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대구강의] '창세기'속의 그리스도 14 - 너를 알아라
20,09,2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땅의 대표자 '바리새인' !!
오늘은 교재 52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바리새인이 나오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예수님이 생각하는 바리새인이 다르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리새인이라는 것은, 자기와 동일한 인간들 중에 있는 하나의 부류라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컵이 이렇게 있고 물이 들어있는데, 그러면 이 컵을 오랫동안 방치하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는 컵에 물밖에 없었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이 물이 탁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여기에 세균들이 있었다는 말이죠.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있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바리새인이 있다고 하는 것, 사두개인도 마찬가지지만 말이죠.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데 바리새인을 주목함으로 말미암아서 다른 쪽은 없는 것처럼,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는 겁니다. 마치 방송에 이슈가 되는 사람이 나오게 되면, 다른 사람은 있어도 없는 것처럼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성경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 있는 바리새인이라고 여기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아니라 바리새인을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것으로, 즉 '대표자'로 보신다는 겁니다. 그게 우리와 예수님의 차이점이라는 말이죠.
* 예수님의 상대자 '바리새인' !!
그 당시의 사람들과 우리는 바리새인을 "너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다" 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인간을 총괄하는 대표자로 보신다는 겁니다. 여기 빈자리에 세균이 있던 박테리아가 있던 간에 그것까지 모두 통합한 자로 여기신다는 것이죠. 사람들만이 아닌 다른 것까지 모두 다 통합한 바리새인의 의식과 사상으로서, 그렇게 해서 예수님 자신과 상대할 수 있는 상대자로 보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이 있는 이것을 뭐라고 하는고 하니, 바로 '땅'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땅에는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코스모스도 있는데, 그리고 해도 있고 달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보기에는 "나는 여기 있고, 염소는 저기 있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자기가 굳이 염소를 대표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죠.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균을 대표할 필요가 없는데, 그런데 바리새인은 어떻다는 겁니까? 바리새인은 대표하는데, 땅의 모든 것을 말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대변하고 대표한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땅의 대표자로 취급을 하신다는 말이죠.
* 하나님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그들 !!
그러면 바리새인들은 어떤 자격과 입장에서 예수님과 마주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즉 어떻게 예수님의 상대자로서 땅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 바리새인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하나님이 필요치 않는 삶을 사는데 있어서 하나님을 동원하자는 자들이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모든 땅을 대표하는 그들의 인식인데, 그들은 하나님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편하게 동원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담이 없는데,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껏 믿고 하나님을 앞장 세워서 그 당시 유대사회를 통치할 수 있었다는 말이죠.
* 본디오 빌라도는 상대자가 될 수 없어 !!
제가 강의처음에 이 땅의 모든 것을 다 통합해서 바리새인이 그것을 대표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당시 유대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왕과 같은 자들이 예수님의 상대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본디오 빌라도라는 이방인이 있었지만, 그는 예수님을 상대할 수 있는 인식을 가진 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몰아넣은 주동자들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빌라도도 그들에게 협박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행정적인 처리를 한 사람인데, 사상적으로 심오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 하나님이 없이 산다는 것 !!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평소에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던 자들인데, 하나님이 없이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자신만만하다는 겁니다. 모든 행동을 자기 이성과 의지에 의해서 다 해놓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충분히 거론할 정도로 자기들 생활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에게 율법이 있다는 것을 굉장히 반기는데, 물론 그들은 율법을 하나님의 신성한 법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면서 하는 자신들의 정당한 행위, 그것이 이미 법이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니, 자기들이 알아서 행동을 해놓고 거기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율법을 동원한다는 말이죠.
지금 이 이야기가 어렵게 들리지 몰라도 사실은 굉장히 쉬운 말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평소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님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편하게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다" 라는 것이죠. 인간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다급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없이 사는 것에 대해서 그야말로 자신만만하다는 말이죠.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이나 율법에 대해서 얼마든지 믿어주고 받아줄 수 있는 용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 넉넉한 마음가짐이 준비되어있다는 것이죠.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을 반긴다고 하는 것은, 평소에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그게 하나님이 아니라 그 누가 오더라도 지적을 받을 필요가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인데, 그것이 곧 바리새인이고, 그것이 저주받은 이 땅을 대변하고 있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로마와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단군의 자손과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 즉 유대 지도자들이 그 상대역이 된다는 말이죠. 예수님의 뜻과는 가장 대치가 되는 사고방식을 그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 바리새인들, 그리고 천국 !!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이야기하면서, 여기서 천국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었다는 말이죠.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바리새인들은 천국에 대해서 자신만만해 했다는 것인데, 자기들이야말로 천국에 가장 가깝다고 여겼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들이 살아가는 원리가 천국에서 살아가는 원리와도 가장 비슷하다고, 그렇게 자부하면서 살았던 자들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결국 신은 누구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들이 신이고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숨겨진 본심인데, 다만 그것을 바리새인들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죠.
* 하나님과 언제든 대화할 용의가 있어 !!
지금 이 강의를 더욱 쉽게 이해하려고 하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 되는데, 즉 "바리새인은 이미 알 것을 다 알고 가질 것을 다 가지고, 그렇게 미래에 대해서 단단히 준비했기 때문에, 언제라도 오세요"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신과 얼마든지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것인데, 그렇게 그들은 자신만만해 했다는 것이죠.
그 당시 일반 유대백성들이 볼 때는, 그들은 신과 가장 가까운 자들인데,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여겼다는 말이죠. 그래야 사회가 통제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신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통제하면서, 정작 당사자들은 어떻다는 겁니까? 신의 간섭과 권한에 대해서 자기들이 한 수 높다고 자부를 했다는 말이죠.
그러니 백성들을 보고는 신을 이야기하면서 억압을 하고 그들을 협박하지만, 반면에 정작 자기들은 그 신에 대해서 전혀 위축되지 않는, 그렇게 신에 대해서 자신만만해하는 자들의 집단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이라는 말이죠.
* 질서, 그리고 법 !!
