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강의

형상의 현장

아빠와 함께 2021. 4. 12. 09:48

[21 대구강의] '창세기'속의 그리스도 25 - 형상의 현장

21,04,05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92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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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형상' 이란 우리 안에 언약으로 인해서 아파하는 요소의 발생으로 파악이 됩니다. 이것을 저는 교재에서 '파괴하는 형상' 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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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다 !!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바깥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에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 그게 '아프다' 라는 겁니다. 이 언약은 외부요소인데, 그러면 창조이전에 누가 계셨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었던 영원한 약속이 바로 언약인데, 여기서 인간은 빠진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뜻이 전혀 아닌데,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것을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약속에 의해서, 누가 천국백성인지가 확정이 되어있다는 것이죠. 물론 악마도 이 언약에 개입할 수 없는데, 악마도 피조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구원문제는 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에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악마도 개입하지 못하고 인간도 개입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게 요한계시록 끝 부분에 나오는데, 아들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자는 모두 다 지옥불에 들어간다는 말이죠.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성경은 어디까지나 예수님 이야기인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들의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죠. 그러면 인간은 언약을 실어서 나르는 운반체인데, 일종의 객차와도 같다는 겁니다. 물론 마귀도 그러하고 말이죠. 달리 말하면, 언약을 펼치기 위해서 결합된 것이 피조세계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언약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면 여기서 고통이 생기게 되는데, 아담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흙이라는 의미라는 것이죠. 그런데 처음부터 인간이 흙이라면, 그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면 아프지가 않다는 겁니다. 하지만 인간은 흙에서 잠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죠.

* 주님의 아픔을 외면하는 인간들 !!

그렇게 잠시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흙이 되니 아픕니까? 아프지 않습니까? 아프다는 겁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 가면 사람들이 우는데, 웃지 않는다는 말이죠. 우리 몸이 왜 아픈고 하니, 모든 것이 언약대로 제대로 실시가 되기 때문에 아프다는 겁니다.

사람이 흙이 되면 아픈데, 그런데 흙에서 사람이 될 때는 누가 아픈고 하니, 그때는 예수님이 아프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떻습니까? 자기가 흙이 될 때는 아프다고 하면서, 흙이 사람이 될 때의 그 주님의 고통에서 대해서는 외면을 해버린다는 말이죠. 이게 마귀에 속한 인간들의 특징이고, 불신자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 '흙+하나님의 형상=사람' !!

그러니 인간은 자기가 아픔만 생각하지, 주님의 아픔은 생각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바로 이런 주님을 창세기 1장 27절에서는 '형상'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러면 이렇게 '흙+하나님의 형상'이 되어버리면 '사람'이 되는데, 이 사람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빠져나가면, 그러면 흙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이 원해서 흙이 되는 것이 아닌데, 물론 싫어한다고 해서 흙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이것을 세상적으로 표현하면 "사람은 죽기 위해서 태어났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 형상의 전달과정 !!

그렇다면 이 형상이 어떻게 전달되는고 하니, 여기 형상의 전달과정에서 형상이 전달된다고 여기지 말고, 죽어가는 인간의 형상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자는 말이죠. 그것이 창세기 5장에 보면 나오는데,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게 되는데, 그러면서 그가 930년을 살다가 죽었다는 겁니다. 즉 자식을 낳고 죽는다는 것이죠.

(창 5:3)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 5:4)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 5:5) 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그렇게 형상을 전달하는 전달체가 있어야 언약이 담기는데, 그게 바로 인간의 핏줄, 혹은 혈육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요즘 과학적으로 'DNA' 라고 하는데, 여기서 인간의 형상은 어떤 특징이 있는고 하니, 복제를 한다는 말이죠. 마치 서류를 복사기가 복사를 하듯이 한다는 겁니다.

*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 !!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예수님 이야기인데, 즉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이야기라는 말이죠. 여기에 인간의 이야기가 들어가는데, 주인공이 아니면서 부수적으로 펼쳐진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데, 그러니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인간이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있다는 말이죠.

하나님께서 코끼리를 보고 일하시는 것이 아닌데, 그렇지요? 예수님이 코끼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마귀를 위해서 죽으신 것도 아니고 말이죠.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는데,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자기 형상의 이루어짐, 그것과 결부가 되어있다는 겁니다.

조금 전에 DNA를 언급했는데, 이 DNA가 복제를 하게 되면, DNA가 계속해서 전달되는데, 이 DNA는 육적인 성질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말이죠. 이 DNA의 구조는 1953년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에 의해서 이중나선으로 구성되어 있음이 발표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언약이 인간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데, 즉 언약과 인간의 만남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다고 하면 이 언약 안에는 누가 들어있는고 하니, 먼저 '나' 라는 것이 들어있고, 이 '나'는 바로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언약의 완성이 예수님인데, 즉 예수님의 살과 피가 완성이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아버지와 아들을 연결하는 것은 십자가, 즉 예수님의 살과 피라는 겁니다. 그냥 예수님의 있음이 아니라, 살과 피가 있어야 연결이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만약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했다면, 가차없이 그 아들을 내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아버지의 뜻입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죠.

* 예수님의 살과 피가 없는 악마 !!

