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자료

2020겨울수련회 1강 추릭 200112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20. 1. 18. 10:42
2020-01-18 09:02:56조회 : 11         
2020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1강-에스더 강해(역사 검열) : 추락이름 : 한윤범 (IP:14.39.134.42)
2020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1강-에스더 강해(역사 검열) : 추락
(강의:이근호 목사)


저희들을 살펴주시는 주님, 진리가 말씀 안에 있기에 그리고 진리가 세상 안에는 없기에 오늘도 말씀 안에 있는 진리를 찾아서 왔습니다. 주께서 준비하신 진리의 복음이 여과 없이 어떤 방해도 없이 마음껏 저희를 붙여주시고 늘 그 복음 안에서만 살게 하옵소서. 마칠 때까지 복음으로 인도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전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비-성전형 성전’ 그리고 또 하나는 그냥 ‘성전형 성전’ 성전형 성전은 솔로몬에 의해서 등장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에스라, 느헤미야,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 있던 헤롯성전으로 있다가 로마시대에 이것이 불타버리고 없습니다. 날아가 버리죠. 그러니까 이것은 무슨 말이냐? 없어질 성전이에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여기 지중해고 터키고 여긴 요새 요란은 이란이고요. 여기는 이란과 맞댄 이라크고,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오만, 돌아가면 예멘, 사우디아라비아로 돼있어요. 수산성은 여기 있고요. 여기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이 있거든요. 예루살렘은 지구상에 한 지점을 차지하는 겁니다. 이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습니다. 어떤 성전이냐 하면, 성전형 성전이 여기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 지키도록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어기고 우상을 섬기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이 없습니다. 땅 자체가 없게 돼요. 그러면 땅이 있고요. 창세기 1장에 보면 땅이 먼저 있거든요. 그 다음에 사람이 등장하고 그 다음에 여기서 국가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나가라 했으니까 나가야 될 사람이에요. 약속의 땅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 땅 자체가 약속의 땅이 되면, ‘땅+약속’이 유지돼야 되고 약속은 성전이 유지돼야 되는데 성전이 불타버렸으니까 약속의 땅은 없는 거예요. 약속의 땅이 없어버리면 사람도 없는 거고 국가도 없는 겁니다. 땅과 사람, 국가가 다 날아가 버려요. 없어요. 그러면 이게 다 없어지면 하나님 일은 실패했는가? 여기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약속은 여기 있습니다. 다윗에게 준 약속은 있잖아요.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없어졌지만 여기 누가 있느냐 하면, 약속을 위해서 바벨론 나라가 있고 그리고 바벨론 후대 나라가 메대 바사, 지금 우리가 에스더를 공부할 때 있는 아하수에로 왕이 바사 왕입니다. 그 다음에 바사 나라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당하거든요. 헬라-마케도니아, 헬라한테 당하고 헬라 다음에 나오는 게 뭐냐 하면, 로마가 있습니다. 이 네 개의 이방국가의 도움으로서 약속은 성취를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걸 오늘날 쉽게 비약적으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교회와 일 안 하고 하나님은 불신자와 일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은 불신자를 통해서 지금도 하등 차질 없이 잘 되고 있습니다. 불신자라는 것은 배후에 악마가 통치하는 불신세계지요, 불신세계에 의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믿는다는 교회는 그냥 붕 떴지요, 뭐. 아무 성과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아무 기여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교회란 것이 왜 있느냐? 교회는 망하기 위해서 있는 거예요. 교회는 자꾸 세속화돼야 돼요. 그래줘야 하나님의 일은 세속에 의해서 멸망 받을 세상에 의해서 하나님의 언약은 성취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교회가 없는 공백, 빈자리에 아무 한 것도 없이 구원받은 사람이 나타나지요. 그걸 ‘교회’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아무 것도 한 것도 없는데 일은 이방 불신자들이 다 했는데 자기는 맹탕인데 구원받았어요. 한 것도 없어요. 일곱 교회 촛대는 계속 옮겨져 가고 세상에서 세속화돼야 돼요.