그러면 그들이 법으로 다스리면 나라가 잘 운영이 되어집니까? 물론 운영이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 즉 땅이라는 것은, 즉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또한 나무가 자라고 하는 그 모든 것에 있어서, 이러한 땅에서 인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은 바로 '질서' 라는 겁니다.
이 '질서' 라는 것은, 자연적 질서에서 무엇을 뽑아내는고 하니, 정신적 질서를 뽑아내고, 그 다음에 이것을 어떻게 굳히는고 하니, 이것을 법으로 만든다는 것이죠. 그러면 자연에서 자연의 질서를 뽑아내는데 있어서는 어떻게 합니까? 먼저 관찰을 하고 측정을 하는데, 그것을 오늘날 과학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 인간이라면, 짐승과는 달라야지 !!
그 다음에는 이 자연적 질서에서 정신적 질서를 뽑아내는데, 그것은 무엇인고 하니, 사회를 구성하는 윤리인데, 그것을 법을 가지고 구체화를 한다는 말이죠. "인간이라면 그렇게 하면 돼? 짐승과 인간은 달라야지" 라는 것이 정신적 질서인데, 그러면 짐승과 인간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겁니까?
그것은 인간이 더 윤리적이라는 것인데, 그것을 알기 위해서 짐승을 관찰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을 관찰하고 측정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자연에서 질서가 되고, 그 질서가 법이 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자연적으로 형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이 땅의 모든 것들이 다 이런 식이니까, 사람들은 법을 만들어서 어떻게 합니까? 법대로 하는 것이 가장 자연에 합당하다고 여긴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법을 누가 만들고 해석합니까?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이라는 말이죠.
* 법 위의 바리새인들 !!
그러면 자기들은 법의 지배를 받을까요? 법 위에 있을까요? 법 위에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자기들이 곧 신인데, 그래서 그 당시에 이들은 전혀 꿀리지를 않았다는 겁니다. 그 어떤 자들이 와도, 심지어 하나님이 와도 말이죠. 그러니 그들은 아주 당당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모든 것을 다 대변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천국은 어떻다는 겁니까? 그들이 갈 수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가는 디딤돌로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러면 그 디딤돌을 발로 딛고 손을 내밀게 되면 천국에 닿는다는 겁니까? 닿지 않는다는 겁니까? 손이 결코 닿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즉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들이 그 따위 식으로, 즉 질서 속에서 법을 만들고 해서, 그리고 그 법에 하나님의 율법까지 동원시키고 했는데, 그러니 그들은 그 법이 완벽하다고 자부를 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 법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주시는 선물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겁니다.
* 하지만 천국에는 들어갈 수 없어 !!
이것을 예수님께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데, 그래서 그들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겁니까? 들어가지 못한다는 겁니까? 바리새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들이 대표자이니까, 그러면 그 어떤 인간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더라도, 이런 관점을 봐야 한다는 말이죠.
그 당시 이 땅에 많은 민족들이 있고 국가들이 있었지만, 주님이 상대역으로 삼았던 것은 유대나라의 바리새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바리새인과 대비하면서 예수님께서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하셨다는 것은, 모든 인간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이죠. 이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는데, 즉 "그것을 너희들이 아는가?" 라는 겁니다.
일반 백성들은 바리새인들이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생각하는 자들도 여겼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면, 결국 인간은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취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마태복음 12장을 보겠는데, 48절에서 50절입니다.
(마 12: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마 12: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 혈육관계도 전혀 소용이 없어 !!
예수님께서 자기 뒤에 형제들과 어머니인 마리아가 왔을 때, 그들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혈육관계를 그만 부정해버린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바리새인조차도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혈육관계도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말이죠. 예수님과 같은 혈육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지금 제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취지를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리고 있는데, 그러면 여기에서 마태복음 7장 22절과 23절을 보겠습니다.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하나님이 달라요 !!
여기 22절에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라고 하는데, 주의 이름으로 그렇게 해도 소용이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다. 즉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무엇을 통보해주는고 하니, "너희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는 겁니까?
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여호와라는 신, 그 신이 다르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 자체가 다르단 말이죠. 그러면 인간이 왜 다른 신을 믿습니까? 그것은 인간이 자기를 몰라서 그러한데, 인간이 신을 찾으면서도 신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 밀어 부치시는 예수님 !!
예를 들어서, 이렇게 두 사람이 있는데, 여기서 한 사람은 돈을 빌려준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빌린 사람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어느 날 둘이 만나서, 빌려준 사람이 돈을 갚으라고 하는데, 그런데 이것을 그냥 서서 사이좋게 이야기를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돈을 빌린 사람이 자꾸만 다가온다고 하면, 즉 "왜 내가 갚아야 하는데? - 빌렸으니 당연히 갚아야지. - 내가 언제 빌렸는데?"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면 결국 배와 배가 부딪치게 되어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자꾸만 밀면서 다가오면, 결국은 벽에 붙을 판이라는 겁니다(ㅋㅋ).
그러면 이것을 바리새인과 예수님이라고 보자는 말이죠. 바리새인이 "우리는 천국에 간다" 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그것이 무슨 소리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만히 있으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꾸만 민다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주신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간다" 라고 하니, "웃기고 있네.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야"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바리새인 쪽에서 "우리의 조상은 아브라함이야" 라고 하니,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너희들과 같은 자손을 둔 적이 없어" 라고 하시면서 자꾸만 민다는 겁니다.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한다고, 그냥 서서 조용히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 자꾸만 벽으로 밀어붙인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들이 그만 예수님을 죽여버렸다는 겁니다.
* 너는 너 자신을 아는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고 하니,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고 "너는 너를 아는가?" 라고 묻는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무엇인고 하니, 우리는 가만히 서있는데, 그리고 하나님도 가만히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가 그 하나님을 연구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 쪽에서 누구를 보내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예수님이 오셔서 가만히 계시면, 우리가 그 예수님을 연구하면 되는데, 월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한다든지 해서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자꾸만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서 우리를 민다는 겁니다.