이것은 예수님은 아버지와 관계가 이어져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아버지가 없는 피조물이 누구인고 하니, 바로 악령이란 겁니다. 악마는 아버지로부터 내침을 당했다는 말이죠. 악마도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그 동네에서도 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찾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그런데 마귀는 무엇이 없는고 하니, 아버지와 아들은 피와 살로 연결이 되어있다고 했는데, 그게 언약이라는 겁니다. 즉 새언약인데, 마지막 언약이라는 말이죠. 마귀가 아무리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해도 천국이 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그들에게는 십자가가 없다는 겁니다. 즉 예수님의 살과 피가 없다는 말이죠.

악마는 이미 자기가 잘렸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래서 먹지 못하는 감을 찔러보는 식으로 인간에게 접근을 했다는 겁니다. 자기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인간을 유혹했다는 말이죠. "너는 저 편이 아니라 내 편에 서라" 라는 것인데, 그러면서 "신처럼 될 것이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신처럼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신에게 구애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나갈 수 없다는 말이죠. 같은 신이라고 하면, 여기서 신은 하나님인데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모든 의미와 가치의 시작을 '나'로부터 한다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로 말미암아, 나에게로 돌아온다" 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세운 그 '나'는 누구인고 하니, 예수님이라는 말이죠. 모든 것이 주에게로 나와서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그것을 악마가 흉내를 내는데, 그래서 인간에게 뭐라고 하면서 유혹을 합니까? "모든 것이 너로부터 시작해서, 너로 말미암아, 너에게로 돌아온다. 그게 곧 진리다. 그게 행복이다. 그러니 누구에게 얽매이거나 종속되지 말라.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 나, 나, 나 !!

그러니 언약 안에도 '나'가 있고, 언약 바깥에도 '나'가 있다는 겁니다. 즉 예수님이 '나'고, 여기에 또 새로 도발해서 '나'가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중간에도 '나'가 있는데, 이 '나'는 비어있는, 즉 존재하지 않는 '나' 라는 겁니다. 이 '나'는 없는 '나' 인데 나중에 등장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점선으로 표시할 수 있는데,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자리에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찾아오시고, 그리고 악마는 이미 찾아왔다는 겁니다. 이 '나' 라는 것은 없는데, 악마가 일부러 만들어서 뒤집어 씌웠다는 말이죠. 신은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하는데, 그래서 악마가 인간을 보고 "너부터 시작해. 피조물로서 만족해하지 말고, 그 모든 의미와 가치를 너로부터 시작해서 마감을 해"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있지도 않은 '나'를, 절대적인 신의 이름으로서의 '나'를 악마가 부여한다는 말이죠. 물론 우리 인간은 몸은 있는데, 이 몸이 선악과를 따먹고, 그게 DNA, 즉 혈육을 통해서 계속해서 전달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몸은 형상이 빠져버리니, 아무리 오래 살아도, 900년을 살아도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죠. 즉 "자식을 낳고 죽었더라, 죽었더라, 죽었더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죽었더라' 라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데, 즉 언약의 시작은 '없음', 즉 '죽음' 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 인간의 관심사는 그게 아니고, "나는 아이를 5명 낳았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저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그 '있음'에 주목을 한다는 말이죠.

* 죽음의 순간이 인생 전부를 !!

그러면 이 죽음은 순간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꼴까닥' 이라고 하는데, 즉 순간적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순간에 지금까지 살아온 80 평생이 다 빨려서 들어간다는 말이죠. 그러면 자기가 태어나서 살아온 것이 순간입니까? 아닙니까? 순간이라는 겁니다. 죽음이 다 빨아 당긴다는 것이죠.

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는 것은 그냥 순간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죽음이 순간이기 때문에, 아무리 길게 살아왔던지 간에 모든 인생은 그냥 장례식장에 사진이 하나 걸리면 끝이라는 말이죠. 이 순간을 숫자로 하면 '0(제로)' 인데, 그러니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없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언약인데, 그런데 마귀는 뭐라고 합니까? "없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 지금 네가 여기에 있잖아" 라고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 악마는 악마는 점선이 아니고 실선이라고 우긴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육신은 영원토록 신적으로 "나는 나다" 라고 하는 이 있음과 관계가 없이 시들시들하면서 '0'에 접근한다는 말이죠.

* 이것은 내 것이다 !!

그렇게 우리는 죽는데, 그런데 죽기 직전까지 우리는 무엇인고 하니, 마치 자기가 이팔청춘인 것으로 착각한다는 겁니다. 몸은 손도 하나 제대로 올리지 못하면서, 그 생각은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최후의 장기기억, 즉 "나는 나다" 라고, 즉 "이것은 내 것이다"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것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까, 이제 의식이 희미한데 누군가가 오면, "저것은 내 자식이고, 저것은 내 자식이 아니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옆에 있는 며느리를 보고서 "저 여자는 내 것이 아니야" 라고 한다는 말이죠. 자기 DNA가 없으니 아니라고 하는데, 즉 며느리는 자기 복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하지만 특히 신약에서 언약은 반드시 죽음에서 시작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이런 성경공부를 하면서 그 마음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고 하니, "나는 이것을 알고 죽을래"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공부를 해도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알아서 내일 하루를 더 살아야지" 라고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죠. 그것은 성경말씀을 모독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죽는 이유라도 알자" 라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죽는 이유라는 말이죠. 왜 죽습니까? 언약 때문에 죽는데, 즉 주님 때문에 죽는다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주님이 죽게 하셨기 때문에 죽는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 주님 안의 나, 아담 안의 나 !!