세속화돼야 되는 이유가, 주님 믿지 않고 교회 믿는 사람들이 세속화되면서 그동안 정 주었던 교회도 따라가게 돼있어요. 주님에게 정을 주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했다가 막상 교회 문제 있으니까 우르르 교회 따라가 버리는 거예요. 돈 투자한 게 있어서. 교회 세낼 때 전세금 낸 게 아까워서 다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교회는 어디 있습니까? 진짜 교회는 교회라는 가짜 교회 뒤에 숨어있지요. 이 원리원칙은 바로 구약의 이스라엘 원리원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고 여겼던 자들이 이스라엘이 아니었고 약속의 백성이 아니었다. 그들이 떠나버림으로 말미암아 진짜 이스라엘 진짜 하나님의 다윗언약의 신실성, 그리고 완료성은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난 뒤에 나타납니다. 이게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는지 몰라요. 참 재미있는 이야기에요. 이 이야기가. 여러분 안 재밌어요? 재미있지요.

이 교회가 주님 섬기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이용했다는 것은 어디 등장하느냐 하면, 에스라, 느헤미야에서 그들이 다시 돌아와서 성전을 짓거든요. 성전을 지으면서 그 성전이 정치적 권력 다툼에 성전 짓는 주체들이 휘말리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전형 성전이 나중에 에스라, 느헤미야 이후에 맥없이 무너지는 데 이것을 유지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정치적 세력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바리새인과 성전 유지하는 사람들, 사두개인들.

그리고 성전을 바라보면서 성전을 성전대로 유지해야 되는데 그동안 유지 못했던 이유가 율법을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서 깨졌다고 외치는 집단들, 바리새인들입니다. 말씀을 생활화해야 되고 말씀을 마음으로 심적으로 섬겨야 되지 건성건성 섬기면 안 된다고 주장했던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에요.

마음으로 섬겨야 된다. 그런데 그 마음에 한계가 있는데 어떻게 해요. 지 마음 지가 어디까지인지 몰라요. 그냥 마음적으로 심적으로 그냥 열심히, 그게 끝이에요. 열심의 뒤에 뭐가 있는데? 몰라요. 열심히 하고 나니까 또 열심히. 오늘 아침에 그런 예를 들었잖아요. “여덟 단계로 거듭 검증하고 녹용 팁까지 담아낸 정관장 천녹입니다.” 한석규 나오는 천녹이란 광고에 보면.

철저에 철저를 기했던 그 철저함. 그 철저한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하면,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그 마음이 마지막 남겠지요. 그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서기관이고 바리새인들. 기어이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자기 손으로 자기 힘으로 이걸 유지하려고 하는 거예요. 이어보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란 것은 인간의 힘으론 달성할 수 없어요. 달성하지 못할 말씀을 일부러 던져놓고 그들의 내부에 있는 본색을 솔솔 뽑아내는 작업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성전 할 때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 이런 민족들이 전부 다 도와주시거든요.

오늘 아침에 우리교회에서 기도하는데 기도하시는 분, 유재성 집사님이 기도하셨는데 제가 깜짝 놀랐어요. 생전 안 듣던 단어가 나왔습니다. “악마께서 주신”이라는. 아아, 저게 무슨 깊은 의미가 있을까? 보통 악마는 나쁜 존재기 때문에 주신이라는 존댓말 쓰면 안 되는데 하다 보니 나왔겠지요. 악마께서 주신.

오늘 강의와 맞습니다. 마귀가 주신 건 아니고 “주께서 악마를 통해서 주신” 주체를 마귀에서 한 칸 더 뒷배에 계신 분을 약간 당기는 겁니다. 그리고 주셨다는 그 동사를 악마에 스톱하지 말고 그 배후에 있는 예수님한테 연결된다고 하시면, 여러분 수능국어 점수 괜찮게 맞습니다. 좋은 점수 나와요.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 이들 나라가 이방민족 맞아요. 여호와 안 믿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주셨습니다. 마치 오늘날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여호와를 찾지 않는 백성에게 내가 나타남이 되었다는 이사야의 말씀을 그대로 적용시키는 거예요. 여호와를 우리가 왜 알아야 됩니까? 이스라엘 하나님을 왜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야 되지요? 약속에 동참하라고 참여하라고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냥 일방적으로 시키는 겁니다.

