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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

아빠와 함께 2023. 5. 10. 09:04

430강-YouTube강의(일용할 양식 출애굽기 16:19)20230509-이 근호 목사


제430강, ‘일용할 양식’. 사람은 하루만 살아도 하나님한테 큰 혜택을 입고 있다, 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요. 인간에게 이틀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수명은 하루가 전부입니다. 인간은 이틀을 살 자격이 없고 그런 권리가 없어요.

그래서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 위주가 아니고 사람을 도와줄 위주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을 어떤 식으로 하루 단위로 끊어서 살려내는가를 말씀을 보조로 맞추어서 말씀이 드러나는 조건 하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립니다.

이런 경우는 일반 이방 민족한테는 이런 사실을 알려준 적이 없고 이스라엘에게는 이런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만나라는 게 나옵니다. 그런데 만나가 하루치 양식이에요. 여기서 만나라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겁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게 주는 거예요.

일단 만나가 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노동할 수 있는 어떤 여지가 발생되지 않는 환경을 제공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광야입니다. 광야는 자기 손으로 벌어먹을 어떤 환경도 어떤 형편에 처하지도 않게 했어요.

‘내 힘으로 내가 살래’가 성립되지 않는 생활이 광야 생활이었어요. 사방을 둘러봐도 농사지어서 남아도는 잉여 농산물로 내일도 먹고 모레도 먹을 수 있는 어떤 조건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피해가십니다. 이끌어서.

그러면 이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었다는 말은 이 뜻이 뭐냐 하면 ‘누가 너희에게 먹을 것을 주었느냐’를 분명히 하시는 거예요. 누가 너희에게 먹을 것을 주었느냐, 누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면 틀린 거예요. ‘이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하면 틀린 답변이고 ‘말씀을 주신 분이 말씀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양식을 주었습니다.’ 이게 이제 정답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 양식을 주는 게 아니고 ‘말씀이 성취되는 또는 말씀이 실현되는 그 코스에 너희들이 접어 들었느니라’ 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만나를 준 겁니다.

그러면 말씀이 실현되는 코스에 오게 되면 만나는 그치는가? 끝이 나는가? 끝이 납니다. 약속의 땅에 가게 되면 만나는 더 이상 주지 않습니다. 이는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를 통과하게 하면서 말씀이 목표하는 데가 있는데 ‘약속 또는 약속의 땅’ 그것을 목표로 만나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약속의 땅의 형편은 어떤가? 약속의 땅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소문에 듣기로는 젖과 꿀이 흐른다니까 풍족한 가운데서 오늘 먹을 거, 내일 먹을 거 계속 저장해놓고 먹으면 되겠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약속에 대해서 뜻을 모르는 거예요. 약속은 말씀 자체가 성취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약속의 땅에서 말씀 안 지키면 만나도 없고 양식도 없고 다 바닥나고 저주받습니다.

엘리야 시대 때 북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니까 삼년 반 동안 양식 끊어졌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서 먹을 게 없었어요. 이 말은 ‘말씀 끊어지는 순간 너도 죽는다.’ 라는 것을 드러내는 그 판, 드러내는 그 지평, 그 세상이 약속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사람들은 ‘천국 가고 싶어요.’ 그러잖아요. 천국 갈 생각 말고 이 땅에서 말씀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알면 천국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방식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살리는 방식에 대해서 하나님이 철저하게 거부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신 것은, 만나를 일용할 양식으로 사용하신 것은 애굽에서 그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을 하나님의 말씀이 거부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인간이 자기 생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동력을 총동원하는 방식을 하나님의 말씀이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말씀이 있을 경우에만 산다.’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루치를 준 거예요.

하루치를 주면 인간에게 있어서 내일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나한테 내일이 없다는 말은, 나한테 만약에 내일이 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내일이 아니라 말씀이 만들어내는 내일은 있어요. 말씀이 완성되는 내일은 있어요. 나를 위한 내일이라는 것은, tomorrow, 내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주실 때 사람들은 건성으로 들었죠. ‘아, 하루치 만나먹고 또 내일치 온다니까 참 편리하구먼.’ 편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나를 주면서 미리 경고했어요.

미리 많이 모아두지 말라, 남겨두지 말라고 경고했어요. 그게 출애굽기 16장 19절에 나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했어요. 이 말은 인간은 먹을 게 있으면 남겨두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들의 더러운 성질을 그냥 노출시키는 거예요. 하지 마라해도 하지 마라 하는 것은 이미 너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거죠.

그래서 20절에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 말은 뭐냐 하면 네가 지금 말씀의 세계 안에 들어오면서도 너는 네가 배불리 너 살 생각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선 앞으로 내가 더 살 수 있는 여지를 박탈해버리는 겁니다. 무엇이? 말씀이 그렇게 박탈해버려요. 하나님 말씀이.

그렇다면 말씀이 이끄시는 그 목표가, 말씀이 완성되는 약속의 땅은 그 땅은 그러면 더 깊이 들어가서 어떠한 땅이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해서 만든 날이 있어요. 그 날이 안식일입니다. 창세기 2장에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부했어요. ‘안식일을 앞두고 곱빼기로 줄게, 만나. 만나 곱빼기 줄게.’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럼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뭐라고 합니까? ‘에이, 만나 하루치만 있어도 썩던데 이틀치를 두면 더 썩을 수밖에 없을 건데.’ 라고 생각할 거예요.

출애굽기 16장 23절에 보면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그렇게 이야기하시고 22절에 “제육일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그러니까 곱빼기를 주신 거예요.

그런데 24절에 보니까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이렇게 했어요. 25절, “모세가 가로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그것을 들에서 얻지 못하리라” 했어요.

그럼 여기 25절에서 나타난 사실은 뭐냐? 하나님은 안식일날 하나님도 노동하지 않고 쉬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일하지 않는 날이 안식일이에요. 그럼 그다음 나온 문제는 ‘평소에 사람이 일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일하시느냐’ 가 뚜렷해지죠. 평소에도 누가 일하느냐? 사람이 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일하신 거예요.

그러면 인간은 평소에 일하면서 뭘 하느냐?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늘 그걸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 영원한 말씀의 세계 안에 백성이라는 것이 밝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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