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대구강의] '창세기'속의 그리스도 3 - 구원 없음과 열매
20,03,02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만약에 TV가 없었으면?
요즘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만약에 TV가 없었으면?" 라고 생각을 해보는데, 그러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TV가 문제라는 말이죠. 이게 오늘 강의와도 관련이 있는데, 교재 11페이지를 보면 창세기 1장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방금 "만약에 TV가 없었으면?" 라고 했는데, 그러면 '창조'에 있어서 사람들이 "창조를 했겠지" 라고 하는데, 그러면 이 창조가 오늘날에는 무엇으로 바뀌는고 하니, 그것이 '환경'으로 바뀐다는 말이죠. 즉 인간이 있으면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환경이 있다는 겁니다.
제가 "만약에 TV가 없었으면?" 라고 했지만, 사실 조선시대에는 없었다는 말이죠. 그러면 외부환경의 연락체제가 늦어진다는 말이죠. 그러니 'TV' 라는 환경 속에서 우리 인간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1장을 보면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겠지" 라고 하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창세기 1장에서 창조된 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말이죠.
여기서 영향을 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그것은 몸(육체)에서 인간으로 바뀐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몸이 있다고 해서 인간이 아닌데, 인간이 되려고 하면 조건이 붙는데, 창세기 1장의 외부환경의 조건이 개입된다는 말이죠.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지 말라" 라고 하는 조건을 유지해주어야 인간이 된다는 겁니다.
* 선악과와 환원 !!
그런데 만약에 선악과를 따먹으면 무엇이 되는고 하니, 이것을 환원이라고 하는데, 인간에서 몸으로 바뀌면서, 그 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육신으로 취급하는데, 그렇게 육신으로 취급하면 나중에는 흙이 되고 만다는 것이죠. 그래서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이 흙으로 바뀌는데, 그것을 '환원' 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화학용어인데, 즉 본래대로 돌아간다는 말이죠.
그런데 본래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닌데, 그렇게 되면 중간에 발생된 어떤 요소들을 다 떨어뜨리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어떤 요소인고 하니,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조건들, 그것들이 다 붙어야만 인간이 되는데, 그런데 그것이 다 떨어져 나가면 그만 흙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돌아갈 때는 그 요소들이 모두 다 떨어지고 화장터로 가게 된다는 말이죠. 즉 흙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죽음이야말로 진실인데, 이 죽음보다도 더 진실된 것은 없다는 것이죠.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것을 '죽음의 바다' 라고 하는데, 즉 불이 타고 있는 유리바다라는 말이죠.
(계 15: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 죽음의 바다 !!
여기에 보면 짐승에게서 벗어난 자들이 나오는데, 유리바다를 무사히 건너간 자들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들이 곧 어린양에 입을 맞춘 자들인데, 즉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이들을 빼놓고 어떠한고 하니, 그 나머지는 모두가 다 불이 훨훨 타고 있는 유리바다, 즉 죽음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하기를, 바다라고 하면 홍해바다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 홍해바다가 갈라진 것이 옛날 옛적에 일어난, 그것도 히브리인들과 애굽 사람들에게 국한되는 것으로 여겼다는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이 전파되면, 그 언약의 원리가 홍해라는 지명을 벗어나서 모든 시대에, 즉 역사 끝까지 홍해를 건너가는 원리가 적용된다는 겁니다.
* 언약의 반복과 확산 !!
이게 언약의 확산인데,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찾고자 하신, 즉 흙으로 인간을 만들 때 하나님이 주신 조건이 있다는 말이죠. 그 조건을 하나님께서 보시겠다는 것인데, 만약에 그 조건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흙으로 다시 환원이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도자기를 택배로 보냈는데, 그런데 그 조건이 깨지지 않는다는 것이란 말이죠. 그런데 도착해서 열어보니 깨어졌다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 반품을 해야하는데,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는 조건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흙+하나님의 형상'이 되어야 비로소 인간이 된다는 말이죠.
*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것이 곧 죽음 !!
그렇다면 "그 형상이 유지가 되는가? 빠지고 없는가?" 라는 것은 죽음을 가지고 조정을 하게 되는데, 그렇지요? 즉 "선악을 아는 나무의 과일을 따먹으면 죽으리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이 죽음인고 하니,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것이 곧 죽음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골로새서 1장에 의해서, 하나님의 형상은 누구밖에 없습니까?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형상인데, 그래서 나머지는 모두 다 죽는다는 겁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이 세상에 가담했다는 것 때문에 죽었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이기 때문에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말이죠. 그러니 최초로 부활하신 분은 예수님인데, 그래서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한다는 겁니다.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 !!
오늘의 강의제목을 미리 말씀을 드리면 '열매' 인데,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 열매를 두고서,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려고 하면, 그 기저에는 "모든 인간은 죽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이 배경으로 깔려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은 왜 죽는가?" 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그래서 성경을 본다는 말이죠. 성경해석을 그렇게 하면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사는가?"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죽는가?"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죠.
* 인간에게 구원은 없어 !!
"인간은 왜 죽는가?" 라는 것을 달리 이야기하면, 즉 "인간은 왜 죽는가?" 라는 질문을 하는 취지에는 어떤 바탕이 깔려있는고 하니까, "인간에게는 구원이 없다" 라는 겁니다. 애초부터 우리 인간에게는 구원이라는 것이 해당사항이 없었다는 말이죠. 그렇게 구원이 없는데, 그런데 구원이 있다고 우기니까 모든 것이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는 겁니다.
교회에 가면 그렇게 구원을 받으라고 하는데, 하지만 실제로 우리 인간에게는 구원이란 것은 없다는 말이죠. 왜 구원이 없는고 하니, 구원을 이야기하게 되면 우리 인간은 반드시 자기를 가지고 갈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가지고 가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는 구원이 되지를 않는데, 왜냐하면 구원은 자기가 빠져야 한다는 것이죠.