이렇게 되면 이 '나' 라는 것은 죽고, '주님 안의 나'가 되는데, 그 이전까지는 '아담 안의 나' 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 즉 새로운 아담인데,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조상이 된다는 말이죠.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아담의 파생인데, 즉 아담이 확산되었다는 겁니다. 그게 창세기 5장인데, 그래서 그 어떤 이름이 있어도 그것은 아담의 이름이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구원은 무엇인고 하니, 과거 아담의 이름을 버리고 주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여기서 '주의 이름' 이라는 것은 "주님이 나를 이렇게 태어나게 했고 살게 했고 죽게 하셨다" 라는 것인데, 즉 "내가 이렇게 해서 살고 죽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지요?"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이름으로는, 자기 나이가 이미 90이 넘었기 때문에, 자기 이름으로는 자기 자식이 없다는 말이죠. 왜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임신할 능력이 있을 때 이삭을 허락하지 않는 겁니까? 그것을 로마서 4장에서는 "사라의 태는 죽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롬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 자기 몸에서 죽음을 발췌할 수 있어야 !!

여러분이 거울을 통해서 자기 몸을 보면서 무엇을 발췌해내야 하는고 하니, 죽음을 발췌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 진리를 발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자기 죽음을 자기가 살아있을 동안에 발췌해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비춰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즉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하겠다는 것이죠.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가만히 있을 악마가 아닌데, 이 '나'를 주님이 오셔서 가지고 가니, 악마는 그것을 알고 미리 선악과를 따먹게 해서 자기 쪽으로 데리고 간다는 겁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언약이 다가오는 것은 '영' 이라고 하고, 반면에 악마가 다가오는 것, 즉 언약이 없이 인간의 육신을 악마가 가지고 간 상태, 그런 관계를 두고 '육'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영'에서 '나'의 모습은 어떻게 되는고 하니, 예수님과 함께 죽은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육'은 무엇일까요?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내가 산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자기가 몸부림을 치면서 살고자 하는 것, 그 방식이 바로 육이라는 겁니다.

그게 목사든 의사든 간에, 그런 직업은 하나님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중요한 것은 "너는 육이다" 라는 것인데, 자기를 미워하지 않으면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육이고, 그런 육을 체계화시킨 학문이 바로 과학이라는 말이죠.

(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 과학적인 사고방식의 한계 !!

이 세상에서는 과학이 진리로 통하는데, 그래서 '과학적이다' 라는 말은 '옳다' 라는 의미이고, '비과학적이다' 라는 것은 '틀렸다' 라는 의미로 사용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곧 육에서 나온 사고방식인데, 언약이고 십자가고 간에 다 날아가 버리고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얼마나 인위적이고 제한적인지, 그것을 제가 지금부터 보여드리겠는데 말이죠. 여기에 태평양 바다가 있고 비행기가 그 위를 날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그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시청하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만 비행기 창문이 열려서 어떤 사람이 온도가 10도가 되는 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시청하고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거기서 바다로 떨어진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10도의 바다에서는 길어야 30분 이상을 견딜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러한 인위적인 문화체계 안에 갇혀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조치인지 모르는데, 그런 곳에 안락하게 있었다는 겁니다. 바다라는 대자연 앞에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어떤 목사님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놓았는데, 즉 "쇠붙이를 모아놓으면 그게 어떻게 시계가 되고 어떻게 자동차가 되고 컴퓨터가 되는가? 그것은 이성에 어긋나니 진화론은 잘못이다" 라고 주장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쇠붙이를 모아놓으면 되는데, 그게 비행기라는 말이죠(ㅋㅋ).

이 쇠붙이가 나중에 세균에 의해서 분해가 된다는 겁니다. 그 세균이 대기권, 그리고 지상에서 생물이 살 수 있는 곳을 과학에서는 생물권이라고 하는데, 그 생물권과 대기권 사이에서, 여기에는 세균과 그보다 더 작은 바이러스가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이것들이 서로 교류를 한다는 겁니다.

* C6H12O6(포도당) !!

이 대기권에는 탄산가스가 있는데, 그러면 이게 "6CO2 + 12H2O → C6H12O6 + 6O + 6H2O"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이게 바로 '육' 이라는 겁니다. 'C6H12O6'을 포도당이라고 하는데, 이게 식물 안에 들어있다는 말이죠.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서 태양 에너지를 받아서 엽록소와 물을 생산한다는 겁니다. 이런 식물을 동물이 먹고, 큰 동물은 작은 동물을 먹고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 이런 포도당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간이, 물론 이것은 과학에서 주장하는 것으로서, 육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 무수한 세월을 통해서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그런 인간의 두뇌세포가 시계와 자동차와 비행기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 악마와 결탁된 '나' !!

