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23서

캘거리강의26강 160921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6. 10. 13. 04:38
2016-10-13 00:11:22조회 : 4         
20160921 요한1서 캐나다 캘거리강의26-이 근호 목사이름 : 이미아 (IP:122.43.165.245)

20160921 요한1서 캐나다 캘거리강의26-이 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요한일서 3장 24절 보면,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이렇게 했습니다여기서 성령이라는 것을 한 번 빼봅시다성령이라는 것을 빼고 읽으면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안다앞에 뭐가 빠졌습니까성령이 빠졌죠.

 

그렇다면 성령을 빼고 이야기하니까주님 저기 계시고 우리는 여기 있는데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우리가 성심성의껏 지킴으로써 우리는 주 안에 거하게 된다이렇게 되는 겁니다이거는 무슨 관계냐 하면 너와 나의 관계입니다.너와 나의 관계예수님그 다음에 나우리. self. 주체(예수님)에게서 계명이 주어지게 되면나는 계명을 받아서 지키게 되고그렇게 되면 어떤 혜택이 주어지게 되느냐나는 주님의 나라(예수님)의 나라에 함께 산다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주님 안에 거하면 이것으로 우리는 스스로 구원에 충족되는 공식같이 느껴지게 되는 겁니다그런데 주님께서는 이걸 거부하는 거예요이런 식으로 구원이 되는 공식을 주님께서는 제시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그 이유가 뭐냐보니까 나에게 문제가 있는데우리가 예수님을 상대할 때에평소에 우리는 예수님만 상대한 것이 아니고이건 너에 해당되는나 외에 사람들나 외에 사람들을 뭐라고 합니까이렇게 하죠,그것이렇게 하죠. 2인칭, 3인칭.

 

평소에 우리는 나 말고 너라고 지칭되는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내가 여기 있으면 부모학교선생님또는 교회 목사님,또는 집안 어른회사 사장님이웃주민들아줌마국가 대통령... 전부 모든 것이나는 여기 있으면 그 주위에 자동적으로 성립되는 것이 너라는 것과 교류가 있겠죠나는 그 사람 어떻게 본다나는 그 영화배우 누굴 어떻게 본다있다면,뭐 그 교류를 어디다가 적용시키느냐 하면예수님도 나 외에 사람이니까예수님 대할 때에 평소에 내가 남 대하듯이,그렇게 동일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우리가 갖고 있습니다한계를.

 

마치 절에 다니는 사람이 부처섬길 때에평소에 좋아하는 사람 섬기듯이부처님한테도 그렇게 섬기는 것을 우리가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우리 한국 사람들이뭐 그리고 예수님 섬길 때도 성심성의껏평소에 내가 섬기는 대로 그렇게 섬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그게 우리한테 자연스럽고. “여러분하나님 섬기세요.” 그리고 목사님들도 하나님 섬기세요.” 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섬기세요섬김그 섬김이 뭐지내가 평소에 우리 조상 섬기고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섬기듯이예수님도 그렇게 섬기면 되는구나그럼 뭐 어려운 것이 없네.’ 라고 그렇게 우리가 쉽게 단정 지을 수가 있겠죠.

 

그런데 거기에 대한 보상이 뭐냐 하면 주 안에 거한다고 하니까, ‘평소에 우리가 남한테 잘해주듯이 예수님한테 잘해주게 되면 나한테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가주 안에천국에 영원히 거하는 혜택이 주어졌구나.’ 이거는 굉장히간단하게 교회 다니고 하는 문제하고는별 문제가 없습니다그런데 요한일서 3장 24절에서 여기다가 사도요한은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뭘 집어넣었습니까갑자기 여기다가 뭘 집어넣어요성령을 집어넣죠.

 

성령을 집어넣으면 이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성령을 고려하지 않고 주님을 정성껏 섬긴다는 것은이거는 백퍼센트 지옥 가는 공식이 되죠성령이 왔다는 것은성령 없이 우리가 평소에 하던 대로 한다면 주 안에 거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말입니다주님 안에 거할 수가 없다그런 뜻이에요인간이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하듯이 그렇게 예수님을 섬기는 것은니가 예수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완전히 다른 예수라는 겁니다.

 

주님은 성령을 보내신 분이기 때문에주님께서 성령을 보냈는데받는 사람이 성령을 고려하지 않고하던 대로 열심히 정성을 다해서 섬기겠다는 것은그건 주님의 만남과 성사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그렇다면 갑자기 요한일서에서 뭐가 중요해졌어요성령이 오시는 이유개입해야 될 그 필요성성령이 없이는 구원이 안 된다는 이 당혹감과 절대 절명의 위기를 우리는 다시 한 번 느낄 수밖에 없어요.

