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들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4;3-4)
사람에게 대하는 것과 주님에게 대하는 것이 다릅니다.
사람에게 대하면 그 사람의 비위만 맞춰주면 별 문제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에게 대하는 것은 전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이는 나 자신의 뜻을 나 자신이 일체 접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에베소서 5:22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에베소서 5:25에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남편이고 아내고 둘 다 사람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람 대하듯 할 겁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님같이’나 혹은 ‘주께 복종’이라는 상황을 집어넣게 되면 여기서 ‘위선’이란 일체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선’이란 결코 ‘누구에게도 복종할 마음이 전혀 없다’, 혹은 ‘나는 그 누구에게는 나 자신을 줄 마음이 없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에게는 위선은 떠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 자아를 제거해 주시는 작업을 하시게 됩니다.
그것은 타인을 대하면서 사람에게가 아니라 주님께 대하듯이 하게 만드시는 겁니다. 즉 상대방 속에 있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집어넣으신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상대에게 건네는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위선이 아닌 겁니다. 따라서 복음을 모른다면, 복음이 없다면 그 어떤 수를 경우라도 위선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복음이 없는 자라면 상대와 싸울 태세입니다.
위선이라는 거짓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진실된 것을 제시하고서라도 타인에게 밀리지 않고 지지 않는 ‘나’가 되려는 것이 위선입니다. 복음을 빙자해서 라도 남들에게 기죽지 않으려는 의도가 위선을 낳습니다. 강한 자기 의식을 두고 말합니다. 대단히 복음적임에도 불구하고 위선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지켜주기 위한 복음으로 도용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