이사야 44장 28절을 목청 좋으신 분 읽어보세요.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이사야 44장 28절에 고레스란 이방인 제왕, 이거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바벨론 후대 왕이죠.

그 후대 왕이 성전의 기초가 되는 거예요. 마치 마태복음 16장에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 된다 해놓고 얼마 가지 않아서 베드로가 사탄이 돼요. 사탄아 물러가라 하죠. 마귀가 성전의 기초가 된다는 이야기와 똑같은 거예요. 악마가 성전의 기초가 돼야 된다는 겁니다. 악마가 성전의 기초가 되지 아니하면 이 땅에 성전은 세워지지 않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악마에 의해서 성전이 무너져야 돼요. 무너짐으로써 인간들이 상상하고 있는 인간들이 말씀을 통해서 예상하는 모든 성전이 이게 가짜임을 들통 낼 때 무너진 그 쓰레기더미에서 다시 성전이 세워지는 겁니다. 이걸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새 성전에 모퉁이돌이 된다고 하는 거예요.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 되려면 필히,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사탄아 물러가라 했잖아요. 사탄과 베드로가 이미 결속돼있음을 베드로 본인이 이걸 인식해야 됩니다. 오늘날 성도라 하는 것은 우리가 악마와 한 패 먹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돼요. 우리가 찾는 여호와, 우리가 찾는 삼위일체 모든 것이 악마와 내통해서 내뱉는 고백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해야 됩니다.

고백하나 고백 안 하나 구원에 관한 문제는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걱정하는 그 자체가 이미 악마가 심어놓은 악마의 씨앗이기 때문에 내가 구원 못 받으면 어떻게 되지, 내가 지옥 가면 어떻게 되지, 라는 걱정은 사실은 누가 해야 될 걱정이냐 하면 악마가 해야 될 걱정을 우리가 대표해서 걱정하는 거예요. 주님은 하나도 걱정하고 있지 않은데 악마는 저희끼리 모여서 걱정하고 있다고. 나, 지옥 가면 어떻게 해야 돼요? 가면 가는 거지요, 뭐. 주의 뜻이라면 가면 가는 거예요.

그리고 지옥 가면 어떻게 하느냐는 그 말 자체가 잘못됐어요. 지옥에만 가야 돼요. 다른 데 가고자 만들어진 게 아니고 오직 지옥에만 가야 돼요. 그러면 지옥 가면 안 되잖아요. 벌써 태어난 자체가 지옥에 태어났는데요. 우리가 출생한 자체가 이 세상 자체가. 주님을 떠나보낸 세계에요. 주님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다른 말로 언약이 없는 곳이 지옥이거든요. 우리는 태어난 자체가 지옥이기 때문에 자기가 지옥 와놓고 새삼스럽게 지옥을 가고 안 가고. 이 생활하면 되잖아요. 말씀이 없이도 돈만 있으면 잘 살잖아요. 그게 지옥 생활 아닙니까.

그것을 저는 이렇게 하지요. 이 세상에서 대해서 지옥에서 올라오는 웃음소리. 이거 성도한테는 고문입니다, 고문. 으하하하하하하, 치어스! 간빠이! 축하주 날리고 지옥에서 올라오는 웃음소리가 온 옆집에서 202동, 201동 온 천지가 웃음소리로 환하게 웃을 때 그게 바로 지옥인 거예요. 웃는 자여, 너의 목숨을 끝났다. 이런 거죠. 웃을 때 왜 웃는지요? 웃는 이유가 뭐냔 말이죠.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외손자가 웃는단 말이죠. 뭘 안다고 웃지, 왜 웃지? 자기 운명을 알고 웃나, 지금. 시편 2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웃으시는데 앞에 뭐가 붙어요. 그냥 웃는 게 아니고 비웃습니다. 놀고 있네, 이런 식이죠.