그러면 쇠붙이는 어디서 왔는고 하니, 그것은 초신성에서 나온 원소들로서, 그것들이 지구의 땅 밑에 있다가 마그마가 터져 나오면서 지상에서 쇠붙이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중간에 과학에서 말하는 인간을 집어넣으면 된다는 말이죠. 그것을 성경에서는 육이라고 하는데, 즉 악마와 결탁된 '나' 라는 겁니다.

독자적인 '나' 라는 것은 없는데, 하나님이 그런 인간을 만드신 적이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악마가 "너는 네 방식대로 네가 살면 된다" 라고 꼬드겼다는 겁니다. 사람이 되고 하는, 그런 것들은 전부가 다 시시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늙기 이전에 미리 복제를 해놓으면 되는데, 그것이 바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것이란 말이죠.

그러면 그 아이 속에는 자기가 있는데, 왜냐하면 DNA 복제를 해놓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죽어도 자식이 있으면 부활한다" 라고 여긴다는 것이죠. 인간은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말이죠.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집에서 부모나 학교에서 교사들이 언약을 가르치지 않고 과학만 가르치니, 이게 옳은 줄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왜 죽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데, 그냥 늙어서 죽는 줄로만 알고 있다는 것이죠.

과학에서는 분해가 되어서 죽는다고 하는데, 활성산소 때문에 말이죠. 그러니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인데, 그리고 인간은 새로 만들면 된다고 하는 겁니다. 이게 과학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인간, 즉 인간의 두뇌세포를 집어넣으면 쇠붙이에서 비행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이 아니고, 인간이란 기계라는 말이죠. 이게 바로 '육' 이라는 겁니다.

아무튼 "C6H12O6 + 6O + 6H2O" 라고 해서, 여기에서 수소가 생기게 되는데, 이렇게 수소가 생기는 것을 두고 '환원'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환원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원래대로' 라는 것인데, 그래서 과학에서는 수소로 돌아가는 것을 두고 "원래대로 돌아간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우주가 처음에 빅뱅을 했을 때 무엇부터 생겼는고 하니, 수소부터 제일 먼저 나왔고, 그리고 헬륨이 나왔는데, 그래서 수소가 되는 것을 두고서 환원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산소가 나오는 것을 두고 "산화가 되었다" 라고 하는데, 그렇지요? 우리도 그런 말을 하지요? 이것은 쉽게 말해서 망했다는 것인데, 즉 죽는다는 것이죠.

그러니 인간은 자기를 살려주면 선한 것이고, 반대로 자기를 죽게 하면 악한 것이라고 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를 살려주는 메시야는 진짜 예수고, 십자가에서 자기를 죽게 하는 예수는 마귀라고 보았다는 말이죠. 그러니 악마와 결탁한 육이 신학과 교회를 다 점령했다는 겁니다.

* 과학의 문제점 !!

그러면 이러한 과학의 잘못이 무엇인지 파헤쳐 보겠는데, 최신과학에 '양자역학' 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입자를 파동으로 분석한다는 말이죠. 줄을 잡고 흔들어보면 파동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 '나' 라는 육이 등장하는데, 이 육의 특징은 언약이 없는 것인데, 그래서 모두가 지옥불에 들어간다는 말이죠.

그렇게 언약을 악마가 싫어하는데, 그런 악마가 누구를 자기의 볼모로 잡았는고 하니, 인간은 그렇게 잡았는데, 그 인간이 관찰자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관찰하는 모든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것인데, 무엇에 유리하도록 합니까? 죽지 않는, 즉 생존에 유리하도록 한다는 말이죠.

최신 물리학에서 입자가 아니고 파동이라고, 그런 식으로 연구를 한다는 겁니다. 즉 흔들어본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것을 인간이 관찰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파동이 하나, 둘, 셋, 이렇게 카운트가 된다는 말이죠. 그게 "1, 2, 3", 그렇게 되는데, 이것을 자연수라고 하고, 여기서 '0'을 포함하면 정수라고 한다는 겁니다.

* 과학은 헤아림으로 시작된다 !!

제가 설교시간에 여러 번 이야기를 했는데, "과학은 헤아림으로 시작된다" 라고 말이죠. 그렇게 카운트가 되면 그것이 수학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카운트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번, 죽기 위해서 한다. 2번, 살기 위해서 한다" 라고 한다면, 여기서 몇 번입니까? 2번인데, 왜냐하면 죽은 것은 악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성경은 분명히 선과 악을 아는 것이 죄라고 했는데, 그런데 인간들은 이것을 무엇으로 바꾸는고 하니, 자기에게 해로운 것을 악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살아가는데 힘들게 하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인간세계에서는 그 악을 추적해서 악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게 되는데, 그런데 그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선과 악이 돌아다니게 되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것이 바로 전부가 악이 된다는 말이죠. 그런 악의 바다, 저주의 바다에 누가 뛰어들었습니까? 예수님이 풍덩 뛰어들었다는 겁니다. 즉 "너희들의 정체를 내가 밝히겠다" 라는 것인데,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누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으신다는 말이죠.

