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강의

악마의 형성사

아빠와 함께 2021. 2. 10. 07:28

[21 대구강의] '창세기'속의 그리스도 21 - 악마의 형성사

21,02,0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79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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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원수가 두 개 나오는데, 그러면 우리는 "뱀의 후손은 누구이고, 또 여자의 후손은 누구인가?" 라고 묻고 싶다는 겁니다. 최종적인 운명이 궁금해서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물을 자격이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존재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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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5.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you and the woman, and between your offspring and hers; he will crush your head, and you will strike his heel."(NIV)

15.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it shall bruise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KJV)

15.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you and the woman, And between your seed and her seed; He shall bruise you on the head, And you shall bruise him on the heel. "(NASB)

* 악마의 형성사 !!

오늘 강의제목은 '악마의 형성사' 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 속에서 처음에는 뱀으로 등장했는데, 그게 나중에는 뱀이 사라지고 악마가 그대로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게 무슨 절차와 과정을 통해서 뱀이 악마가 되었느냐는 것인데, 그것을 이번 시간에 규명해보자는 말이죠.

그렇다면 "뱀에서 악마가 된다" 라는 것을 하기 전에 이것부터 먼저 하면, 그게 "1에서 0으로" 라는 겁니다. 여기서 '1' 이라는 것은 하나나 한 사람, 그런 의미이고, '0' 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이렇게 칠판에 글씨가 있다면, 그것을 지워버리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내가 여기에 있다" 라고 하다가도, 자기가 죽게 된다면 아무 것도 없다고 여긴다는 말이죠. 그런데 성경은 그게 아니고, '1'로 있다가 없어지면서 십자가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동안 배후에서 자기를 있게 했다가 없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그것이 십자가 사건이니 주인공은 당연히 예수님이고, 그래서 자기가 없어지면서 예수님의 은혜가 나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 등장하는고 하니, "내가 여기에 있다" 라고 고집을 부릴 때는 느껴지지 않다가, 자기가 망가지는 과정을 통해서, 희미했던 예수님이 뚜렷해지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근원이고 뿌리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 탕자 이야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데, 그게 탕자 이야기라는 겁니다. 이 탕자는 집을 나가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그런데 아버지 곁을 떠난다는 말이죠. 탕자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기 생각을 했는데, 그것을 숫자 '1'로 보자는 겁니다.

(눅 15:1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눅 15: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눅 15: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집을 나갈 때,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아버지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 되려고 그렇게 했다는 말이죠. 즉 '1'이 '2'가 되고 '3'이 되고, 그리고 나아가서 '1,000'이 되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가 잘 되려고 도시에 나갔는데, 그런데 나중에 그 '1'이 '0'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가진 재산은 다 날리고 아무 것도 없고, 또한 죽으려고 하니 너무나 부끄럽다는 겁니다. 그렇게 '0'이 되고 난 다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집에 자기는 없지만 아버지가 있었다는 말이죠. 그 아버지는 자기의 뿌리가 되고 근원이 된다는 겁니다.

* 자식아, 뿌리와 근원을 아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배우고 하는 것은,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로 인해서 가려진 뿌리와 근원을 발견하는 것이란 말이죠. 그러니 이것은 자기가 교회에 나오고 말고 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 정도 이야기를 안다고 하고, 만약에 여러분이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심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잘 믿고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 존재에 대해서 과연 알고 있었는지, 그것을 묻는다는 것이죠.

다들 자식들이 있지요? 그러면 그 자식들이 주님을 위해서 삽니까? 자기를 위해서 삽니까? 자기를 위해서 사는데, 나이가 들어도 그야말로 철이 없다는 겁니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신앙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 세상 자체가 "누가 누가 잘났나?" 라고 하는 경쟁마당이니 말이죠.

그런데 아버지의 신앙에 의하면 어떻다는 겁니까? 그런 경쟁마당에서 "내가 얼마나 잘났는가?" 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과 관련이 있는지를, 즉 뿌리와 근원과 관련이 되어있는지를 묻고 있으니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자식들은 명절이 되면 집에 와서 뭐라고 합니까? "아버지,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데, 뿌리와 근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그게 "아버지, 이 정도면 자식 값을 했지요?" 라는, 그런 의미라는 말이죠.

그러니 아버지 앞에서 자기 자랑을 하는데, 그러면서 "제가 이렇게 출세를 하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지 않았습니까?" 라고 하면서 덤탱이를 씌운다는 겁니다. 자기가 돈을 벌고 싶어서 벌고, 또 출세를 하고 싶어서 해놓고, 그게 아버지가 원했던 것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 아버지, 제가 출세를 했습니다 !!

다시 말해서, "아버지, 아버지는 제가 이 세상에서 잘난 자식이 되는 것이 좋습니까? 그것이 아니면 못난 자식이 되는 것이 좋습니까?" 라고, 그렇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부모가 선택할 범주는 이미 정해지고 말았다는 것이죠.