* 흙으로 돌아가라 !!
하나님의 뜻은 환원이 되는 것인데, 즉 하나님의 형상이 없으면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죠. 창세기 3장에 보면, 분명히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런데 인간은 흙은 되기 싫다는 것인데, 자기는 구원을 받겠다고 나온다는 겁니다.
(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구원이 되겠다는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지 않고 쥐고 있으니, 그 어떤 식으로도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를 피를 바르고, 그렇게 온갖 좋은 것을 다해도 자기에게는 구원이 없는데, 그런데 그것을 있다고 우기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구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러면 교회에는 왜 나가지? 성경도 볼 필요가 없겠네" 라고 나오는데, 그런 반발 자체가 구원이 없는 자의 고백이 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의미는 무엇인고 하니, 자기 구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기 구원을 챙기겠다고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은 핑계에 지나지 않고, 진짜 본색은 자기가 구원을 받겠다는 것이란 말이죠.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흙으로 돌아가게 하셨는데, 즉 죽음의 바다의 함몰하게 하셨는데, 그런데 인간은 강력하게 거부하고 "나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라고 하면서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겁니다.
* 이장림과 이만희 !!
1992년 10월 28일이 이장림이 주장한 휴거의 날인데, 그때 실제로 흰 한복이 많이 팔렸다는 말이죠. 요즘은 신천지가 144,000명에 들어가야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장림이 그 뒤에 뭐라고 했는고 하니, 자기 주장에 대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호응할 줄은 자기도 미처 몰랐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 구원이 집착하는지를 몰랐다는 겁니다.
자기는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인데, 돈을 벌려고 말이죠. 지금의 신천지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요한계시록의 해석을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거기에 144,000명이 나오니까, 인간은 원래 구원이 되지 않는 존재인데, 그런데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덤벼든다는 말이죠. 지금은 이만희보다 신천지 교인들이 더 열성인데, 이제는 이만희도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씨들이 문제라는 것이죠(ㅋㅋ).
우리 인간 속에는 "너는 구원이 없어" 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을 강력히 반발하는 요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악마라는 말이죠. 이 악마는 "너는 구원이 되어야한다" 라고 하는 욕구를, 그것을 모든 인간에게 다 집어넣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은 악마의 유혹이고 술책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인간에게는 구원이 없는데, 그러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인간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것인데, 그것을 저는 '죽음의 바다' 라고 했다는 말이죠.
* 존재와 사건 !!
처음에 이야기한 것을 계속해서 이어보겠는데, 여기 교재의 작은 제목이 '존재와 사건' 인데, 제목부터 만만치 않은데, 그러면 제목이 왜 이러한지 설명해드리겠는데, 존재는 있음이라는 겁니다. 즉 인간은 있다는 것이죠.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말이죠. 그러니 창세기 1장에서는 인간은 있음, 즉 존재라는 겁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 들어오면 "인간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냥 흙으로 가는 게 아니라,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들에게 있어서 구원이 되지 않아도, 그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원래대로 되는데, 그래서 환원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흙으로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 추가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인간됨의 조건을 부여한다고 하면, 그 조건에 부합될 때만 인간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면서, 자기를 구원해달라고 하면 그야말로 곤란하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게 아니고 "흙에서 태어났으니 흙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니 흙으로 보내주세요" 라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죽기 위해서 오셨는데, 그런데 우리 인간이 뭐라고 살려고 하느냐는 말이죠. 그렇게 나온다는 것은 건방지기가 짝이 없다는 겁니다.
* 죄 위에서 의의 열매가 !!
오늘의 강의제목을 '열매' 라고 했는데, 그런데 이 열매는 우리가 전혀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조건은 죽음의 바다 위에, 그것을 결국은 '죄' 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죠. 그 죄 위에서 무슨 열매가 맺히는고 하니, 하나님의 의의 열매가 맺힌다는 겁니다.
제가 지금 초반부터 "인간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죄에서 의의 열매가 맺힐 때는, 이것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에 속한 일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구원이 있다" 라는 것을 계속해서 빼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면, 죄에서 의가 되는 열매를 자기가 무슨 용도로 취하는고 하니까, 자기의 구원용도로 가지고 온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전히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니,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위배가 된다는 겁니다.
* 생명나무와 선악나무 !!
이것이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계속해서 해보겠습니다. 죽음의 바다인데, 거기에 하나님이 조건을 주셨다는 말이죠. 에덴동산 중앙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생명나무와 선악나무가 있다는 겁니다. 물론 생명나무는 인간이 탐을 낼만한데, 그러나 그 생명나무만 쳐다보면 안 되고, 선악나무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죠. 그 나무의 조건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즉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생명이고 하나는 죽음이라는 말이죠. 즉 하나님께서는 "생명이냐? 죽음이냐?" 라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겁니다. 이것을 동물에게 한 것이 아닌데, 동물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다는 말이죠. 인간에게만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죠.
* 하나님의 형상 - '생명과 죽음의 조건을 선택할 수 있는 자질' !!
여기서 정리해보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의 계획인 "생명이냐? 죽음이냐?" 라는 조건에 대해서 선택할 수 있는 자질, 그게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겁니다. 이게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다는 말이죠. 개나 코스모스가 그렇게 할 수 있지 않다는 겁니다. 요즘 바이러스가 설치고 있는데, 그 바이러스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는 말이죠.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보고 뭐라고 하십니까? 17절에 보면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라고 하시는데, 그때 등장하지 않아야 하는 채소가 등장한다는 말이죠. 18절에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라고 하시는데,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온다는 겁니다.
(창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리고 요즘 같으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집어넣을 수 있는데, 그러면 가시덤불과 엉겅퀴,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되는데, 그러니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왜 이렇게 설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죠. 지금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모든 조건을 구비하셨는데, 인간을 환원시키겠다는 겁니다.