 

만약에 요한일서를 사람들이 의견내서 쓴다면 성령을 뺄 겁니다근데 요한일서는 하나님에게서 온 편지이기 때문에그 안에 성령을 집어넣었으니까이제는 성령마저 누군지를 알지 아니하면 구원은 묘연한 겁니다이제 없는 겁니다필수요건이 되었어요차라리 인간보다도나보다도성령이 구원을 주도하는 처지와 입장에 있는 겁니다그럼 성령이 뭔지를 먼저 아셔야 되겠죠성령은 지난 시간에어렵다는 지난 시간에 제가 했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있으면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리죠여기 선까지가 기다림인데메시아가 와버리면 더 이상 기다림은 없는 겁니다메시아가 오면 모든 것이 결정 되는데메시아가 오고 난 후에도 결정 되지 않았어요메시아가 오고 난 뒤에 계속 일이 진행됩니다마지막 재림할 때까지여기 이미 너희들이 생각하는 메시아가 이미 지나가버린 거예요.

 

인간들에게 묻지 않고일방적으로 주님께서 구원을 완료시켜놓고완료되었다는 것을 통보하기 위해서 성령이 오신 겁니다통보하기 위해서성령은 인간들이 구원을 위해서 하는 모든 행위가 전혀 구원과 상관없다는 것을구원이 끝나고 그 이후의 시점에서 도로 이곳에 오셔가지고우리한테 통보하는 기능을 하시는 분이 성령입니다주님을 열심히 섬겨야지주님한테 순종해야지이 모든 것이 결코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통보해주죠.

 

그러면 성령이 왔다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순종해도 안 되고계명 지켜도 안 되고기도해도 안 되고헌금해도 구원이 안 되고교회 다녀도 안 되고안 다녀도 안 되고십일조 해도 안 되고안 해도 안 되고어차피 구원은 우리 행위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사도행전에 나오는 이방인들이 성령세례 받을 때그 자체가 의인이 돼버린 겁니다이게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나오는 이야기인데워낙 교회에서 모르기 때문에그다지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게 되죠.

 

그러면 이 성령은 누가 보내주는가 보니까성령은 예수님이 보냈다는 거예요그러면 예수님이 일 다 끝나고마무리 짓고도로 오신 거예요제가 글을 한 번 써보겠습니다주님은 죽으실 때 십자가에서 약하게 죽었다는 것을 제가 어디에선가 했죠무능하게 가셔서 유능하게 다시 오셨다이것이 성령의 오심의 취지입니다예수님이 어떻게 죽었다고요사람들한테 밀려서 무능하게 죽었죠예수님 죽고 난 뒤에 아무도 없었어요죽었단다그리고 평상시 생활로 돌아갔습니다그 당시에.

 

그런데 난리가 난 것은 뭐냐 하면사도가 설치고 난리가 났죠사도가 설치게 된 것이 오순절 날 그들이 뭘 받았습니까?뭐 교과서 받았습니까새로 참고서 공부했습니까아니었죠뭐 하나님의 선택 책대로 공부해서 한 게 아니죠그냥 뭐가 왔습니까그냥 성령이 와버렸죠난리도 아니에요스데반집사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할 소리 다한 이유가 뭡니까거기 보니까 뭘 받았다성령이 충만한 거예요충만해서설교해서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예수님 잘했죠?” 뭐 이런 식으로. “잘했어잘했어!” 죽음은 비극의 마지막이잖아요그렇게 비극이어도 본인은 그렇게 비극적이지 않고 그렇게 한 거예요.

 

그래서 이걸 한마디로 말해서 뭐냐 하면기쁨입니다이 기쁨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사랑에서 나옵니다기쁨은 기쁨인데 무슨 기쁨이냐 하면 사랑의 기쁨이에요그러면 성령이 오면 뭘 한다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체계적이고 신학에 정통한다아니디요아니디요갑자기 북한 말을 쓰는데아니지요아니지요기쁨이 있어요기쁨이 있단 말이죠성령이 오게 되면 기뻐요어떤 기쁨? ‘에이안 해도 되는구나!’ 하는 기쁨. ‘괜히 마음으로 쫄았잖아?’ 쫄았다는 말은 이상하지만. ‘에이괜히 쫄았네!’

 

아니성령이 와서 구원받았는데이미 구원을 확정지은 분이, “어이구원받았어!” 심판관이재판관이 해버렸다니까요.재판관이누가복음 18장에서 성전에서 두 사람이 엎드려서 기도하죠한 사람은 기도하는데 분간도 안 돼바리새인은 자랑질 하는지기도하는지분간도 안 돼요. 11,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강의 다시 해봅시다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어떤 방법이냐내가 남들한테 평소에 하던 대로하나님을 상대로 생각해서 열심히 섬기는 거죠그렇게 섬기면 남들이 다 칭찬하니까. “아이구정성도 지극하여라아이구착하기도 하여라아이구세상에간도 떼 준다고 하고그리고 돈도 주고아이구저렇게 하나님께 복 받을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복 받아도 아마 30배 복 받을 거라.” 라고 하는 그러한 기준들이 그 시대에 있기 때문에그 기준에 맞추면 맞출수록 점점 더 의인이 되어가는또 의인 소리를 듣는그런 보람을 느끼며 살았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별 직업 없었어요그냥 성경만 들으면서요새 말로 하면 말씀폐인그냥 말씀만 들어보면서 실천에 옮겨서 남한테 지도자급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그게 보람이었습니다기도할 때도 떠벌리면서 기도하고시장가에서 구제해놓고 떠벌리면서금식할 때도 흉악한 모습을 해가지고천하에 모든 질고를 혼자 다 지고 가는 어린양처럼 모습을 해가지고폼 하나는 멋들어지죠폼 하나는그래서 저는 개량한복 입는 사람들이 좀 수상해요환경운동개량한복왜 옷이 한결같이유니폼이 꼭 중이 입는 옷 같으냐 이 말이죠삼보일배 할 것 같아그렇게 하면 삼보일배 하는 것 같아그 사람들이.