어제 한 설교가 바로 그것인데, 우리가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알아?"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그러면 우리는 '제가 믿어요" 라고 하는데, 그러면 예수님은 "아니 네가 언제 나를 보았다고 나를 믿는다고 하지?" 라고, 그렇게 우리를 계속해서 밀어 부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시비를 걸고 들이대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의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님을 믿는다. 나는 법대로 산다" 라고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본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즉 "나는 나에게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좋다고 여겨서 자꾸만 그 하나님을 믿으려고 한다는 말이죠. 마치 누구처럼 한다는 겁니까? 그들, 즉 바리새인들처럼 한다는 겁니다.
* 나는 하나님을 믿을 여력이 있다 !!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바리새인이 왜 인간을 대표하는고 하니까, 인간은 실제로는 하나님이 없이도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하나님이 없이도 살 수 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데, 즉 하나님을 믿을 여력도 자기에게 있다고 여긴다는 겁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하나님이 그다지 소중하지 않는데, 그다지 시급하고 다급하지 않다는 말이죠. 하나님이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그래서 자기 쪽에 빈자리를 마련해서, 그렇지 않아도 편하지만 여기에 하나님을 꽂아둔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는 하나님을 믿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을, 그것을 자기 스스로 측정하고 싶어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렇게 측정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겁니까? 그 정도로 자기가 자기에게는 대단한 존재라는 겁니다. 그게 인간이라는 말이죠.
* 자기가 법을 만드는 순간, 초월해 !!
그게 바로 바리새인인데, 아까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법 위에 자기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나름대로의 법을 만드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나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꼭 기도한다" 라고 한다든지 말이죠. 그런 것이 자기가 만드는 법인데, 여기에는 그런 분이 없습니까? (ㅋㅋ)
그것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것인데, 그런 법을 만든 순간, 그 기도에 대해서는 자기가 자신감이 넘친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는 매일 아침 7시에 기도할 정도로 하나님에 대해서 잘 해주고 있다는 말이죠. 자기는 적어도 그 정도는 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법을 만드는 순간 그 법을 초월하게 되는데, 즉 기도에 대해서는 신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제는 신과 막 먹을 수 있는 여지를, 자기가 법을 만듦으로서, 신보다 더 큰 대인(大人)으로서 사는 재료로서, 그래서 하나님을 동원시켜서 믿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 너희 아비는 마귀다 !!
이게 바로 바리새인인데, 이런 바리새인이 악마라는 이야기를 아직 하지 않았는데, 사실은 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죠.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보고 "너희 아비는 마귀다" 라고 했는데, 그것은 주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겁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아까 이야기를 했는데, 주님이 보시기에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지, 그것을 자기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죠.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냥 법을 초월해서 살고 싶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나'이기를 원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정작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 이것이 주님의 구원방식 !!
조금 전에 두 사람의 예를 들었는데, 빚을 독촉하려고 온 사람을 'A' 라고 하고, 그리고 빚을 갚아야 하는 사람을 'B' 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여기에서 누구의 마음가짐이 강합니까? A의 경우에는 권리가 있는데, 그러니 B를 볼 때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여긴다는 겁니다.
그런데 B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꾸 다가오는데, "언제 내가 돈을 빌렸지?" 라고 큰소리를 치면서 말이죠. 그러자 당당하다고 여겼던 A가 벽으로 밀리게 되는데, 그러면 자기는 그만 초라하게 되고 만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A는 B 앞에서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돼?" 라고 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 A는 처음의 그 당당했던 것이 자기의 진짜 모습이라고 여기고 있다가, 막상 당사자인 B를 만나서 어떻게 됩니까? 그만 밀리게 되는데, 자기가 그 얼마나 초라한 인간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이라는 말이죠.
* 당당한 바리새인 !!
바리새인이 아주 큰 소리로 "하나님, 저는 십일조를 했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아주 당당하다는 겁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6장에 보면 나오는데 말이죠. 거기에 구제와 기도 등이 나오는데, 이때 바리새인은 전혀 움츠린 것이 아니라, 당당했다는 것이죠.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마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시비를 거는 예수님 !!
구제하는 순간 자기는 구제에 대해서 초월했고, 그리고 기도하는 순간 기도에 대해서는 신이 아니라 그 누가 오더라도 당당하다는 겁니다. 금식이 나오면 자기는 그 금식에 대해서 초월해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바리새인을 욕하면서 계속해서 밀어 부친다는 겁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은 당하다가 당하다가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을 죽이게 된다는 말이죠.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에 지도자인데, 자기 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자기를 지적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자기는 온 종일 하나님만 생각하고, 오직 하나님의 율법만 연구해서 그것을 해석하고, 그래서 유대나라의 질서를 하나님의 법으로 잡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런 일을 했는데, 그래서 아주 당당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서 시비를 거는데, "그들을 본받지 말라" 라고 하시면서 말이죠. 지금 자기들과 눈높이를 맞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그야말로 최고의 정점에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사두개인들이고 서기관들이고 바리새인이라는 말이죠.
* 잠시 요약하면 !!
제가 왜 자꾸만 이들을 언급하는고 하니까, 예수님이 죽은 이유가 누구 때문이라는 겁니까? 이들이 주모자인데, 자기들이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이기 때문에, 자기들을 보고 이야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어이 올라와서 그들을 밀어내는데, 그러니 그들이 비로소 상대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들이 견디다가 못해서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죠.
그 바리새인들이 견디지 못했다고 하면, 강의처음에 그 바리새인 안에 무엇이 들어있다고 했습니까? 온 세상이 다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 바리새인 안에 우리도 들어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밀린다고 하면, 우리도 결국 법을 초월해서 하나님 앞에서도 당당하기를 원했던 우리 야망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좌절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은 살 수 없는데,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고 만다는 것이죠.
그러면 예수님을 죽인 그 자리에 무엇을 집어넣습니까? 아까 바리새인에게 만만한 게 누구라고 했습니까? 그게 여호와 하나님이고 신인데, 그래서 신을 믿는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죽이고 옛날처럼 다시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복귀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하나님을 믿어도 꿀릴 것이 없는데, 왜냐하면 자기는 율법대로 살았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말이죠.
