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숙경

결정난 삶

아빠와 함께 2020. 10. 24. 22:12

title : Life Signed And Sealed 결정난 삶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Philippians 4:14-17
date : October 18, 2020

14.Yet it was good of you to share in my troubles. 15.Moreover, as you Philippians know, in the early days of your acquaintance with the gospel, when I set out from Macedonia, not one church shared with me in the matter of giving and receiving, except you only; 16.for even when I was in Thessalonica, you sent me aid again and again when I was in need. 17.Not that I am looking for a gift, but I am looking for what may be credited to your account.

SUMMARY

In today's text, Paul the Apostle praises the Philippians who supplied abundantly him with his needs in a Roman prison, saying, "it was good of you to share in my troubles." Paul also reminds them that they have met his needs several times before. The apostle thanks the Philippians and praise them because this is not simply human matter that comes from humans.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있는 자신의 필요를 넘치도록 공급해준 빌립보인들에게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라고 칭찬한다. 바울은 그들이 이전에도 몇 차례 자신의 필요를 채워준 적이 있음도 상기시킨다. 사도가 빌립보인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칭찬하는 것은 그를 돕는 이 일이 단순히 인간에게서 나온 인간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The gospel brought to them by the apostle Paul was something fearful and uncomfortable for the world to hear. However, the Philippians were willing to respond to Paul's gospel and rejoiced with it. This is because they sympathized with the secrets of this universe that were finally revealed through Paul's mouth. This tells us that both the preacher and the listener of the gospel are in one transcendent space called the Holy Spirit. 사도 바울에 의해 그들에게 전해진 복음은 세상이 듣기를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빌립보인들은 그 같은 바울의 복음에 기꺼이 화답했고 그 복음으로 기뻐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바울의 입을 통해서 비로소 공개되는 이 우주의 비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나 복음을 듣는 자들이 모두 한 ‘성령’이라는 초월적 공간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Paul and the Philippians were being connected by gospel. Their common wish was that Christ will be exalted in their bodies, whether by life or by death and they will leave this wilderness-like world and be with him (Phil. 1:20-23). They could sympathize with the apostle's confession that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because they had no lingering attachment about the world as he did. 바울과 빌립보인들은 복음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의 공통된 소망은 사나 죽으나 자신들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것이며 광야 같은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자 하는 것이었다(빌1:20-23). 그들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사도의 고백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는 사도가 그랬듯이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There was something they had in common that clearly believed that the promise of God, which was said in the Old Testament, had been fully fulfilled through Jesus' death on the cross and his resurrection. Therefore, they have become people who can prove that their lives, which they have been defending so far, are nothing. 이들이 공통적으로 분명하게 신뢰하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구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언약)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동안 그토록 사수해왔던 자신들의 목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거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The apostle and the Philippians were freed from the yoke of their egos, which were never able to escape by their own power through the promised Holy Spirit sent by the Lord Jesus Christ. They have now become those who need not be bound by anything, whether conscience or ethics or morality. The Holy Spirit made them free from themselves and their possessions, and there was nothing left to keep for themselves. They agreed that it was sin that they tried to keep themselves in this hellish world of sin, and that they were lumps of sin. But the sin was forgiven, and such sinners themselves were already accepted by God. 사도와 빌립보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약속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들의 자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양심이든 윤리든 도덕이든 그 어떤 것에도 구애될 필요가 없는 자들이 된 것이다. 성령님은 이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자신들의 소유에서 벗어나게 만드셨고 더 이상 스스로 지킬 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하셨다. 그들에게는 죄로 관영한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했던 그것이 바로 죄였다는 것과 그러한 자신들이 죄 덩어리임이 동의했다. 그러나 그 죄는 용서받았고 그리고 그 같은 죄인인 자신들은 이미 하나님께 용납되었다.

In the entire chapter of Leviticus 16 of the Old Testament, the ordinance of the day of atonement are recorded in detail, and the principle of forgiveness of sins enjoyed by the New Testament believers and the principle of their lives are abundantly contained. 구약의 레위기 16장 전체에는 대속죄일에 관한 규례가 세세하게 기록되어있는데 거기에는 신약의 성도들이 누리는 죄 사함의 원리와 성도들의 삶의 원리가 풍부하게 담겨있다.