그러면 부모는 "그야 잘난 자식이 되면 좋지" 라고 하는데, 그러면 자식은 "그래서 제가 아버지의 소원대로 잘난 자식이 되었습니다. 형보다도 제가 낫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게 남은 아버지의 재산을 자기에게 마저 밀어달라는 소리라는 겁니다. 아버지의 소원이 자기 소원이고, 자기 소원이 아버지의 소원이라면, 당연히 잘난 자기를 밀어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것은 아버지가 교육을 잘못 시킨 것인데, 아버지가 근원과 뿌리에 대해서 평소에 언급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했지 말이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그 다음에 교회에 나가서 그것을 자랑을 하면 된다고, 그런 식으로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뿌리와 근원이 없이, 자기 자식이 세상에서 출세하면 아버지로서 보람을 느끼는, 그렇게 자식과 부모관계가 이어져왔다는 말이죠. 그러니 부모가 된 우리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들을 자식들도 아니지만, 그래도 할 말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시편 121편 1절에 보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라고 하는데, 이게 세상에서 자기가 개인적으로 출세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겁니다. 돈을 얼마나 잘 벌고 아파트를 사고, 그런 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죠. 이것은 지금까지 한 강의에 의하면, 존재와 뿌리에 관한 내용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2절에 보면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시 121: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 121: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

교회에서 5월만 되면 아버이 주일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잠언서를 강조하는데, 물론 엉터리 해석이라는 겁니다. 잠언서가 아버지가 자식을 교육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는데, 1장 7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라고 한다는 겁니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그런데 이것을 교회에서 뭐라고 합니까?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공부를 잘한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니, 그렇게 하면 시험을 칠 때 하나님께서 총기가 나도록 해준다는 겁니다. 그러니 목적 자체가 또 출세와 성공인데, 뿌리와 근원이 아니라는 말이죠.

* 마지막 웃음이 사라진 세상 !!

이 말씀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여호와를 경외하면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마지막 심판이 뿌리와 근원에 관한 것이라는 겁니다. 즉 "심판에서 합격될 수 있는 요소가 인생의 근본이다" 라고 하는, 그런 의미라는 말이죠.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지옥에 가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겁니다. 마지막에 웃어야 승자인데, 그 마지막 웃음이 사라지고 없다는 말이죠.

이 세상에서 실컷 웃다가 마지막에는 그 웃음이 사라지고 지옥에 가야한다고 하면, 그러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그것은 지옥행을 지금까지 열심히 이끌고 왔다는 것이죠. 힘주어 자기를 지옥으로 몰아세우는, 그런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살아왔다는 겁니다. 80년을 살던, 90년을 살던 간에 말이죠. 자기를 지옥에 보내는 것을 재촉해왔다는 겁니다.

'백세인생' 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나이 90이 되었다고 재촉하지 마라.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게 뿌리와 근원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이 세상에서 머뭇거리는 겁니까?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뿌리와 근원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죠.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인간은 '1'인데, 그러한 '1'에서 '0'이 되고 할 때는 반드시 뿌리와 근원이 있다는 겁니다. 그 뿌리와 근원이 바로 '1'이 되게 하신 분인데, 즉 그분이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다는 말이죠. 그분이 곧 예수님인데, 모든 만물의 근원으로서, 모든 것이 바로 그 예수님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이 세상은 임시적이고 순간적 !!

그러면 '0'에서 '1'이 되고 '1'에서 '0'이 되는, 즉 처음에는 이 땅에 아무 것도 없었는데 태어나고, 그렇게 태어나서 다시 왔던 곳으로 없어진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이 '1' 이라는 것은 임시적인데, 이 땅에 우리가 사는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임시적, 혹은 순간적이라는 것이죠.

그것을 야고보서 4장에서는, 우리 인생은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한다는 말이죠. 즉 '1'에서 '0'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겁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4장에선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라고 하고 말이죠. 그러니 성경자체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근원이고 뿌리라는 겁니다.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 뿌리와 근원을 찾아서 !!

그렇다면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은 잠시 접어주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것으로 가보자는 말이죠. 이것을 보통 '영적세계' 라고 하는데, 달리 말하면 '뿌리와 근원의 세계' 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세계, 즉 이 세상에서는 이것을 이야기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세계는 뱀으로 보이기 때문에 말이죠.

강의 처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악마의 형성사, 즉 "어떻게 뱀이 악마가 되는가?" 라고 했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뱀이 어떻게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가 되느냐는 말이죠. 어떻게 보이지 않는 세계의 악마로 나타나느냐는 겁니다. 그 과정을 이 시간에 살펴보자는 것이죠.

이런 보이는 세계에서, 여기 창세기 3장에 보면 '후손' 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게 뱀의 후손이라는 겁니다. 그 뱀의 후손이 악마가 되는데,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곰의 후손은 곰이고, 또한 사자의 후손은 사자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뱀의 후손은 당연히 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어떻게 뱀에서 악마로 전환이 되는가?

그런데 뱀이 되지 않고 악마가 되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악마를 이기는 것과 뱀을 이기는 것이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에 뱀을 이기는 것이 메시야라면 뱀을 잡은 땅꾼이 메시야라는 말이죠. 그런데 메시야는 뱀이 아니라 악마를 이기신 분이 메시야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뱀에서 악마로 전환이 되느냐는 것인데, 그 과정을 알아보자는 말이죠.