하지만 그것은 율법대로 산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그 율법의 해석을 누가 한다는 겁니까? 자기가 알아서 그 규정을 한다는 겁니다. 아침 7시에 기도한다고, 그것을 자기가 정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성경에 그러한 내용이 있습니까? 전혀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성경은 "기도는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뭐라고 합니까? "주여, 제가 하루에 몇 번을 기도하면 됩니까?"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 나도 예수님처럼 !!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제가 몇 번을 용서해주면 됩니까?" 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용서는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데, 그런데 베드로는 그게 싫다는 말이죠. 예수님과 같은 레벨이 되고 싶은데, 그러면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누구도 해야한다는 겁니까? 자기도 예수님처럼 용서할 수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꿀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 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마 1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 나를 무시하지 말라 !!
여기에서 굳이 "인간의 마음은 악마의 마음이다" 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굳이 할 필요가 없지 싶은데 말이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보고 "너희 아비는 마귀다" 라고 했는데, 그 바리새인 속에 우리가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 바리새인이 이 땅의 대표자이니 말이죠.
우리는 남들에게 지기를 너무너무 싫어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를 무시하지 말라"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아시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을 건드립니까?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반드시 상대가 있고 목표가 있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나는 지기 싫다. 나를 무시하지 말라" 라는 것인데, 그것을 겨냥해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말씀을 날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거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를 원하는데, 즉 신을 믿기 원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신은 우리에게 율법을 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신이 준 그 율법을 누가 해석을 합니까? 물론 자기가 해석하는데, 그러면 그 해석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나는 자기 싫다. 나를 무시하지 말라" 라는 것인데, 그리고 "나는 죽어서 천국에 간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율법을 해석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는 싫고 여호와 하나님은 좋다" 라고 하는데, 그게 오늘날의 교회라는 겁니다. 그것이 교인들의 마음가짐인데, 간단하다는 말이죠. 그 기본은 "나는 자기 싫다. 나를 무시하지 말라" 라고 하는, 바로 그것이라는 겁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마음을 모를 리가 없는데, 이게 바로 이 모든 땅의 정신의 대표라는 말이죠.
* 강의를 다시 하면 !!
여기서 강의를 다시 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을 보면서 살아가는데, 여기서 자연질서를 끄집어낸다는 겁니다. 그 자연질서가 곧 오늘날의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자연질서가 정신질서로 이어진다는 말이죠. 그것이 대인관계에 있어서 예의범절이고 관습이고, 그리고 윤리와 도덕인데, 그것이 정신질서라는 것이죠.
* 꽤 괜찮은 응용문제, '복음과 숙부 장례식' !!
어제 오후 설교시간에 "여러분,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을 믿지요?" 라고 하면서 응용문제를 내었는데, 그게 "숙부 장례식에 조카가 가야하는가?" 라는 겁니다. 즉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과, 숙부 장례식에 조카가 가는 것과의 관계를 논하세요" 라는 것이 문제였는데, 복음을 알면서도 그게 실상에서 전혀 먹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말이죠.
"복음을 안다" 라는 것을 두 종류로 나누어보면, 진짜 신자가 있고, 또한 바리새인이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바리새인이 되어버리면 복음을 안다는 것이 법으로 오게 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 바리새인 안에 "나는 지기 싫다. 나를 무시하지 말라" 라고 하는 게 들어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하면, 숙부가 죽었을 때 그 조카가 가야하는지 말아야 하느냐는 겁니다. 평소에 숙부가 조카에게 아주 잘해주었다고 하면, 즉 대학교 등록금까지도 다 대주었다는 말이죠. 그렇다고 하면 조카의 아내가 듣고 있다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여보, 마땅히 가야합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윤리와 도덕체계에서는 남들에게 은혜도 모르고 버릇없이 군다고 하면, 그러면 어디에 흠집을 냅니까? 자기가 이 땅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기를 무시할 수 있는 빌미를 그만 제공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남들에게 무시를 당하지 않고 욕을 얻어먹지 않기 위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윤리도덕을 제공하면 된다는 말이죠.
* 누가 봐도 !!
그러면 사람의 도리를 다하면 되는데, 그 도리가 무엇인고 하니, 숙부가 자기 신랑을 그렇게 보살펴주었다고 하면, 그 아내는 당연히 장례식에 찾아가서 조문을 하는 것이 도리에 맞다는 겁니다. 아무리 바쁘고 멀어도 말이죠. 그러면 누가 봐도 납득이 된다는 것이죠. 오늘 강의가 참 어려운데, 여기에서 이 "누가 봐도" 라는 것을 한 글자로 '땅' 이라고 했는데, 즉 "모든 것" 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숙부가 그만 개차반이라는 말이죠. 조카가 돈이 좀 있으면 심심하면 와서 보증을 서라고 하고, 그러다가 그만 암에 걸려서 앓다가 죽었다는 겁니다. 그러자 남편이 자기 아내를 보고 "여보, 숙부가 돌아가셨어. 그래도 집안어른인데 좀 가봐야 하지 않겠어?" 라고 한다면, 그것은 과연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이죠.
이것은 굳이 고민을 할 이유가 없는데, 왜냐하면 숙부가 죽었는데 조카 부인이 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누가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그러면 조카 부인이 할 말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당연히 할 말이 있는데, 그러니 굳이 가지 않아도 남들에게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게 율니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말이죠.
그러니 모든 인간은 바리새인인데, 달리 말하면 모든 인간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게 예수님의 말씀이고, 또한 복음에 들어있는 내용이라는 말이죠. 이제 여러분의 눈이 좀 뜨였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것이 충분히 응용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강의를 또 다시 하면 !!
강의를 다시 할까요? 바리새인은 땅의 대표자인데, 그게 어느 정도인고 하니, 하나님이 와도 꿀리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렇게 윤리도덕으로 무장하고, 그것을 정당하다고 하면서 것을 들고 나와서, "주여, 저 같은 사람을 구원해야지 누구를 구원합니까?" 라고 했다는 것이죠.