인간에게 그것들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이 땅 자체를 징벌의 세계로 보신다는 말이죠. 그러면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게 되면 인간은 힘들게 되는데, 하지만 힘들다고 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근육이 쇠약해지면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라는 겁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나에게 적용이 되는가?
그러니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예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일을 적용시킬까?" 라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는 말이죠. 그게 성도의 자세라는 겁니다. "나는 어떻게 되지?" 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나에게 적용이 되는가?" 라고, 그것만 보자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우리를 도화지로 보자는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은 그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리시는지, 그게 말씀의 그림인데, 오직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하나님, 도화지가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하면, 있지도 않은 엉뚱한 구원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이죠.
* 구원은 관계다 !!
그래도 자꾸만 구원에 대해서 생각하면 정말로 곤란한데, 그러면 과연 구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구원은 관계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없는 관계라는 말이죠. 우리는 우리의 덩치를 포기하지 않는데, 그 덩치를 끌어않고 천국에 가려고 하는데, 그것은 관계가 아니고 존재라는 겁니다.
이 존재는 있음인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인간됨을 외부환경으로 보신다는 말이죠. 우리 인간이 흙으로 돌아갈 때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는데, 그것은 환경이라는 겁니다. 현대인들이 너무 자기만 생각하니 이런 말이 별로 와닿지 않는데,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환경 때문에 살아간다는 것이죠. 환경과 서로 주고받고 주고받고 하면서 살아간다는 겁니다.
사람의 성격은 환경인데, 이것을 연구해서 조금은 아는 영역이 바로 의학분야인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신분석학에서 말이죠. 최근에 여기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아하, 병이 나는 것은 환경 때문이구나" 라고 한다는 겁니다.
* '자아'는 그 어디에?
이것을 먼저 설명해드리면, 오늘강의가 참 어려운데 말이죠. 먼저 제가 질문을 하겠는데, 여기에 사람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이것을 몸, 신체, 육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묻겠는데, 여기에 자아가 어디에 있습니까? '나' 라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죠.
'나' 라는 것은 없는데, 현재 있는 것은 몸이라는 겁니다. 1953년에 왓슨과 크릭이 인간 안에 자아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내었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자아가 아니었다는 말이죠. 1962년에 이것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되는데, 그들이 발견한 것은 바로 'DNA' 라는 겁니다.
'Deoxyribonucleic Acid' 라고 인간의 유전물질인데, 물론 지금은 이것을 다들 알지만, 그 당시엔 충격이었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 DNA를 발견하고 나서는 "모든 종교는 꺼져라" 라고,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과학으로 인간의 자아를 규명했다고 나왔다는 말이죠. 그래서 큰소리를 마구 쳤는데, "과학만이 진리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DNA는 무엇과 만나는고 하니, 환경과 만난다는 말이죠. 이 환경은 물리적 환경과 자연적 환경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런데 이것이 1953년 이후에는 사회적 환경까지 확산이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남한과 북한에서 사는 것 중에서 어디서 사는 것이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가?"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쉽게 말해서, 'DNA' 라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는 동일한 남자이고 동일한 여자이지만, 자기가 어디서 살고 어떤 직장을 다니는지, 거기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히스테리를 일으키지만 반면에 어떤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코로나19'에 대해서도 "TV를 보지 않으면 되지?" 라고 하는데, 하지만 어떤 사람은 새벽부터 마스크를 산다고 줄을 서고 난리를 친다는 말이죠.
* DNA가 자아인가?
그것을 과학에서는 DNA가 결정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어떤 사람은 조금만 기침을 하고 침이 튀어도 걸리고 하는데,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마스크도 하지 않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걸리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걸리는 사람은 걸리고, 또한 걸리지 않은 사람은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것을 과학에서는 "DNA가 동일하지 않아서 그렇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DNA가 자아입니까? 인간 속에는 DNA가 있어서, 그 DNA를 통해서 인간의 모든 성격이나 속성이 결정이 된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DNA가 과연 자아냐는 겁니다. DNA가 전자현미경으로 보이는데, 이중나선형 구조로 되어있다는 말이죠. 정말로 그 안에 자아가 있습니까? 자아가 이중입니까?
DNA는 분자의 결합체인데, 자아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자아는 어디에 있는고 하니, 그 DNA를 바라보는 미지의 '나'에게 있다는 말이죠. 즉 "요게 DNA야. 여기서 모든 성격이 결정이 돼. 같은 환경이라도 어떤 사람은 바이러스에 강하고 어떤 사람은 약한데, 그것은 DNA의 구조가 달라서 그런 거야" 라고 말하는, '나'는 어디에 있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관찰하는 관찰자는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죠.
* 신경증과 정신병 !!
이왕 어려운 것이니 계속해서 어렵게 하겠는데, 200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는 신경증과 정신병을 구분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어떻게 구분하는고 하니, 예를 들어서, "2+2=3" 이라고 했을 때, 이것이 과연 맞습니까? 틀렸다는 말이죠. 4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신병의 경우에는 여기에 대해서 만족해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신경증의 경우에는, "2+2=4" 라고 했을 때, 이게 맞는데도 불만족스러워한다는 겁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봄이 왔다고 하면서 남편에게 아내가 봄신상을 하나 사달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남편이 아내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는데, 그래서 온 종일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쇼핑을 해서 마음에 드는 봄옷을 하나 서서 입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백화점을 나오면서 불만인데, 그것을 신경증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 여보, 당신이 최고야 !!
그런데 정신병의 경우에는 어떠한고 하니, 봄신상을 사려고 백화점에 가서는, 봄옷이 아니라 두툼한 겨울옷을 하나 사 입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남편에 아내에게 "여보, 어때? 만족스러워?" 라고 하니까, 아내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나는 당신이 최고야"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것이 바로 정신병이라는 말이죠(ㅋㅋ).
