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The Fruit of The Gospel 복음의 열매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Philippians 1: 27-28 date : April 19, 2020
27.Whatever happens, conduct yourselves in a manner worthy of the gospel of Christ. Then, whether I come and see you or only hear about you in my absence, I will know that you stand firm in one spirit, contending as one man for the faith of the gospel 28.without being frightened in any way by those who oppose you. This is a sign to them that they will be destroyed, but that you will be saved--and that by God.
SUMMARY
Even though people seem to live their lives casually, life is actually an extension of their daily lives to cope with unknown fears. Without knowing where the fear comes from, people spend their entire lives with it like fate. In today's text, the apostle, in contrast to the universality of fear, links “a manner worthy of the gospel” to the singularity of the saint “not afraid”. 사람들이 무심히 인생을 사는 듯해보여도 실상, 인생이란 늘 알 수없는 두려움에 대처하는 일상의 연장이다. 그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운명처럼 그것과 평생 함께 한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두려움의 보편성과는 대조적으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의 특이성과 연결시키고 있다.
Fear is a weapon used by the "enemy of God," and Jesus' disciples and even prophets who have been revealed by God are often attacked by this. Even today - in last days- , the devil prowls around like a roaring lion looking for someone to devour(1 Peter 5: 8). The way to deal with this devil's attack is to “cast all your anxiety on the Lord” (1 Peter 5: 7). 두려움은 ‘하나님의 원수’가 사용하는 무기로서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심지어 하나님께 계시 받은 선지자들도 수시로 이것에 의해 공격을 당했다. 오늘날도 -마지막 때-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려움’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벧전 5:8). 이 같은 악마의 공격에 대한 대처방법은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는’ 것이다(벧전 5:7).
To cast all your anxiety on the Lord means taking yourself, the main agent who is anxious, out of the matter ; it is to deletes the starting point - the "app" laid by the devil - that considers yourself a "living person." John the Baptist shouted, "Every valley shall be filled in, every mountain and hill made low. The crooked roads shall become straight, the rough ways smooth. And all mankind will see God's salvation(Luke 3:5-6)." He crushes the individual abilities, circumstances, achievements, character and value and treats all men only as the environment necessary to make the way for Messiah to come, or witnesses to God's salvation. This is God's stern command, "Every body should stop talking, and pay attention to the righteousness of God's kingdom and how God's planned kingdom is passed on to his people." So there's no room for individual egos here. ‘염려를 주께 맡긴다.’고 하는 것은 염려하는 주체인 자기 자신을 그 일에서 빼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살아있는 자’라고 간주하는 그 시작점 -악마가 깔아놓은 ‘앱’ - 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세례요한의 외침은 -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눅 3:5).” - 인간의 개별적 능력, 형편, 성취, 인격 및 가치를 뭉개버리고, 모든 인간을 오직 메시야가 오시는 길을 조성하는데 필요한 환경, 혹은 증인으로 다룬다. 이것은 ‘모든 육체는 지절대는 입을 막고 하나님나라의 의와 하나님이 계획한 나라가 어떤 식으로 자기백성에게 전가되는지를 주목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엄위한 명령인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는 개별적 자아가 끼일 자리가 없다.
The apostle Paul also introduces the gospel in Roman 1: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Therefore, a life worthy of the Gospel means a life in which only "a pure difference" exists, not a life in which one can reach perfection by one's own deeds and one's own faith. In other words, it refers to a life in which the difference between his gifts(accomplishment)which has been put into us and the still-remaining by-products of our flesh is maintained by Jesus Christ whom we trampled and killed but God resurrected.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 1장 17절에서 복음을 이렇게 소개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따라서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자신의 행함과 자신의 믿음으로 완벽에 도달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 도리어 ‘순수한 차이’만 존재하는 삶을 의미한다. 즉 우리는 짓밟고 죽였으나 하나님은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자기 백성들 속에 넣어진 그분의 선물(성취물)과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 육의 부산물들 사이의 차이가 유지되는 삶을 말한다.
It is the fruit of the gospel that the Lord Himself produces from His people that the “difference” between the Lord's achievement and our poor deeds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m continues to be maintained in our lives. Therefore, the desire to mix our works with the Lord's achievement(work) is abomination before God. : " Keep my decrees. 'Do not mate different kinds of animals.' 'Do not plant your field with two kinds of seed.' 'Do not wear clothing woven of two kinds of material(Lev. 19:19).' " 주님의 행하심과 우리의 허접한 행함 사이의 그 ‘차이’와 그것들 간의 ‘관계성’이 계속해서 우리 삶에서 유지되는 것, 이것이 주님 자신이 자기 백성에게서 생산해내시는 복음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함과 주님의 행하심을 섞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다 :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찌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찌며(레19:19)."
However, there are those who admire their deeds and still insist on them, and these are the ones recorded in the books of action unfolded before the throne of judgment. According to Revelation 20:12, “And I saw the dead, great and small, standing before the throne, and books were opened. Another book was opened, which is the book of life. The dead were judged according to what they had done as recorded in the books." Those recorded in this book of action are thrown into Hellfire without exception. This is God's rightful revenge against those who have rejected the gospel. Unlike these, the saved are not because of their works, but because their names are included in Jesus' book of life. In the end, salvation is due to God's visiting according to the list. 그런데 자신의 행함을 기특하게 여기고 이것을 여전히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심판의 보좌 앞에 펼쳐진 행위책에 기록된 사람들이다. 요한계시록 20:12에 보면,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말씀한다. 이 행위책에 기록된 자들은 예외 없이 지옥 불에 던져진다. 이는 복음을 거절한 자들 대한 하나님의 마땅한 복수조치다. 이들과는 달리 구원받는 자들은 그들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예수님의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결국 구원받는 것은 그 명단에 따라 하나님 편에서 찾아오신 덕분인 것이다.