“He is to cast lots for the two goats--one lot for the LORD and the other for the scapegoat. Aaron shall bring the goat whose lot falls to the LORD and sacrifice it for a sin offering. But the goat chosen by lot as the scapegoat shall be presented alive before the LORD to be used for making atonement by sending it into the desert as a scapegoat................He is to lay both hands on the head of the live goat and confess over it all the wickedness and rebellion of the Israelites--all their sins--and put them on the goat's head. He shall send the goat away into the desert in the care of a man appointed for the task. The goat will carry on itself all their sins to a solitary place; and the man shall release it in the desert.(Lev.16:8-10 ; 21-22)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찌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찌니라 (레16:8-10 ; 21-22)”

The two goats selected by lot were given different roles, one showing God's severity for sin by being killed, and the other showing the severity of God's sins by being abandoned and sent to the desert. The Israelites had to watch this sight.제비 뽑힌 두 마리의 염소에게는 각자 다른 역할이 주어졌는데 하나는 죽임당하는 모습으로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함을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죄를 지고 버림받아 광야로 내보내지는 모습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함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 광경을 지켜보아야했다.

The saints are those who joined the scapegoat who bore upon all their iniquities of Israelites and was sent out into the wilderness. Not only does the wilderness-like world show no interest in the stories told by the saints, they rather block their ears and mock the gospel. Those who do not have the incident of cross are concentrated only on themselves, and the message of the cross is considered foolish to them. Their eyes are closed, so they cannot see that their lives are ruined and are bent on protecting their own lives, their own righteousness and their own possessions. 성도는 이스라엘 자손의 불의를 지고 광야로 내보내진 아사셀 염소에 연합된 자들이다. 성도가 전하는 이야기에 광야 같은 세상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귀를 막고 복음을 조롱한다. 십자가 사건이 들이닥치지 않은 자들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어있으며 십자가의 도는 그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눈은 감겨있기에 자신들은 이미 망한 인생임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명과 자기 의와 자신의 소유를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But the saints are those who have gained confidence to enter the Most Holy Place by the blood of Jesus(Heb. 10:19). For this is the very reason why Paul, the apostle, was able to testify, "We are hard pressed on every side, but not crushed; perplexed, but not in despair; persecuted, but not abandoned; struck down, but not destroyed(2Cor. 4:8), and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Phil. 4:13)". 그러나 성도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은 자들이다(히10:19). 사도 바울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Jesus brings his people together in one place along a new and living path (Heb. 10:20) that he has made out of his own torn flesh. This is the place of Jerusalem in the last days (Is. 2:2 ; Mic. 4:1-2), the new temple, at the center of the land(Ezek. 38:12), and the dwelling place of God (Eph. 2:21). The path that the Lord has opened is a path that those who have not forsaken themselves or who put their own righteousness to the fore can never walk. The saints who received the Holy Spirit on that path become ‘we’, not ‘you’ or ‘me,’ and go forward together in the same direction. 예수님은 자신의 찢겨진 육체로 내신 새롭고 산 길(히10:20)을 따라 자기 백성을 한 곳으로 집결시키신다. 그곳이 바로 말일의 예루살렘이요(사 2:2 ;미 4:1-2) 새 성전이며 세상의 중앙이며(겔 38:12)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이다(엡2:21). 주님이 열어놓으신 그 길은 자기를 버리지 않은 자나 자기 자신의 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자는 결코 걸을 수 없는 길이다. 그 길에서 성령 받은 성도는 ‘너’ 혹은 ‘나’가 아니라 ‘우리’가 되어 서로 교제하며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 나아간다.

The gifts the Philippians sent to Paul the Apostle who was imprisoned did not come from their own but from "the Lord's" provided to them. They were too aware of this fact. What they did to Paul was that they did what they had to do in this desert-like world in the way Christ lives in them. In the prison of Rome, where Paul was, there were the Philippians together who were being built together in Jesus to be the dwelling place of God in the Holy Spirit. And all the saints in the Lord Jesus Christ are together there. 빌립보인들이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에게 보낸 선물은 ‘자기 자신의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제공된 ‘주님의 것’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이 바울을 도운 일은 그들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방식으로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그들이 해야 할 도리를 행한 것이었다. 바울이 갇혀있었던 로마의 감옥에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빌립보인들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의 모든 성도가 함께 있는 것이다.

이근호    

“복음을 전하는 자나 복음을 듣는 자들이 모두 한 ‘성령’이라는 초월적 공간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곳에는 ‘자아’를 내세우는 사람은 없다. ‘자아를 부인하는 자’들만 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될 수 있다. ‘나’가 빠지고 ‘우리’로 편입된 자들의 세계다. ‘나의 죽었음’을 말해주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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