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숙경

신령한 기도

아빠와 함께 2020. 12. 6. 00:10

title : Spiritual Prayer 신령한 기도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Colossians 1: 9
date : November 29, 2020
(1:9) For this reason, since the day we heard about you, we have not stopped praying for you and asking God to fill you with the knowledge of his will through all spiritual wisdom and understanding.

SUMMARY
The apostle Paul's prayer for the Colossians presupposes that human prayers are snobbish. The Holy Spirit, who is the Spirit of the Cross, comes to the saints, telling them how worldly, evil, foolish, and opposing the will of God the prayers from human ego. 사도 바울의 골로새인들을 위한 기도에는 인간들의 기도가 속물적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있다. 십자가의 영이신 성령은 인간들의 자아에서 나온 기도가 얼마나 세속적이며 악한 것이며 미련한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것인지를 알리시면서 성도에게 찾아오신다.

The reason why humans cannot pray spiritually is because, above all, they have no understanding of their identity. Humans are ignorant of or utterly deny the fact that they are sinners, condemned, cursed, dead, ruined, and lost. In reality, however, humans are neither qualified to ask God for anything nor capable of making their voices reach God. Therefore, life that best suits this human identity is to show the reality that sin dominates the world through a lifetime, and to show that through deprivation they are ones who are lost. 인간들이 신령한 기도를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며 정죄 받았고 저주받았으며 죽은 자들이며 망한 자들이며 하나님께 잃어버려진 자들이라는 사실에 대해 무지하거나 이를 극구 부인한다. 그러나 실상은 인간은 하나님께 무얼 해 달라고 요청할 자격도 없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하나님께 도달되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따라서 이 같은 인간의 정체성에 가장 부합하는 삶이란 일평생을 통해 죄악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빼앗김을 통해 자신들은 잃어버린 자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However, humans who have been incited by the devil are under the illusion that they have the right to live a happy and healthy life in this world. They insist that even God should cooperate with them for their well-being and salvation. That is why they are persevering and earnestly praying to God for their own health, honor, wealth, family, church, and country. They are rather stubbornly sticking to the idols they deserve to be thrown away, not knowing that those they want to keep are idols cursed by God. 그런데 악마의 사주를 받은 인간은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녕과 구원을 위해 하나님마저도 자신들에게 협조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옳게 여기며 자신들의 건강과 명예와 재산과 가족과 교회와 나라를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끈질기게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그것들이 하나님이 저주하시는 우상임을 까맣게 모른 채 마땅히 버려야 할 우상을 오히려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있다.

Genesis 8:21-22 says that even though human prayers from the earth deserve to be rejected, there is a certain prayer accepted by God. : “Then Noah built an altar to the LORD and, taking some of all the clean animals and clean birds, he sacrificed burnt offerings on it.The LORD smelled the pleasing aroma and said in his heart: "Never again will I curse the ground because of man, even though every inclination of his heart is evil from childhood. And never again will I destroy all living creatures, as I have done.” 창세기 8장 21-22절은 땅에서 올려지는 인간의 기도는 거부당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수용하시는 기도가 있음을 말씀한다. :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Revelation 8:4 says about the prayer of the saints: : “The smoke of the incense, together with the prayers of the saints, went up before God from the angel's hand.” In other words, the whole universe is full of the temple of God, and there is an incense altar in that temple, and there is something mixed with the smoke from the incense altar, which is the prayer of the saints. This suggests that the concept of prayer, which encompasses new Testament and Old Testament, is united with sacrifice and temple. In other words, the prayer God receives is the sacrifice of Jesus Christ, and the prayer of those who have been intertwined with his sacrifice, deprived of their lives, and whose self has been broken down and so became smoke with him. 요한계시록 8장 4절은 성도의 기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즉 하나님의 성전이 온 우주에 가득 차 있고 그 성전에 향단이 있는데, 그 향단에서 나오는 향연과 함께 섞여서 올라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성도의 기도이다. 이로보건데 신약과 구약을 아우르는 기도의 개념은 희생제물과 성전과 연합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며 그분의 희생과 엮여서 자기 생명을 빼앗기고 자아가 산산이 분해되어 그분과 함께 연기가 된 자들의 기도이다.

In today's text, the apostle Paul prays that the Colossians will be filled with knowing the will of God. God's will, which Paul says, is gathered on the cross. On the cross of Jesus, God's will of throwing away what to throw away and finding what to find is embodie.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한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에 집결되어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버릴 것은 버리고 찾을 것은 찾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구현되어있다.