(요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렇게 예수님께서 스스로 죽으심으로서 인간들의 죄가 드러나게 되는데, 왜냐하면 인간들은 아무도 죽으려고 하는 자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국은 장례식장에 가게 된다는 말이죠. 세브란스 병원의 장례식장은 하룻밤에 150만원이라고 하는데, 돈이 없으면 죽어서도 제대로 잠도 잘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는 것도 모두가 다 날아가 버리고 마는데, 그러면 남는 것은 우리의 본래모습, 즉 "아하, 나는 죽으려고 태어났구나" 라고 하는, 그것뿐이라는 말이죠. 마지막에 우리에게는 그러한 순간만 남는다는 겁니다.

아무튼 이렇게 카운트를 하는데, 그러면 선으로 된 이 파동이 원으로 만들어보자는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구불구불하게 된 원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구불구불하게 된 부분은 배제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과학은 무엇인고 하니, 인간이 그것을 탐구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남기고, 나머지는 자기에게 해롭다고 해서 다 배제를 한다는 말이죠.

* 안락한 비행기 안에서 영화보기 !!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입니까? 자연에 대한 일종의 반칙이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바로 조금 전에 이야기한 '안락한 비행기 안에서 영화보기' 라는 것인데, 그것을 문화, 혹은 문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죠. 인간이 그런 것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안락하고 평화롭게 살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언약을 가지고 우리 속에 들어왔다고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문화와 문명 속에 들어온 것인데, 그러면 카운트를 누가 합니까? 인간이 자기가 살기 위해서 문화와 문명을 카운트한다는 말이죠. 그것이 구약의 애굽이라고 하면, 그 애굽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실 때는, 그 애굽자체가 문화이고 문명이라는 겁니다.

'장자' 라는 것은 아버지가 제일 사랑하는 자인데, 그 장자를 통해서 혈육이 연결된다는 말이죠. 장자가 장자를 낳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유월절에 그 장자를 죽이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고 하니까, 죽일 자는 다 죽여버리고, 하나님의 언약이 들어있는 자만 살리겠다는 말이죠.

그래서 나온 이름이 '이스라엘' 인데, 즉 "이스라엘은 내 장자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제대로 된 형상을 이어받은 족속은 이 땅에 이스라엘밖에 없고, 그리고 그런 형상을 담은 관계성을 두고 '언약'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게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이죠.

(출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 과학이란, 자기를 살리려는 몸부림 !!

그래서 과학이란 무엇인고 하니까, "나를 살리려고 하는 이성적인 노력, 혹은 관찰이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관찰에서 질서를 뽑아낸다는 말이죠. 이것이 곧 과학인데, 이것은 대자연과 충돌이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대자연은 하나님의 소유이니 말이죠.

여기서 시편 109편을 보겠는데, 24절에서 30절입니다.

(시 104:24)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시 104:25)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
(시 104:26) 선척이 거기 다니며 주의 지으신 악어가 그 속에서 노나이다
(시 104:27)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시 104:28)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시 104: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시 104:30)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기 29절에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라고 하는데, '저희'가 누구인고 하니, 생물과 식물, 즉 대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지혜로 만들고, 그것을 주의 영이 관리하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과학은 무엇인고 하니, 여기에서 따로 뽑아내는데, 무엇을 뽑아냅니까?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배제시킨다는 겁니다. 그것을 '육' 이라는 인간이 결정하는데, 그 뒤에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라 악마가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것은 악마의 결정이라는 겁니다.

* 마스크를 씁시다 !!

다시 말해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유리한 것만 골라내고, 나머지는 모두 배제를 한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주님이 만드셨는데, 그런데 인간은 박멸을 외친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인간세계에는 악마의 약속이 들어있는데, 그 약속이라는 것은 "우리 힘을 합쳐 살아보자" 라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의 구호이고 진리이고 명제가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으려고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한다는 것이죠.

* 국가는, 악마의 가현체 !!

그렇게 해서 힘을 합치고 합친 최종적인 법적인 체제가 무엇인고 하니, 그러한 인간의 정신적 체제, 그것을 '국가' 라고 한다는 겁니다. 다니엘서에서는 이 국가를 두고서 '짐승' 이라고 하는데, 즉 악마의 가현체라는 말이죠. 그게 국가라는 것이죠.

(단 8:4) 내가 본즉 그 수양이 서와 북과 남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고 그 손에서 능히 구할 이가 절대로 없으므로 그것이 임의로 행하고 스스로 강대하더라

여기서 여러분이 이해를 잘 하셨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문제를 내보겠는데, 교회에서 목사가 "우리교회의 올해 목표는 성장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힘을 모읍시다" 라고 한다면, 그러면 여기서 무엇이 빠졌습니까? 언약이 빠지고 십자가가 그만 빠졌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남의 교회가 아니고 자기 교회인데, 그렇게 되면 자기가 좀 더 살아남기를, 즉 자기 가치와 자기 이름과 명예가 구체화가 된 것인데, 그것이 곧 교회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이런 교회는 악마의 단체라고 할 수 있는데, 국가와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것을 한 글자로 '육' 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이죠.

*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

그런데 고린도후서 13장 4절에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라고 하는데, 그러니 강함이 아니라 약함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세상의 흐름과는 정반대라는 말이죠. 이 세상에서는 약해지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런 노래도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약함이 곧 강함이라는 말이죠.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계속해서 고린도후서 11장을 보겠는데, 14절과 15절입니다.

(고후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 11: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악마 !!

여기 14절에 보면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라고 하는데, 그리고 15절에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는다는 말이죠.