창세기 1장과 2장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관련이 되어있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분명히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나' 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있다는 말이죠. 인간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있지만, '나'는 그 관계가 끊어져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알아야 뱀이 악마가 되는 그 형성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사람들 앞에 나설 때 '나'로 나섭니까? 인간으로 나섭니까? '나'로 나선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 가방이 누구의 것입니까"? 라고 물으면, "인간의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가방은 나의 것입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 옷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라고 하면, "나입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성도라고 하면, '나'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와 결부되어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과 결부되어있는데, 그래서 "이 가방이 누구의 것입니까?" 라고 하면,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고 해야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나의 것입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고 하면, "그러면 주인이 없네요" 라고 하면서 날름 가지고 간다는 것이죠.

그렇게 인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고 하면, "주인이 없네요"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것이 문제인데, 그러면 하나님은 주인에서 탈락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하나님이 배제가 되는 세계가 '나'의 세계이고, '너'의 세계라는 겁니다. 그렇게 '나'와 '너'로 구성된 세계, 그게 바로 악마의 세계라는 말이죠.

* 이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겠는데, 인간은 하나님과 결부가 되어있는데, 그런데 '나'는 하나님과 결부가 되어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결부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 자기가 신이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혹은 "이 아파트는 누구의 것입니까?" 라고 물으면, "나의 것입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등기이전을 했다는 말이죠.

물론 목사가 심방을 와서 "이 아파트는 누구의 것입니까?" 라고 하면,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옆에서 장로님이 눈치도 없이 "우리 이리로 이사를 할까요?" 라고 하면, 당장에 "이게 미쳤나?"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ㅋㅋ).

그러니 이 세상은 하나님이 배제된 세상인데, 그래서 '나'의 것이 아니면 '너'의 것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여기에서 '나'는 자아가 되고, '너'는 타인, 혹은 타자가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나'와 '너'의 세계가 되는데, 여기에 커다란 충돌과 대결이 일어난다는 말이죠.

* 나는 출세하고 싶어요 !!

아까 이야기했던 자식교육을 다시 해보면, 아버지가 자식을 보고 "야야, 하나님을 믿어라" 라고 하면, "아버지, 나는 하나님에게는 관심도 없어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는 어디에 관심이 있어?" 라고 하면, "나는 출세하고 싶어요.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아버지가 "왜 그렇지?" 라고 하면, "아버지, 나는 나의 주인입니다. 물론 결혼할 땐 아버지가 좀 보태주었지만, 지금의 이 모든 것은 내가 이룬 겁니다. 아버지의 것이 아니고 나의 것입니다. 물론 용돈을 좀 드리겠지만, 그래도 나의 것입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출세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출세를 했습니다. '나'와 '너'의 경쟁마당에서, 나는 나만의 캐슬, 즉 나의 구역을 정했습니다" 라는 겁니다. 일본말로 '왁구' 라는 게 있는데, 그것을 프레임, 혹은 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지배할 수 있는 영역, 그렇게 통치가 되는 공간이라는 겁니다.

* 나는 독립했다 !!

인간에게 '나' 라는 것은 추상적이 아니고 실제적이라서, 자기만의 왁구를 짜야한다는 말이죠. 그것을 '독립했다' 라고 하는데, 탕자가 아버지의 틀에서 벗어나서 "나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라고, 그래서 독립을 했다는 겁니다. 재산을 얻어서 말이죠. 그러니 탕자의 왁구는 역시 돈이었는데, 돈이 있어야 독립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것을 이상하게 여길 수가 없다는 말이죠. 나이가 서른이 되어서 취직도 하지 않고 집에 그대로 있으면, 요즘은 그게 아들이든 딸이든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쫓아낼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이 '나'의 세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하면, 그러면 '너'의 세계도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나 '너'나 둘 다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의 그 절대자리를 누가 점령합니까? 자기가 점령한다는 겁니다.

* 이 가방의 주인은 나다 !!

그래서 이 가방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인데, 즉 "이 가방에 대해서는 내가 주님입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자기가 알아서 이 가방을 다룬다는 겁니다. 더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버릴 것인지, 그 모든 것은 자기가 알아서 결정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 '나'가 계속해서 무엇을 가리는고 하니, 자기의 인간됨을 가린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나' 중심입니까? 인간 중심입니까? 인간중심인데,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관련이 되어있어서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게 '나' 중심이 되면, 하나님이 끊어진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아담이 무엇을 건드렸는고 하니, 하나님과 엮어지려고 하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는 조건이 유지가 되어주어야 하는데, 즉 "선악을 아는 지식을 알면 절대로 안 된다" 라고 연결이 시켜놓았다는 말이죠. 그런데 만약에 그 선악과를 먹게 되면, 더 이상 이제는 인간이 아니고 죽음인데, 즉 흙이라는 겁니다. 흙에서 왔기에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 나는 왜 늙어서 죽는가?

다시 말해서, 0에서 1이 되었는데, 그 1에서 다시 0으로 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인간이 스스로 노력한 것이 아닌데, 그렇게 노력해서 늙어죽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인간은 아무리 출세를 해도 그 늙음을 멈출 수가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답해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는 왜 늙어서 죽는가?" 라는 것이란 말이죠.

