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신체포기각서 요점

아빠와 함께 2021. 11. 17. 17:27

구경꾼으로 주변부에 있으면서 지금 주체 파악을 못하고 있는 거에요. 주님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참 안됐다 불쌍하다 생각하는 거에요. 왜? 안 들켰으니까. 저 여자는 다 들켰으니까. 나는 안 들켰으니까 얼마나 다행스러우냐는 거에요.

놀라운 사실은 이 말씀의 현장에 예수님과 여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바리새인도 가담이 되야 이게 삼인이 한 조가 될 때 이게 말씀의 현장이라는 사실이에요. 바리새인이 빠지면 안돼요. 바리새인이 들어가야 돼요. 바리새인이 꼭 여기서 참관인으로 관람자로 들어가야 돼요. 그러니까 여인을 보고 욕을 해야 되고 예수님 보고 이들이 욕을 해야 돼요.

여자가 죄 사함 받은 게 초점이 아니고요. 주님 쪽에 보물이 있다는 것을 죄 사함이라는 그 껍데기를 벗겨볼 때 손도 못 대는 그런 지독한 죄 안에 인간들이 상상도 못하는 보물이 그 안에 들어있는 거에요. 보물이.

개인적 사정이 다 노출됐다는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지 몰라요. 이거부터 들어가야 돼요. 왜냐? 모든 사람들은 꼬깃꼬깃 자기 비밀을 간직하고 살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온전히 예수님께 자기를 내놓을 수가 없는 거에요. 헌신한 척이나 하고 헌금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척 하고 봉사하지만 결국은 마지막은 뭐냐 하면은 이 여인처럼 되기는 싫은 거에요. 이 여인처럼.개인 사정은 하나님이 이미 다 알고계시는 문제입니다. 여인의 자리에 들어서지 않는 네가 바로 네가 기회를 놓치는 거에요. 그게. 손도 못 댈 정도로 악한 어느 누구도 저 사람 인간 만들기 텄다 하는 그 자리가 반갑다 친구야 하고 우리 자신의 자리여야 돼요. 내가 어떻게 손 쓸 수가 없는 그게 진짜 내 본 모습인 것을 여인을 통해서 알아야 돼요.  우리는 자꾸 여기서 여인이 죄 사함 받았고 용서됐다 하는데 죄 사함은 여인에 있지 않고 여인에서 어디로 이동했다 했습니까? 주님에게로 이동해서 주님에게 이동해가지고 주님한테 이동해서 다시 여인에게 와야 돼요.  

내가. 나쁜 짓해서 죄가 아니라 생각하는 기준, 삶의 기준, 그 기준이 하나님 보시기에 모자라면 그것은 함부로 남들을 정죄한 죄가 되고 이것은 하나님께 뭐가 되느냐 하면은 빚진 자가 되어버려요. 빚진 자.

죄 사함이란 내가 다가서고자 하는 나 자체를 상실시킬 때에 그 보물이 그 주님한테 있는 보물이 오롯이 드러나는 그것이 죄 사함의 취지에요. 나 용서받았다가 아니라. 내 문제에서 내 문제로 돌아오는 게 아니고 나를 치워버리니까 상상 못할 보물이 거기 있었네. 이게 죄 사함의 의미에요.
죄를 치워버리니까 죄인 아니고 의인 되게 하시는 그 메카니즘이죠. 장치. 주께서 친히 마련하신 계획, 이게 드러나는데 이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이게 엄청난 보물인 겁니다. 그러면 그 보물을 한마디로 그 보물이 뭐냐? 그 보물이 주님의 지시입니다. 주님의 지시라고 하는 것은 그 항상 전제가 뭐냐 하면은 인간의 지시에 따르지 마라. 인간의 지시에 따르지 마라.

죄 사함 문제를 가지고 빚 문제, 빚과 그 탕감 문제로 주님께서는 전환시킵니다. 죄 사함 문제.

사랑을 몰랐던 인간이 사랑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자기한테 어떤 요만큼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게 계속 죄가 되는 거에요. 자기한테 희망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남들이 나에게 명령하고 나는 그 사람의 지시에 따른다고 하거든요. 이거는 그 구조를 잘 몰라서 그래요. 사람은 절대로 남들의 지시에 따르지 않습니다. 남들의 지시를 받고 자기의 미래를 계산해가지고 아까 했지요. 어느 것이 손실일까 어느 것이 이익일까 계산해가지고 최종적으로 본인이 본인에게 지시를 내려요  어떤 목적으로? 보다 나에게 유리하도록. 이익이 되도록. 그 이익 된다는 게 뭐에요? 나의 노동의 가치가 안 죽고 계속 살아남게 하는 거죠. 내가 저 자식 키운다고 얼마나 애 쓴 줄 압니까 이런 거 있잖아요.

내 노동력은 상실해야 돼요. 무가치하다고 주님 앞에 통하지 않는다고 버려야 그게 주의 일이죠. 늘 손수 벽돌해가지고 심지어 지하에 자기 무덤까지 파 놨어요. 그 사람은 성당을 쌓는 게 아니고 자기를 쌓는 거에요. 자기를. 자기를 이만큼 쌓는 거에요. 바벨탑 쌓듯이 자기를 쌓아온 거에요.

탕감이라는 의미를 나중에 신약에 사도 바울은 이게 뭐냐? 대신 죽으심이 되거든요. 탕감이. 죽었다는 말은 뭘 죽었다 하느냐. 노동이 죽었다는 거에요.

율법은 어떻게 이루어진다고요? 지키는 게 아니고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거에요.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뭐가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nothing, 아무 의미가 없어요.
네 몸을 구제하고 네가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남들 보기에 대단한 희생처럼 보일지라도 그거는 사랑과 별개다 이 말입니다. 사랑과 별개. 사랑은 사랑이고 네 몸 하나 건지는 것은 사랑하고 무관하고 아무 상관 없어요. 사랑일 거라고 여기는 흉내내기 있잖아요. 그건 본인의 노동이에요. 인간의 노동은 무엇과 관련되어 있다?자신의 가치에 손상이 오느냐? 아니면 내 가치가 빛나느냐? 이익이냐? 손해냐? 빛나면 행복하고 손상나면 나는 비극이고 불행이고. 어디까지나 자기 관리와 관련되어 있거든요.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고 사랑은 뭘로 오느냐? 은혜로 와요.

로마서 4장에 보면 은혜는 뭐와 격돌이 되느냐 하면은 인간의 행위와는 절대로 같이 매치가 될 수 없어요. 은혜는 행위로 되지 않고 은혜거든요.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은혜.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아브라함의 행위가 아니고 뭐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 그걸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해요. 이 믿음 안에 내용 들어 있으면 행동, 행위가 못 들고 오직 은혜만 믿음의 내용으로 들어있어야 돼요.

믿음 오게 되면 그게 사랑이고 율법의 완성이니까 이 사람은 뭐가 되느냐 하면은 의인이 되는 게 아니고 주님의 의 안에 있는 사람이 되지요. 개인이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물리학에 필드, 장의 어떤 질서가 정립이 되면 그 개체도 동일한 질서를 성질을 부여 받는다 이거 물리학에 나와요. 그러니까 의의 장 안에서는 우리는 무조건 그 안에서는 무조건입니다. 무조건 의가 되는 거에요.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을 그 반복시키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자꾸 문제아로 만들어버리는 거에요. 주께서. 문제아로 만들고 문제없음이 되는 과정 속에서 뭐가 피어나느냐? 사랑이 피어나는 겁니다. 탕감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매일같이 확인되는 거에요. 그래서 주님께서 아직도 계속 살려주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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