 

그런데 그 옆에 누가 있었습니까? “주여저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죠주님께서는 장차 올 심판을 미리 앞서서 순회재판을 하는 거예요순회재판. “피고는 들어라너는 의인이다그리고 바리새인은 의인이냐너는 지옥가거라너는 죄인이냐너는 천국가거라!” 그 자리에서 합격통지서를 내려줬습니다이걸 한국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사자성어로 수시모집이라고 합니다수시모집심판이전에 이미 심판 뒤의 결과가 확정된 사람신분수시모집이에요.미리 대학에 합격했어요.

 

성령은 바로 이걸 통보하러 오신 분이에요그러니까 뭐가 생긴다기쁨이죠그 기쁨을 요한일서에서는 뭐냐사랑의 사귐니하고 먼저 사귄 것이 아니고그 전에 아버지하고 나하고 유일하게 사귄 사귐 속에서니 인생이 지불해야 될 돈과 값을내가 십자가에서 주님과 사귀어서니가 지불해야 될 모든 돈을 내가 다 지불했음을 성령을 통해서 통보해주니까,지갑에서 십일조 내려고 하는데지불했다는 거예요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받지를 않아요.

 

누가 지불했습니까?” “내가 지불했잖아.” 그 모든 죄 값을 대신 다 지불해서그걸 요한일서에서는 화목제물이라고 합니다화목제물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주님 앞에 더 보탤 행위가 남지를 않았어요그것을 가지고 주님께서 사귐이라고 하고그 사귐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사랑이라고 하고그 사랑이 오게 되면 우리는 기쁨이 생기겠죠사랑의 기쁨그것이 바로 구약 시편에 나오는 성경구절을 선취한 겁니다.

 

잠시 시편 한 번 찾아봅시다누가 빽 써가지고 성경 좀 찾아보라고 하는데 빽에 굴복했습니다시편 149편 4절을 누가 한 번 읽어보세요.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보고 기뻐하죠누가복음에서도 광야나 들판 같은데서 목자가 밤에 양치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까누가복음 2장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기뻐하는 자가 아니라기뻐하심을 입은 자하나님께서는 니를 보기만 해도 왜 그렇게 기쁘냐?” 이거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승낙하신 자들 가운데 뭐다? “평화로다.”

 

이것은 천사들의 찬양이 곧우리의 신분을 보고 찬송한 천사들의 감상문입니다하나님과 우리를 보고우리는 몇 되지도 않지만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내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아!” 이렇게 보고 계신 거예요뭐가 왔기 때문에사랑이 왔기 때문에사랑은 누가 가져다 줬어요성령이 왔기 때문에그러니까 다시 한 번 강의 처음부터 시작한다면우리가 주님 섬긴다는 것은 성령 빼고 섬기는 방법밖에는 우리가 배운 것이 없어요정성을 다하고 순종을 한다고 하지만하나님의 자비 앞에서는 순종이 무의하다고 제가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죠이미 넘치는 자비 앞에서는 나의 순종이 빛을 잃어요.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순종은 꼼수에 지나지 않습니다순종하는 척 하면서 내심 30배 60배 100배를 노리는일종의 투자에요돈 놓고 돈 먹기뭐 애들은 가라!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 돈 타라돈 타면 돈 먹는다이 말이 아닙니까애들 앞에서 뱀 장사하는 것처럼그러나 주님께서는 성령이 임한 순간 우리는 뭐냐 하면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무엇의 대상주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고그것이 시편 149편 4절에 의하면이미 하나님께서 예언한 선취하는 겁니다.

 

시편 68편 3절을 봅시다집사님이런 것 좋아하세요성경 찾아보는 것누가 이야기 했더라집사님 한 번 읽어보세요.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찌어다” 시카고 강의에 참석했던 어떤 분은예수님 복음을 알고 너무 기뻐가지고심지어 한의원 마트 앞에서 아무도 봐주지도 않는데기타반주에 노래에 맞춰서 약간의 율동,비슷한 춤까지 췄다는 거예요얼마나 우사스러운 행동입니까그런데 고마운 것은 아내를 위해서믿음도 개뿔도 없는 남편이 앞에서 기타 쳐주고 2년 동안같이 했다는 거예요세상에샌디에이고에서 와가지고 그 분들이 참석했어요.