우리가 보기에는 정신병이 더 심각한데, 하지만 정신병의 경우에는 만족해하고, 반면에 신경증의 경우에는 아무리 철을 맞추어서 옷을 사주고 생쇼를 해도 만족함이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진리를 외치고 옳다고 해도 살아가는 것이 전혀 불만족이라는 것이죠.
* 자아에 문제가 있어 !!
그러면 왜 불만입니까? 그것이 DNA로 설명이 됩니까? 그것은 자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성경에서는 이런 몸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따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어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인간조건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흙에서 나왔기에 흙으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라는 것을 바꾸어보겠는데, 여기서 인간을 비켜보게 되면,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라는 것에 대해서 인간은 비켜나 있다는 말이죠. 그게 하나님에 제시한 조건이란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 인간이 하나님이 제시한 조건에 부합이 되지 않을 때는, 그냥 흙이 되는 것뿐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아까도 이야기를 했지만 인간은 손해가 되는 것이 없는데,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가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는 겁니다. 흙이 흙이 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흙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낸다는 겁니다. 사는 것이 만족이 아니고 불만족인데, 즉 징벌이라는 말이죠.
* 불만족 !!
이 불만족이 바로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영적인 요소라도 할 수 있는데, 그러니 영적인 요소는 아무리 인간이 과학적으로 분석해도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에게 들어붙어있는 하나님의 조건에 대해서 반발하는 어떤 세력이, 인간으로 하여금 불만족하게 했다는 겁니다.
이 불만족에 대해서 불교에서는 "생로병사에 대해서 해탈하자" 라고 하는데, 또한 기독교에서는 "나를 구원하자" 라고 한다는 겁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그러면 되는데 그런데 왜 자꾸만 자기를 구원하려고 하느냐는 말이죠. 왜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고 하니,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라고 하는 하나님의 조치에 대해서 뭔가 인간내부에서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서 DNA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현미경으로 관찰을 해도, 이 반발세력은 전혀 밝혀지지가 않는다는 말이죠.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환경인데, 강의제목은 열매라고 먼저 이야기를 했지만, 열매를 말하기 이전에 인간은 환경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어떤 환경입니까? 좋은 환경입니까? 나쁜 환경입니까? 악마의 지배를 받는 악한 환경이라는 말이죠.
* 모든 인간은 환자다 !!
그게 신경증인데, 모든 인간은 그러한 신경증이 다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들뢰즈, 라캉, 프로이트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즉 "모든 인간은 환자다" 라고 했다는 말이죠. 아무리 퍼주고 퍼주어도 불만족이라는 겁니다. 물론 불교에서도 그것을 알고 있는데, 인간은 욕심 때문에 불행해진다는 것을 말이죠.
그것을 과학적으로 해보면, 인간은 아무리 해주어도 불만족이라는 것인데, 그런 불만족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신경전달물질인데, 도파민, 아드레날린, 세로토닌, 히스타민, 엔도르핀 등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정신의학에서 밝혀내었는데, 하지만 일시적이라는 것이죠.
1950년 이후에 항정신성 의약품이 개발되었는데, 이것은 신경전달물질에 의해서 인간에게 조울증이나 조현병이 생긴다고, 그렇게 나름대로 과학적으로 증명을 했다는 겁니다. 즉 모든 정신적인 질병은 이 신경전달물질의 많고 적음에 의해서 생긴다고 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런 약물을 투입한다든지 해서 치료를 한다는 겁니다.
* 의학 - '자아는 없다' !!
의학에서 인간은 물질인데, 자아라는 것은 없는데, 인간은 그냥 고깃덩어리라는 말이죠. 그런 고깃덩어리인 두뇌에 정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경조직의 다발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뉴런이란 650억개의 신경세포로 되어있는데, 그러니 서로 전기적 신호를 빠른 속도로 주고받는 것뿐이라는 말이죠. 자아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정신의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인간은 죽으면 흙이 되지 않습니까?" 라고 물으면, "그것은 우리 분야가 아닙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의학에서 자기 분야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미신입니다" 라는 의미인데, 그것을 돌려서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과학은 자존심이 있는데, 과학만이 진리라는 말이죠. 그러니 과학이 아닌 것은 모두가 다 미신인데, 차마 그렇게 이야기하지를 못해서 "그것은 우리 분야가 아닙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의사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그러면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의사들은 자본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비해서 과학자들은 진리를 탐구하는 자들인데, 물론 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초기에는 진리가 무엇인지 자기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나선 자들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하는 그 눈이 바로 자아인데, 그런데 그들은 그 자아가 없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스스로가 하는 말이 맞지를 않는다는 말이죠. 현미경으로 살펴보겠다고 하는 것이 바로 '나', 즉 자아인데, 그런데 그들은 그런 자아는 없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것은 자아가 아니고 육체라고 한다는 말이죠.
* 과학과 종교 !!
제가 지금 과학적으로는 진리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즉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흙으로 흙으로 돌아가라" 라고 하는 하나님의 조치를 우리 인간이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과학에서는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규명하지 못하는데, 그냥 순간순간 달콤한 쾌락만 추구하면 그만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과학이 미신이라고 부르는 종교의 영역에서는 무엇인고 하니,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즉 "당신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구원이 없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교회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가 지금까지 밥벌이를 위해서 사기를 쳤다는 말이죠.
구원이 없다는 소리를 지금까지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는데, 인간에게 구원은 없다는 겁니다. 인간은 애초부터 흙에서 흙으로 돌아갈 대상인데, 그런데 그런 흙이 될 자기를 끌어않고 구원을 시키려고 하니,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인간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죠.
물론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을 믿으면 된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 하나님마저도 이 땅에서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겁니다. 왜 죽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대표자인데, 그러니 인간은 버림을 받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바로 구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버림을 받은 존재라면 버림을 받아야지, 그것이 당연한데 왜 구원을 염두에 두느냐는 것이죠. 그러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자기욕심이라는 겁니다.
