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어렵다, 어렵다, 하는 대목이 많지만 그 중의 한 대목이 마태복음 25장의 대목입니다.
그 대목이 얼마나 어려운지 잠시 언급해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가는 양한테 이런 이야기했습니다.
35, 36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렇게 하니까 천국 가는 사람이 하는 말이 너무나 난해한 말을 합니다.
“제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옷을 입힌 적도 없고 옥에 갇힌 적도 없어요. “제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이것을 설명하는 해석이 뭐냐 하면, 내가 한 적이 없다는 말은
내 이름에 입각해서, 내 이름을 걸고 양심과 도덕성에 입각해서 남한테 꿇리는 것이 없다고 할 때는 아무것도 주님한테 한 것이 없어요.
그런데 내 이름이라고 우기는 그 이름을 주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하신 일로 바꾸어서
“너도 모르는 채 이미 주님 위해서 살아가도록 조치를 하셔서 천국에 보내신다.”는 뜻입니다.
정작 천국에 가는 본인도 내가 천국 가는 행동을 한 게 기억이 안 난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자꾸 교회들마다 이런 행동 하시면 천국 갑니다, 이런 행동 하시면 복 받습니다, 왜 그런 사기를 치십니까?
막상 성경에는 그것이 없는데.
그냥 사세요.
그냥 사시고 있는 죄를 마음껏 다 보여주세요. 죄가 살아야 우리가 삽니다.
우리가 불뚝 성질을 내고 “주님, 나와! 왜 주님은 내 허락도 없이 이런 일을 일으켰어?” 주님한테 따지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리에
망가진 주님, 피 흘리는 주님, 십자가 진주님, 화상 입은 주님, 사람에게 인기 없는 주님, 쓰레기통 취급받는 주님,
그 주님이 바로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생각해 보니
마치 내가 주님을 다루고 하나님을 다루고 내 팔자를 내가 다루고 내 결정적인 운명도 내 손에 있는 것처럼
성실하고 견실하고 진정성 있게 신앙생활 참하게 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게 다 죄인 것을, 다 내 중심인 것을 우리 자신도 감출 수 없도록 다 기만적인 행동인 것을
십자가 앞에서 다 폭로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로마서33강 죽음으로 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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