악마가 광명의 천사로,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미 육으로 물들어진 인간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육적인 인간의 속성은 악마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온 것이고, 그러한 악마의 마음은 독자적인데, 즉 "네가 알아서 스스로 시작해라"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신이 된다는 말이죠.

자기 배후에 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곧 출발점이라는 것인데, 그렇게 자기가 신이기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오래 살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악마가 이야기하는 십자가, 복음, 그런 것을 원하는데, 그것을 교회가 제시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이 세상에서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갑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악마도 당연히 성경말씀을 인용하는데, 그래서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습니다. 오른편에는 돈이고 왼편에는 돈입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왜 그렇게 합니까? 악마는 "내가 당신을 아는데, 당신은 살고 싶잖아? 영원히 죽기 싫잖아"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십자가가 빠져있는데, 이것을 두고 '현실 그 자체'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죠.

* 위험천만한 '현실 그 자체' !!

다시 해보면, 여기에 대자연이 있고 인간들이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겁니다. 과학에서는 생물권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그러면 인간위주의 질서체제가 만들어지는데, 그게 현실 그 자체라는 겁니다. 그런데 현실 그 자체가 그대로 다가오면 위협적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예방하는 차원에서 만들어낸 것이 신이라는 말이죠. 인간들이 하나님을 만들었는데, 그게 구약에서의 '바알신' 이라는 겁니다. 이 바알신은 육을 위한 신인데, 이것을 구약에서는 신이라 하지 않고 우상이라고 하고, 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한다는 말이죠.

여호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이것인데, 이런 우상숭배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까, 여기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이 빠져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죽은 데서 살게 하고 없는 데서 있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저 구석에 처박혀라" 라는 것인데, 인간들이 기대하고 목표로 삼는 것은 모두 처박아 버린다는 겁니다. 그런 것은 언약에서 용납이 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언약은 아버지와 아들만 알고, 또한 아들인 예수님만이 성사시킬 수 있는 것이 언약이라는 말이죠.

이 정도를 안다면 오늘 당장에 죽어도 괜찮지 싶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아니고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게 골로새서 1장 15절에 나오는데,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라고 한다는 말이죠. 왜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셔야 하는고 하니, 창조물, 즉 피조물들을 다루기 위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주님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

그리고 13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라고 하는데, 그러니 사도바울은 아예 이 질서를 두고 악마의 세력권, 즉 어둠의 권세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러한 악마를 광명한 천사로 보기 때문에 서로 화기애애하게 서로 잘 살고 있다는 말이죠.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아제 프로야구를 개막했는데, 야구를 볼 생각을 하면 아주 기분이 좋다는 겁니다. 물론 코로나가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마스크를 끼고 거리두기를 하면서 잘 대처하면 된다는 것이죠. 마치 태평양을 날아가는 비행기 안의 안락함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 비행기가 떨어지면 10도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러면 30분밖에 견디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처럼 인간은 모든 것이 극한 위험에 포위가 되어있는데, 그것도 모르고서 자기 체면에 빠져있다는 말이죠. "괜찮아, 오래 살 수 있어" 라고 한다는 겁니다. 혹시 저승사자가 온다고 해도,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서 가지 못한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버틴다는 말이죠. 오지 말라는 것인데, 자식들 결혼도 시켜야 하고, 그리고 손자도 봐야하고,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겁니다.

이제 교재 93페이지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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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악마에게 이미 속했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가 절대적인 존재만 되면 됩니다. 그게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떤 사건을 인해서 이런 결과가 야기되었음을 보여주는데, 그래서 창세기 2장과 3장에 사건이 나옵니다. 즉 선악과를 따먹은 후유증을 보라는 겁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이 우리 몸에서는 유일한 진리적 최종내용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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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선악과를 따먹은 후유증 !!

여기에 선악과를 따먹은 후유증이 나오는데, 그러면 조금 전에 이야기한 '파동'에 대해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이렇게 원이 있는데, 인간들이 여기에 파동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런 파동과 입자가 서로 바꾸어지면서 변동을 주는 것을 우주의 질서라고 보는데, 그게 양자 물리학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중간에 보이지 않는 것은 배제가 되는데, 그것이 언약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달리고 있는데,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가 관찰하고 분석해서,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원리도 그런 것인데 말이죠. 그렇게 원소를 110개인가 만들어서 자기 자신을 규명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설명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으려고 하는 겁니까? 그것이 아니라 살려고 한다는 말이죠. 어떻게 하면 좀 더 목숨을 연장해볼까 싶어서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아까 파동을 과학이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언약이 배제가 된다는 말이죠. 이 과학을 언어로 표현해서 사회적으로 확대를 시키면, 그게 역사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을, 특히 구약성경을 역사로 봐야합니까? 언약으로 봐야합니까? 구약(舊約)이니 당연히 언약인데, 옛날 언약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은 이것을 이스라엘 역사로 본다는 겁니다. 물론 여기서 역사를 놓치면 안 되는데, 역사가 있어주어야 그 역사가 왜 잘못인지가 드러난다는 말이죠.

역사인식 그 자체가 오류인데,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역사를 역사로서 해석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비판을 하는데 있어서, 그만 자기가 자기를 비판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 벌칙을 자기가 자기에게 내리는데, 즉 "오늘은 벌로서 두 대만 맞자" 라고 말이죠.

