은 25미터정도 되는데, 여기에 모르드개를 매달자고 한다는 말이죠. 자기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기쁨에 흠집이 되는 모르드개를 제거하는데, 그런데 그냥 제거하면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분노의 무게와 같은 벌을 내려야 자기에게 약간의 보상이라도 되니, 그래서 모르드개를 25미터의 장대에 매달아야, 자기 마음이 시원하게 된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악마의 자식들이 예수님을 죽일 때, 그냥 사약으로 간단하게 죽여버린다고 하면 그것은 전혀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장 극악 무도한 죄수들만 당하는, 그러한 처형틀에 매달아야만, 그래야 악마가 가장 악마답다는 말이죠.
* 네가 곧 악마의 앞잡이였다 !!
그리고 그런 악마의 심보가 우리 속에 실제로 들어있는데, 그래서 주님께서는 녹을 벗겨내듯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있는 그 녹을 벗겨내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네 속에 혼돈이 있다. 네 속에 무질서가 있다" 라고 하시는데, "새 사람이 되어라" 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고 말이죠.
그렇게 "네가 곧 악마의 앞잡이였다" 라는 것을 들추어내는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때, 즉 경건의 능력이 임하게 될 때, 그렇게 해서 우리가 벌거벗은 몸이 될 때, 우리는 주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25미터의 길다란 장대에 결국 누가 달렸습니까? 하만과 10명의 아들들이 달렸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제 마지막 질문에 들어가는데, "하나님은 왜 이런 식으로 반전이 있게 일을 몰고 가십니까?" 라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이 악마의 녹을 벗겨낼 수 없기 때문인데, 그래서 예수님의 아픔, 예수님의 십자가, 즉 죽음 사건을 우리 앞에 펼쳐내신다는 말이죠. 즉 모르드개의 입장으로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너는 살아있지도 않고, 네가 살아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라는 것인데,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했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라는 것이죠. 여기서 거짓말이라는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라는 게 아니고, "의미가 없다. 그러니 너무 좋아하지 말아라" 라는 겁니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결승전에 올라가서는 결승골을 넣고 하면 그만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는데, 그렇지요? 그러니 이런 헛된 일에 너무 흥분해서 들뜨지 말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 피로 인해서 항상 감사하고, 주님의 소유가 된 것에 대해서 기뻐하는 자들이 되면 된다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근원에서 다시 살펴보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가 아니라, 우리 속에 주님의 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거기에 대해서 눈을 떠서 발견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3,6,17 오후 5시에 마침.
대한민국 U20 월드컵 우승 !!
'대구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옥하나님30-주인과 종 (0) | 2023.07.20 |
---|---|
지옥29_1에서 0으로 (0) | 2023.07.03 |
지옥하나님27-짐승이냐 사람이냐 (0) | 2023.06.06 |
지옥하나님26-사라지는 인생 (0) | 2023.05.22 |
지옥하나님25-언어의 연출 (1) | 2023.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