* 처음부터 다시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인간은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몸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것이 창세기 1장인데, 즉 인간은 신체뿐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신체를 악마가 지배하는 악한 환경에 의해서 흙으로 바뀐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이 흙으로 바뀐다" 라고 여기지 말고, "원래부터 흙인데 흙으로 돌아간다" 라고 보자는 겁니다. 그러니 한 때 인간이었다는 것을 덤으로 보자는 말이죠. 물론 보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러한데, 그런데 그것은 인간을 좋게 하기 위한 한 덤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기 위한 덤이라는 겁니다.
이게 결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데, 그렇지요? 물론 동의를 하고 말고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이죠. 결코 성경에 어긋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동안 뭔가 자기가 속았다고 하는, 즉 "내가 나를 속이고 있구나" 라고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말이죠.
* DNA를 둘러싼 환경 !!
진도를 조금 더 나가보면, 환경이라고 했는데, 왓슨과 크릭이 DNA를 발견했다고 했지요? 인간에게는 100조의 세포가 있다고 하는데, 과거에는 60조였는데 점점 늘어났다는 겁니다. 이 각각의 세포 안에는 핵이 있고 질이 있는데, 핵 안에도 DNA가 있고, 핵 바깥인 질에도 DNA가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이 세포가 분열되는 것에는 코드, 즉 암호가 있는데, 그렇게 해서 복제가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세포복제인데, 이런 복제를 하면서 인간의 환경이라는 것은, 그게 지금까지는 인간의 몸이 있으면 그 바깥에 환경에 있다고 했다는 말이죠. 그런데 과학적으로 보면 환경에 이 세포까지 들어가는데, 그런데 DNA를 둘러싼 환경도 환경이라고 치자는 겁니다.
그러면 동일한 환경에서 죽는 사람이 있고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살아난 사람은 믿음이 좋거나 착한 게 아니고, DNA가 바깥 환경에 잘 견뎌서 그렇다는 말이죠. 그렇게 건강한 DNA를 가진 사람이 있고, 반면에 태어날 때부터 정신병이나 간질, 또한 당뇨병에 잘 걸리는 DNA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건강하지를 못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돌아가시게 되는데, 그것을 유전병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미국의 안젤리나 졸리라는 영화배우는 어떻게 했는고 하니까, 자기 엄마가 걸렸던 유방암을 이어받을 확률이 무려 80퍼센트라고 해서,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멀쩡한 자기의 유방을 미리 잘라내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면 창세기 1장에 의하면, 인간의 환경은 무엇인고 하니,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나무, 그리고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이 모두 환경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과학적으로 따지게 되면, 더욱 더 인간의 몸 속으로 침투를 해서, 세포 속에 있는 DNA를 빼놓고는 전부가 다 환경이 된다는 겁니다. 즉 DNA의 환경이라는 말이죠.
* 아하, 그렇구나 !!
어제도 잠시 이야기를 했지만, 바이러스의 종류에는 DNA 형이 있고 RNA 형이 있는데, RNA는 DNA의 유전정보를 복사하고 번역하고, 그리고 전달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RNA는 중간기능을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것이 세포질 속의 리보솜과 결합을 해서, 단백질이 되기 위한 구성요소인 아미노산을 바깥에서 찍어내는 공장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난리를 치는 코로나19로 불리는 신종 바이러스는, DNA가 아니라 중간과정인 RNA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그래서 변형이 자주 일어나고, 쉽게 인간의 몸에서 단백질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게 치료를 하는데 골치가 아프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 "아하, 그렇구나" 라고 하면 되는데, 아까 신경증은 마지막에 무엇으로 끝난다고 했습니까? 만족이 아니라 불만족이라는 겁니다. "그래, 내 DNA가 그렇게 한다고? 알았어? 마음대로 하라고 해" 라고 하면 되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고 뭐라고 합니까?
"나는 죽으면 안 돼. 대구를 피해야지" 라고 한다면, 그렇게 만족과 불만족을 결정하는 자아는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죠. 다 끄집어내어서 과학적으로 분석을 다 했는데, 그게 찾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DNA는 구조는 오각형으로 되어있는데, 그런데 그게 별 것이 없다는 말이죠.
* 그러면 자아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면 자아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 이제 그것을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마가복음 1장을 보겠는데, 34절입니다. 누가 큰 소리로 한 번 읽어주세요.
(막 1: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많은 귀신을 내어쫓았는데, 그런데 그 귀신이 예수님을 안다는 겁니다. 그러자 그 다음에 예수님은 귀신을 보고 뭐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이 귀신을 보고 "그 입을 다물어라" 라고, 즉 예수님 자신이 메시야인 것에 대해서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마가복음 3장을 보겠는데, 11절과 12절입니다.
(막 3: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막 3: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여기에도 보면 거의 동일한 내용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는 귀신이 자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금지하셨다는 말이죠.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었는데, 그러니 귀신이 병자들 속에 들어있었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 예수님은 왜 마귀의 입을 막으셨는가?
그렇다고 하면 바리새인들의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그들의 아비가 마귀인데, 그러면 그들에게는 귀신이 없습니까? 물론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병자들부터 해서 바리새인들에게 이르기까지 무엇으로 통제가 되어있는고 하니, 그 속에는 귀신이 들어있다는 말이죠.
