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선

범사에 감사

아빠와 함께 2019. 12. 8. 19:41
2019-12-08 14:53:58조회 : 24         
범사에 감사이름 : 송민선 (IP:14.55.184.154)
선덕여왕이라는 사극에서 미실을 모시는 충성스러운 종 칠숙이 이런 고백을 했다. “저는 지금까지 목숨을 내놓은 전쟁에서 자신의 출중한 무술 실력과 운으로 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뒤돌아보니 늘 죽을 자리를 죽을 기회를 놓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복을 받아 지금껏 살고있는 자신을 떠올리면 자신의 공로와 살만한 가치가 함께 떠오르지 않고 배기겠는지 의문이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 하든 인지해도 세상 겸손으로 포장하든 둘 중의 하나밖에 할 수 없는 한계점에서 ‘나라는 주체는 오직 하나님 자신밖에 없고 나머지는 종이 되는 관계’ 선택2 를 말씀해주신다. 아들의 주 되심을 위한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재료로 미끼로 던져진 피조물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도록 긁어 주시고 버려주시는 작업을 멈추지 않으시고 그러니 제발 살아남으려고 버둥거리지 말고 죽으라고 마련해 주신 자리에서 죽으라고 하신다.

한순간도 이미 죽었음을 알지 못하고는 주님의 하시는 일을 느낄 수 없다. 아침에 눈을 떠서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는 모든 순간이 내가 죽었음을 내가 아님을 알게 해주시지 않으면 범사에 주님께 감사할 순간은 한순간도 없다. 감사하는 마음을 조작한 나에게 감사할 뿐이다. 상태가 이러하니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어찌 가능한 일이며 그 경외함이 빠진 피차 복종함이 그저 이론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성경을 알든지 모르든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에덴동산 그리고 에덴동산의 생명 나무와 선악과에서 늘 불평이 터져 나오는 계기는 왜 선악과를 심었는지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나름의 강도 차이가 있는 원망이다. 이미 선악이 지배하는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문제 있음이기 때문에 창조하신 세상과 선악과가 아닌 오직 생명 나무에만 관심 있는 하나님의 시선을 알 수가 없다.

인간의 가능성과 희망 그리고 최선이라는 배설물 같은 모래성 가운데 꽂힌 작대기를 놓고 주님과 마귀의 전쟁이 벌어진다. 긁어내며 거둬내며 궁지에 몰아넣으며 원래 살 가치가 없었음을 밝혀내시는 분과 모래를 다독이며 견고히 하며 자율성과 자립성을 키워가라고 응원하는 마귀의 싸움. 우리는 알기는 안다. 최종점에서 누가 승리했는지를.

최종점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피차 복종할 수도 없고, 범사에 감사할 수도 없고, 주님의 이름표 단 전쟁 무기로 사용될 뿐임을 알 수 없다. 주님과 마귀의 모래성 싸움에서 넘어지고 버려지면 되는 역할 뿐임을 알 수 없다.

‘차라리’라는 해답을 던져 주시는 주님이 너무 고맙다. 본질상 악마의 종노릇밖에 할 수 없는 네가 차라리 속으라고 하시고 차라리 당하라고 하시고 차라리 죽으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속임수에 속임수로 응대하셔서 죄의 종에서 그리스도의 종으로 바꾸는 작업을 멈추신 적이 없고 그 작업에 우리가 뭘 알 필요도 없고 할 필요가 없고 뭘 할 수도 없고 오직 속기만 하면서 그 결과물에서 떨어져 나오는 부스러기에서 진작 죽어도 마땅한데 그 허물 덩어리를 주님의 의를 생산하는 단독작업에 재료로 쓰시려고 잠시 살려두신 이유를 뒤늦게 공유하게 해주시니 감사하다.

 공은주 (IP:175.♡.135.128)19-12-08 19:03 
십자가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박멸하는 하나님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죽었다 하면서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구더기를 가루로 내어 날려주시는 은혜에 가볍고 기쁨의 감사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하고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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