 

사랑이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우리가 사귀는 그 사랑 말고값을 다 치렀고, “너는 죄인 되어도 괜찮아.” 죄인 되어도 하등에 관계없이그냥 그대로죄인이 되던뭐가 되던 관계없이 그대로창기세리간통을 하다 잡히던 관계없이도둑이 되던그냥 그대로 나의 기쁨의 대상으로 이미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끝났다는 겁니다끝났음을 어떻게 압니까끝났으니까 내가 왔잖아요누가예수님의 영이 왔잖아요값을 대신 다 지불하신 그 분이 오셨잖아요그 분이.

 

대학당국의 인사책임자가 합격통지서 들고 와가지고판사님이 와가지고, “실례합니다여기 아무개 계시죠축하드립니다합격입니다.” 그게 성령이에요성령그러니까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는 말은두려움이 있을까요없을까요성령의 존재를 인정한다면그 기능을 인정한다면그 임무를그 취지를 안다면세상에어떤 교회에서 하는 협박과 공갈, “당신 그거하면 이번 주 바이어하고 계약 깨져당신 자식 성적 내려가지금 당신 목사한테 험담하면 3대를 멸할 줄 알아당신 앞으로 잘해줘야 해안 그러면 당신 집안 끝났어가계의 저주가 흐른다고!” 이런 공갈협박에 속아 넘어갈까요안속아 넘어갈까요안 넘어가죠.

 

말씀 잘 들으셔야 해요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목사님을 세워주신 거예요가짜는 가짜끼리 놀라고벌벌 떨거든처음부터 이거는 어떤 누구도 방관한 적 없다는 것은그런 입장인 것을 깨달으라고 그런 목사님들을 많이 유포하신 거예요그 목사님들 참 잘하신 거예요제 임무를제 역할을제 마귀적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박수 받아야 해요박수 보내요그렇게 해서 오천 명 모으면 무슨 의미며천명 모으면 무슨 의미입니까?

 

거기서 벌벌 떨고 있는데큰 계약 건 앞두고 벌벌 떨면서 새벽기도 나오는 그 모습들을 보세요수능 백일 앞두고지금 백일도 안 남았어요앞두고 교회마다 기도하는 그 모습들노골적으로 백일 내세워서 하면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지만,교회는 은근히 새벽기도 나오라고. “새벽기도 나오세요3이 있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한가해배짱이 센 아줌마네?” 지금 고3이 있다면서 어떻게 새벽에 잠이 옵니까교회 나와야지이런 것우리는 거기에 얼마나 말려들었고속아 넘어 왔었습니까?

 

그러면 그 기쁨이 어디서 나온다고 했습니까기쁨은 성령이 오셔서 해준다는데성령이 결국 뭘 하느냐사귐어떤 사귐사랑의 사귐을 하는 거예요그러면 성령 왔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어떤 행함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어떤 고백으로 나와요어떤 고백입니까? “주님이여나로 인하여 주님이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나로 인하여내가 주님의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란 드라마에 보면 이 장면이 나와요세자가그 나라의 2인자죠왕이 있고. “라온아!” 라온(즐겁다는 뜻의 옛말)이라는 말은 기쁨이라는 말이에요저도 드라마에서 처음 배웠어요. “라온아!” “저를 라온이라고 합니까?그냥 내시인데.” “라온아기쁘니까 기쁘지!” 논리적으로 뭐 메시아 이전 이후가 어떻고조직체계가 어떻고그게 중요한 것보다도우리가 아가서를 한 번 찾아봅시다성령이 오게 되면 조직체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기쁨이 아닐까요?

 

아가서 2장 6절을 한 번 봅시다아가서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구약960페이지에 있습니다.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아가의 내용이 뭐냐 하면남성의 집요한 사랑을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근데 여자는 도망가요도망가서 문을 탁 닫는데문이 닫히기 전에 남자가 손부터 탁 내밉니다. “이 약 먹고 감기 나으세요.” 콘택600. 판콜씨탁 주면서 나으세요이거는 뭐 스토커도 이런 스토커가 없어요여자는 도망가고 남자는 끝까지 오면서 만나가지고,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이게 주님이 죄인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부부관계로 묘사한 거예요이걸 가지고 요한일서에서는 뭐냐 하면 거하다’ ‘소속됐다.’ ‘~안에 있다.’ 우리는 사랑 안에 있음을 성령이 와서 통보해주니까, ‘아하내가 지금 사랑 안에 있구나.’ 새로운 처소가 여기서 드러나게 됩니다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사랑이라는 것을 부를 때는 이렇게 불러야 돼요정말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불러야 됩니다. “당신 앞에서 내가당신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내가 있는 것이 당신한테 짐이 되지 않기를!” 그럼 아내가 하는 말이, “그러니까 일찌감치 집구석에 들어오던가?”

 

자기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대가 있음 자체가그대 있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나를 잊어도 더 이상 상관없습니다.” 이게 사랑입니다그게 바로 아버지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거예요그 사랑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된 겁니다따라서 사랑이 오기 전까지는성령이 오기 전까지는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하냐 하면나에게 내가 제일 중요한데내가 중요하다보니까 나는 항상 내 것을 사수하기 위해서 두렵고 떨리고 벌벌 떨어요그런데 성령이 오고부터는나보다 더 소중한 분이 떴기에그 다음부터는 나에 대한 신경을 안 쓰다보니까그 분만 있으면 나는 기뻐하기 때문에뭐가 되겠어요두려움이 없는 겁니다사랑 안에는 뭐가 없나니두려움이 없는 거예요.