거기에 대한 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나 철학, 그리고 과학이 답변해줄 수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보톡스 주사를 맞고 해도 그게 해결이 전혀 되지를 않는다는 말이죠. 잘못하면 선풍기 아줌마가 될 수 있는데, 그러니 아무런 대책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 여기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말이죠.

* 약속의 개입 !!

지금까지는 알았다고 치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뱀에서 뱀의 후손으로 바뀌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께서 약속을 집어넣는다는 말이죠. 약속을 집어넣으면 뱀이 뱀의 후손이 된다는 겁니다. 그 약속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이 온다는 것인데, 자아가 오지 않고 인간이 온다는 말이죠.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인간은 무엇과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과 관련이 있고, 반면에 자아는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창세기 4장에 보면, 인간은 아벨이 되고 자아는 가인이 된다는 말이죠. 우리가 보기에는 둘 다 인간인데, 그런데 아벨이 드린 제사는 누가 와서 넙죽 받는고 하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것, 바로 그것을 '약속' 이라고 한다는 것이죠. 오늘 강의내용이 상당히 함축적인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자아들만 있는 이 세상에 인간을 보내셨다는 겁니다. 그게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데, 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라고 한다는 말이죠.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참된 인간은 예수님뿐 !!

그러니 예수님은 그냥 육신이 아니라 말씀으로서의 육신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과 기능, 그 모든 하나님의 뜻을 함유하신 분,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이죠. 왜냐하면 이 지상의 모든 인간은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자아라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그냥 '나' 라는 것이죠. 신이 아니면서 신 행세를 하는, 일종의 '유사신' 인데, 자기가 절대권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죠.

아직까지 악마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것은 아벨이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라,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받아버렸다는 겁니다. 아벨이 내민 손을 하나님이 잡으니, 그게 연결이 되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먼저 드린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았는데, 그러니 그 관계는 끊어졌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벨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었으니 인간이 되고, 가인은 관계가 끊어졌으니 자아가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나', 즉 자아가 되면, 가인이 보기에 아벨은 '너', 즉 타인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타인이 되면, 아벨과 함께 있는 하나님은 가인이 보기에 '너'가 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그 '너'는 '나'의 공격대상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영토를 넓히는데 누가 방해하는고 하니, 타인이 방해를 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둘 다 신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게임의 결승전인데, "나냐? 너냐?"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고 하는, 그런 결승전이라는 말이죠.

어떤 철없는 여자가 남자와 사귀면서, "오빠는 나와 오빠의 엄마가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먼저 건질 것인데?" 라고 묻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남자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그동안 여자에게 투자한 것이 있다는 말이죠(ㅋㅋ). 그 여자의 경우에는, 자기는 '나'가 되고 시어머니는 공격대상인 '너'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질문이 1년이나 2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마는데, 왜냐하면 자식을 낳게 된다는 말이죠. 후손이 생기면, 그 후손이 '나'를 대신하는 '나'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당신은 나와 자식이 물에 빠지면, 그러면 누구부터 먼저 건질 것인데?" 라고 하면, 그 해답은 너무 쉽다는 말이죠.

* 할례언약 !!

"그야 당연히 당신보다 내 자식이지" 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나' 라고 하는 뱀의 요소,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자기가 절대화가 되어있는, 그런 자기의 신적인 요소가 자식에게로 이전이 되었다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할례언약이 나오는데, 그것은 무엇을 끊어버리는고 하니, 남자의 생식기 끝을 자르는 것인데, 그러니 천국백성은 육신의 자손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말이죠.

한나가 아이를 낳습니까? 낳지 못합니까? 낳지를 못하는데,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도 역시 그렇다는 말이죠. 그리고 야곱의 아내인 레아와 라헬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겁니다. 모두가 다들 불임여성인데, 그런데 거기에 약속으로서 자식이 들어간다는 말이죠.

* 육적인 자식에서 약속의 자식으로 교체작업이 !!

그러면 그게 할례언약이니, 육적인 자식에서 약속의 자식으로 교체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은 육신의 자식만을 낳을 수밖에 없는데, 가지고 있는 프레임이 그것밖에 되지를 않는데, 그런데 그 안에 이질적인 사람이 들어온다는 말이죠. '나'밖에 모르는 그 세계에,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즉 사람이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게 성경내용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8절에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썩어질 것을 거두고, 영으로 난 것은 영생을 거둔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0장에서도 예수님께서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 라고 하셨는데, 그러니 심판을 통과할 수 없다는 말이죠.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마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 자기 자식을 건드리는 것은 용서불가 !!

자기가 신인 것처럼 자기 자식도 신인데, 그래서 다른 것은 다 건드려도 되는데, 자기 자식을 건드리는 것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죽을 용의까지 있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자기의 모든 것이 자식에게로 다 이사를 갔다는 겁니다. 물론 요즘 부모는 꼭 그렇지도 않지만, 옛날에는 자식의 일이라고 하면, 특히 제사를 지내주는 자식에게는 모든 것을 다 주었다는 것이죠.