사람들이 노아 홍수 가기 전에 마음껏 웃었습니다. 원 없이 웃었어요. 결혼 했다고 울고 잘 샀다고 울고 직구했다고 울고, 사고팔고 먹고 마시고 맛집 찾아서 세상에 이런 돈가스는 처음 봤다. 제주도까지 돈가스 먹으러가면서 웃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하다가 그들은 한 방에 훅 갔습니다. 도저히 웃는 인간한테는 예상 못한 사태가 벌어진 거예요. 그렇다고 운다고 해서 구원해주는 건 아니고요.

바벨론, 바사 여기에 이미 뭐가 들어있느냐? 이미 하나님이 이사야 44장 28절을 통해서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철거하는 용역회사, 그리고 바사 나라는 본의 아니게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시 성전 짓도록 보내는 역할을 바사 나라 전체가 해야 돼요. 고레스한테 했지만 사실은 고레스에 속한 모든 제왕들이 한 결 같이 예루살렘이 재건되도록 도와줍니다. 그 이야기가 에스라, 느헤미야에 나와요.

기원전 586년이기 때문에 세월이 갈수록 숫자가 점점 적어집니다. 516년에 성전이 완공됩니다. 다리우스 1세 6년 후에 완성이 되고, 586년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 갈 때에요. 지금에 이란으로 수산이란 곳에 포로 잡혀 갔을 때 했는데 역대하 제일 마지막 36장 21절에 보면,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BC586에서 딱 70년을 지나서 516년에 성전이 완공된 겁니다.

그러면 이때 이스라엘은 586년에 성전이 불타버리고 그 다음에 70년 동안 성전이 없다가 516년에 성전이 생깁니다. 성전이 없다는 말은 뭔 뜻이냐 하면,
성경적으로 인간이 죽는다는 말은,
인간은 추락해요. 지옥으로 추락하는데 이게 죽는 거예요.
목숨 끊어지는 게 죽는 게 아니고 인간이 마귀와 한 패니까 계속 지옥으로 내려가는 게 죽는 건데
여기에 성전이라는 것은 이걸 밑에서 받쳐주는 거예요. 받쳐준 사람만 안 죽어요.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과 함께 있거든요. 하나님이 함께 있음이 추락하는 여기에 딱 받쳐줘야 됩니다.


첫째 시간을 ‘추락’이라고 해보겠습니다. 인간은 한없이 추락합니다. 어떻게? 웃으면서. 자기 운명이 어디까지 바닥을 칠지 몰라요. 계속 떨어져있어요. 그런데 여기 성전에 있는 사람은 덜컹, 쭉 떨어지는데 뭔가 덜컹하고 걸렸어요. 보니까 하나님과 함께 있음에 걸려든 거예요. 계속해서 지옥에 가야 되는데 중간에 뭔가 걸려서 떨어지는 걸 받쳐주는 기능이 불쑥 튀어나옵니다. 그게 성전이에요. 성전은 모든 죄를 용서하는 바탕이 거기에 마련돼 있습니다. 다른 곳에는 용서가 되지 못해요. 성전을 통해서 용서가 돼요.

성전을 통해서 용서가 되기 위해서는 성전 자체의 본질을 위해서, 본질이 뭐냐? 용서거든요. 용서를 용서답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성전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그 간격 가운데 뭘 느끼느냐 하면, 도대체 무엇이 인간을 추락시키는가, 인간의 근원적인 죄는 무엇인가를 이스라엘이 포로 잡혀가면서 충분하게 습득해야 되고 충분하게 표현해야 되겠지요. 그래야 성전의 용서의 의미가 살아나니까요.

인간이 할 일이 뭐 있어요? 성전이 성전답기 위해서 죄 짓는 것 밖에 더 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죄가 무슨 죄인지 충분히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미 서울대학에 수시 합격했어요. 그런데 수시 합격한 것이 학생이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아버지, 엄마가 책 펴놓고 시험 치라 해서, 예를 든 겁니다. 아버지, 엄마가 실력 좋아서 들어갔단 말이죠.