그러면 백성들은 그런 바리새인들을 보고 부러워하는데, 즉 "저분들은 천국에 가장 가까이 있어서 참 좋겠다. 천국에는 완전히 영순위네"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누구를 공격합니까? 바리새인을 공격한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그들을 공격합니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법을 해석하고 윤리도덕을 관장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법을 초월해서 법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자기들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자리까지 마련할 정도의 여유를 부리면서, 하나님과 맞먹으면서 친하게 지내려고 했다는 겁니다.
* 독사의 새끼들아 !!
그러자 정작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은 누구를 공격합니까? 바리새인들을 공격하신다는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 먼저 초를 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세례요한이라는 겁니다. 세례요한이 그들이 오니 뭐라고 했습니까?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했다는 말이죠.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가장 존경받는 사람임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천국에 가도 제일 먼저 간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그들보다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다는 말이죠. 그러니 당시 피라미드 구조에서 최고의 정점을 찍고 있는 자들에게 세례요한이 그들을 보고,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세례요한에 의하면, 피라미드의 최고정점 위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고 하면, 그것을 독사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이 그 독사의 새끼가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이 피라미드를 거꾸로 뒤집어버리는데, 즉 "세리와 창기가 너희들보다 먼저 천국에 간다"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게 "회개하라!" 라는 의미라는 말이죠. 피라미드를 거꾸로 뒤집어보라는 것이죠.
(마 21: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베드로 이야기를 다시 하면, 베드로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용서를 해줄 수 있습니까?" 라고 했는데, 이게 바리새인들의 사고방식과 똑같다는 겁니다. "선생님,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세요" 라고 하는 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죠. 그러니 자기가 무엇을 성취하겠다는 것은, 신에 대해서도 꿀리지 않는 자위에 오르고 싶다는 겁니다.
* 자기를 부인하라 !!
쉽게 말하면, 십자가 앞에 엎어져서 항상 자기를 죄인이라고 하는 소리는 하기가 싫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자기를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너무 무시하는 것이기에 말이죠. 그것은 자기를 싫어하고 무시를 당하기 싫어하는 자기 본성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라는 겁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죠. 그리고 마태복음 7장에도 보면,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라고 하셨는데,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는 겁니다.
이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촉구하는고 하니,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냥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이것은 달리 말하면, "너는 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다" 라고 하는 의미라는 것이죠.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제 A와 B, 그 두 사람을 예로 든 것을 이해하지 싶은데, 예수님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고 천국에는 가고 싶어하는데, 그것을 끝까지 밀어 부친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것은 자기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인데, 자기가 얼마나 악마적이고, 악마를 선호하고 있는지 말이죠.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예, 알겠습니다. 저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라고 나오겠습니까? 이게 아니면 예수님을 죽이든지, 혹은 예수님을 피해서 도망을 치겠습니까? 제자들은 도망을 쳤고, 힘이 있는 주모자들은 예수님을 죽였고, 그리고 로마 병정들은 조롱했다는 말이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평소에 인간들을 얼마나 개무시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보고 악마라고 한다는 것은, 그들을 우러러보고 칭송하면서 따르는 자들도 역시 개무시하는 것이란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 김수환 추기경은 훌륭합니다 !!
과거 우리교회에 다니던 분이 입만 열면 하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김수환 추기경은 훌륭합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저는 가만히 있었지만, 다른 분들이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김수환 추기경은 지옥에 갔습니다" 라고 하니까, 그만 약이 올라서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었는데, 아무튼 일이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죠.
그분이 여자인데, 자기가 김수환 추기경을 조사해보고 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람들이 모두들 그런 말을 한다는 겁니다. 심지어 그분은 성철스님도 훌륭하다고 하는데, 왜 그렇습니까? 도대체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이죠.
인간은 자연에서 자연질서를 뽑아내는데, 그러면 여기에 선과 악이란 윤리적 가치가 포함이 됩니까? 포함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3+5=8" 라고 하는 것, 이게 착한 겁니까? 나쁜 겁니까? 여기에는 윤리적 가치가 전혀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자기가 과학을 공부하고 수학을 공부하는 것, 그것은 적어도 나쁜 짓은 아니라는 것이죠.
오늘날 사람들이 과학자들을 우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여기에는 십자가가 쓰여질 여지가 없다는 겁니다. 정형외과 의사가 수술을 하는데, 십자가를 외치면서 해야하느냐는 말이죠. 그래야 수술이 잘 되는 겁니까? 십자가가 무슨 미신도 아니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 우리 패거리는 선하다 !!
그러면 이 자연질서에서 정신질서로 바뀌면서, 여기서 선과 악이 구분된다는 것이죠. "선은 나를 편하게 하는 것", "악은 나를 불변하게 하는 것", 그렇게 말이죠. 그런데 이게 윤리도덕이니까, '나' 대신에 '우리'를 집어넣게 되면, 그러면 "우리나라를 편하게 하면 선이 되고, 우리나라를 불편하게 하면 악이 된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북한의 김정은이 핵폭탄을 가지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면, 그것은 남한의 입장에서 보면 악이라는 말이죠. 그게 바로 바리새인의 사고방식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나는 북한에게 지기 싫다" 라는 것인데, 자기가 존재하는 이상 자기를 무시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나옵니까? 북한을 먼저 치자고 하는데, 그러면 거기에 동조하는 자들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만큼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지적질을 하기 이전까지는 전혀 몰랐다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는 30년, 4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고 하니까, 그만 바리새인화가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 모든 것은 '개별적' !!
선과 악은 '우리', '나', 바로 그 지점에서 윤리와 도덕이 성립되는데, 물론 양심도 마찬가지고 말이죠. 이 모든 것은 '개별적이다' 라고 말할 수가 있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자기 공동체, 즉 자기 패거리를 무조건 선하게 본다는 것이죠. 바로 그러한 정당성 때문에, 그래서 여기서 법이 생겨났다는 겁니다.
이러한 예는 굉장히 많은데, 어떤 사람이 자기 회사의 비리를 고발했다는 말이죠. 철도공사에 다니는 사람인데, 철도공사는 국민의 위한 것이지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자기 신념에 의해서 고발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철도공사 사장이 어떻게 나올까요? 당연히 자른다는 말이죠.
