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디지털 질서

아빠와 함께 2022. 12. 7. 13:03

0과 1 사이에서 서로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내가 0이라면 타인이 1이고, 내가 1이라면 타인은 0이에요. 이 0과 1이 뭐냐 하면 이 세상의 질서입니다. 이걸 디지털 질서라 하는데 디지털은 0과 1의 이진법으로 돼 있어요. 이 세상의 모든 구조가.

현대물리학 하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은 수학적 질서로 돼 있다 하고 수학적 질서는 0과 1로 돼 있어요. 0을 ‘없다’로 하고, 1을 ‘있다’로 해서 컴퓨터가 발명된 거예요. 모든 숫자 25, 26을 전부 다 이진법으로 있다, 없다, 0과 1, 그러니까 전기가 연결된다 1, 전기가 끊어진다 0. 그걸 반도체라 하잖아요. 이거는 뭐냐 하면 불연속적인 물체, 사물을 통해서 연속적인 것처럼(이게 중요해요) 위장하게 되는 거예요. 조작하게 되는 겁니다.

흔히 부모가 서울에 있는 자식에게 자주 전화하라 하거든요. ‘자주’가 몇 번이죠? 자주 전화해라. 그래서 아들 나름대로의 자주가 있고, 엄마 나름대로의 자주가 있단 말이죠.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했거든요. 엄마가 왜 띄엄띄엄 전화하느냐고 했어요. 자기는 지난 주 전화하고 또 전화했단 말이죠.

그러면 0이 일주일이고 그다음 1이잖아요. 0과 1 할 때 자기가 전화한 1, 전화한 그다음 주 1 이런 1은 뭐냐 하면 연속적인 거예요. 그러나 엄마 보기에는 간격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이걸 뭐로 보느냐? 불연속적으로 보는 겁니다. “그럼 엄마 어떻게 하면 돼?” “매일해야지.” 그럼 매일해보세요. 매일해도 마찬가지에요. 매일해도 오늘 했다 1, 밤에는 전화 안 하지요. 그다음 날 아침에 또 했다 1, 0. 맨 1, 0이에요.

인간은 자아가 있는 이상 불연속적입니다. 이 말은 서로가 서로란 것은 성경말씀에 성립되지 않는 겁니다. 성립될 수가 없어요. 서로 위했다고 했는데 서로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 말을 할 때 생각해서 말을 해줘도 상대방이 뭐라 하느냐 하면, “네가 생각해준 자체가 역겨워. 너는 나한테 생각하지 마. 나는 네가 나한테 하는 제일 편한 것은 나한테 전화 안 하고 연락 안 하는 그게 제일 편해. 그냥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줘, 내 앞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독한 말을 나한테 할 수 있느냐?” “이것도 모자라. 너한테는 이것보다 더 독하게 해야 되는데 내 실력이 그것밖에 안 돼서 이것도 내가 많이, 내 기분을 설명하자면 이것도 모자라. 기껏 한다는 게 그거야.”

이게 교회 교인들 사이에 그러한 문제가 사실은 집에 부부사이에 일어났던 대화의 연장입니다. 자기 배우자에게 했던 이야기가 그대로 교회에 노골적으로 다 드러나게 돼 있어요. 그럼 내가 너한테 언제 전화해야 하느냐 하는데 내 기분 좋을 때 전화해. 니 기분 좋을 때는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인간들은 불연속성을 억지로 연속성을 만들려하니까 그래야 그 교회에 등록한 사람은 촛대 안 옮기고 천당 간다고 하니까 억지로라도 여기서 교회가 무엇을 장려하느냐 하면 위선과 거짓과 가면을 쓰고 교회 오게 만들었어요. 가면도 너무 쓰면 안 벗겨져요. 내가 누군지를 몰라요. 진짜 나인지 가짜 나인지 조작된 나인지 본인도 헷갈린다니까요.

특히 사기꾼들이 그래요. 사기를 한 번 치게 되면 사기가 나중에 본성이 되어 몸에 배어서 평소 말이 사기의 말이 나와요. 처음에는 위선이 연기가 약해요. 자꾸 해보면 연기가 늘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교회 있던 장로의 대표기도와 초신자들 기도의 수준차이가 나는 이유가 한쪽은 매뉴얼이 있어요. 들어가는 단어가 있어서 딱딱 정해져서 하면 돼요.

사위와 딸이 오랜만에 고흥까지 내려오니까 그 엄마 되는 권사가 기도하는데 방송에 나왔거든요. 매뉴얼대로 기도해요. 대표적인 메뉴 중에 하나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게 해달라는. 그게 누구 장모냐 하면 전에 축구선수 이천수 장모에요. 그래서 밥 한 끼 사주고 시킬 것 다 시키고. 고구마 캐는 것부터 해서 자두 따는 것까지 다하고. 새벽부터 운전 다섯 시간해서 고흥에서. 그게 권사입니다. 권사의 원형이에요. 탁 건드리면 매뉴얼에 찬 대화가 나와요. “할렐루야 믿습니다.” 딱 건드리면 다 나오게 돼 있어요.

이게 뭐냐? 틀에 박힌 교회 매뉴얼에 서로 사랑이 넘치고 자비가 넘치는 교회에 오래 다니면 그쪽에서 인정해주는 그 개념들의 언어의 맥락의 인식들을 나중에 다른 사람의 기도 자꾸 듣다보면 거기에 맞장구쳐서 대화에 끼려면 똑같은 매뉴얼대로 해야 그들이 서로 통하거든요. 그래서 위선은 위선자끼리 통하게 돼 있어요. 가면은 가면끼리 통하게 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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