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놓으시고 다시 통합시키는 그 과정과 절차 역할을 하나님께서 친히 해내시는 업무가 바로 언약입니다. 그런데 이 과업의 수행에는 필히 ‘죽음’이 발생됩니다. 일반 사람들이 언약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여깁니다. 자신의 최후를 반기거나 즐거워할 줄을 모릅니다. 오늘 학개 본문에서 제사장직과 왕이 두 인간에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이처럼 갈라져 있는 두 직능이 하나로 통합되는 결과가 곧 언약이 마감되는 상황입니다. 이는 곧 왕이 되지 아니하는 대제사장이나, 대제사장을 거치지 않는 왕은 왕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이 세상에는 엄연히 왕이 있고 백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도 발달해서 종교마다 신과 교류한다는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죽음을 초과’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왕의 백성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애초부터 ‘왕+제사장’의 통합을 겨냥하고 진행됩니다.
얼마나 이게 큰 두려워할 일이 오는지 사람으로서는 감당 못 할 두려움이 오는 거예요. 사람으로서... 사람으로도 감당 못할 두려움이 오기 때문에 그때 그 순간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알아서 처리하고 책임진다는 사실을 내가 감당 못 할 지경 속에서 비로소 새삼스럽게 발견해야 된다는 겁니다.
평소의 행동 하나하나 본능적으로 나오는 것은 죽는 것은 무섭다. 쪼개졌음을 분명히 하고 쪼개진 경우와 그것을 통합하는 경우를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이 이 땅에 자신을 나타낼 때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을 찾아가는 일.
이 둘은 결코 둘은 나누어진 채로 있을 일이 아니고 결국은 통합된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로 통합된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일을 하시는데 왜 우리가 두려워 할 이유가 뭐냐? 아니 “하나님 하세요. 지켜드릴 게. 박수나 칠 게요.” 이렇게 돼 야지 왜 우리가 그걸 두려워해야 되느냐 그걸 왜 두려워해야 되느냐 이 말입니다.
하나님 일은 죽음을 초과할 수 있는 일이 될 때 하나님의 일은 마감이 돼요.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이 주어졌을 때 그 하나님의 일의 최종 모습은 뭐냐? 그 사람으로부터 죽음 자체를 초과한 사람으로 새사람이 되는게 하나님의 일이에요. 일의 완료입니다. 초과된 죽음을 초과된 입장에서 죽음속에서 일하는 직능이 제사장이에요.
제사장 나라는 죽음을 다루는 직능이고 기능이고 그 죽음을 다루면서도 죽음을 초과한 입장에서 죽음을 다루는 유일한 민족이고 그에 비해서 다른 너희 이스라엘 빼놓고 다른 모든 민족은 죽음을 초과하지 못하고 죽음에 빌빌 기고 죽음에 쫓기고 죽음을 무서워하고 죽음을 겁내면서 어떻게 살아보고자 하는 그런 민족과 너희들이 맞닥뜨려서 전쟁을 내가 벌이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어느 쪽이 왕 되신 백성이냐 아니면 누가 이 하나님의 왕 되심의 백성이 아니냐 를 내가 그런 식으로 구분하겠다는 겁니다.
직능은 하는 역할은 맡아놓고 그 역할에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 일을 우리가 해 낼 수가 없어요. 맡은 일은 있는데 해낼 수가 없을 때 해낼 수 없는 일은 그걸 제대로 못해놨다 는 이유 때문에 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어 마땅하고 그 우리를 죽어 마땅한 존재로 만들어내는 그 직능 제사장 왕 직능이 우리를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 직능 속에 함께 하심으로써 우리를 건져내는 거예요.
언약관계를 주신 것은 우리보고 해내라는 말이 아니고 니는 못해낸다는 거예요. 언약 주고 언약을 회수하는 그 결과물이 성도
주의 일의 특징은 일은 맡기되 우리가 못해냅니다. 못해내면 “못하구나” 끝나는 게 아니고 우리가 필히 죽어야 돼요. ‘아, 내가 해도 안되는 것이고, 내가 안 해도 죽고,’ 이거는 그냥 들이 닥친 사태, 사태가 들이닥친 사태에요 이게.
따라서 그것을 간파했을 때 그게 바로 구원의 기쁨이라는 겁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 한 일은 뭐냐 주님을 핍박한 일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사울아 사울아 너는 왜 나를 핍박 하느냐”... 핍박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어요. 이 말은 죽지 아니하는 제사직은 없습니다. 죽지 않고 왕이 되는법은 없어요. 왜? 제사를 아브라함의 제사를 통해서 갈라지고 난뒤에 통합되기 때문에 그래요. 제물이. 갈라졌다는 말은 하나님과 하늘에 있는 하나님과 땅에 있는 하나님이 갈라졌다는 거에요. 하늘에서 헤어지고 땅에 오셨다는 거에요. 헤어진 하나님이 자체적으로 하나님의 자체적인 능력이 일의 수행에 의해서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거에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는 겁니다.
왜 벌어졌는가? 자기 백성을 모집하기 위해서. 그럼 자기 백성 어디있는가? 없지요. 이세상에 죽음을 초과한 사람은 없어요. 없으니까 주께서 왕과 제사장이 완료가 되면 그 완료 된 것을 통해서 죄인들을 의인되게 하고 백성 아닌 것을 백성되게 하는 자. 그게 바로 없던 자가 생겨나는데 그 없던 자를 가지고 성도라고 이야기하는겁니다.
제사장직이 죄를 해결하고 죽음을 이기는 제사장직은 예수님이 최초입니다. 그 예수님의 하는 일을 하나님에 의해서 주님에 의해서 품게 된 자, 이 자가 백성들이에요. 이 자가 이스라엘입니다. 두려움을 안한다는게 두려움을 승리하는게 완성이 아니라 기뻐하는거에요. 기뻐하는 것. 적극적으로. ‘난이제 두려움없다’ 이게아니라 항상 기뻐하는거에요. 항상 기뻐하는이유가 뭐냐하면 내가 내 어떤 내 행위에 대해서 내가 구애받을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내한테 종말이었던 겁니다.
우리가 우리자신이 종말의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는 거에요. 이미 끝을 죽음을 초과했기 때문에 에녹같이 죽음을 초과했기 때문에 나를 볼 때 나는 없어져도 상관없는 종말의 존재로 자기를 볼 수 있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하면 되죠. “너는 왜 종말이야?” “내가하는 어떤 일도 나를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말이다.” 이게 바로 구원의 기쁨입니다. 두려움이 없는상태 이상으로 기쁨. 이게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있는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이 말씀대로 그걸 이루어지는데 있어서 우리가 개입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개입했음에 감사하게 하여주옵소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무서워하고 두려움에 떨었습니까? 행여 죽을까 조마조마했었습니까? 주여. 그게 바로 네피림의 후손인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가 에녹의 자손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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