 

미래의 나의 주관자를 일찍지금 만난 겁니다정말 누가 들으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요정말지우고 하겠습니다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여기 있다그리고 성경에 보니까 메시아그리스도가 온다는 거예요그럼 우리의 할 일은 이미 정해졌습니다왜냐하면 메시아는 구원자도 되고동시에 심판주도 되죠그럼 구원이 있고심판이 있고우리의 최종적인 시험날짜가 앞에 있으면우리는 그냥 대비하고 준비하면 되겠죠이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겁니다누가 오기 전까지는성령이 오기 전까지는.

 

그래서 내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해서구원받을 때 유리하게 작용해서합격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사전에매사에 자기 행동과 마음을 조심하고절제하고관리하고이렇게 해서 살아가게 되면적어도 지옥은 안 가고 천국에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입니다그런데 성령이 와버리면성령이 어디서 온다고 했습니까이미 메시아가 오고 난 뒤에그 다음에 성령이 내가 있는 곳에 왔기 때문에우리는 뭘 기다리느냐 하면 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내 허락도 없이내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나를 합격시킨 분을 어떻게그리워하고 보고 싶죠.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가 되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고린도전서 13장 12그래서 여기 있는 우리가 기다리는 이것은 뭐냐 하면이것은 하나의 그냥 기다림이라면기다리는 목적이 뭐냐주님 좋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내가 구원받기 위한 기다림이라면성령이 오게 된 우리가 기다리는 이것은 뭐냐 하면주님에 대한 사랑의 그리움으로 바뀌는 거예요이미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렀기 때문에이미 구원받은 자 되게 하신 그 과잉적인 자비그냥 자비가 아니고 내가 모르는 것까지 다 알아서 처리해준 그 넘치는 사랑을 이렇게 해주신 그분이 보고 싶은 거예요.

 

보고 싶을 때어떻게 보고 싶겠어요그리움으로사랑으로 보고 싶죠그게 바로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사귐이에요사귐성령 안에서사랑 안에서 사귈 때너는 이미 합격된 자합격된 자를 요한일서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하나님께 속한자라고 되어 있고불합격된 자는 뭐라고 합니까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마귀에게 속한 자이렇게 되고 맙니다마귀에게 속한 자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자에게는 이미 죄가 처리되었기 때문에 죄가 없게 되고마귀에게 속한 자는그 마귀에게 속한불합격 된 이유를 철저하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으로 작용해요계명으로.

 

계명으로 작용해버리면그 계명의 내용은 혹독한 계명의 내용이 됩니다그 혹독한 계명의 내용의 일부가 뭐냐 하면요한일서 3장 16누가 한 번 읽어보세요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지 아니하는 자는,이거는 사랑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누락되고 탈락되겠죠그리고 사랑이 아니고 사랑의 계명이라고 했으니까.

 

계명이라는 의미는 뭐냐 하면이걸 안 지키면 계명이 위반된 것이 되어서거기에 대한 처벌이 따른다는 의미에서 계명이라는 말을 했어요계명그냥 선물이 아닙니다기준이에요심판의 기준으로 온 거예요따라서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지 아니하는 자는온전한 사랑의 계명에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에이거는 구원에서 탈락된다는 내용이 바로 사랑의 계명으로 이 세상에 우리에게 주어진 겁니다그리고 그 앞에 15절에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뭐한 자입니까?살인하는 자잖아요.

 

그러면 살인하지 않고 영생 얻으려면 어떤 조건이 되어야 됩니까스물 네 시간 평생 동안 한번도단 한 번도 뭘 하지 않아야 돼요누구를 미워한 적이 없어야 돼요누굴 미워한 적이 있으면 형제를 미워한 것이 되어서 살인자이기 때문에계명이라는 차원에서 그거는 구원받지 못한 자가 되는 겁니다그럼 구원받지 못하는데그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뭐냐 하면잘 지키다가미워하지 않다가그 다음에 어느 날 미워해버리면 그때부터 탈락된 것이 아니고요한일서 3장 10절에서 처음부터 너는원천이원본이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에 기어이 너는 그것을형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이벤트가사태가 결국에는 일어나게 되었다고 폭로하는 겁니다.

 

잘 할 때는 하나님께 속했다가 한 번 삐걱해서 마귀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아무리 잘해도 단 한 번이라도 형제를 미워한다면, “너는 근본자체가 썩어먹었어!” 하는 판결을 내려버린다 말이죠누가계명을 주신 분이. “계명을 주신 분이 그 사랑의 계명에 준해서 판결을 내렸다니가 한 번 실수했다고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야너는 근본이 마귀에게 속한 자라는 것이 그때 니가 티가 났어폭로되었어탄로 난 거야따라서 처음부터 니는 안 되는 인간이야.” 하고 탈락시켜버린 겁니다.