이러한 짓을 유대인들이 했고, 그 한 가운데 예수님이 오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보고 "너희 아비는 마귀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그런데 인간세계에서는 마귀가 없는데, 오직 '나'와 '나'만 있다는 겁니다. '나' 라는 작자들만 있다는 것이죠.

* 이 세상은 다수다 !!

이것을 울산강의에서 "이 세상은 다수다" 라고 했는데, 즉 '끼리끼리' 모인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라는 말이죠. 물론 한 사람이 여러 개를 할 수도 있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젊었을 때는 산악 동우회에 있었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꽃꽂이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이 세상은 다수의 다수들이라는 말이죠.

그러면서 나름대로 그 안에서 역사를 끄집어내는데, 이 역사가 우리의 두뇌 속에 있는데, 그게 기억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시상(視床, Thalamus)' 라고 하는데, 우리 두뇌 중에서의 간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회백질부로, 많은 신경핵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외부의 체험은 자기에게 역사로 주어지고, 그 역사는 자기 속에서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언어로 구축이 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언어로 구축이 되면 의미가 되는데, 그러면 이 의미 안에는 항상 그 바닥에 육적인 것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사랑'이나 '미움'과 같은 동일한 단어를 똑같이 사용한다고 해도, 그 단어를 뜯어보면 그 안에는 자기가 느꼈던 것, 그런 자기 기억이 언어에 담겨서 나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둘이 카페에서 2시간을 이야기해도 자기 이야기만 한다는 겁니다. 자기 역사, 자기 기억 이야기만 한다는 것이죠. 그러다가 나중에 치매에 걸리면 그 역사는 사라지고 장기 기억만 남는데,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나는 내 것이다" 라고 하는, 이것만 남아있다는 겁니다.

* 나는 내 것이다 !!

그래서 죽을 때는 "나는 내 것이다" 라고 하면서 죽는데, 그것을 조금 유식하게 표현하면 "나는 제대로 살았다. 후회 없이 살았다. 하늘을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전부가 다 자기 이야기라는 말이죠. 이것을 '동어반복' 이라고 하는데,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겁니다.

술을 먹든지 나이가 들면 이렇게 되는데, 새로운 것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죠. 기존의 있는 것으로 우려먹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노인들에게 젊은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는데, 뭔가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이죠. 매일같이 같은 말이고, 그게 잔소리라는 겁니다.

물론 어릴 때는 "나는 할아버지가 좋아요" 라고 하지만, 나중에는 "할아버지에게 냄새가 나요" 라고 하면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람은 자기 냄새를 맡을 수가 있어야 하는데, 자기 죽음의 냄새를 말이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죽음과 가까이 가게 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젊은 사람들보다 뛰어나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빚을 내서 너무 새 아파트만을 고집하지 마라. 비싸기만 하고 별로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아들은 "아버지는 또 잔소리입니까?"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아버지는 "잔소리가 아니고, 새 아파트는 몸에도 좋지 않고 3개월이면 똑같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요즘 '카푸어' 라는 말도 있는데, 자동차는 오래 가봐야 한 달이라는 말이죠.

* 십자가와는 방향이 달라 !!

어제 낮 설교시간에 강조한 것이 바로 그것인데, 인간은 악마에게 속한 육이기 때문에, 앞에 십자가가 등장하게 되면 악마가 핸들을 돌린다는 겁니다. 십자가가 보이지 않도록 말이죠. 왜냐하면 십자가는 자기를 죽이기 때문에, 살려고 하는 우리 인간의 본성과 다르다는 겁니다. 누적된 역사와는 다른 성향이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주님이 택한 자가 아니라고 하면, 들어도 듣지를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결과라는 것인데, 언약에 문제가 있어서 잘못된 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죠.

* 인간은 이미 악마와 한 편 !!

그러니 우리가 이것을 고치면 됩니까? 고치지 말라는 겁니다. 이것을 "역사→기억→언어→자기 방어" 라고 할 수가 있는데, 자기 이름, 자기 명예, 자기 의미, 그런 것은 우리가 고치려고 해도 고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왜 그런고 하니까, '나' 라는 것이 점선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이미 실선이 되었다는 것은 악마와 한 편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되는고 하니, 십자가의 완성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시고, 산이 들려서 바다에 풍덩 빠지는 것이 십자가의 완성입니까? 그게 주님이 하실 일의 끝입니까? 산상설교가 끝입니까?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어디론가 가시는데, 게세마네 동산으로 가신다는 말이죠.

* 찢겨진 살과 피 !!

그렇다면 그 게세마네 동산에 왜 가십니까? 살려고 가시는 것이 아니라 죽으려고 가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죽기 직전에 마지막 만찬에서 무엇을 하십니까? 찢겨진 살과 몸에 흘러나온 피이라는 말이죠. 그 자리에서 주님이 일부러 빵을 찢으시는데, 그러면서 자기가 찢은 그 빵을, 그리고 잔을 나누어주신다는 겁니다. 즉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먹고 마셔라"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마 26: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우리가 자기가 살려고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다가 다쳐서 흘리는 피와 살,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오직 예수님의 찢겨진 살과 피라는 말이죠. 그러면 "피+살=몸"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예수님의 몸이 하나님 아버지와 해결할 게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몸은 율법대로 이루질 몸인데, 그런 몸이 되어야 부활의 몸이 된다는 말이죠.