둘째나 셋째는 소용이 없는데, 물론 딸도 그러하다는 말이죠. 요즘은 'N분의 1' 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은 다 소용이 없고, 오직 자기 제사를 지내주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언을 하기가 쉬운데, 맏이를 불러서 "제사를 지내줄 거야? 말 거야?" 라고 물어보면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자식은 거기에 대해서 답변을 지체할 이유가 없는데, 죽고 난 뒤에 제사를 지내는지 지내지 않는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느냐는 겁니다. 당장에 부동산이 들어오는데,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나'의 세계라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도, 자식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 방향이 이전되었기에 말이죠. '효도' 라는 말이 왜 생겼을까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그런 특정한 단어가 없는데, 그것은 그냥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효도라는 것은, 그게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죠.

자식이 아무리 부모를 생각해도, 그게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만큼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너도 자식을 낳아봐라" 라는 말을 하는데, 자식이 속을 썩이면 말이죠. 옛날에 미남 가수인 유주용의 '부모' 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그게 외국노래에 가사를 붙인 것으로, 거기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는 말이죠.

* 자식 속으로 내빼기 !!

그러니 육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자식 속으로 내빼는 것인데, '나' 라는 것이 결국 죽는데, 그런데 거기서 구원되는 방법은 아들을 낳는 것, 그러면 구원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 아들 속으로 자기가 들어가면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맏이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출애굽 당시에 애굽 사람들의 자식이 모두 죽은 것이 아니고 맏이만 죽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왜 맏이만 죽였습니까? 그게 혈육의 대표적 표상이라는 말이죠.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맏이인 르우벤을 보고 뭐라고 합니까?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창 49: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자식은 누구를 닮는고 하니, '나'를 닮는데, 인간을 닮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니 자식만 있으면 자기는 자식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그래서 자기는 죽어도 자식이 살아있으면, 그러면 자기는 죽지 않은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자식 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그것을 그야말로 완전히 끊어버리는데, 그게 왕의 자식이든 누구의 자식이든 간에, 맏이라고 하면 무조건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맏딸도 아니고 맏아들이라는 것이죠.

* 하나님의 양자 !!

로마서 8장 29절에 보면, 아들의 형상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맏아들이 나온다는 겁니다.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는데, 자식도 아닌데 자식이라고 쳐준다는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의 자식은 누구밖에 없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데,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밖에 없다는 겁니다. 자기 이름이 아니라는 말이죠.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왜냐하면 우리는 자아밖에 없는데, 이미 아담의 후손이기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자아가 아닌, 말씀대로 이루어진 유일한 참된 인간은 누구인고 하니,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는 말이죠. 우리는 그런 예수님과 가족이 될 수 없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맏아들이 되신다는 겁니다.

* 성령을 통해서 !!

그런데 그러한 자식이 되려면 아버지의 형상이 이전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예수님의 형상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맏아들을 닮은 자가 된다는 말이죠. 그 일을 성령이 하시는데, 성령의 특징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다" 라는 것을 우리 안에 들여놓는다는 겁니다. 이게 참으로 중요한데 말이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두 다 이루셨는데, 그러면 성령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오신다는 겁니다. 그 십자가의 성과와 혜택, 그것이 다 이루심인데, 그 이루심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는 예수님의 패밀리, 하나님의 패밀리가 된다는 말이죠. 그것을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신부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가족인 줄 어떻게 압니까? 성령의 공통적인 요소, 즉 성령이 함께 하시기에 그렇다는 말이죠. 성령은 다 이루심의 영인데, 성령은 그냥 우리를 보고 좋다고 찾아오시는 게 아닌데, 성령은 예수님의 지시를 받는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맏이이기 때문에 동생들이 필요한데, 즉 양자들이 필요하다는 말이죠. 그것을 예수님이 선택하시고 결정을 하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선택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영을 주시는데, 그래서 로마서 8장 9절에 도면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교회를 지어서 거기에 집사가 되고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아무리 근사한 교회에 다녀도, 물론 교인은 맞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라는 말이죠.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십자가 목걸이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어 !!

어제 낮에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목에 십자가를 걸면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하면 얼마나 좋고 쉽겠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 라고 하는, 그런 인간으로서는, 아니 자아로서는 전혀 불가능한 방법을 제안하시느냐는 말이죠.

그것은 성령이 오셔야 주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을 한다고 해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만약에 우리가 할 수 있다고 하면, 그러면 하나님이 왜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게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지금 안 되는 짓거리들을 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완전히 사기꾼들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는 천국에 갈 수 없는데, 그런데 마치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처럼 구라를 친다는 겁니다.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고 하면서 말이죠.

성령을 받지 않으면 구원은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데, 그런데 마치 가능한 것처럼 말을 한다는 겁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인데, 계속해서 육의 자식만 낳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성령으로 하신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물론 육으로 시작하는 것은 맞지만, 그게 영의 노선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런 육의 노선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질질 끌 필요가 있다는 말이죠. 뱀의 후손을 계속해서 남길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 뱀으로 인해서 우리 안에 자아가 있는데, 그 자아의 후손, 그게 자기의 족보인데 말이죠. 이것을 계속해서 끌고 가신다는 겁니다.

* 하나님은 가인을 죽이지 않아 !!

