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주체자가 내가 아니라, 자유가 됐든, 무엇이 됐든 주체자가 따로 있어요. 누구냐 하면 예수님이 주체자가 되어가지고, 예수님이 가라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겠습니다가 아니라 오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사고방식이.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제가 노력해서 오겠습니다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가라하면 가게 돼있고, 오라하면 오게 돼있는 그런 관계가 주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겁니다. 그 예가 뭐냐 하면, 네 부하 어디 있느냐 내가 갈까? 오실 필요 없습니다. 왜 오십니까? 왜 오시지 말라했습니까? 여기서 말씀만 하면 내 똘마니가 집에 있더라도 병이 낫습니다. 마찬가지 관계가 지금 주님과 백부장의 관계죠. 세상에 이 똘아이가, 이런 똘아이. 이거 완전히 똘아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칸트가 이야기하는 자유, 영혼불멸, 신의 존재 인간의 거룩한 가능성 어디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칸트의 이런 윤리관이 없어요. 주님하고 나 사이는 어떤 관계냐 하면 주님이 당기면 당기고, 가면 가고 그런 관계입니다. 그게 무슨 관계냐 하면 말씀이 응한 관계, 주님께서는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분이시고, 그 성취 대상자 가운데 하나가 나니까 주께서 나름대로 성취해 주옵소서, 성취해 주옵소서가 아니라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 백부장의 입장에서 베드로전후서를 해석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명령이 이미 그 사람한테는 실현된 성취된 단계입니다. 적용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아, 주께서 거룩케 하시는구나, 나를 대상으로, 상대로, 나 이제 죽었다. 이제 거룩케 하시는 작업의 대상으로 내가 뽑혔구나, 간택되었구나, 선택되었구나 이렇게 되는 겁니다.
-2006 함평 수련회 베드로전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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