그렇다고 하면, 즉 예수님께서 자기가 메시야인 것을 알리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면, 그러면 귀신이든 누구든 간에 자기가 메시야인 것을 알리면 더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겁니다. 더욱이 귀신이 그렇게 나오면 사람들이 더 믿을 수도 있다는 말이죠. 홍보차원에서도 권장을 해야하는데, 그런데 왜 말리시느냐는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들 자기 구원에 빠져있으니, 그야말로 소귀에 경읽기라는 겁니다. 인간은 모두 신경증 환자인데, 그래서 그 불만족의 원인을 환경에서 찾는다는 말이죠. 새로 나온 봄옷을 사주어도 만족함이 없는데, 그것은 잠깐이라는 겁니다. 아무리 술을 마시고 해도 그것도 역시 잠깐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자기가 우울증에 걸려서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해도 그것도 얼마 가지 않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불만족이 해결이 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죠. 과학적으로 보면 몸이 약한 것이 아닌데, 즉 "2+2=4" 라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2+2=3" 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병이고 말이죠. 아무튼 인간은 불만족스럽다는 것인데, 그래서 만족해하는 것은 정신병으로 본다는 겁니다.
* 나도 한 때 인간이었다 !!
다시 그림을 그려보면, 인간은 흙에서 왔는데, 그래서 흙으로 간다는 말이죠. 그러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너무나도 당연한데,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까, 여기 중간에 덤으로 등장한, 즉 "한 때 인간이었다" 라고 하는, 그게 문제라는 말이죠.
그것을 악마가 낚아채었는데, 그래서 악마가 우리 속에 자기 집을 지었다는 겁니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이 다 그러한데, 그것을 '죄의 왕 노릇'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해도 만족함이 아니라, 불평, 불만, 원망, 이것을 누구에게 한다는 겁니까? 하나님에게 해댄다는 겁니다.
그래서 방금 살펴본 마가복음 1장과 3장의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인간이나 그 속에 들어있는 귀신이 예수님을 만나서 하는 말이, "나를 이런 식으로 구원해달라"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겁니다. 이것을 누가 거부하는고 하니, 악마 쪽에서, 혹은 인간 쪽에서 거부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게 베드로였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죽어야한다" 라고 하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우리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것을 바꾸어서 말하면, "흙에서 흙으로 가는 것은 싫습니다. 한때 인간이었으니 그 인간으로서 절대자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인간이 원하는 구원이라는 말이죠.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 나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
그래서 "구원을 받아서 무엇을 할 것인데?" 라고 하면, "나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게 인간이 이야기하는 구원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지금 어떤 입장에 놓여있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이고 예수님이고 삼위일체고 간에, 그런 게 문제가 아니고 자기가 천국에 가면 된다는 말이죠.
십자가가 빠진 하나님과 예수님을 계속해서 교회가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낸 것은 아버지의 뜻인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밖에 없다는 말이죠.
물론 성령이 오고 난 뒤에는 우리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물론 집단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것은 출애굽기 4장에서 이스라엘을 아들로 했기 때문인데,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여호와' 라는 이름조차 너무 거룩해서 부를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때는 '주(아도니아)' 라고 불렀다는 말이죠.
아무튼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는 불만족스러워서 그러한데, 그러한 만족과 불만족을 연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해주세요" 라는 겁니다. 그게 '호산나' 라는 것인데, 하지만 그렇게 해놓고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서 죽였다는 말이죠.
* 인간은 환경이 지배아래에 놓여있기 때문에 !!
제가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환경의 지배아래에 놓여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자기가 내뱉는 것은 뭔가 억누르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로 튀어나오는 자동적인 반응인데, 무슨 생각이 있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니 "살려주세요. 구원해주세요.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생각이 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자기 내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자기보다도 더욱 센 그 무엇이 있는데, 그 무엇이 있지도 않은 자아를 자꾸만 앞장세운다는 겁니다.
* 육은 죽어도 영혼은 산다 !!
그러면서 "네 몸은 죽어도 자아는 살아야지" 라고 하는데, 그것이 곧 영혼불멸인데, 즉 "육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야지"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것이 서로 같은 의미인데, 도대체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그런 이론까지 신학에서 나오느냐는 겁니다.
이게 바로 '이분설' 이라는 것인데, 즉 "인간은 육과 영혼으로 되어있는데, 육은 죽어도 영혼은 산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것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진리처럼 여겼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영혼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죠.
* 그러면 성경은 왜 있는가?
제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마치면 절망적인데, 인간은 흙 정도고 아니고 지옥에 가야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자기 잘못이 아닌데, 우리 조상이 우리를 낳았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가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더 이상 성경을 볼 필요가 없는데, 그냥 이 땅에서 고생이나 하면서 살다가 지옥으로 가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성경은 왜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한 정답은 이미 여러분이 들어서 아는데, 성경을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이미 정답이 나와있지만 그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그래서 "성경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있는 책이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디모데후서 3장을 보겠는데, 16절과 17절을 누가 읽어보세요.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결코 인간구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다음으로는 히브리서 4장 12절을 누가 한 번 읽어보세요.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 언약의 열매 !!
여기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라고 하는데, 즉 말씀은 살아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말씀이 그야말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서 우리의 관절과 골수를 다 쪼갠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자아가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악마의 본성을 다 쪼갠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성경말씀, 즉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라엘과 같이 있게 되면, 그들은 어떻게 됩니까? 악마가 어떻게 인간을 움직이고 있는지, 그것을 대표로 보여주는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언약이 없다면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냥 애굽사람이 되어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어린양의 피가 발림으로서, 그게 언약인데, 그렇게 됨으로서 이스라엘이 거기서 쪼개져서 독립적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어린양의 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에 의해서, 이게 오늘 강의제목인데, 그게 바로 '열매' 라는 말이죠. 즉 '언약의 열매' 라는 겁니다.
* 없는 구원, 있는 열매 !!
지금 제가 구원은 없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인간구원은 없지만 무엇은 있다는 겁니까? 열매는 있다는 말이죠. 한 알의 씨가 죽으면 무엇을 맺습니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2장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라고 하셨는데,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죠.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래서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보시는데, 그러면 그 포도원은 좋은 포도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작살내시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나는 좋은 포도를 원했지만 나쁜 포도가 맺혔다"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사 5:1)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사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 이스라엘에게는 이방민족에게는 없는 새로운 언약환경이 !!
