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언약에 대한 내용조차도 사람에게서 나온 계획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계획안입니다. 두 번째는 그 언약을 성취하는 능력까지 병행해서 이미 언약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 증거가 뭡니까? 노아는 그냥 방주를 탔습니다. 심판이 왔을 때 노아는 그냥 방주 안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노아가 방주의 노를 저은 것이 아닙니다.
그 방주가 언제 육지에 도착하고, 언제 물이 빠진다는 모든 기획도 이미 ‘방주를 만들라’ 고 하신 하나님의 계획속에 다 들어 있는 겁니다. 다시 갈라디아서로 돌아와 보면 여기서 사도 바울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의 목적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목적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십니다.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서 구원받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목적을 뭉개서 없애 버리고 구원이란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구원받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무슨 방도가 없을까?’ 하고 있던 차에 ‘그래, 저게 괜찮겠다’ 싶어서 본인이 골라서 구원받는 것은 언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목적 입니다. 언약 속에는 우리가 예상치도 못한 낯선 목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가지든 그것은 우리의 자유지요. ‘하나님을 믿으면 이런 저런 좋은 일이 생긴다’ 고 상상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입니다. 막상 언약에 들어가서 그 언약이 실천되는 과정에서 교체작업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을 때 갖고 있던 그 마음가짐이 순전히 일방적인 나의 목적 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목적에 의해서 그것이 깨지는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교회 어떤 집사님은 예수 믿고 나서 이런 좋은 일이 생기고 이런 좋은 것을 얻었다고 하던데 나도 은근히 그런 것을 한번 고대해 봐?’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는 그런 나의 목적이 하나님의 새로운 목적 앞에 무참하게 침몰 당한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침몰당할 때 무엇이 부서지고, 무엇인가가 우리 앞에 크게, 더 크게 부각되는 겁니다.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것은 뭉개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네가 못하는 것을 내가 다 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나날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불신세계가 날과 달과 해를 지킨다는데, 이것이 왜 불신세계를 대변하는 것이 되는가? 이것은 그 자체에서 문제점을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니잖아”라고 하는 그 반대쪽 세계인 복음의 세계에서 볼 때에 그것이 엉터리라는 겁니다. 복음의 세계가 뭐냐 하면, ‘인간이 못하는 것을 예수님이 다 하셔서 이루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못하는 것을 예수님이 대신 했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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