 

그러면 평소에 최선을 다하여 성심성의껏 하나님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이 요한일서에 의하여 모조리 다 마귀에 속한 자입니다아무리해도 이게 안 된다는 겁니다아무리 해도 할 수가 없어요왜냐하면 더 무서운 이야기는 형제를 미워했다미워 안 했다 하는 판정을 본인이 내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거예요미워하지 않았지만그때 이빨이 아파서 냉정한 표정을 지었습니다이것도 안 돼요사랑해야지 왜 냉정해요환희 웃어야지 왜 냉정했습니까냉정했다는 것은, ‘니도 때 맞춰서 집에 좀 오지내가 아픈 것도 모르고 집에 찾아와서?’ 이런 식으로 혼자 궁시렁궁시렁 하는 것이 주 앞에 들통 나기 때문에어떤 경우라도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아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그런데 그 사실을 이미 합격 받은 사람성령이 온 사람은, ‘과연 내가 내 힘으로 구원받지 못할 처지에 있게 하셨구나.’ 우리는 남들 대할 때인간적 사귐 외에는예수님이 아버지와 사귀는 사귐에 대해서 아는 바다 전혀 없다는 이유 때문에우리의 사귐은 전혀 구원에 보탬이 되지 않는 사귐이었고사랑이었다는 것을 합격통지서 받고 난 뒤에새삼 그걸 바라보면서이 모든 죄 값을 단번에이미 값을 치러주신 그분이 보고 싶고 사랑이 그리워지는 겁니다.

 

근데 그 분이 성령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그냥 사랑한 것이 아니에요일체 우리의 조건을 일체 묻지도 않고 무조건 사랑했거든요그 사랑이 어디에 나왔다고 했습니까아가서사랑받는 여자는 도망가고 사랑하겠다는 남자는 쫓아오고.이 이야기가 바로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아가서입니다기어이 먹고 말거야치토스하는 심정으로계속 쫓아오면서 집요한 구애를 해버립니다날 사랑해달라는 것이 아니고 내 사랑을 받아달라는 겁니다. “내 사랑을 받아주오!” 내 사랑 받아주오결혼해듀오결혼업체선전이에요선전문구가 결혼해듀오주오가 아니라 듀오결혼해주세요.

 

구약은 예언이죠그 선취는 뭐냐 하면결혼해서 이미 결혼관계에 돌입했다고 성령이 와서 통보해주는 겁니다그래서 요한일서 3장 24절에 그렇게 이야기한 겁니다우리를 주님이 일방적으로 사랑했고그 사랑의 결실물결과물이 우리 자신인 것은 누가 와야 된다성령이 오니까우리가 이루지 못한 그 계획을 하나님께서 다 이루셔놓고 그 이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자기자랑을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찾아왔다는 사실을자기 사랑인 것을 우리는 같이 동감하게 되는 겁니다그게 바로 3장 끝까지 하는 주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래놓고 이제는 우리가 뭘 보자요한일서 3장 15,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그걸 볼 때어떻습니까?거기서 뭐가 나오죠공포나 두려움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뭐가 나옵니까? ‘이걸 언제 지켜언제 지키지?’ 이게 나오는 것이 아니고뭐가 나오죠기쁨이 나오죠어떻게주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뭐냐 하면이웃을 사랑하는데완벽한흠이 없는목숨까지 바쳐가며 사랑하고 있는 상태로 우리를 그렇게 규정해주신다는 고마움이 있어요아무것도 안 했는데귤만 까먹었는데귤만 까먹었는데, “세상에자기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니!” 이렇게 평가해주는 거예요.

 

그게 우리한테는 오히려 낯선 거예요논리가 안 맞아요논리를 비약해도 너무 비약한 거예요이제 그걸 설명해드리겠습니다누가 귤 먹을까 싶어가지고 혼자서 숨어가지고 혼자 귤 까먹는데주님께서 어깨를 치면서, “이 자식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니아이고기특하여라!” 이렇게 난데없는 과도한 평가를 내리는 이유가 뭐냐그 이유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궁금해요오백 원그 해답은 바로 사무엘상 1장에 나옵니다사무엘상 1장을 봅시다아까 어떤 분이 성경 많이 찾자고 해서 제가 많이 고려하는 중입니다그것도 주의 뜻이라고 알고.

 

사무엘상 1장 5절을 봅시다. “한나에게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성태치 못하게 하셨다는 것은 임신하지 못하게 만들었죠사무엘상의 한나 이야기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교회 일 년만 다녀도 다 아는 이야기교회 일주일만 다녀도 아는 이야기는 달란트비유이야기고일 년 정도 다녀야 아는 이야기가 한나 이야기에요주변에 집사님 중에 같은 이름인 한나라는 이름이 많기 때문에사무엘상 1장 5절의 말씀이죠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성태치 못하게임신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죠.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아무것도 안 했는데 어떻게 형제를 완벽하게 목숨까지 바친 상태로의로운 상태로 간주하는 것이 뭐냐 하면잉태치 못한 자의 자식은 충분히 그런 의라는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마땅하는 겁니다마땅하다잉태치 못한 자의 자식이게 말이 됩니까임신이 안 된 상태에서는 태어날 수 없는 여지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태어났다.분명히 태어날 때는 잉태해서 태어났는데중간에 잉태치 못한 자라는 것을 집어넣어버리면여기서 뭔가 우리의 논리로써는 이루어지지 않죠.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 원하는 바는 뭐냐잉태치 못한 자식이라는 표현자체가이게 갈라디아서 4장 27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나중에 연결시킬게요그 연결이 뭐냐 하면지난 시간에 한 것처럼인간이 메시아의 말씀을 들어서 구원에 이르는 이 노선에서 절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이 노선을 하게 되면왜냐하면이 노선은 인간을 뭐로 보느냐 하면 육으로 봐요육으로 난 것은 뭐가 되느냐 하면요한복음에 보면같은 사도요한이 지은 책에 보면육으로 난 것은 육이에요노선이 바꿔져야 해요노선 갈아타기가 돼야 돼요.