더욱이 고발한 사람이 야당 쪽이라고 두말할 필요도 없는데, 만약에 그 사람이 민주당 쪽이라고 하면 엄하게 경고조치를 하고 만다는 겁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은 곧 조직인데, 그 조직이 절대선이라는 말이죠. 이것이 바로 신의 세계라는 겁니다. 자기가 속해있는 그 조직이 절대적인 선이라는 것이죠.
* 복음은 역설적 !!
그러면 유대나라의 조직은 누가 관장을 합니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인데, 예수님은 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앉아있는 자들을 공격하는데, 그러자 그들은 참다가 참다가 그만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죠. 그러면 땅의 모든 조직과 그 모든 나라가 그만 예수님의 적이 되고 마는데, 하나님의 원수라는 겁니다.
그것이 로마서 5장에 나오는데, 아담에 속한 모든 인간들이 예수님의 적이 된다는 말이죠. 역설적으로 그것을 두고 '복음', 즉 '기쁜 소식'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복음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인데, 외형적으로 보면 그러한데, 그런데 그 죽음 안에 모든 인간이 다 죽었다는 것이 복음이라는 말이죠.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성령을 통해서 제대로 알아들으면, 그게 법을 지켜서 천국에 가라는 말이 아니고, "너는 죽었어. 그리고 살려내는 것은 예수님의 고유권한이다" 라는 것인데, 이게 복음의 내용이라는 겁니다. 즉 "아버지께서 내게로 보내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다" 라는 것인데, 이게 복음의 핵심이라는 말이죠.
* 십자가를 거부하는 교회 !!
이것을 오늘날 누가 반대합니까? 그것이 곧 교회인데, 그래서 교회는 교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조직자체가 죄가 된다는 말이죠. 예수님은 전하지 않고 그 자리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복을 주시는 하나님",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교회라는 특정 조직이 하나님보다도 더욱 더 소중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는 목사니 거기의 수장이 되는데, 그게 중요하다는 것이죠.
* 국가는 곧 짐승 !!
요한계시록에서 모든 국가는 짐승인데, 단 하나의 국가인 큰 성 바벨론에 속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국가의 하부구조에 무엇이 있는고 하니, 거짓 선지자들이 있다는 말이죠. 거짓 선지자들은 짐승인 국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종교집단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들보다 힘이 더 센 것에 복종을 한다는 말이죠.
피라미드 구조에서 최고 상층부에는 짐승이 있고, 그 밑에 거짓 선지자가 있는데, 왜 짐승에게 복종하는고 하니, 그 중간에는 자기들의 종교조직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아래 단계에 있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의 경우에, 그들이 왜 상사의 말을 듣는고 하니, 자기가 책임질 가족이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죠. 농부의 경우에도 역시 그러한데, 자기가 가꾸어야할 토지가 있고, 또한 가족이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토지, 즉 땅에서 자연질서를 끄집어내는데, 유대나라의 경우에는 일년에 두 번씩 수확을 한다는 말이죠. 봄에 씨를 뿌리고, 또한 가을에 씨를 뿌리는데, 이게 자연질서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연질서를 따라서 농사를 짓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농사가 항상 잘 되는 게 아니라, 흉년이 들 때도 있다는 겁니다.
* 친근한 바알 신 !!
그러면 그 대자연을 관장하는 신이 있는데, 그게 바알 신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왜 그 신이 여호와가 아닌고 하니, 약속의 땅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약속이 없던 때에 원주민들이 먼저 개간을 해놓은 땅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그 땅의 법이 있는데, 즉 자연질서에 의한 법이 있다는 겁니다. 심을 때는 언제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론 우리가 보기에는 미신이지만, 그들에게는 아주 진지한 법이라는 말이죠.
그들이 뭐라고 합니까? "씨는 이렇게 뿌려야 농사가 잘 됩니다. 우리가 그 방식대로 해서 이렇게 풍년이 들지 않았습니까?" 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아람, 모압, 에돔 등등, 이들이 이스라엘보다 잘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바알 신을 섬기게 되는데, 좋다고 하는 것을 수입했다는 것이죠. 물론 무역 때문에, 즉 주고 받고 하는 것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바알 신을 섬기는데, 그것을 자기 농사를 잘 되게 해주는 신이라는 말이죠. 성경에서는 이 바알을 우상이라고 하는데, 우상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자기를 위하여!" 라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합니까? "자기를 부인하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 두 가지 중에서 우리는 어느 것이 우리와 친근합니까? 우리는 본성상 자기를 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기를 싫어하고 무시를 당하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렇게 자기를 위해서 믿는다고 하면, 그게 하나님이든 예수님이든 삼위일체든 간에, 모두 다 우상이 된다는 것이죠.
* 예수님을 왜 바리새인을 노리셨는가?
오늘 강의에서 주안점이 무엇인고 하니까, "왜 예수님은 하필이면 바리새인을 노리고 들어가셨는가?" 라는 것인데, 그것은 그들이 이 땅을 대표해서 예수님을 죽이도록, 그것을 유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라짐을 의미하는데 말이죠.
하나님께서 이 땅을 방문하셨지만, 이 땅 차제가 얼마나 수상한지 모르는데, 하나님이 오셨지만 그만 튕겨서 나가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증거를 도출하기 위해서 악마의 종인 바리새인들을 이용하셨는데, 그래서 그들에게 튕겨서 죽고 말았다는 것이죠.
그러면 예수님을 추방한 이 땅에 신이 있습니까? 신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의 통합된 사상으로 지배를 받을 때, 신이 없는 자리에 악마가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게 예수님이 오셨다가 빠져나감으로서 증명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 어떤 인간도 악마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세라는 겁니다.
* 네가 너를 알아?
그러면서 예수님이 우리 인간이 묻기를, "네가 너를 알아?" 라고 하시는데, 이게 오늘의 강의제목이 되겠는데 말이죠. 악마의 지배를 받고, 그런 악마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 과연 자기 자신을 안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정말로 자기를 알 수 있습니까?