그러면 그 학생이 서울대학 다니면서 효도하는 길은 뭐냐 하면, 지가 실력을 키우는 게 아니고 자기가 얼마나 무식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공부해야 되는 거예요. 무식하기 위해서 공부해야 된다 말이죠. 공부를 해야 내가 어느 정도까지 무식한지 드러나죠. 공부를 안 하면 자기가 무식한 걸 몰라요. 말씀을 안 보게 되면 지가 왜 죄인인지를 모른다니까요. 성도가 할 일은 느긋합니다. 이미 수시 합격해놨고 남은 생애는 도대체 내가 어느 정도로 하늘의 뜻에 위배되는지 그것만 더 깊이 파 들어가면 돼요. 진짜 그것도 안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에요.

그럼 그걸 어떻게 하느냐? 애가 아플 때는 주님 하다가 우리 애가 최고가 되지요. 이런 게 주께서 사건을 자꾸 일으키게 되면 내 마음은 주님한테 있는 게 아니고 나도 내 마음이 어디 있는지 몰랐는데 애가 아프든지 하면 내 마음은 평소에 예수님보다 자식이 소중하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죄인 맞구나 하는데 죽을 때까지 아직 멀었어요. 아들이 장가가서 며느리 봤는데 그 며느리한테 일이 생기면 또 걱정하지요.

그래서 같은 죄를 반복하는 게 아니고 마치 비트코인처럼 채굴하는 거예요. 계속 채굴. 이걸 하부채굴이라 합니다. 자기가 의도적으로 죄 지으려 할 때는 상부채굴이 되지만 의도적이 아니고 내부에서 나도 모르는데 내게 그런 사태가 일어났어, 그런 식으로 계속 더욱 더 죄를 채굴하는 이것은 하부채굴입니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에요. 진지하게 듣지 마세요.

어쨌든 추락하고 있는 것을 성전이 나타나야 방비가 됩니다. 왜냐하면 성전 자체에 위신이 있고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성전 자체에 가치가 있기 때문에. 원래 약속의 땅은 성전을 중앙에 안치하는 것이 최종적인 도달지점이에요. 목표점이에요. 성전이 안치되면 거기서부터 생명의 물이 넘쳐서 에덴동산을 능가하는 그러한 새로운 천국이 만들어지는 거지요. 성전이라는 것이 그렇게 생겨버리면. 그렇다면 여기에 물갈이 돼야 되거든요. 성전에 제사장, 성전에 레위인들, 성전에 대한 백성들 전부 다 물갈이하는 겁니다. 물갈이하려면 정권 바뀌면 되지요.

그래서 성전을 나중에 만들지만 이 성전은 어디까지나 역사에 나타난 성전형 성전이거든요. 비-성전형이 아니고 성전형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어요. 그렇다면 역사의 끝과 함께 성전도 날아가 버려요. 그러면 역사와 함께 날아갈 성전을 왜 역사 속에 세워두느냐? 인간의 역사란 것이 과연 쓸 만한가를 성전을 세우면서 같이 동반자살하게 만들어버려요. 인간의 역사가 과연 하늘까지 이어지느냐? 안 이어집니다.

역사의 끝은 천국이다. 거짓말입니다. 역사는 천국 오기 전에 조기에 끝이 나요. 그전에 역사란 것은 무의미해진 시간의 반복에 지나지 않아요. 역사를 인수를 받아서 계속 반복하는 것을 시간이 아니고 때가 돼요. 한 때, 두 때, 반 때로 때가 등장함으로 말미암아 역사라는 차분함이 여기서는 혼돈되고 우연으로 채워지는 겁니다.

차분하게 하나님의 계획된 역사는 뭐냐 하면, 바로 바벨론, 바사, 헬라-마케도니아, 로마 그걸로 끝나요. 역사가 질서정연하게 정돈돼있어야 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이런 나라를 예언했기 때문에 그 나라는 있어주고 그 다음부터는 로마 이후에 나타는 것은 중구난방이에요. 현재 220개 나라가 있다는데 그건 뭐 아무 의미 없는 나라에요.

