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강-YouTube강의(지식과 지혜 마태복음 12:42)20230418-이 근호 목사
제428강, ‘지식과 지혜’.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은 인간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지식이고, 지혜는 땅에 없는 것이 지혜가 됩니다. 하늘에서 주신 것, 하늘에서 은사로 주신 것이죠.
그러면 인간이 만든 지식과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서로 부드럽게 충돌하지 않고 화해할 수 있느냐? 좋게 만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대충돌이 벌어집니다.
충돌 벌어지는 그 대목이 고린도후서 10장에 보면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 보면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4. for the weapons of our warfare are not of the flesh, but divinely powerful for the destruction of fortresses.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라는 것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인간의 육신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말입니다. 사람의 지혜로서, 그걸 전 지식이라 했죠, 사람의 지식으로서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그런데 뭐냐?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인간의 지식으로 무장되어있는 그 진지를 싸그리 파손시키고 파괴해버리는 힘이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겨냥하는 곳은 어디겠어요? 인간의 지식가지고 하나님도 파악하려 하고 천국가려고 시도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가만 두지 않고 폭격을 해버리겠죠.
그게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보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인간이 갖고 있던 지식이나 소위 인간들의 지혜라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를 기쁘게 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행하심을 가리고 있는, 화나게 만드는 요소가 담겨있다는 겁니다.
인간세계에서 통하는 지혜라는 것은 삶의 지혜, 쉽게 말해서 윤리와 도덕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짐승하고는 달리 살아야지’ 이게 인간의 삶의 지혜라는 거예요. 지식은 요즘 같으면 수학과 과학의 체계화된 정보, 이걸 지식이라고 보면 되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 둘을 구분하죠. 공부는 잘 하는데 인간은 덜 됐다, 뭐 이런 식으로. 공부는 잘 하는데=지식은 많으나, 인간은 덜 됐다=지혜가 모자란다. 그 똑똑한 머리로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이런 것.
고린도후서 10장 6절에 보면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하나님께서는 복음에 대해 복종하는 사람이 도저히 인간의 예상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데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사람을 등장시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등장시켜요.
인간에게 나오는 그 모든 것은 지식입니다. 지식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을 수가 없어요. 예수님 자체가 지혜거든요. 예수님 자체가 지혜에요. 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지혜를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십자가 지지를 않았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것은 죄가 되어야 돼요. 세상의 모든 것은 죄가 되고 그 죄를 대신 지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빠도 난 죄인 아니요.’ 이런 사람한테는 세상 죄를 지고 간다는 것이 안 받아들여지겠죠.
그런 사람들이 교회 내에 상당히 많아요. 하나님이여, 제가 예수 믿어줄 테니까 우리 가정 잘 펴게 해달라,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건 복종하는 거 아니죠. 이용하는 거죠.
쉽게 말해서, ‘예수여, 당신이 나한테 복종하세요.’ 이런 이야기에요. 내 멀쩡한 인생, 내 멀쩡한 가정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당신은 내가 주인공 되는 것에 복종해달라,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교회마다 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죠, 교회마다.
주님께 복종하기 싫은 거예요. 왜냐하면 본인이 본인한테 이미 복종당하고 있기 때문에. 주인이, 하늘의 태양이 둘이 될 수 없듯이 내가 주인인지, 예수님이 주인인지 둘 다를 가지려고 시도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벌 내리겠다는 거예요. 똑바로 복종 안 할래? 그렇다면 너는 내가 벌 내리겠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에게 벌 내리겠다. “모든 인간의 이론을 파하고”.
예수님 자체가 지혜가 된다는 것은 마태복음 12장 42절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12장 42절에 보면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스바 여인 또는 시바 여인, 지금의 에티오피아를 말하는 거예요. 에티오피아의 여왕이 ‘소문 듣고 왔어요’ 하고 솔로몬에게 왔는데 확인차 온 거예요. 과연 소문이 소문에 불과하냐, 아니면 실제로 지혜로운가. 딱 와보니까 자기가 예상한 것으로는 감당 안 될 정도로 더 월등하게 지혜로웠어요, 솔로몬이.
예수님이 그걸 언급하는 겁니다. 시바 여왕은, 이 솔로몬이 갖고 있는 지혜는 결코 인간에게서 나온 지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죠. 이 땅에서 만들어낼 수 없는 하늘의 지혜가 유독 오직 only 솔로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이 시바 여인, 남방 여인이 인정한 거예요. 솔로몬의 증인된 겁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지혜도 최종 지혜가 아니에요. 마지막 때에, 그걸 달리 말하면 42절에서 심판 때에, 마지막 때에 솔로몬의 지혜를 능가하는 최종적 지혜자가 지금 너희 앞에 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심판 때이기 때문에 만약에 이 세대에 이미 온 예수님의 지혜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그 사람은 남방 여인이 이 세상을 정죄하는 식으로 정죄할 것이다. ‘너희들은 왜 지혜를 못 알아들어?’ 라는 식으로 ‘그러니까 너희들은 망해도 싸지.’라고 정죄하는 그런 현상이 마지막 때에 지혜가 등장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필히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러면 지혜를 가진 사람은 특징이 뭐냐? 지식을 버리죠. 지식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의 잘남을 지키기 위해서 그동안 배웠고 노력했던 모든 이론, 오히려 이 이론들이 진짜 지혜, 영생을 얻는 지혜를 방해하는 것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그게 바로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거예요.
내가 신학 박사 학위가 있다, 철학 박사 학위가 있다, 내가 부자가 되었다, 내가 목사가 되어서 유명세를 떤다, 바로 이것이 유일한 지혜인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피를 모독하는 그런 방식으로 주님 앞에 서 있음을 자인하는 거예요. 스스로 인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지식으로서 누가 뭐라고 욕을 해도 난 더 이상 지식인보다는 남방 여인처럼 지혜를 보고 기뻐하는 사람 되겠다. 이것이 복종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