여기서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가인을 어떻게 했습니까? 죽인 것이 아니라, 나중에 주어진 모세율법에 의하면 죽인 자는 죽여야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법인데, 그런데 정작 하나님은 죽이지 않는다는 말이죠.

하나님은 가인을 살리시고 또한 번창하도록 하시는데, 왜냐하면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뱀이 계속해서 후손을 생산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가인은 아내와 동침해서 에녹을 낳았는데, 그런데 아벨은 어떻습니까? 자식을 낳았습니까? 자식이 없는데, 죽었으니 말이죠.

(창 4: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창 4:17)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 번창하는 가인의 후손 !!

그런데 창세기 4장 25절 이하에 보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라고 되어있는데, 그게 '셋' 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아벨의 후손인데, 물론 아벨의 후손이라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왜냐하면 육은 또 갈라지고 또 갈라진다는 말이죠.

(창 4: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런데 가인의 경우에는, 그가 에녹을 낳고 그 에녹의 후손 중에서 나중에 보면 라멕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들이 후손을 낳아서 도시를 이루면서 살았다는 말이죠. 그것을 도시국가라고 하는데, 국가의 시작이 농촌이 아니라 도시라는 겁니다.

(창 4:18)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창 4:19)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우리 생각에는 농촌에서 시작해서 도시가 되고, 그 도시가 국가가 된 것 같지만, 처음부터 도시로 시작해서 도시가 되어간다는 말이죠. 도시가 농촌마을을 지배하는 식으로, 그렇게 도시의 힘을 키워간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게 이 세상의 권세라는 말이죠.

* 땅의 권세자 !!

그렇다면 뱀은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의 자아 속에 있으면서 그 자아가 후손을 남기는데, 거기에서 여분의 권력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러한 권력, 이게 자아의 세계인데, 즉 '나'와 '너'의 세계를 아울러 휘감는 권력이 바로 악마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말이죠.

여기서 미리 말씀을 드리면 "뱀=국가"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즉 권세라는 겁니다. 이 뱀을 달리 말하면 짐승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러니 뱀, 짐승, 국가, 이 모든 것이 다 권세라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이 땅의 권세자라는 말이죠.

요한복음 14장 30절을 보면, 누가 한 번 읽어보세요.

(요 14: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 예수님과 임금은 대척지점에 !!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는데, 그러면 그게 빈자리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세상 권세가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 세상 권세가 바로 임금인데, 그러나 그 임금은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데, 즉 예수님과 대척지점에 놓여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의 권세는 주님과는 관련이 없고, 오히려 주님을 공격하는 힘인데, 그것이 그냥 힘이 아니라 '나'와 '너'의 세계, 이게 바로 악마의 세계인데, 그런 악마의 세계로 충족이 되는 세상, 바로 그것을 악마가 원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들어오면 안 되고 계속해서 '나'가 새끼를 친다는 말이죠. '나'가 '나'를 닮은 '나'를, 그렇게 육에서 육으로 새끼를 깐다는 겁니다. 그것을 외부에서 울타리를 치게 되면, 그렇게 울타리를 치는 힘이 눈에 보이는 국가의 힘이고 뱀의 힘이고 짐승의 힘이라는 말이죠.

* 혹성충돌 !!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냥 우리를 데려가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무엇을 뚫고 왔다는 겁니까? 지구가 이렇게 있는데, 유성이 지구중력에 이끌려서 지구로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게 텅텅 비어있는 곳에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만약에 5kg 짜리가 떨어지면 모르기는 해도 수백미터의 분화구가 생기지 싶은데, 핵폭탄 이상의 위력이 있다는 겁니다. 우주자체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이죠. 그러니 그게 서울에 떨어지면 서울시민이 몰살을 당한다는 겁니다. 물론 5kg 짜리는 너무 작은데, 아무튼 그런 일이 생긴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게 비어있는 공간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에 대기권이 있다는 겁니다. 그 공기층에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오니, 그게 다 타버리고 만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게 다 산산조각이 난다는 겁니다. 그러니 실제로 땅에 떨어지는 유성은 조그마하다는 말이죠.

* 예수님은 권세를 뚫고 !!

무슨 말인고 하니까,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 무슨 권세를 뚫고 오셨습니까? 그게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에게는 '나'만 있고 '너'만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와 '너'만 보이는데, 다른 것은 보이지를 않는다는 말이죠. 즉 뿌리와 근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만 잘 되면 되는데, 남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든 말든 간에 자기만 걸리지를 않으면 된다는 말이죠. 우리는 그렇게 '나' 밖에 모른다는 겁니다. 자기 주위에 과연 그 어떤 힘이 둘러쳐져 있는지, 그런 것도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19살까지 집에서 부모의 품애서 아무런 어려움도 모르고 조용히 자라서, 그래서 "나는 엄마와 아빠가 좋아"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러다가 어디로 가는고 하니, 입영통지서를 받고 논산 훈련소에 가게 되는데, 그러면 멘붕이 온다는 겁니다. 새벽 2시에 자서 아침 10시에 일어나던 스케줄이, 논산 훈련소에 가게 되면 강제로 밤 10시에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죠.