겨울 되면 발에 각질이 생기는데 자, 각질을 발에다 넣어야 돼요, 말아야 돼요? 맨날 지가 알아서 생겼다가 지가 알아서 떨어지거든요. 그럼 이거는 내 발이라는 집합체에 각질을 집어넣으면 안 되지요. 로마가 발이라면 로마 뒤에 있는 나라는 무의미한 거예요. 로마의 각질 같은 거예요.

드라마 보면 드라마 속에 안 들어가는 요소가 있지요. 에필로그라고 하나요? 이런 것을 봐도 되고 안 봐도 되는 그런 겁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언약에 있어서 이 시대는 무의미한 거예요. 왜냐하면 이스라엘+이방인까지 전부 다 이방민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과 관계없습니다.

그러면 역사의 바통을 누가 잇느냐?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음으로 말미암아 이걸 어디로 들어가느냐 하면, 역사형 성전 또는 성전형 성전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해서 역사의 종말을 이미 맞이했고 그러면 성전은 누가 하느냐? 바로 BC583부터 573년까지 본토에 성전 지으러 가는 사람 말고 남아 있는 사람, 이게 우리가 공부하는 에스더 시대에 남아 있던 그 유대인들의 단체, 이것이 바로 새로운 비-성전형 성전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다윗언약은 건물 없이도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통해서 얼마든지 주기적인 절기를 유지할 수 있다. 부림절. 여기 성전 지어서 주기적으로 제사 지내는 것과 대조되는 거예요. 이건 성전에서 초막절 지내고 해봐야 성전 날아가면 다 날아가 버리죠. 그러나 진짜 하나님의 율법에서 이야기하는 절기의 반복은 바사 나라에 있는 한 제왕, 아하수에로 왕이죠. 다리우스 왕 이후에 캄파세스 다음에 아하수에로 왕이거든요.

그 아하수에로 왕 때 유대민족에게 일어난 사건이 다윗언약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하나의 표징이 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여기에 에스더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 때 유대인들은 어디 있느냐? 유대인들은 없어요. 모르드개가 입 다물라 했거든요. 이게 노골적으로 유대인이 된다는 것은 유대인 티를 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에게 예언을 함으로써 아까 이야기한 원칙, 땅 있고 사람 있고 그 다음에 국가가 있는 것, 이게 일반적인 원칙이거든요.

미국과 멕시코가 전쟁할 때 이런 현상이 또 있었습니다. 미국 땅은 동부에 버지니아 중심으로 얼마 되지 않아요. 저 남쪽은 스페인이 다 갖고 있었고 중앙은 프랑스가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미국 동부에서는 프랑스 땅을 서부라고 이야기했거든요. 서부는 아예 근처도 안 갔거든요. 그런데 프랑스가 힘이 약해지니까 멕시코가 전쟁해서 프랑스 땅을 자기 땅으로 스페인 땅을 자기 땅으로 만들었단 말이죠. 그중에 텍사스도 여기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미국 사람이 텍사스에 살았을 때 땅은 멕시코 땅인데 사는 사람은 미국 사람이라 할 때 과연 그 나라는 텍사스는 누구 땅이냐 할 때 결국 사람 위주로 가요. 사람이 다수가 되는 그 땅으로 변개돼요. 왜냐하면 사람은 곧 국가가 돼야 되니까. 그와 같은 일이 아르헨티나 옆에 섬이 하나 있는데 이것 때문에 1982년에 영국과 포클랜드전쟁이 일어났거든요. 여기 주민들 93%가 가난한 아르헨티나국민이 되기 싫고 영국국민이 되겠다는 거예요. 전쟁에서 영국이 이겼잖아요. 아직도 그 섬은 영국 땅이에요.

이처럼 인간이 된다는 것은 반드시 땅을 근거로 해서 거기서 땅의 사람이 되고 그 다음에 국가가 성립되는 거예요. 땅이 있고 사람 있고 국가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있는 땅은 누구 땅이냐 하면 전부 다 바사 나라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유대인은 없고 이 사람들은 누구냐 말이죠. 에스더부터 해서 전부 다 바사 나라 사람이에요. 따라서 모르드개 사촌, 삼촌의 딸 에스더가 누구와 결혼하느냐 하면, 바사 나라 사람 아하수에로와 결혼하잖아요. 이방민족하고 결혼한다고요.