* 부활의 몸 !!

쉽게 하겠는데,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이 되면, 그러면 성도의 남은 과제는 무엇입니까? 역시 성도도 죽었다가 부활되는 것인데, 왜냐하면 같은 언약 안에 있다는 겁니다. 십자가 안에 있으면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이 그대로 성도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이죠. 그러니 성도는 자기 미래에 대해서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반면에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해결해야만 하는데, 그래서 과거의 역사와 기억과 의미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지옥에 아닌 천국에 갈 것인지, 그렇게 노력을 해야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미 다 이루었는데, 그러니 죽어도 부활이 될 일만 남아있다는 겁니다. 그게 첫째 부활이고 둘째 부활이라는 것이죠.

* 다시 정리하면 !!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악마는 '나'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온갖 잡동사니를 여기에 다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주님의 자기의 살과 피를 가지고 찾아가시는데, 그러면 여기서 '나'를 방어해주는 의미, 이게 더 크게 되면 국가가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국가의 말을 자기를 위해서 듣는 것이지, 국가를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국가 자체가 곧 우상의 가현체인데,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때 국가가 공격을 한다는 말이죠. 그런 국가가 곧 정사이고 권세자인데, 이러한 국가의 권세가 무서워서 도망간 자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이 바로 베드로를 비롯한 10명의 제자들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베드로의 경우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을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자아이의 지적이 무서워서가 아니고, 베드로는 이미 자기의 의식, 즉 자기 의미 속에는 "나를 지켜줄 것은 국가의 권력밖에 없다" 라고 하는 것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죽고 나니, 이제 자기가 죽을까 싶어서, 그게 무서워서 국가에 아부한다는 겁니다. 즉 국가라는 보호막에 기대려고 하는데, 달리 말하면 어둠의 세력에게 굴복을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게 바로 베드로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라는 말이죠.

그렇다고 하면, 우리의 경우에도 우리의 소속이 어디입니까? 우리도 악마와 한 편이 되었고 국가의 소속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까발려서, 그래서 십자가가 우리를 쑤시고 들어온다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끝이 뾰족하다고 했는데,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의미를 파쇄를 한다는 것이죠.

* 나는 깨어지는 대상이다 !!

그러면 '나' 라는 의미가 깨어지는데, 그래서 성도와 성도와 모여서 대화를 할 때는 어떠해야 합니까? "나는 내 자랑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런데 바로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다" 라고 하는, 그것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 속에는 십자가가 들어왔다는 것인데, 오직 그러한 자들만이 자기를 까발릴 수 있다는 말이죠. 이것은 고치고 말고 하는 차원이 전혀 아닌데, 그렇지요? 자기가 깨어지는 대상으로서 살아간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다같이 중국집에 갔는데 자기는 짬뽕을 먹고 싶다는 말이죠. 그런데 일괄적으로 짜장면을 시킨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게 누구의 뜻입니까? 주님의 뜻인데, 자기의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런 것들은 다 묵살이 되고 주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이 보시기에 이미 볼모로 잡혀있는데, 자기 의미에 자기가 볼모가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게 이제 주님의 볼모가 되기 위해서, 그동안 자기를 보호하고 있던 것이 다 무너지게 된다는 말이죠. 그때 진짜 짬뽕을 먹고 싶었지만, 그게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ㅋㅋ).

* 깨어지는 보호막 !!

그러면서 그동안 자기를 지켜주던 방어막이 얼마나 허접한 것인지를 알게 되는데, 그래서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고 뭐라고 하십니까? "이제는 네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가리라"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만약에 베드로가 스스로 알아서 고친다면 자기 방어막이 되기 때문에 소용이 없는데, 그래서 주님은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하겠다"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언어에 대한 해석지체가 달라지고, 자기 기억이 육임을 알게 되고, 역사를 붙들고 있는 것 자체가 악마적임을 발견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역사→기억→언어→자기 방어" 라고 하는, 이 모든 것이 다 깨어진다는 말이죠. 그래서 "육은 지옥에 가도 마땅하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오직 구원을 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는 겁니다. 구원을 받지 않으면 그것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죠.

*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

이제 마지막으로 그러한 자들이 이 세상을 향해서 부르는 노래를 하나 소개해드리겠는데, 김광진의 '편지' 라는 가사에 보면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라고 한다는 겁니다. 악마로부터 결탁된 '나'로부터 주님의 볼모가 된 '나'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이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내용인데 말이죠.

그렇게 되면, 그 돌아서는 장소가 어디라는 겁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벌어진 그 현장이라는 겁니다. 그러한 자들은 예수님의 피와 살 외에는 달리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런 자들이 바로 주님의 증인이라는 겁니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이 어떻게 우리 몸을 가지고 전개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드러내는 환경이 되고 현장이 된 것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21,4,10 오후 5시에 마침.

아하, 그래서 역사 공부가 재미가 있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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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의 '편지'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하려 했던 말 이대로 다 남겨 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 두겠소
행여 이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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