* 엄마가 보고플 땐 ♬

그러니 어찌 서러움의 눈물이 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엄마가 보고플 땐 ♬" 라고 하면서 그야말로 흐느끼게 된다는 말이죠. 그래도 논산 훈련소는 모두 다 동기가 되어서 하나가 되는데, 그렇게 같이 고생을 하면 그렇게 외롭지는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자대 배치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6주의 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가게 되면, 그야말로 거기에는 층층이 시어머니에 또 시어머니들이라는 말이죠. 모두가 다 고참들이라는 겁니다. 물론 요즘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때는 밤에 잠을 그냥 재우는 법이 없었다는 말이죠. 자고 있으면 불러내서 몽둥이로 엉덩이 마사지를 한다는 겁니다. 무슨 조폭들의 세계도 아니고 말이죠.

* 야, 다들 엎드려 바쳐 !!

자기가 자고 있는데, 즉 '나' 라는 절대자가 자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 밤중에 불러내서 팬다는 말이죠. 그것을 권세라고 할 수 있는데, 타인의 권세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얻어맞다가 병장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대로 졸병들에게 보복을 한다는 것이죠.

왜 그렇게 합니까? 자기는 소대를 대표하는 대표자인데, 그러니 졸병은 그런 '나'에게 포함이 된다는 겁니다. 즉 '나'를 영화롭게 하는 졸병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나는 나의 자격을 행사힐 권한이 있다" 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이게 커지면 국가인데, 그게 북한이고 대한민국이라는 말이죠. 김정은이 이제 나이가 겨우 40대 중반인데, 그 하는 짓거리는 보라는 겁니다.

이 세상 자체가 그런 권세자의 세계인데, 자기가 아무리 똑똑해서 대기업에 가서 성과급을 받고 하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회사에 다시는 것이 더럽다고 때려치우고 식당을 하더라도, 진상 손님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역시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겁니다.

* 공직사회 !!

그러면 왜 그렇게 합니까? '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러한 굴욕을 참아야 한다는 말이죠. 그것을 두고 4글자로 '공직사회' 라고 하는데, 얼마나 고상하게 표현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사적인 것과 구별해서 공적이라는 것인데, 여기에 권세가 흐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윗선의 말을 듣기 싫거든 사표를 써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부하직원의 경우에는, "나보고 양심대로 하지 않았다고 뭐라고 하지 마세요"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공직사회는 위에서 까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까야하니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게 되면 그렇게 자기 변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아이히만' 이라는 유대인 600만명을 독가스실에 집어넣은 자가 재판을 받을 때 뭐라고 하는고 하니, "나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자기는 히틀러가 시켜서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이게 공직사회인지 경직사회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니 이 공직사회가 얼마나 안전한 지역인지 모르는데, 왜냐하면 따박따박 월급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런 난국에 제대로 월급을 받는 곳은 공직사회밖에 없다는 말이죠. 지금 자영업자들을 한 번 보라는 겁니다. 다들 난리라는 말이죠. 도대체 무엇이 출세고 성공이냐는 겁니다.

* 인간을 투입한 나라가 곧 이스라엘 !!

이렇게 '나'와 '너'밖에 없는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너'를 키운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 '나'를 잡아먹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너'의 권세에 '나'가 종속이 되는데, 하나님은 여기에 인간을 투입하신다는 말이죠. 그 인간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렇게 인간을 투입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겁니다.

그 이스라엘에는 제사장, 선지자, 왕이 있는데, 전부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놓여져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오늘날 선지자, 왕과 같은 제사장이 누구인고 하니, 그게 바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의하면 성도인데, 주님께서 그 성도를 악마의 권세에 투입을 하셨다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데, 우리가 아벨과 같은 입장이라는 말이죠.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 죽어도 다시 산다 !!

그러면 이 투입된 약속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고 하니, 그분이 바로 인자이신 예수님인데, 그 예수님 안에 "죽어도 다시 산다" 라고 하는 것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죽음의 권세를 뚫었다는 말이죠. 육의 권세, 자손의 권세를 뚫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자의 후손은 어디에 있는고 하니,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뱀의 후손 속에서 뚫고 나올 때, 그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뚫고 나와야, 이 세상 바깥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조금 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보이는 것은 잠간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말이죠.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이 보이는 권세, 이 보이는 것을 이미 뱀의 후손이, 즉 자아들의 집합체를 이미 악마의 권세가 덮어버렸다는 겁니다. 빠져나오지 못하게 말이죠.

그러니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리고 히브리서 2장 15절에 보면,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라고 되어있는데,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죽기를 무서워하는 것 자체를 종이라고 보았는데, 그러면 주인은 누가 되는 겁니까?

* 날마다 악마에 후달리면서 !!

여기 14절에 보면,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마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모든 자아들은 어디에 후달리고 있는고 하니까, 죽기를 무서워한다는 말이죠. 왜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됩니까? 그러면 죽는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코로나에 걸릴 필요는 없지만 말이죠.

(히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우리가 살아있으면서도 항상 알 수 없는 공포에 쫓기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마지막에 그 정체를 보니까, 마귀가 죽음을 가지고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부려먹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인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악마를 빼버리고, 그냥 죽는 것이 무섭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 이유를 안다는 겁니까? 모른다는 겁니까? 그 이유를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진짜 인간이신 예수님은 죽어도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는데, 바로 이것을 악마가 시기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악마는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방해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고린도후서 4장을 보겠는데, 3절과 4절입니다.