God's abandonment was known through war in the Old Testament. Israel is a country that has an altar of God inside and is driven by the effect of burnt offerings given on it. David's war at Baal- Perazim recorded in 2 Samuel 5:20-21 was a war that made idol worshipers abandon their idols. This war shows the function of Messiah, who will come in the future. "The LORD will rise up as he did at Mount Perazim, he will rouse himself as in the Valley of Gibeon-- to do his work, his strange work, and perform his task, his alien task.(Isaiah 28:21)."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것에 대해서는 구약에서는 전쟁을 통해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내부에 하나님의 제단이 있어 그 제단에서 드려진 번제물의 효과로 움직이는 나라이다. 사무엘하 5:20-21에 기록된 바알브라심에서 치룬 다윗의 전쟁은 우상숭배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을 버리게 만든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장차 오실 메시야의 기능을 보여준다.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같이 진노하사 자기 일을 행하시리니 그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 공을 이루시리니 그 공이 기이할 것임이라(사 28:21)”

2 Chronicles 20:21-26 introduces an unusual war. It showed the effect of Jesus' prayer, the fragrant offering of God, in the form of the Old Testament. Verse 21, "After consulting the people, Jehoshaphat appointed men to sing to the LORD and to praise him for the splendor of his holiness as they went out at the head of the army, saying: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is love endures forever." Verse 24, "When the men of Judah came to the place that overlooks the desert and looked toward the vast army, they saw only dead bodies lying on the ground; no one had escaped." Verse 26, "On the fourth day they assembled in the Valley of Beracah, where they praised the LORD." 역대하 20:21-26은 한 특이한 전쟁을 소개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흠향하신 향기로운 제물이신 예수님의 기도의 효과를 구약의 모습으로 보여준 것이다. 21절,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4절, “적군의 물건을 취할쌔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는 고로 각기 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취하고” 26절, “제 사일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Praise in the Valley of Beracah, is an confirmation that the saints have been reaped as spoils of the victor of God's war in the absence of their egos. It is to praise that war is waged by the Lord alone as a sacrificial offering and that the saints have benefited as the result and product of the Lord's victory. This is the effect of the name of the Lord, a sacrificial offering completely burned from the sacrificial altar, and the effect of his prayer. 브라가 골짜기에서의 찬양은 성도가 그들의 자아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전쟁의 승리자의 전리품으로 거두어졌음을 확인하는 송축이다. 그것은 전쟁은 희생제물이신 주님이 홀로 치루시고 성도는 주님의 승리의 결과물이자 생산물로서 혜택을 입었음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것이 희생제단에서 완전히 태워진 희생제물이신 주의 이름의 효과이며 주의 기도의 효과인 것이다.

In other words, the saints had the "trace" of God's self-fulfillingness. Jesus' three parables of the lost sheep, the lost drachma, and the lost son in Luke 15 show God's self-fulfilling through "losing and finding". For the sake of God's self-fulfillingness, losing was a necessary process. The believers have a trace of the cross which shows that they were lost but are found at the price of the death of Jesus. It is a sign that can never be found in the 99 sheep that have not been lost. 이것을 달리 말하면 성도는 하나님의 자아충족성의 ‘흔적’을 지녔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에 있는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그리고 잃은 아들에 관한 예수님의 세 비유는 ‘잃어버림과 되찾으심’을 통한 하나님의 자아충족성을 보여준다. 이로 보건데 하나님의 자아충족성을 위해 잃어버림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성도에게는 그들은 잃어졌으나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값을 치루고 되찾아졌다는 십자가의 흔적이 있다. 그것은 잃어버리지 않은 99마리의 양들에게서는 결코 발견될 수 없는 표시다.

Therefore, the life of the saints is a journey of knowing the Lord's plans, will, and the Lord's heart while they repeatedly experience the disconnection, impossibility and barrenness as sons who were dead and are alive again; they were lost but are found now. Therefore, they do not care about their inadequacies. The prayers of these people are a a sacrifice of praise to testify of the work of the Lord's name, who calls them to the empty tomb of Jesus every day, dismantles their egos and makes them his new products. 따라서 성도의 인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잃었다가 얻은 아들의 자격으로서 잃어짐과 죽음이라는 단절과 불가능과 불모의 상태를 반복해서 경험하는 가운데 주님의 계획과 뜻과 주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여정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들의 미흡함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이런 자들의 기도는 날마다 그들을 예수님의 빈 무덤으로 불러내어 그들의 자아를 해체하시고 새로운 생산품으로 만들어내시는 주의 이름의 활약을 증거 하는 찬미의 제사이다.

“성도에게는 그들은 잃어졌으나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값을 치루고 되찾아졌다는 십자가의 흔적이 있다. 그것은 잃어버리지 않은 99마리의 양들에게서는 결코 발견될 수 없는 표시다.”

성도가 잃어버린 것은 ‘나의 전부’요 얻은 것은 ‘주님의 전부다’ 성도는 이제 자기를 위한 기도는 있을 수 없다. 주님의 것임을 반복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주의 이름’으로 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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