그러니 성경말씀은 인간 위주가 아니라 예수님 위주인데,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냥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언약' 이라는 말이죠. 이 언약을 환경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이스라엘에게는 다른 이방민족에게는 없는 새로운 환경인 언약환경이 주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노아의 경우에, 그가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해도 비가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는데 마냥 버티고 있으면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노아가 구원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아의 씨, 즉 노아의 언약적인 씨를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서, 그래서 노아의 여덟 식구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이죠. 그들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 축복과 저주 !!
그리고 그 언약에는 두 가지가 요서가 있는데, 복을 받을 민족과 저주를 받을 민족이 있다는 말이죠. 이것을 광주강의에서 했지 싶은데, 노아의 여덟 식구 중에서 셈과 야벳은 복을 받지만 함과 야벳은 저주를 받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동일한 언약 속에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주도 있다는 말이죠.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뭐라고 하십니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라고 하는데, 그 다음에 보면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좋은 열매는 천국인데, 반면에 나쁜 열매는 지옥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태복음 13장에서는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라고 하고 말이죠.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마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
그러니 결국 천국과 지옥의 기준은 무엇인고 하니, 주님이 하신 일을 받아들이면 천국에 가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받아들이고 말고 하는 것이 어디 인간의 자유의지인가요? 그것이 인간의 결정이냐는 말이죠. 결코 그렇지가 않은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환경이라는 것이죠.
* 십자가를 믿도록 성령을 보내신 것까지 새로운 환경 !!
그것을 히브리서 10장(?)에서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 십자가만이 아니라, 그 십자가를 믿도록 성령을 보내신 것까지 주님의 새로운 환경이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보혜사의 오심' 인데, 그것은 모든 것이 주님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주님께서는 영생을 줄 자는 한 사람도 결코 놓치지를 않겠다는 말이죠. 그래서 보혜사가 오셨다는 겁니다.
목사가 설교를 할 때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무엇이어야 하는고 하니, 자기가 굳이 설교를 하지 않아도, 목회를 하지 않아도, 강의를 하지 않아도, 주님은 영생을 줄 자를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죠. 굳이 자기가 설치지 않아도 되는데, 주님께서 건질 자는 다 건진다는 겁니다. 이것이 기본원칙인데, 말씀은 살아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이 있는데, 언약을 외친다는 것은 구원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방금 이야기를 했지만, 좋은 열매를 좋은 열매이고, 또한 나쁜 열매는 나쁜 열매라고 하는, 그런 주님의 조치가 주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할 뿐이라는 말이죠.
* 애굽과 소돔, 그리고 십자가의 현장 !!
어제 요한계시록 11장을 했는데, 두 증인이 죽었던 장소가 어디라고 했습니까? 그곳이 애굽이고 소돔인데, 그리고 그곳이 바로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라는 겁니다. 분명 하나의 인간인데, 그런데 그 공간이 지점으로 바뀐다는 말이죠. 그것은 인간을 통해서 환경의 속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인데, 언약이 그렇다는 겁니다.
(계 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마가복음 3장을 다시 보겠는데, 예수님께서 귀신을 보고 입을 다물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즉 예수님이 메시야로 온 것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 비슷한 이야기가 사도행전 16장에도 보면 나오는데, 16절에서 18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행 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행 16:17)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행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 홍보를 거부하는 사도바울 !!
이것이 사도바울이 빌립보에 가서 전도를 할 때 일어난 일인데, 귀신이 들린 여자가 바울의 일행을 따라오면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자 사도바울이 그 여자를 어떻게 합니까? "오냐, 잘한다" 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오히려 귀신을 쫓아내 버리는데,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해버렸다는 겁니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 생각에는 손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익이 되지 싶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여자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듣고 예수를 믿을 수도 있다는 말이죠.
하지만 사도바울은 그게 아니란 겁니다. 그런 여자의 행동에 대해서 오히려 괴로워하며,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 버린다는 말이죠. "당신은 메시야이고, 당신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 라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전도를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데, 하지만 성경을 그것을 거부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적절한 성경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그것을 왜 거부합니까? 성경은 인간구원이 아닌데, 인간구원이 아니고 언약이라는 겁니다. 즉 모든 것이 언약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말이죠.
* 너는 한 때 인간이었다. 그러니 구원을 받아야지 !!
다시 정리를 하면, 우리 인간은 모두가 다 귀신이 들렸는데, 그 귀신이 인간에게 무엇이라고 격려를 합니까? 자아를 만들어서, 그 자아는 영원하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자아 불멸성이라는 말이죠.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자꾸만 자아를 언급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자아를 언급함으로서 "한 때 인간이었다" 라는 것에 대한 미련을 두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현재 불만족스러운데, 즉 사는 것이 고생이고 힘들다는 말이죠. 그러면 악마가 와서 인간에게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당신은 구원을 받아야한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악마가 일단 프레임을 그렇게 설정을 하고 시작하는데, 그러면 인간이 구원을 받으면 그냥 받습니까? 그게 아니고 누구를 기다리게 되는데, 구원자, 즉 메시야를 기다리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것이 잘못이라고 제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반발하기를, "아니 그게 어떻게 잘못인가?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디모데전서 2장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알기를 원하신다' 라고 하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는가?" 라고 나온다는 것이죠. 물론 그 말씀이 그런 의미가 아니지만 말이죠.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거기에는 베드로가 귀신이 들려있는데, 여기서 마태복음 16장 21절부터 24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
여기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그리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는 겁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22절에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보고 뭐라고 하십니까? 23절에 보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라고 하셨는데, 그 다음에는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라고 하고, 그리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사람의 일인데, 즉 마귀의 일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24절에 보면,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죠. 그리고 무엇을 지라고 합니까? 십자가를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데,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려고 하신다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길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인데, 마귀는 이 십자가의 길을 막으려고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베드로 속에 들어가서 그런 말을 내뱉었다는 겁니다. 십자가 없이 구원이 된다고 말이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것을 그냥 보시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메시야를 보내셨는데, 그 메시야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 예수님 구원 !!