The reason why human deeds are excluded in salvation is because the completion of the law which is the ground for salvation, that is, love comes from the relationship between God the Father and God the Son, the Lord Jesus Christ. Human beings are already in a state of disconnection from this relationship of love because they have eaten the fruit of letting them know good and evil. Jesus' death made it possible to put his people into this relationship, so that the Lord could give them love, faith, hope and life as gifts. The fruit of the gospel, the life worthy of the gospel, as the apostle Paul referred, is to live a "life that is not feared" for everything because the saints are in this relationship : Living in this relationship of love is everything to the saints.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행함이 배제되는 이유는 구원의 근거가 되는 율법의 완성, 곧 사랑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미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었기에 이 관계에서 끊어진 상태에 처해있다. 예수님의 죽음은 자기 백성들을 이 관계 속으로 집어넣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따라서 주님은 이 관계로 말미암는 사랑과 믿음과 소망과 생명을 그들에게 선물로 주실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열매, 복음의 합당한 삶이란 성도가 이 관계 안에 있음으로 인해 모든 일에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이 사랑의 관계 안에 거하는 것이 성도에게 있어 전부다.
Meanwhile, in this process, the saints are subjected to all sorts of sufferings by the devil and unbelievers who envy their joys. The suffering of the saints is like the wrestling event of Jacob, the man of covenant, with the angel(Gen. 32:24-32). It was not until the dawn of the angel's departure that Jacob found that he had fought against God, and that for the first time, he himself was the enemy of God. This hardship gives Jacob an opportunity to confirm that he was originally a man whose relationship with God was broken. 한편, 이 과정에서 성도들은 자신들의 기쁨을 시기하는 악마와 불신자들에 의해 온갖 환난을 당한다. 성도의 환난은 언약의 사람인 야곱의 천사와의 씨름사건과(창32:24-32) 같다. 야곱은 하나님을 상대하여 싸웠다는 사실을 천사가 떠날 새벽 무렵에야 알고는 처음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라는 사실을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이 환난이 야곱으로 하여금 자신은 본래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자였음을 확인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According to the book of Acts, this “tribulation of Jacob” was also undoubtedly repeated to Peter and the apostle Paul. Of course, this was intentionally created by the Lord as it was to Jacob. Romans 5: 3-4 introduces: “Not only so, but we also rejoice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Since there is no real hope without tribulation, God sends tribulation to the saints. Therefore the trouble that comes upon the saints is a gift from God, and there is nothing that is not "from God." 사도행전에 보면, ‘야곱의 환난’은 베드로 및 사도 바울에게도 여지없이 수시로 반복되었다. 물론 이것은 야곱에게 그러했듯 주께서 의도적으로 조성하신 것이다. 로마서 5:3-4절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이 없이는 진정한 소망이 드러나지 않기에, 하나님은 성도에게 환난을 보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닥치는 환난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Thus, from this point of view, God's powerful and fearful revenge today on earth is just “to give men over to a depraved mind(Rom. 1:26)”. Thus, they are trying to show their own faith, their own love, and their own hope in the state that has been cut off from the relationship with God the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and calling God, “Lord, Lord" in the midst of a depraved mind.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이 땅에서 시행되는 하나님의 강력하고 무서운 복수는 ‘그냥 타락한 마음에 내어버려 두시는(롬1:26)'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끊어진 관계에서, 자신의 믿음과 자신의 사랑과 자신의 소망을 보여주기 위해 진력하며 타락한 마음 안에서 오늘도 자기를 위하여 “주여, 주여”하면서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
No fear can be overcome by human own ability. And we can't confirm the state in which fear has been overcome. But there is a distinct phenomenon that occurs when fear is overcome - if you cast all your anxiety on the Lord. It is so natural and right to be thrown into hell because he is only a sinner. Nevertheless, he turns filled with the joy of salvation that Jesus has taken him as a trophy of the Lord through Jesus' death. He finds that all that has happened in his life has been done by the Lord himself to prove the cross and for Jesus' being Lord. Not only that, he feels the delicate touch of the Lord, who picks him that is "an empty grain" that will have to be burned with a fire that never goes out, and turning him into grains by filling it with the blood and flesh of the Lord. 그 어떤 두려움도 인간 본인의 실력으로 물리칠 수 없다. 그리고 두려움이 극복된 상태에 대해서도 확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두려움이 극복되면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게 되면- 나타나는 뚜렷한 현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은 한낱 죄인일 뿐이라서 지옥으로 처넣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으로써 그를 주님의 전리품으로 취하셨다고 하는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 지금껏 자기 인생에서 벌어진 모든 일은 예수님의 주되심을 위하여, 십자가를 증거 하기 위하여 주께서 친히 손대신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져야할 쭉정이를 주께서 취하셔서 주님의 피와 살로 그 안을 채워 알곡으로 만들어내시는 주님의 섬세한 손길을 느끼게 된다.
This joy makes him a witness to the gospel, and this testimony serves as a touchstone to distinguish between heaven and hell. So this is his confession: "I deserve to be attacked and retaliated before the Lord. But I am only pleased with the very gospel. Because Christ is my only fruit."이 기쁨은 그를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고 이 같은 간증은 천국 갈 자와 지옥 갈 자를 가려내는 시금석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그의 고백은 이것이다 : “저는 주님 앞에 공격받아야 마땅하고 보복당해도 마땅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복음만을 기뻐합니다. 그리스도만이 저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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