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인이 생각한 곳에 본인이 있지 않다’
본인이 생각함으로써 본인이 거기에 없는 거예요. 이게 어느 정도로 어려운 이야기냐 하면 이게 쉬운 예를 들겠는데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나뭇가지가 꺾였습니다. 그때 소리가 날까요, 안 날까요?’라는 질문이에요. 아무도 없는 숲속에 나뭇가지가 부러졌을 때 소리가 날까요, 안 날까요?
질문하는 자체가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사람이 있든 없든, 듣는 사람이 있든 없든, 나뭇가지가 부러지면 그건 소리 나게 되어있다. 이건 일방적인 상식이죠. 그런데 ‘소리가 날까, 안 날까’라는 그 소리라는 개념 자체를 처음에 어디서 시작했느냐 하면 인간에서 시작했거든요. 인간으로 시작한 데는 반드시 인간이 거기에, 숲속에 인간이 없더라도 인간이 만들어 낸 소리라는 거, 다시 말해서 인간이 들을 때만 소리라는 개념이 의미가 완료됩니다.
그런데 소리라는 개념은 인간이 만들어냈고, 그 숲속에 인간이 없다면 소리 자체가 없는 것이 합당한 논리죠.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북쪽 이스라엘 망할 때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은 참 아팠다. 참 괴롭고 힘들었다. 앗수르 라는 군대는 인정사정 보지 않는 무자비한 군대거든요. 무자비한 군대가 와서 그동안 일궈왔던 모든 농토, 옛날에는 농경시대였는데 힘들여서 공들인 농토를 완전히 황무지로 만들고 자기 일가친척을 해체 시켜 버려요. 다 잡아갑니다.
다 잡아갔을 때, ‘굉장히 아팠다. 우리는 너무 힘들었다. 괴로웠다. 하나님이 이렇게 벌을 주고 심판 하시는구나’라고 할 때 ‘그 심판에 대해서 남쪽 유다 나라 사람에게 그 심판이 있을까요, 없을까요?’라는 것과 똑같은 심판이에요. 그러면 남쪽 사람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참 많이 아팠겠다. 세상에, 얼마나 괴롭겠나’라고 해도 이거는 아픔을 당하는 당사자의 아픔과 다른 개념이에요. 지금 여유 좀 있고 자기는 안 아프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아프다는 소리를 하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의 실질적인 문제로 질문하면 이런 질문이 됩니다. 죽는 사람이 아프겠나, 안 아프겠나? 이것과 똑같은 질문이에요. 죽는 사람에게만 죽음이 없어요. 왜 그러냐 하면, 죽음이라는 것은 산 사람이 두려워서 죽음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지금, ‘나는 죽으면 안 돼. 나는 죽으면 안 돼’라는 것은 아직도 안 죽었다는 뜻이거든요. 살아있으니까 그게 공포스러운 거예요.
그러나 죽는 순간,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함께 날아가 버립니다. 인간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죽음이 없어요. 죽음을 생각한 인간조차 없습니다. 모든 개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말이에요. 거기에 대해서 부딪치고 단호하게 대결하는 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인간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게 시편 19편에 나옵니다. 성경이 누가 쉽다고 했습니까? 성경 119편에 보면 이건 쉽다 어렵다의 차원을 넘어서는 말씀이 시편 19편 1~4절에 보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여기까지는 얼추 아는 것처럼 느껴지죠. 3~4절에 보면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언어가 없고 소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소리가 없다고 해놓고 4절에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라고 했어요. 그리고 19편 2절에 보면 “날은 날에게 말하고” 뭘 말해요? 소리가 없고 언어가 없는데. 뭘 날에게 말한다는 겁니까?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라는 것도 언어가 없는데 어떻게 해요. 소리도 없는데 뭘 전합니까? 인간 자기들끼리 소외된 거예요.
인간이 혼자 똑똑하다고 우기다가 소외된 겁니다. 생중계 소리 없다면서요? 왜 갑자기 소리가 나오죠? 인간의 소리는 인간의 일방적 주장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일방적 주장입니다. 인간은 본인이 살아있다고 그걸 전제로 해서 말하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합니다. 인간의 성경해석은 인간의 자기 욕망입니다. 망해야 할 욕망입니다. 살려낼 욕망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죽음의 뒤편을 몰라요. 아무리 죽음을 상상하고, 아무리 지옥을 상상해도, 아직까지 자기가 숨 쉬고 살아있음을 시발점으로 해서 꾸며낸 가상적인 것이고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모르는 식으로 전달했고, 하나님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을 계속 주고 있는 거예요. 인간이 알지 못하는 거. 깨닫지 못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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