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 10절,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 안에 뭐가 들어갔습니까? 악마가 들어왔지요. 악마도 주님 시킨 대로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로 하여금 아간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고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가치 있는 존재라고 우기지 않기 위해서 나는 애초부터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껏 뭘 해도 아무것도 아니야. 주의 명령으로 사도가 됐지 내가 사도될 만한 자격이 있어서 사도된 게 아니라는 것을 계속 그걸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의 신앙심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악마가 들어와야 돼요. 악마가 들어와서 내 신앙심마저 제쳐버리고 악마로 조절함으로써 끊임없이 9절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것 누가 이야기했어요? 사도 바울이 이야기한 겁니까, 주님이 이야기한 거예요? 주님이, 네가 몸이 아프지만 그 은혜가 족하다, 라고 이것도 주님의 명령이거든요. 사도는 이 명령을 명령대로 고백을 함으로서 그 명령에 반응을 나타내고 호응해주는 것뿐이에요. 시작을 주님부터 먼저 시작하고 자기는 거기에 호응을 할 뿐이에요.
그다음에 그 은혜가 뭐냐?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12:9) 일관된 흐르는 취지는 뭐냐 하면 나의 구원은 나의 일이 아니고 주님의 심각한 자기 업무였다는 겁니다. 이 인간을 천국에 들어갈 거냐, 말거냐는 것은 내가 고민할 사항이 아니고 주님이 나보다 고민을 더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인간을 얼마나 쥐어박아야 하는지, 이 인간을 얼마나 처박아야 이게 주께서 너를 용서했다는 취지에 부합할 것인가? 그 고민은 주님 혼자 하시도록 그냥 놔두세요. 우리가 거들지 마시고. 우리가 거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방민족의 일상은 그저 에피소드의 연속입니다. 에피소드를 우리말로 하면 일화, 하나의 이야깃거리 이런 뜻이거든요. 불신자들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냥 에피소드만 기억하면서 또는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살아요. 그런데 그들이 얼마나 머리가 나쁜지 그들이 죽을 때 되면, 내가 죽는구나,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면 지금껏 그들이 96세까지나 평생토록 살아온 모든 것을 다 결제해서 마트에서 물건 살 때 팔만 오천 원 나왔습니다, 계산하듯이 천사가 두드려보니까 마지막에 뭐냐? 얼마 나왔어요? 사망입니다. 마지막 값은 사망이에요. 실컷 살았는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는데 계산서 길잖아요. 계산서 보니까 지옥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살았는데, 자식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나온 계산서는 심판이 지옥행이에요. 벌건 도장 팍 찍어버려요. 안녕, 친구야. 친구도 아니지. 끝내고 보내버리는 거예요. 자기가 살아 있을 때는 자기의 계산서 끝자락에 죽음의 심판이란 그런 게 나올 줄 몰랐지요. 그저 하루하루 에피소드끼리의 연속입니다. 그냥 일화에요, 에피소드. 아무 의미 없습니다.
이랬던 우리였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이렇게 일상 살아가는 것 외에는 없는 거예요. 그런데 신명기 3장에서 거인과 마주치고 그 당시 토박이하고 마주치고 불신자와 마주치는 것은 뭐냐 하면 사람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이스라엘로 경험케 하신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인간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봐야 돼요. 오늘날 이것이 우리에게 성도의 일상에 그대로 적용해야 돼요. 성도의 일상, 성도의 삶도 남들 보기에 불신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뭘 발견하고 찾아내야 합니까? 내가 해내지 못한 것이 어떤 것들의 있는지 찾아봐야 돼요. 그리고 성도끼리 대화할 때는 그걸 섞어 넣어야 되지요. 아주 사소하고 세밀한 것이라도 좋아요. 성도는 어떤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 우리가 덜 깨져서 이거는 내가 한 거고, 설거지는 오늘 내가 했어요. 설거지는 내가 한 거고, 기적적으로 잃어버린 지갑을 찾았다든지 그건 하나님이 하신 거고.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분류를 하지요. 그런데 그 범주를 점점 확대시켜야 돼요. 확대시키면 손목 나가서 병원에 입원하고 나니까 심지어 설거지하는 것조차 내 힘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돌아보면서 소급해서 그걸 계속해서 감사하고 그걸 발굴하고 발견해야지요. 그럼 그러한 삶이 뭐냐 하면 성도의 삶이에요. 신명기 3장이에요. 곧 말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있지 않는 이유가, 성도는 마귀가 들어오기 때문에 함께 있지 않다는 뜻이에요. 마귀를 누가 조종합니까? 성도가 조종 못해요. 사도 바울이 기도해서 “사탄아, 물러가라. 어디서 나를 아프게 해.” 이러지 못합니다. 주께서 집어넣었기 때문에. 사탄이 들어와 설친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뜻이거든요. 긍정적으로 봐야 돼요, 긍정적으로. 사탄을 없애버리면 우리는 자고하고 교만해서 이게 주님의 구원에 합당한 존재가 되질 못합니다. 일부러 지방간처럼 끼워 넣어서 우리로 하여금 늘 날마다 죽고 날마다 새로 산다는 그 신선함, 새로움이라는 게 어떤 맛인지를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이 어떤 말씀인지를 보여줍니다.
