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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8강-지도자들의 타락(습3;1-5)이근호130602

아빠와 함께 2013. 6. 2. 19:00

지도자들의 타락(스바냐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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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호 13-06-02 15:45 
                       지도자들의 타락

2013년 6월 2일                           본문 말씀: 스바냐 3:1-5

(습 3:1, 개역)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습 3:2, 개역)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습 3:3, 개역)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습 3:4, 개역)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습 3:5, 개역) 『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간단 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선지자가 지도자들을 친다고 해서 일반 백성들이 고소해할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도자가 당하는 징벌은 온 나라에 다 확산되게 됩니다. 이것은 그동안 타락한 지도자의 활동을 일반 백성들이 묵인 내지는 방관 내지는 동조해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도자가 지도자 노릇하기에는 일반 백성들의 후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혼자 똑똑하다고 설친다고 해서 지도자로 봐주지 않습니다. 생각들이 하나로 결집된 그 한가운데서 대표자나 지도자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지도자가 벌리는 모든 일들은 일반 백성들의 본심들이 함께 담겨있다고 봐야 합니다. 지도자는 일종의 대리인입니다. 일반인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일을 벌리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지도자들이 율법을 우습게 본다는 것은 그만큼 유다나라 내부에서 율법 경시 풍조가 만연해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활하는데 있어 과연 율법이 보탬을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손해를 끼칠까요?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율법에 대해서 결코 자연스러움을 지닐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대한 거부성은 아예 타고 났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불편함을 갖는 백성들이 율법을 내세우는 지도자들은 소통이 안될 것이고 버거울 것입니다. 따라서 차라리 자기들과 같이 율법에 대해서 소홀히 하는 지도자들을 선호할 것이 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일방적으로 지도자들만 욕을 먹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에 온 백성들이 율법에 대한 열의와 사랑이 있다면 도리어 지도자들이 그 자리를 고수하기 힘들 것입니다.

사람들이 남들에게 평을 내릴 때, 본인들의 일방적인 선호도 위에서 결정납니다. 율법에 근거하여 평을 내리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적극적인 손실을 입히지 않는 한 그냥 방관할 뿐입니다. 만약에 자기 잘못으로 인하여 손실이 생긴다면 마치 지도자가 정치를 잘못한 것인양 매도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지도자 입장에서 백성들과의 관계가 남남의 관계가 떨어지거나 멀어질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철저하게 권력을 미끼로 그들의 재물을 수탈할 기회만 노리게 됩니다. 즉 “네가 원하는 것이 뭔지 내가 알기에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을 준비해야 될 걸”라고 말입니다.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아서 지도자와 백성들 사이에는 팽팽하게 나마 관계가 유지됩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본래적 취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유다 나라의 지도자는 율법을 적용해야 하는 임무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율법 시행에 있어 백성들 쪽에서 “안 해!”라고 나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도자들도 율법 처벌을 보류하고 백성들 편에 서서 그들의 달래줄 필요가 있는 겁니다.

서로가 있기에 서로가 살 수 있는 공생관계로 엮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일종의 들러니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22:1의 말씀을 놓고 보면,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지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적질 한 사람이 “나 네 배 못 내놔! 내 배 째라”고 나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출애굽기 21:15의 말씀, “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했는데 부모가 내 자식은 누구 손에 넘겨서 죽지 못하게 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하실렵니까? 백성을 이렇게 처벌하고 저렇게 처벌하고 다 죽여버리겠습니까?

어느 지도자도 이렇게 할 수가 없는 이유는, 그렇게 하려면 지도자 본인부터 막상 그 율법에 위반되면 스스로를 가차없이 처단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하나님이 나서서 처단할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참된 지도자라면 모세처럼 철없는 백성으로 인하여 참으로 고통당하는 지도자입니다.

“에이 진짜 못해먹겠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끼인 자의 고통을 느끼는 자가 참된 선지자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지도자들은 하나님은 아예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저 유력한 사람들로부터 돈 빼먹는데 모든 연구를 하게 됩니다. “인품적으로 내가 얼마나 훌륭하고 겸손하고 고상하고 영적인 사람으로 행세하면 저들의 지갑을 열겠는가?”를 연구하게 됩니다.

사람의 눈을 속여도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자기 부인이 안되는 자들이 아무리 위장도 해도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도자는 모델이 모세였습니다. 출애굽기 18:14-22에 보면, “모세의 장인이 모세가 백성에게 행하는 모든 일을 보고 가로되 그대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찜이뇨 어찌하여 그대는 홀로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대의 곁에 섰느뇨

모세가 그 장인에게 대답하되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옴이라 그들이 일이 있으면 내게로 오나니 내가 그 양편을 판단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나이다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대와 그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실지로다 그대는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있어서 소송을 하나님께 베풀며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무릇 큰 일이면 그대에게 베풀 것이고 무릇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가 나옵니다. 이는 인간들이 원하고 원하는 것, 즉 자신이 망하고 죽는 일보다 하나님의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하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라는 말입니다. 수 천명이 움집해 있는 교회라도 지도자는 오직 ‘하나님의 경외’하는 그 사람 뿐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가차없이 유력한 사람이나 교회 권세나 법에 휘돌리지 않을 사람입니다.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평소에 모세가 벌리는 모든 일이 외결코 모세 아이디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세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서 거기서 하나님의 계시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비록 사람들에게 치이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는 것이 지도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마 23:10)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조직의 위세에 눌리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