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정리

일상을 통해서 주님을 드러내는 역할

아빠와 함께 2023. 4. 26. 22:32

예수 안에 있는 조건 하에 생명이 있지 예수님 이용해서 우리에게 생명주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생명 안에 그 틈 안에 우리가 주의 틈이 되는 하나의 파트너가 돼야 돼요. 하나님과 인간은 결별되었다는 역할을 맡아야 그게 생명이 있는 거예요.

연극하는 데 각본에 보면 주인공이 케이크를 들고 누구한테 주는 대목이 있다고 칩시다. 그 케이크가 예수님의 의미에요. 예수님의 의미는 아버지와 아들에 있었던 완성된 의미입니다. 케이크를 들고 생명나무거든요, 영생. 관객들은 어디 있습니까? 관중석에 관객들이 있지요. 무대는 배우만 올라오니까. 주님께서는 누구 올라오라는 거예요.

“어이, 올라오세요.” 관객인데 구경꾼인데 관찰자인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는지 박수칠 준비하고 있는데 박수치지 말고 올라오라는 거예요. 올라와보니까 관객이 무대에 올라오면 졸지에 배우가 돼버렸지요. 케이크를 먹여버린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벌이시는 거기에 자기가 예수님과 같이 하나의 역할을 맡게 되지요. 그게 예수 안이에요.

예수 안에는 그냥 박수만 칠게요, 구경만 할게요, 잘 믿을게요, 가 아니라 우리 일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자로 주께서 그렇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게 선지자요 사도들이요 아브라함이고 이삭이었고 야곱이었던 거예요. 성령 있는 사람은 다 그렇게 주께서 다루시는 겁니다. 어딜 통해서? 주께서 일방적으로 만들어내는 무대,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 뭐가 시바고 뭐가 므비보셋인지 알게 하시는 거예요. 욕도 그런 은혜로운 욕이 어디 있어요?

그 역할이 창세기 15장 6절에 나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가 갈라디아서 3장에 나옵니다. 이번에 수련회할 때 갈라디아서 할 거예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돼 있어요. 이거는 하나님이 수님과 있는 그 의미가 누구한테 준 거예요? 아브람에게 넘겨준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아브람이 그 의를 소지하겠어요, 소지 안 하겠어요? 소지 못합니다. 그의 의가 아브람을 소지하지요. 왜? 의미를 갖는 게 아니고 의미가 우리를 생산해내지요. 아브람은 그다음부터 실수투성이에요. 실수투성이라도 여호와를 믿으니 의롭다는 그것이 아브람으로 하여금 제대로 아브라함 되게 하는 작용이 아브람에게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브람을 아무것도 아닌 자 되게 하는 거예요. 그 안에 하나님의 의만 작용하도록 의의 관계가 유지되도록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생산된 자가 아브라함이 됩니다. 현재 아브람은 그 의미를 몰라요. 일상생활을 더 끌어봐야 돼요. 끌어보면서 실수투성이, 아들 준다 했는데 믿지도 않고 웃어버리죠. 그게 다 뭘 보여주느냐 하면 하나님의 의미가 오기까지,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까지 하나님 쪽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그것을 아브람 속에 언약으로 계속 주입돼야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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