 

노선 갈아타기가 돼야 하는데이쪽 노선에서 저쪽 노선으로 갈아타는 연결고리가 없습니다교회백날 다녀봐야 구원 안돼요교회 다닌다는 자체가 누구한테 자꾸 의지가 되고기대를 하게 되느냐 하면성경말씀을 지켜내는 내 육신에 경건과 육신의 고상함과 육신의 성실함과 순종함에다가모든 기대를 거기다가 다 쏟아 부을 수밖에 없어요.

 

그게 뭐냐 하면이케요저케요하는 코미디에 나오거든요이렇게 할까요저렇게 할까요목사님이렇게 하면 됩니까저렇게 하면 됩니까이렇게 하면 내 구원에 보탬이 되겠습니까저렇게 하면 내 구원에 보탬이 되겠습니까선교 헌금 내면 내 구원에 약간의 보탬이 되겠습니까십일조를 내게 되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까요찬양대 봉사하면 그 찬양대가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

 

아무리 그것을 물어도 주님께서는, “(단절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지 않습니다이 모임에 제일 첫날 첫 번째 시간에 한 이야기가 그 이야기였어요구원이 무엇이냐라는 것은 없다뭐가 있다복음이 무엇이냐복음이 나타나서복음 자체적으로 나오는 그 능력이구원이 안 되는 자를 일방적으로 의인되게 하여 구원되게 하는 그 결과물들만 모인 집합체가 뭐냐 하면 천국입니다행한 것도 없이 의인된 자들이 모인 곳이 천국이라 이 말이죠.

 

그래서 천국은 우리들의 나라가 천국이 아니고무슨 나라냐 하면아들의 나라에요아들의 나라라니까요누가 시작해서 누가 관리해서 누가 마무리했기 때문에 그 아들이 나라에서는 면류관도 반납을 해야 돼요. “우리가 쓰는 것이 합당치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왜 강단에서 못하냐 이 말이죠그것은 사람들이 복음이 궁금해서 오는 것이 아니고이 고생 많은 세상에서이 땅에서 고생하는 것이 자기한테 손해라고 여기거든요그 손해를 천국 가서는 몽땅 보상받기 위해서그걸 노리고 교회 온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순전히 관심사가 누구한테 있어요그저 나한테나는 나 혼자고 사귐이 없어요모든 주위 사람들은 내가 이용해먹기 위한 대상이지결국은 모든 것은 나한테 귀결되거든요나 잘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고 노동이라 이 말이죠종교노동기도라는 종교노동그러나 하나님의 천국은 뭐냐사귐이죠사귐그 사귐의 관계를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그게 사랑이고그 사랑이 있는 사람들은 감정적인 어떤 현상이 나온다고 했습니까두 글자로기쁨기쁘죠.

 

기쁨인데그 기쁨의 내용을 뜯어보니까 뭡니까갈 필요도 없고가서도 안 되고갈 이유도 없고가고 싶지도 않고가고자 해도 못가는그런 나라에 이미 가게 되었다는 통보가 주어졌기 때문에너무 고마워서 기뻐하고, “이제 나는 주님과 사귈래?” 라는 사귐이 형성될 때그게 주님께서 유발한 현상이 되는 겁니다그게 뭐냐 하면, ~안이에요천국은 어디에 있느냐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안에 또 다른 안을 만들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이 캘거리든한국이든 관계없어요주님의 성령이 오게 되면성령 안에 이미이 세상 안에눈에 보이지 않는 특이한 관계로 사귐을 통해서 새로운 안에 들어 있으면이 사람은 이 캘거리 안에 들어있는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이 성령 안에 있는 자로서 캘거리 안에 들어있는 겁니다역사 안에서의 묵시죠역사 안에서의 묵시세계.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1장에 나오는 밧모섬에서의 사도요한의 형편이고 처지입니다참된 성도 위에서 일곱 교회가 다 싸그리 다 멸망하고 사라져요교회는 눈에 보인다는 이유 때문에 사라져야 돼요그래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있죠.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의 작용은 더하기 아니고 빼기에요더하기(+)가 아니고 빼기(-)입니다여러분들 피부에 사마귀가 날 때저는 사마귀가 자주나요그래서 저는 약을 한 일주일 바르는데바르면 사마귀가 톡하고 빠지죠빠지고 난 뒤에 그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완전히 분화구 같아.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고지옥을 지옥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누굴 이용했어요우리를 이용한 거예요분화구처럼사마귀 있던 자리에 사마귀가 빠지고 나머지기가 뭐냐 하면잉태치 않은 자를 핍박했던육에서 육으로 나온 사람들이 거기에사마귀 빠져나온 곳에 동그랗게 모여 있잖아요그게 바로 안 보이던 지옥이 그렇게 보이고안 보이던 마귀에 속한 사람들이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마귀에 속한 사람을 드러내기 위해서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당장 데려가지 않고쏘옥 집어넣었다가사마귀 빠지듯이 뽕소리가 나요포도주 뚜껑 따면 어떤 소리가 납니까펑이 아니죠뽕하고 열죠사마귀 빠지고 난 나머지 빈자리 있죠숨겨져 있던 마귀의 자손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는 거예요그래서 성경의 뜻은 뭐냐 하면 하늘나라의 확장이 아니고 지옥의 확장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성경입니다오늘도 한 개 배웠어요지옥의 확장을 위해서 일합시다.