하지만 이것은 "흙에서 흙으로 돌아간다" 라고 하는 하나님의 조치와는 정반대인데, 인간은 계속해서 인간자체를 구원하려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고 하니, 인간구원이 아니고 인간을 대체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고, 그래서 인간구원이 아니라, '예수님 구원' 이라는 겁니다.
* 오른 편에 계신 주님, 그리고 관계가 있는 인간 !!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님만을 구원하시는데, 그것이 어느 자리까지인고 하니까, 그것이 바로 '주의 자리'까지, 즉 '하나님의 오른편의 자리' 라는 말이죠. 그러면 자기 백성의 구원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오른 편의 자리에 앉아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성령을 보내주시면 여기서 '관계'가 형성된다는 말이죠. 하늘에 계신 주님, 그리고 관계가 있는 인간,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인간은 무엇인고 하니,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늙어죽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겁니다.
* 제발 좀 죽어다오. 그러면 내가 살려줄게 !!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고 하니, 고린도전서 15장을 소위 부활장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무엇이 있어야 부활이 됩니까? 먼저 죽음이 전제로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제발 좀 죽어다오. 흙이 되어다오" 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성령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고 하니, 로마서 8장 11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라고 하는데, 그 다음에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고 예수님 소관인데,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자는 단 한 명도 놓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때문인데, 말씀은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킨다는 말이죠. 주님이 우리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셔서, 우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열매' 라는 겁니다.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이것은 이스라엘이 이루지 못한 것으로서, 고린도전서 15장에 의하면, 부활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고, 첫 열매가 있다는 것은 두 번째도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게 누구입니까? 여기서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 24절을 보겠습니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고전 15: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
제가 한 시간 동안 강의한 것을 여기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이 원칙은 변함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가 무슨 종교를 가지든지 간에, 종교가 있던 없던 모두 다 죽여버린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은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23절을 보면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라고 하는데, 즉 모두가 다 부활이 된다는 겁니다. 이런 순서를 정한 것은 사도바울이 아직 살아있어서 그러한데,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믿음의 열매가 아니고, 예수님이 스스로 하신 일의 열매가 우리 안에서, 즉 우리 속 사람의 부활이 여기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겉 사람이 후패하는 것에 대해서 섭섭해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를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코로나19로 후패를 하든지, 교통사고로 후패를 하든지, 혹은 밤에 자면서 심장마비로 후패를 하든지, 우리는 반드시 후패를 하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어떻게 후패를 하든, 그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닌데, 우리는 어차피 흙에서 흙으로 간다는 겁니다. 우리의 환경이 그러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어제 낮 시간에 우체부가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기도한 것을 이야기했는데, 그런데 오늘 아침에 다시 만나서 보니, 우체부가 아니고 신문배달을 하는 분이었다는 겁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두터운 방한복을 입어서 우체부로 알았는데 말이죠. 아무튼 그분이 기도하기를 "주님, 잘하셨습니다. 당연히 세상은 이래야 합니다. 다 죽어도 괜찮습니다" 라고, 과연 그런 기도를 했겠느냐는 겁니다.
* 예수님, 계속해서 병을 고치세요 !!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마귀가 예수님을 보고 "당신은 메시야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계속 하세요. 병을 고쳐주세요" 라고, 그것을 계속해서 홍보해준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신 진정한 이유를 모르게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병든 자가 예수님에게 나온다고 하면, 그러면 자기가 병이 들었다고 여기지 않는 자는 예수님에게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에게 나오고 나오지 않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에게 나와서 병을 고쳐도 의미가 없고, 나오지 않아서 병을 고치지 못해도 의미가 없는데, 왜냐하면 어차피 죽음의 바다 속에 있다는 말이죠.
* 악마가 퍼뜨린 거짓된 구원관 !!
그런데 귀신들은 예수님을 용한 메시야로 간주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악마에 속한 유대인들이 평소에 무엇을 생각했는고 하니까, "메시야가 오면 병을 고치고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 라고 여겼다는 말이죠. 그런 거짓된 구원관을 악마가 완전히 퍼뜨려놓았다는 것이죠. 이것은 코로나19보다 더 심한데, 그래서 그 당시에 유대교 자체가 유일한 진리가 되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메시야가 오시면 병이 낫고 로마에서도 해방되어서 최고의 나라가 된다" 라는 것인데, 하지만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들의 그런 불만족을 만족스럽게 하기 위함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들이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십자가에 죽으려고 오셨다는 말이죠.
이것을 누가 방해하는고 하니,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마귀가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극구 그 십자가의 길을 가게 못하게 한다는 겁니다. "살아있는 우리와 좋은 거래를 맺읍시다" 라고 나오는데, 즉 "지금 제가 하는 일을 잘 되게 해주시면 감사헌금을 왕창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 십자가는 존재가 아닌 사건 !!
그러니까 오늘 '열매' 라는 제목의 강의를 통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보던 기도를 하던 무엇을 하던 우리를 한 시도 떠나지 않는 것은, "나는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천국에 가겠나?" 라고 것인데, 그렇게 하면서 십자가는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도피를 하려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를 찾아오신 메시야는 어떻게 나오십니까? "나랑 얼른 같이 죽자" 라고 하시는데, 그래서 십자가로 데리고 가신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연히 죽을 존재이기 때문에 죽이신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십자가가 바로 존재가 없는 사건이라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영생을 줄 자에게만 영생을 준다는 것이 주님의 고유권한이라는 것을, 그것을 널리 증거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옵니다. 그래서 인간구원은 없고 주님자신의 구원을 증거할 관계만이 진정한 영생임을 저희들이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20,03,11 오후 7시에 마침.
아하, 나는 인간도 아니구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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