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는 왜 믿음의 조상이 아닙니까?
아브라함 때에 이삭을 바침으로 말미암아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충분히 죄를 지을 수 있는지, 그것을 아브라함 때부터 보여주기 때문에, 그래서 아브라함을 행함의 조상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이라고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노아는 믿음의 조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믿음이란 것을 형성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충분하게 무엇을 해야하는고 하니, 인간 행함의 한계를 드러내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믿음이란 것은 인간 행함은 받지 않겠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보여주신다는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는데, 그런데 문제는 ⓑ충분한 죄인을 우리 힘으로는 달성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완전한 죄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구원도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의 행함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최초로 알려준 자가 곧 아브라함
인간이 충분히 범죄한 상태는 무슨 상태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죽인 상태, 그것이 충분한 범죄한 상태라는 겁니다. 하나님 자신이 인간에게 맞아 죽지 않았다고 하면, 아직 인간에게는 남은 죄가 있다는 것이죠. 충분히 죄를 지으려고 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죽여야만 한다
"충분히 범죄한 자만이 더 이상 자기 선함과 잘남과 같은 자기 의를 챙기지 않는다"는 원리
* 하나님의 죽으심 !!
이것을 복음이라고 하는데, 인간이 무엇을 믿고 행하는 것을 두고 복음이라고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 자기가 만든 원칙, 거기에 하나님 자신이 핵심요소로서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이것은 기독교도 아니고 천주교도 아니고 교회도 아닌데, 하나님 자신의 죽으심, 바로 그것이란 말이죠.
우편배달부가 자기가 편지를 써서 각각의 집집마다 돌리고 합니까? 다만 자기는 전달만 하면 된다. 그런데 자기에게 전하고 돌릴 물량이 없다고 하면, 그러면 그 직업을 그만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편지나 물건을 맡기기 않기 때문에.
"성령을 받지 않으면 성경은 해석되지 않는다"
홍수가 나서 방주가 필요하다는 게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인데, 즉 방주의 가치를 위해서 거기에 맞추어진 환경이 따로 만들어진다
좋은 환경이 주어져서 복음이 제대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고, 이게 참 신기한데, 어떤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 환경에 적합한 복음의 내용이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그래서 환경을 탓한다고 하면, 그것은 지식을 전하는 경우이지 주님이 주신 복음은 아니란 겁니다. 사도바울은 결코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노아 때의 구원은 방주였고, 아브라함 때는 양과 염소와 소를 바치는 것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추가적인 지시를 내린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아버지가 아들을 산 제물로 바치는 것인데, 그러면 양과 염소와 소의 지향점이 무엇이 되는고 하니, 사람을 바치는 것이 된다 .
처음에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방주를 만들면 되었는데, 홍수환경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이 환경이 달라지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하나님의 구원방식이 달라지는 것에 병행해서 거기에 맞추어서 환경이 달라진다.
할례언약 자체가 인간을 육에서 영으로 바꾸어주는, 그런 트랜스와도 같은 역할이라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이 충분히 범죄하지 못하는데, 그래서 할례언약이 들어온다.
뒤에 나오는 최종적 사건 안에 앞에 있는 사건들이, 즉 모든 율법이 사건화가 되어서 그 안에 포함이 된다 . 그래서 이제는 양을 잡을 필요가 없고, 할례가 필요가 없고, 십일조가 필요가 없다, 마지막 사건인 십자가 사건 안에서 해소가 되었기 때문이다죠. 그래서 지금 방주를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사건화가 되어야 한다.
"내가 산다" 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이 몸뚱아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사는 것이 십자가 사건 안에서 사는 것이다. 즉 십자가 사건을 보여주는 새로운 환경을 우리는 또 다시 맞이하게 되었다. 그 환경으로 인해서 우리는 또 다시 오늘의 목숨을 선물로 받았다.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곧 사건 !! 이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우리가 받아들여야하는 믿음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자기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사건이다. 마땅하고 당연한 것이 아니고 우발적인 것이다. 물론 그 사건의 조종자는 자기 자신이 아니고, 사건을 완성시킨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려내시는 것이다.
"주변 환경이 있고, 내가 살았다" 라는 것을 몽땅 다 묶어서, "예수님이 계시고 나는 주변환경이다" 라고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주변환경에 배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주님이 나를 살려내셨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해와 달과 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가져야 하는고 하니, "아하, 저것을 어떤 중심을 증거하라고 꽂아놓은 것이다"
"복수는 하나님의 예언이 좌절된 자들에게만 해당된다" 자기가 예언한 것에 대해서 반대한 경우를 맞이한 자에게만 복수의 자격이 주어진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서 있어서는 복수할 원수가 없다. 모든 원수와 그게 대한 심판은 주님에게 속한 것으로서, 우리가 심판하고 하면 안 된다
"이 땅의 인생은 포기해라. 천국에 가면 진짜 제대로 된 남편이 있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주님이 그런 비실비실한 남편을 붙여주셨다는 겁니다.
환경이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앞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 구원의 비밀, 복음,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서 적절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인간구원이 곧 복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주님의 일하심이 복음이지, 자기가 구원을 받는 것이 복음을 아니라는 말이죠.
우리로 하여금 움직이는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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