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른에게 물었다.
①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어요? 그리고 그 어른은 아주 자세하고 쉽게 아이에게 답을 해주었다. ②어느 정도 자란 아이는 나름 자신의 지식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음을 내세울 수 있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고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는데 여자는 남자의 몸의 일부로 만드셨어요? 그 어른은 첫 번째 질문했을 때와 똑같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③아이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저 어른은 혹시 잘 모르니까 저렇게 대답하나? 그 아이는 돌아가서 아주 어려운 질문을 찾기위해 열심히 성경을 들춰 보았다. 그리고 그 어른에게 가서 질문했다. 하나님은 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자꾸 하세요? 그 어른이 이번에도 똑같이 친절히 대답을 했다. ④아이는 화를 내면 소리쳤다. 당신은 답을 모르면서 왜 자꾸 아는 척을 하세요?
지금 이 아이에게 대답이 중요했을까, 아니면 자기 생각이 중요했을까...
언약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라고 한다. 선악과를 따먹은 후 더이상 둘이 한 몸이 될 수 없다는 건 세상에서 내세우는 어떠한 사랑도 행위도 다 간음이 된다. 오직 자기 한 몸 살리고자하는 열심만이 육체와 본능에서 발산될 터이니 자신을 위해 구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에게 간음이다. 그런데 언제 하나님에게 자기의 남편이 되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는가.
그저 ‘그 위에 계시면서 복을 빌면, 도움을 구하면 주시옵소서. 받들겠나이다’라고 하지 ‘신부가 되고 싶어요’라고 요청은커녕 꿈도 꾼적이 없다. 그런데 난데 없이 이혼 증서라니... 그 난데없음으로 비로소 깨닫게 하신다. 이미 혼인한 상태였음을. 그것도 하나님의 일방적 계약서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이혼증서 없이 새 신부를 만드심도 없다. 오히려 잃어버림 속에서 다시 찾음의 기쁨을 통해 하나님 자신의 것을 만드신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하나님 없는 곳에 우리를 있게 하실 때 비로소 그 이후의 상황을 통해 왜 인간이 하나님께 심판받아 멸망당해 마땅한지를 깨닫게 하시니 그 과정중에 건짐을 받은 자는 성도라 한들 자신들의 위치가 도리어 이상하고 세상 사람들의 처지를 비난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비난받아야 할 자임을 보게 된다. 과연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 모든 상황을 일으키시는 분을 바랄 수밖에. 내 뜻이 있는데 당신 뜻대로 하세요가 아니라 내 뜻을 생각해 낼 여력조차도 없게 만드시고 그저 잠잠히 이루어지는 모든 것에서 주님의 자취를 목격하고 찬양할 수밖에.
잃어버림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혹독하게 인식하게 해주심을 감사할 수 있는 자리는 바로 주님께서 몸으로 품어 주듯이 덮어 함께 죽으심에 참여하게 해주시는 십자가 안이다. 버려진 자리에서 진짜 신랑되시는 주님의 돌보시는 손길을 기억하게 해주시므로 그 자리가 오직 주님을 위해서 후회하는 자리이고 철저히 무가치함을 고백하는 자리이다.
다시 찾아 주시는 주님을 만났을 때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오직 주님만 볼수 있도록 이끄시는 자리, 주님 계신 곳, 그곳에 우리도 거하게 하실 때 비로소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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