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응답, 진짜 하나님의 응답은 뭡니까? 이참에 죽어라. 잘 됐네. 이참에 네가 죽어 있음을 깨달으라, 이런 식으로. “네가 나한테 매여 있어야 되지 왜 돈에 매여 있느냐. 네 주제파악을 이참에 새롭게 파악하라,” 이게 주의 응답이에요. 돈에서부터 벗어나라. 돈에 얽매일 필요 없다. 이 말은 네가 네 목숨에 얽매일 필요 없다는 뜻이에요. “이참에 네가 네 목숨에 매여 있지 않는 그런 자유를 만끽하라!” 이게 주님이 주신 응답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좋은 응답을 준비해놓으셨어요.
열왕기상 3장 5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기도가 일천 번제를 드렸지만 기도를 한 게 아니에요. 기도하라는 명령은 어느 쪽입니까? 솔로몬 쪽이 아니고 하나님 쪽에서 먼저 나타났습니다. 하니까 여기 솔로몬의 기도가 뭐냐 하면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자리가 주님이 주신 자리인 것을 인정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내가 이 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이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이 이 직을 수행케 하셔야 됩니다. 나는 주님이 직접 수행하는 자리 제공자일 뿐입니다. 저는 그 자리가 시키는 대로 할 용의가 돼 있다는 기도에요.
뭐가 없어요? 돈 달라는 기도가 성립 안 되지요. 만약에 돈을 달라, 돈을 줘버리면 뭐가 계속해서 강화되느냐 하면 나는 내 자리가 돼버려요. 나를 위한 자리가 돼버린다고요. 오히려 이 자리를 주께서 빼앗아 가버려요. 니 자리가 아니다. 빼앗아 가버리면 뭐도 뺏기느냐 하면 괜찮은 나 이미지도 같이 주님께 빼앗기는 응답을 받습니다.
내가 나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원수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내가 나 지키고 싶은 게 본능인 건 알겠지만 그것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걸로 인하여 방해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겁니다. 차라리 주님께서 내 것을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그것도 택배로 가져가서 새벽에 천국에 도착했으면, 그걸 새벽배송이라 하는데, 새벽에 천국 문까지 배송됐으면 좋겠어요.
정리해봅시다. 주님의 기도는 또는 가르치시는 기도, 주기도문이죠. 주기도문은 나의 것을 다 빼앗는 기도에요. “네가 네 것 관리한다고 욕본다, 애쓴다, 스트레스 많이 받지. 내가 몽땅 다 가져갈게.” 이런 집중이 있어요, 요새. 이런 집중을 다섯 자로, 유류품정리. 돌아가신 분의 유품정리. 정리는 누가 하신다고요? 우리 주님께서 하게 하신 거예요. 내놔라 하는 것이 주의 기도입니다. 내가 가져갈 테니까 너는 나한테 넘겨주면 된다. 이걸 성경에서 의탁한다, 또는 하나님께 의지한다, 의존한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힘들 때 그만 가져 가이소, 이게 기도에요. 우리는 기도를 어쩔 수 없이 기도 안 해도 기도하는 방법은 뭐냐?
“잠잘 때 하나님께서 오늘밤에 푹 자게 해주시고 이참에 또 마음이 뜻이 있거든 아예 데려가주소서. 내일 아침 눈뜨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러면 “그건 욕심이야, 네가. 아직도 주의 증인할 게 남았는데 네가 네 마음대로 벌써 올라올라고? 제대 날짜 아직 멀었어. 좀 기다려 봐. 내가 데려갈게.” 이렇게 나오거든요. 하여튼 기도라 하는 것은 데려가시는 기도에요. 그걸 신약적으로 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 마지막에 뭘 붙입니까? 주의 이름 붙이지요. 주님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를 증거하시고 마지막 겟세마네 기도를 통하여 기도의 응답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다시 합류가 재회가 되는 만남이 되는 그게 바로 기도입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3장에서 아까 자리 문제거든요. 왕의 자리. 여기 열왕기상 3장에서 솔로몬이 어떻게 기도하는가 보세요. 7절에,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이렇게 돼 있지요.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다윗입니다. 언약 받았으니까 하나님께서 마중 나오는 내용이 다윗에게 미리 주어졌다고 보면 다 이루신 내용이 다윗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다윗에게 미리 일부분을 준 거예요.
“다윗을 대신하여” 다윗의 자리죠. 그렇다면 솔로몬은 본인의 자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본인의 자리가 없어요.
이것은 뭐냐? 아버지의 자리로 보면 안 되고 아버지가 준 언약의 자리가 언약을 스스로 자기의 자손을 남기는 능력에 의해서 내가 차기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언약의 실현 태로써 실현된 상태로서 내가 아들 되었습니다. 여디디야잖아요. 자기 형이 세 명이나 있어요. 있지만 네 번째인 솔로몬이 뭐가 됐습니까? 왕이 된 것은 다윗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자리의 특수성, 이거는 유일무이한 둘이 아니고 오직 하나밖에 없는 특수한 자리.전도서에도 마찬가지에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그렇게 되면 우리가 기도할 때 누구 이름으로 기도한다 했어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요. 그러면 우리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고 누구 자립니까? 황공스럽게도 예수님의 자리에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광주강의 때 뭐라 했습니까? 밥을 먹어도 주님이 밥을 먹고, 잠을 자도 주님이 잠을 자고, 운동해도 주님이 운동하고, 티비 봐도 주님이 티비 보고 그렇게 하고 주님이 안 계시면 나 홀로 티비 보고 나 홀로 영화를 보고 지 혼자 울고불고 하는 나중에 우울증 걸리거든요. 자기밖에 없으니까 언약이 없으니까. 맨날 내 팔자야, 내 팔자야 하면서 자기는 이상적인 괜찮은 시절의 이미지에서 이미지의 종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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