그게 뭐냐 하면 신명기 말씀은 현재 네 인생으로 재현되는 거예요. 또는 말씀이 우리 인생을 통해서 반복돼요. 마태복음 7장에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은 길로 가라. 이건 주의 말씀이잖아요. 네가 지금 반복되고 있잖아요. 한 가지 더 예를 들면 마태복음 8장 2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예수님은 이 땅에 자기 공간이 없어요. 마치 공중 부양하는 것처럼 붕 떴어요. 의도적으로 발 디딜 곳이 필요치 않아요. 어차피 이 세상은 불 심판이고 떠나야 할 곳이기 때문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불질러버려요. 그렇다면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면 인자 안에 누가 함께 있습니까? 오늘날 성도가 주님과 함께 있지요. 그럼 성도는 이 세상에 대해서 머리 둘 곳이 없다는 것, 이 말씀이 내 안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아주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신명기 3장에 보면 지금 무슨 싸움하고 있습니까? 땅 싸움하고 있거든요. 땅 싸움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네 땅이 될 것과 네 땅이 되지 않을 것을 의도적으로 구분하십니다. 그게 3장 2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그와 그 모든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그다음에 뭐라고 돼 있습니까? 네 손에 붙였다는 거예요. 그거는 내가 찜해서 너한테 주기로 약속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땅을 나중에 갓과 르우벤 지파가 차지하거든요.
하나님이 점찍은 땅은 하나님이 점찍지 않은 땅과 전혀 다른 땅이 되는 거예요. 한쪽은 약속의 땅이 되고 한쪽은 약속 되지 않은 땅이 돼요. 약속의 땅이라 하는 것은 약속의 하나님의 소유로 등기된 땅이에요. 그 땅에서는 율법대로 살지 않으면 추방돼야 될 운명을 가진 땅이에요.
이 말을 저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늘에 있는 낙원이 생명나무가 땅으로 이동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하늘에 있다가 땅으로 이동한 거예요. 이동해서 거기는 조건이 있는데 율법대로 살지 않으면 추방되고 율법대로 살면 남아있는 백성이 되는 그 조건을 갖춘 땅이 약속의 땅입니다. 그 약속의 땅의 의미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불신자, 출생부터 선택되지 않은 이방민족과의 마주침과 대조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아닌 불신자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스라엘로 하여금 체험토록 그걸 경험토록 해주시는 그 과정이 바로 신명기의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이유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오늘날 우리 성도가 하루하루 사는 것이 내가 산다고 내 소유라 생각하지 말고 주님의 약속을 발견하기 위해서 허용된 환경이라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그만하면 족하니 됐네, 이 사람아. 이 일을 다시 내게 말하지 마.” 참 고생했잖아요. 모세가 애굽부터. 그런데 너는 들어가지 말라, 에요. 너는 들어가지 말고 27절에 비스가 산에 올라가서 동서남북 바라보면서 구경이나 하라. 왜 못 보게 하십니까? 모세는 메시아가 아니기 때문에, 모세는 영원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아니고 하인이기 때문에, 하나의 종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따라서 모세는 단 한 명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아야 되고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누굴 구원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