(고후 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 악마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을 싫어해 !!

여기 4절에 '세상 신'이 나오는데, 그게 악마라는 말이죠. 그러니 악마는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누구도 여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런 힘을 가진 악마가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해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 그 예수님을 악마가 제일 싫어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놓쳐버렸기 때문인데, 더 이상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날까봐 악마가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죽음이 악마의 마지막 카드라는 말이죠.

그런데 이 죽음은 잠을 자다가 죽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살아있으면서 모든 투입되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지켜라. 지키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라는 겁니다. 즉 "상실된다. 손해가 난다. 너의 자아가 무너진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자아가 있다는 것을 가지고 계속해서 겁을 주고 협박을 한다는 말이죠.

누가 그렇게 한다는 겁니까? 타인, 즉 '너'가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자아를 주장한다고 하면 악마는 영원한 '너'가 되는데, 그것도 권세를 가진 '너'가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우리는 그에게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런 형편에 놓여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눈에 보이는 뱀의 후손을, 그게 뱀이 아니라 인간이 나오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뱀은 애초부터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피조물인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을 누가 꼬드기는고 하니, 그게 뱀이니까 노골적으로 도전을 한다는 겁니다.

물론 뱀 안에는 악마가 들어있는데, 아무튼 눈에 보이는 뱀이 하나님에게 도전을 했고, 그 뱀의 후손으로서 인간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가인이었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가인은 아벨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만 시기해서, 아벨을 죽여버렸다는 겁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라 !!

그러니 이것을 정리하면, "악마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자 한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복음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자 한다는 겁니다.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을 향해서 "예수님을 무시해라. 그리고 성공하고 출세해라. 그게 이 세상에서는 최고다" 라고, 그렇게 악마는 지금도 계속해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죠. 물론 악마도 주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지만 말이죠.

여기에서 시편 2편을 보겠는데, 1절에 보면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라고 한다는 겁니다. 분명히 민족들이 있는데, 그리고 2절에 나오는 군왕들도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가려면 여권을 만들고 해야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왕들이 있었는데, 세종대왕도 있었고 정조대왕도 있었다는 말이죠. 그리고 지금은 대통령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왕들과 관원들이 무엇을 한다는 겁니까? 2절에 보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권세자들이 목적이 있는데, 눈에 보이는 '나'와 '너'의 세계가 아닌 진짜 인간, 즉 죽어도 다시 살아나신 분, 그분이 바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관련이 된 그분을 어떻게 하는고 하니, 공격하는 성질을 이 세상의 권세자가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뭐라고 합니까? 3절에 보면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보고 하늘에 계신 분이 어떻게 합니까?

4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이것들이 놀고 있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즉 "내가 준 성령을 너희들이 과연 빼앗을 수 있다고 여기는가?" 라고, 그렇게 나오신다는 겁니다.

(시 2:1)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시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시 2:3)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시 2: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 끊을 수 없으리라 !!

이제 진짜 끝으로 로마서 8장을 보겠는데, 여기 35절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라고 하는데, 또한 39절에 보면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고 하는데, 이게 성령을 받은 자가 아니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성령을 받지 않는 자들은 자기에게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난리를 치는데, "괜히 예수를 믿었다. 계속해서 절에 다닐 걸, 괜히 바꾸었어"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나 성령을 받은 자들은 환란과 핍박이 와도 그 관계를 끊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

이제 진짜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3장을 보겠는데, 21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라고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23절에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고전 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고전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고전 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이렇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라는 것은, 자아가 아니란 말이죠. 뿌리와 근원이 자아에게 오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즉 인간으로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맏아들이 되는데, 즉 예수님의 소유로 바뀌게 된다는 말이죠. 자아, 즉 '나'는 예수님이 가지고 가시는데, 그렇게 해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게 되면, 우리는 주님의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독적인 '나' 라는 것은 없는데, 주님이 그렇게 살게 하신다는 것이죠. 그러면 오늘 아침에 우리가 밥을 먹었는데, 반찬은 김치이고 말이죠. 그러면 그것을 누가 먹게 했습니까?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통해서 말이죠. 아닌가요? 그렇게 지금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입히시고 먹이시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주신 분이 그 나라와 그 의를 주셨는데, 그러니 우리가 염려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내일이 되면 또 주님께서 내일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다 허락하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라는 말이죠.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 뿌리와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

그런데 바로 그 관계, 그것을 이 세상이나 친구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겁니다. "사람이라면 네 인생은 네가 살아야지, 왜 자꾸만 남을 의지해?"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들은 뿌리와 근원을 모른다는 말이죠. 하나님이 무엇을 가지고 심판을 하시는지, 그것을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이 세상에 있을 때 예수님을 제대로 증거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들의 그 모습이 우리가 성령을 받기 전의 모습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성령을 받은 자로서 주님의 그 참된 사랑을 마음껏 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21,2,9 오후 5시에 마침.

세상 권세자를 부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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