그러면 그 뒤의 모든 교회는 어떻게 됩니까? 교회를 구성하는 교인들이 땅의 사람인데, 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고, 곧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죠. 자기를 위해서 신을 믿고자 교회에 나온 자들인데, 그러면 교회는 무엇을 추방해야 운영이 됩니까?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를 추방해야 된다는 겁니다.
만약에 십자가를 계속해서 고집하다가는 그만 빈터가 되고 마는데, 나중에는 교회당에 목사 혼자만 덜렁 남아있지 아무도 없다는 말이죠. 그것을 흔히 '목회실패' 라고 부르는데, 제가 "목회자는 목회에 실패해야 한다" 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죠.
* 목회자는, 목회에 실패해야 !!
그것은 목회에 실패해야 성공한 목회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고, 목회에 실패해야 목회자가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겁니다. 목회에 성공하겠다는 것 자체가 자기에게 전혀 어울리지를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 마음가짐이 있을 때 비로소 구원받은 목회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내놓은 힘이 없는데, 가진 것이 없다는 말이죠.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한 것을 보면 똑같은데,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처럼 땅의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힘을 찾는 것은 이 세상의 권세자들이 하는 짓인데,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너희들은 서로 섬겨라"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요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 '성도' 라고 쓰고, '희생' 이라고 읽는다 !!
그래서 쓰기는 '성도'라고 쓰고, 읽기는 '희생'으로 읽으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남들 좋아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이죠.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그게 정립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금 돈이 있으면 자기가 대단할 줄로 알고, 조금 살림이 어려지면 자살을 한다고 난리를 친다는 것이죠.
우리는 자살할 권한도 없는데, 왜냐하면 자기 힘으로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이죠. 자기 힘으로 산 것도 아닌데 왜 자살을 하느냐는 겁니다. 그동안 살아온 것도 자기의 힘이 아니라, 주님이 그저 주신 은혜라는 것이죠. 그 정도로 우리는 신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 하나만 생각하면 되는데, "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라고 말이죠. 그것이 곧 성도인데,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 안에 누구만 담긴다는 겁니까? 자기 것을 모두 다 빼버렸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의 희생만 담겨있다는 겁니다. 그게 주님의 증인인데, 그러니 성도가 되어서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게 아니라, 주님을 증거하면 그것 자체가 성도라는 말이죠.
그러니 베드로로의 경우에도,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합니까?" 라고, 그 따위의 소리를 하지말고, "나는 용서할 권한도 능력도 자격도 안 됩니다" 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고, 그것이 사도라는 겁니다. "나는 기도할 능력도 자격도 없습니다" 라는 것을 응축해서 보면, "나는 예수님의 피만 자랑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그게 그런 의미라는 것이죠.
* 다시 응용문제를 !!
아까 했던 응용문제를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자기는 복음을 안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숙부가 돌아가셨을 때, 조카며느리는 자기가 참석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그것을 잠시 갈등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참석한다면 부조는 얼마나 해야하는지, 그런 것도 고민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숙부가 죽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장례식에 참석해야 성도인지, 하지 않아야 성도인지, 그런 차원이 아니라, 그런 사건을 누가 유발시켰다는 겁니까? 바로 주님인데, 왜 주님이 그런 사건을 일으키신 겁니까? 그것은 바로 숙부가 죽기 이전에 미처 몰랐던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것을 숙부가 죽고 난 다음에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겁니다. 자기가 얼마나 개떡이고 못난 놈인지를 말이죠.
그런데 숙부 쪽의 경우에도, 생전에 숙부가 조카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알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달라고 숙모가 연락한다는 것은 너무나 뻔뻔스럽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소식을 받으면 조카며느리는 분노하게 되는데, 하지만 이것은 자기가 성도라고 하면서도 자기 의를 버리지 못했다는 말이죠. "내가 너희들에게는 질 수 없어" 라고 하는, 그런 게 아직 남아있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주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장례식에 참석해야 합니까? 그런 필요가 없는데, 그것은 이 세상의 윤리도덕이라는 겁니다. 성경에서는 항상 기뻐하라고 했는데, 주님이 일으킨 사건에 인상을 쓰면서 간다는 것은 성도의 자유로움이 아니라는 말이죠. 물론 조카가 혼자 갈 수는 있지만, 아내에게 같이 가자는 소리를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이가 공부를 잘 하는데, 의대를 갈 것인가? 법대를 갈 것인가?" 라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그런 갈등을 통해서 미처 몰랐던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다시 정립하게 된다는 것이죠. "나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자구나" 라는 것을 말이죠. 이런 문제를 가지고 갈등을 일으키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그 거룩한 주님의 나라인 천국에 갈 수 있느냐는 겁니다.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데 말이죠.
그런데 주님께서 넣어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구원을 자기 소관이 아니고 누구 소관이라는 겁니까? 전적으로 주님소관이라는 말이죠. 이게 바로 사도이고 성도이고, 주님의 증인이라는 겁니다. 사건은 주님이 일으키는데, 그러니 우리는 마음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어차피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당한 것은 없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의는 없다는 말이죠.
* 빛이 있어라 !!
이제 교재 54페이지를 보겠는데, 여기에 보면 "빛이 있어라" 라고 하는데, 이것도 율법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현재 빛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는데, 그러면 율법이 있다는 말이죠. 즉 하나님은 활동하신다는 것이죠. "빛이 있어라" 라고 했던 그 당시에만 하나님이 활동하신 것이 아니고, 빛이 있는 내내 주님은 활동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활동이 막혀서 우리 내부까지 들어오지 않는데, 우리가 너무 심하게 변질이 되어서 말이죠. 우리 인간의 타락이 그렇다는 겁니다. 시편 136편에 보면, "큰 빛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해를 만드신 이이게 감사하라. 달을 만드신 이에게 감사하라" 라고 하는데 말이죠.
(시 136:7)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8)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9)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의 죄를 지적하기 위해서 해가 있고 달고 있는데, 감사하라고 있는 게 아니고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예,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잘 하는데, 자기들은 순종하는 기술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고, 빛이 우리를 고발하고, 해와 달이 우리를 고발하고 있다는 말이죠. 즉 그런 감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고발이라는 겁니다.
