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1:6-7 진정한 환란
시험, 악마의 유혹 중의 하나는 ‘복음에 몰입해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노력’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너무 괴로워서 자청해서 만사를 잃고 ‘복음으로 사는 즐거움에 탐닉하려는 것’도 실은 악마의 시험입니다. ‘복음 폐인 현상’은 하나님께서 실시하는 이 세상 일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과오에서 비롯된 겁니다. 사람은 힘들면 그 사태를 피히려는 식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즉 자신의 죄가 무엇인가를 드러내려는 하나님의 시도에 도망치는 식으로 여전히 자신이 그다지 악한 자가 아님을 유지하고 싶은 겁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환란’이란 말씀대로 완전히 일치될 때나 나타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환란은 오직 예수님께서 움직일 때만 나타납니다. 성도에게 환란이 일어나는 것은 그 성도의 모든 움직임에 예수님께서 함께 해서 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환란이 되었던 뭐가 되었던 주님께서 관여하지 않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은 1도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환란이란 일종의 ‘멸종’입니다.
옛날 노아 때를 생각해봅시다. 그동안의 인류와 땅 위의 짐승들은 모두 ‘멸종’했습니다. 이때 ‘환란’을 언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특정 가족을 구원하셨는데 그 가족이 ‘노아 가족’입니다.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20) 이 말씀에 ‘겨우’라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즉 환란이란 ‘겨우’를 발생시키는 상황을 말합니다. 인간의 모든 자생적인 노력이 완전히 쓸데없음을 폭로하는 상황이 ‘환란’입니다.
즉 ‘환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 완벽하게 없음을 알리는 바가 ‘환란’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진정 ‘환란에서 건져내시는 분’을 제대로 고대하게 됩니다. 인간이 예상한 환란은 진정한 환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책 마련을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손을 쓸 수 없게 하는 상황이 진정한 환란입니다.
-십자가마을 복음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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