그런데 에스라, 느헤미야 이쪽 땅에 왔던 사람들은 느헤미야 같은 경우에는 가슴을 치고 통곡합니다. 어떻게 대한민국 단군의 자손이 필리핀 여자와 결혼하느냐고 한 거예요. 캄보디아 여자와 결혼하고 베트남 여자와 결혼하느냐는 거예요. 나라 씨가 어떻게 되려고 하느냐. 우리는 대대로 단일민족인데. 어떻게 단일민족이 필리핀 여자와 결혼해서 그런 애를 낳느냐는 식으로 된 거예요.

그래서 느헤미야가 가슴을 치면서 이런 일은 없다. 이건 용서하지 않는다. 해서 느헤미야가 445년에 와서 12년 동안 총독을 하는데 총독하면서 하는 일이 결국 순수혈통이에요. 100% 순수혈통 그것 유지합니다. 그것과 제사장들이 제사 지내야 되는데 성전 짓다가 보니까 이 사람들이 십일조를 안 해요. 가진 사람들은 고리대금업자가 되고. 그것에 통탄하면서 반드시 십일조 다 하고 그래서 성전 가동되도록 하고 제사장에게 제사 하도록 월급 다 주고 그리고 잡혼, 이방민족과 결혼한 사람들 전부 다 강제 이혼을 시켰습니다. 강제 이혼할 때 여러분, 상상해보세요. 미워도 다시 한 번, 재탕 나올 거예요.

느헤미야가 그 일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준 것은 바로 에스라지만 느헤미야는 말씀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하나님이 했던 전통적인 율법대로 살아가는 국가를 성립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습니다. 애쓰면 뭐합니까. 나중에 느헤미야 사라지고 난 뒤에는 일본말 써서 미안합니다만 시마이 되었어요. 역사적 인식의 한계입니다. 인간은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끝나는 거예요. 반복이 성립 안 됩니다. 인간이란 땅에 결속돼있기 때문에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면 그걸로 만족하면 끝나는 거예요. 하나님은 뒷전이 된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은 율법이라든지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계획 같은 것은 어떤 경우라도 나의 기본적인 욕구와 결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나님을 통해서 보여준 겁니다. 인간이 아무리 애를 쓰고 용을 써도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은 합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구약성경 역사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면 에스더에 있는 유대인들은 훌륭하지 않느냐? 뭐가 훌륭해요. 유대인이 있어야 훌륭하지 유대인이 없는데. 유다나라 자체가 없다니까요. 바사 나라라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바사 나라에 대해 충실했어요.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자기 사촌 여동생을 미스 바사 나라에 출전시킨 이유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한 거예요. 출세해보자는 거예요. 애굽에 살 때 히브리인들이 철저하게 애굽 사람이고 싶어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슬슬 어려운 게 시작되는 데요. 유대인은 바사 나라에 없습니다. 유대 국가라는 것도 없고요. 철저하게 그 나라에 예속돼있어요. 정 가고 싶으면 가란 말이죠. 바사 나라에서 본국으로 돌아갈 때 돌아가면 되잖아요. 에스라 같은 경우에는 42,360명(에스라2:64)을 데리고 본국으로 왔어요. 첫째 귀환이 그렇게 둘째 귀환은 7150명인가 데리고 옵니다. 느헤미야에서 3차 귀환되고. 갈 사람은 가란 말이죠.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했다고 할 때 유럽에 떠돌아다니던 집시 같은 유대인들이 본국에 가서 하나님 섬긴다고 할 때 가란 말이죠. 영국에서 미국에서 도와줘서 배 타고 그들은 그 땅에 왔어요. 물론 그 땅에 왔다고 차지하는 게 아니고 대판 싸웠지요. 그 땅의 본주인인 원래 터 잡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싸움이 벌어진 거예요. 이건 내 땅이다, 니 땅이다 이렇게 된 거예요.