* 음란과 사랑 !!
그 다음에 여기에 보면 '음란'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같은 표현으로서 '간음' 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우상숭배라는 것이죠. 그러니 자기를 위한 욕정이 될 때, 그게 음란이고 간음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부부사이라고 해도 말이죠. 자기를 위한 것은 간음이라는 겁니다.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이 음란의 반대말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사랑' 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이 사랑은 희생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음란은 일종의 고발용인데, 어떤 여자를 보고 음란한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기 마음에 대해서 자기가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죠.
그만 화가 나서 "저 인간은 죽었으면 좋겠다" 라고 마음을 먹는 것이 살인죄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우리는 그게 살인죄가 아니고 얼마나 변명을 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그것은 자기에 대해서 몰라서 그렇다는 말이죠.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죄라고 하면, "예, 제가 살인자입니다" 라고 하면서 자기를 내놓으면 된다는 겁니다. 그게 자기를 부인하는 것인데, 주님 앞에 노출시키면 된다는 것이죠. 물론 사람 앞에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지만 말이죠. 그것이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증거하는 성도의 모습이란 겁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이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모든 계명인 이 십계명에 대해서 위반하는 죄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우리 힘으로 고칠 수가 없는데, 그냥 노출하면 주의 증인이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은 감추기를 원하는데, 결코 노출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 잠시 정리하면 !!
잠시 정리하면, 빛 자체가 율법이고 그게 구체화가 된 것이 간음이고, 그게 더 구체화가 된 것이 단일제국, 제5의 제국, 즉 로마가 하나가 되는 제국이라는 겁니다. 그게 처음에는 바벨론, 그 다음이 메데바사, 그리고 헬라 마케도니아, 이제 마지막이 로마제국인데, 로마 다음은 없다는 겁니다. 로마 이후부터는 단일제국이라는 말이죠.
단 하나의 제국인데, 그러니 지금 이 세상은 단 하나의 국가로 다 통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그게 무역 때문이라고, 즉 사고 팔고 하는 문제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는 말이죠. 심지어 우리나라가 북한과 무역을 할 때도 통상법이 적용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법은 질서의 구체화인데, 즉 같은 질서 아래에 있으니 단일제국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단일제국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이 땅의 대표자가 노리는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초월하는 신은 필요치 않다는 것인데, 우리와 어울리는 신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해줄 수 있지만 말이죠. 그러나 '나'를 무시하고 '나'를 지배하려는, '나'를 인간으로 취급해주지 않는 신은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이 멸망을 당해야하는 최종적인 이유인데, 그러니 예수님은 얼마나 지혜로운지 모른다는 말이죠. 인간세계를 그냥 가만히 놔두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오셔서 건드리고, 그래서 인간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싶지 않아도 기어이 죽이도록 유도를 하신다는 겁니다.
* 다시 'A'와 'B'를 등장시키면 !!
조금 전에 이야기한 두 사람의 경우의 예를 다시 들면, 빚을 갚아야 하는 B가 자꾸 돈을 받아야 하는 A를 벽으로 밀어 부친다는 말이죠. 그러면 결국 돈을 받을 사람이 갚아야 하는 B을 A가 치게 되는데,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B는 뭐라고 합니까? "아니, 네가 나를 쳐?" 라고 하면서 경찰에 신고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일이 어떻게 됩니까? B을 A가 치게 되는데, 이런 결과가 되면, B는 폭력을 행사했다는 죄책감을 뒤집어쓰게 된다는 말이죠. 그것이 이 세상인데, 즉 주님이 오셔서 인간들에게 실컷 얻어맞고는, 이제는 보복에 나서게 되는데, 그 대상이 바로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전에 제주도에서 요한계시록을 4시간으로 정리한다고 했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단 1시간으로 끝냈다는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자의적으로, 즉 자기 해석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시는데,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게 십자가 사건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들에게 얻어맞았다. 그러니 너희들은 나에게 당해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지? 내가 내 마음대로 알아서 천국에 보내고 지옥에 보내고 해도, 그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 놈이 없지?"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그러므로 이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들에게 얻어맞은 그 주님만이 주가 되신다는 겁니다.
* 창세 전 주님의 프로젝트 !!
바로 그 세계,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 완전히 분류되는, 마치 알곡과 가라지가 분류가 되듯이 말이죠. 그 프로젝트가 바로 주님이 창세 전에 이미 세워놓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거기에 놀아났는데, 피조물의 팔자가 그것이라는 말이죠. 영적세계에 놀아나는 것이 육적세계의 처지인데, 그게 가련하지 불쌍한지 모르겠지만, 그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지금도 멈추지 않고 활동하시는데, 빛이 있고 해가 있고 달이 있는 이상은 말이죠. 바로 그 주님의 활동에 우리가 고맙게도 걸려들었다는 겁니다. 그게 곧 성령의 활동인데 말이죠. 에베소서 3장에 보면, 그 창세 전의 비밀을 복음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는 겁니다.
이것만 찾아보고 마치겠는데, 에베소서 3장 9절에서 11절입니다.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엡 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엡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
여기 9절에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뭔가 주님이 노리고 들어왔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다는 말이죠.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뭔가 노리는 것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비밀의 경륜이 무엇입니까? 그게 11절인데, 즉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미 주님의 뜻대로 다 이루어졌다는 말이죠.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쓸모가 있는 것은 다 뽑아내서 사용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자신에서 더 이상 뽑아낼 것은 없다는 것이죠.
그렇게 주님에게 뽑혀 나와서 주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면 되는데, 그것이 곧 천국이라는 겁니다. "주님, 저를 사용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 그런 자들의 모임이 바로 천국이라는 말이죠. 주님을 주로 드러내는데 있어서, 자기를 제대로 사용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자들, 그러한 자들이 바로 성도라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 담긴 성경말씀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주되심을 위해서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그게 진짜 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그것으로 인해서 항상 기뻐하면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20,10,08 오후 5시에 마침.
목사님, 코로나보다 다 무서운 성령 바이러스에 제대로 감염이 되셨네요.
녹취하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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