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플라톤이라는 사람은 "숫자 1을 여러 번 그려보게 하자." 1111111111 열 번을 그려보게 하자. 이 열 개 중에서 어느 것이 1이냐? 어느 것이 1입니까? 열 개 주에서 다 다른데 삐뚤빼뚤하고 높낮이가 다른데 어느 게 1이냐 말이죠. 그럼 1이 없습니까? 인간 머리 속에 로고스 속에 1이 있어요. 1이 있는데 그 표현을 할 때는 열이면 열 다 다르냐? 그것은 진짜 1의 진짜 형상, 진짜 본질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저 이데아 세계, 가상의 세계에 있고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동굴 속에 있는 것처럼 가상체로서, 모방체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 이렇게 본 것입니다.
개가 있다. 개라는 것이 없어요. 스누피가 있고, 삽살개가 있고 발발이가 있지. 개가 없어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조합해서 개라는 관념은 없는데도 개라는 관념을 소통하고 있잖아요. 이것은 딴 세계에 있다 이 말이지요. 사람은 없는 거예요. 다만 철수가 있고, 영희가 있을 뿐이에요. 철수, 영희를 하나의 개념으로 하나의 종으로 묶어낼 때 그걸 뭐라고 표현하나? 그건 사람이라고 표현하자. 그럼 사람은 어디 있느냐? 사람은 딴 세계에 있고 그 사람의 다양한 세계가 다양하게 분파된 것이 분류된 것이 바로 인간이다. 이렇게 보통 개별자, 개개 인간이다. 이렇게 본 것입니다.
그렇게 그런 아이디어가, 그 소리를 들어보면 맞지만 그 쓸데없는 소리를 왜 하느냐? 이것은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체를 안정되게 가져가자 이 말입니다. 이것이 핵심이에요.
플라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여러 가지 변화를 겪더라도 이것 때문에 마음 졸이지 말고 우리 몸이 죽으면 우리 육체가 벗어보면 우리 속에 알맹이처럼 발가벗은 영혼이 나오는데 그 영혼이 우리의 본질 되는 진짜 본질 되는 온전한 형상되는 신의 세계로 들어가니까 이 땅은 나그네 삶이니까 이 땅에 대해서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거나 그렇게 하지 말고 이 땅의 자기 영혼을 승화시켜서 갈고 닦아서 신을 만나는 준비를 합시다. 라는 것이 플라톤 철학이에요. 그게 플라톤 신학이라니까.
이게 플라톤이라 하니까 어떤 사람은 아마 플라톤 들어본 사람은 안 믿을 거예요. 그것 교회 목사님이 이야기하던데, 이렇게 해요. 교회 목사님이 플라톤주의자라니까 플라톤주의자니까 그게. 도대체 한국교회에서 이걸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없어요. 이걸 이야기하면 교회에서 쫓겨나고 노회에서 쫓겨나죠. 그게 플라톤주의에요. 이 땅의 삶은 우연적이고, 지나가는 것이 일시적이고, 나그네 삶이고, 죽어서 우리의 영혼의 고향되신 주인 되신 신을 찾아가면 합일하면 된다. 따라서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일이 잘 안되고 꼬이더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이게 플라톤주의라니까. 이게 기독교가 그리스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3,40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에요. 그것을 더 발달시킨 것이 나중에 스토아학파, 또 같은 차원인 에피쿠로스학파가 또 나와요.
성경에 보면 철학은 배설물, 똥, 오줌과 같아서 철학으로서는 안 되고 오직 이제는 예수님을 안 이상은 고상한 지식을 알았으니 이제는 그런 철학 같은 것은 난 배설물로 버린다. 라고 사도 바울이 이야기했어요. 버린다 하니까 이제는 전부 다 버릴 것도 없으면서 버려요. 뭘 알아야 버리지. 나는 그리스도만 알고 다른 걸 버린다고 해놓고 가만 보니까 플라톤 철학하고 있어요. 사도 바울 같으면 다 갖다 버린 것을 가지고 거기서는 복음적인 설교를 하고 있다고요. 특히 5월초에 가정의 달되면 완전히 유교가 덩어리로 한국교회 전체가 유교가 덩어리에요. 부모한테 효도하면 복 받는다. 이것이 완전히 유교인데, 실용철학이에요. 실용철학인데. 안 버렸어요. 안 버렸어요. 안 버리니까 제가 이렇게 한국교회에 대해서 공격하고 그것이 거짓이고, 비 복음이라고 지옥 가는 이야기라고 공격하는 겁니다. 버리질 않았어요.
그럼 왜 안 버리는가? 안전성이거든요. 안정성. 무슨 안정성? 교단의 안정성, 목사라는 직업의 안정성, 전문직업 됐다는 안정성, 이만큼 복음 알았으면 나는 복음 위에 서면 구원받는다는 안정성, 이 안정성 확보가 돼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뭐 필요치 않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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