여러분들이 집에 살고 있는데 나, 유대인인데 비워주세요. 이게 말이 돼요? 말이 안 되지요. 힘 들여 농사지었는데 이건 내 땅이니 나가라. 이게 됩니까? 지금도 유대인들은 농사를 짓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탱크로 밀고 강제로 나가라고 해요. 무화과나무 심어놨는데 미안합니다. 오늘로 나가주세요, 하고 보내버려요. 장벽 세우고. 왜냐하면 약속의 땅이니까. 땅 없이는 인간은 국가가 되질 못하지요.

인간은 땅과 사람으로 국가가 된다면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히 기존에 있던 인간들을 밀어내고 자기 사람을 심어서 그 땅과 국가를 연결시키는 그 작업을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무슨 성경적입니까? 이건 인간의 본성이지 성경적이 아니거든요. 인간은 이러한 창세기 3장부터 살기 위해선 땅이 필요하고 외부의 침입을 대비해서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 국가가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마땅한 거예요.

땅, 특히 강가에 인간들이 있고 여기에 농업혁명이 일어나게 되면 가축을 기르고 가축의 힘으로 농사지을 때 여자들은 자식을 낳는데 열중하기 때문에 자손이 번성하게 되고 인구가 많아지면 여기서 분업이 일어나게 되고 분업을 유지하기 위해선 정보교환체제가 새로운 기술을 빨리 습득하기 위해서 여기서 문자가 발생되고 그러면 그 문자를 다루는 엘리트 계층이 등장하고 엘리트 계층이 다른 영토를 침범해서 드디어 영토를 더 확대하는 취지로 고대국가가 성립된다 이 말입니다.

모든 역사가 다 그렇잖아요. 에스더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고. 국가 단위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도 그 나라에 맞춰 사는 것이 편한 거예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처음 강의한 것을 잊어버릴 수가 있어요. 제목을 뭐라 한다고 했던가요? 추락. 지금 뭐가 빠졌느냐 하면 하나님의 성전이 있을 이유가 없다니까요. 나만 살면 되지 성전이 왜 있어야 되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비-성전형 성전을 통해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장차 메시아까지 연결되기 위해서 비-성전형 성전을 만드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지상에 있는 성전 말고 슈퍼맨처럼 날아다니는 땅을 딛지 않고 공중으로 날아다니는 성전, 형체도 없이 휴우 날아다니는 성전, 이것이 다윗언약의 연속성을 이룬단 말이죠. 눈에 보이는 성전 말고.

에스더에 유대인이 있을 것 아닙니까? 유대인이 없어요. 없는 데서 성전을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 없는 성전을 해낼 때 그 시발점이 뭐냐? 그 계기가 된 것이 문제는 뭐냐 하면, 여자 때문에 그래요. 와스디라는 여자가 이미 전체주의 다시 말해서 남성이라는 세계에 파열음을 낸 거예요. 남성의 세계는 전체를 다 묶는 세계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미모 자랑한다고 공개석상에 오라고 하니까 와스디라는 왕후가 하는 말이, 나 안 가, 이랬어요. 남성의 법으로 묶이는 중앙집권 또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나, 안 가란 말을 했어요. 새로운 법이 등장한 거예요. 그 법은 어떤 식으로 등장하는가? 와스디라는 여자가 남성 법에 도발적으로 대듦으로써 여기서 권력의 만곡, 권력의 체제가 찌부러짐, 권력이 왕 중심으로 있던 한쪽이 찌부러진 거예요. 바람 빠진 축구공처럼 찌부러진 현상이 일어난 겁니다.

그러면 이 권력을 쥐고 있는 남성의 체제는 빨리 찌부러진 것을 펴야 되겠지요. 그리고 그 대타로 누가 들어가느냐 하면, 에스더가 들어가는 거예요. 결국 에스더의 싸움은 뭐냐 하면, 권력이 전혀 없는 여성과 기존의 권력을 갖고 있는 남성의 싸움, 그게 에스더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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