 

지옥은 드러나지 않습니다반드시 복음 믿는 사람이 성장할 때 그 주변에 형성되는 것이 지옥이에요복음이 없는 곳에는 지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예수님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땅에 귀신과 악마가 있는 줄 몰랐어요그러나 예수님이 나타나자마자 예수여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하면서 예수님 중심으로 운집하고 모이는 겁니다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 오시기전까지는 점잖은 사람인데오시면서 예수님께서 너그 애비는 사탄이다.” 라고 하셨죠악마의 정체가 그렇게 드러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함이 아니고복음으로 인하여 지옥이 형성되고복음을 위하여 천국이 있다는복음을 위하여 주께서 일했지우리 구원을 위해서 일한 것은 아닙니다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창세기 3장에서 우리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낼 이유가 없어요쫓아내도, “그래미안하다좀만 고생해라.” 이럴 것 같으면 동쪽으로 가는 길을 일부러 화염검을 치고 천사가 막을 필요가 없어요스물네 시간 돌아다니면서혹시 침범할까 싶어서 돌아다니잖아요그건 강력한 의지입니다절대로 너 같은 인간은 하나님과 사귐이 없다강력하게 저지한 겁니다.

 

그게 인간입니다인간은 어떤 존재냐구원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입니다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해요절대 구원하지 않습니다복음을 전하는 효과로써 비로소 구원이라는 것이 성사된 거죠구원위주가 아니고 복음위주입니다사람은 개인위주지만주님은 복음위주입니다복음은 바로 예수님 중심이죠평소에 우리는 우리중심이고우리 중심인데교회 다녀서 구원받겠다는 자체가 이거는 마귀적인 실시지전혀 이거는 관계없습니다거기 가봐야 지옥 가는 방법만 실컷 배우지복음에 대해서 없는 거예요.

 

맨날 배우는 것이 자기 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하면 됩니까목사님이렇게 하면 내가 구원됩니까?” 맨날온종일스물네 시간 전부 다자기 구원에만 몰두해가지고교회에 온 정성과 시간과 돈을 다 바치고 있는 거예요주님의 관심사는 그게 아닌데복음인데예수 그리스도인데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구원에 이용만 하려고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 채 교회가고또 집에서는 경건훈련하고성경백독하고, Q.T하고. Q.T 백날하면 뭐합니까구원 얻겠다는 시도가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그거는 유대인처럼 그냥 기다림이에요. ‘이렇게 하면 좋은 점수 받겠지이래하면 되겠지?’ 그리고 또 뭐 잘못했다 싶으면 회개하고.

 

여러분이게 회개할 문제입니까?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한 자니” 진짜 이게 회개가 될 문제입니까예배 참석 열한시인데 열한시 삼십분에 왔다이거는 반성하고 집중하면 다음에 열한시에 도착할 수 있어요이거는 가능한 문제입니다근데 형제를 미워한 자는 살인한 자다제가 두 번 다시는 미워하지 않을 게요과연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문제입니까아니 미움이사람 골라가면서 미워합니까미울 수밖에 없는 인간이 등장할 때는 미워할 수밖에 없어요괜히 준 것도 없는데 미운 사람이 있잖아요.

 

여러분드라마에 탤런트 나오면, ‘저 인간 왜 나오나?’ 하면서 미워지잖아요그 사람은 마귀에 속한 사람이에요왜 미워해요형제를그래서 형제는 없는 거예요형제라는 것은 없습니다형제라는 것을 누가 평가하기 때문에내가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계명이 이 머리에 박혀있기 때문에이걸 지켜야 하나님께 구원받는데 유리하게 작용한다는그러한 나름대로 자기 구원에 몰두한 그 방침에 의해서 사랑할 사람만 사랑하고이뻐 할 사람만 이뻐 하니까형제라는 개념 자체를 누가 선택했어요내가 선택했어요만만한 것만 형제에요.

 

선교단체에서 전도할 때도 이쁜 아가씨들한테만 전도하는 이유를 이제 알겠죠못생긴 것들은 전도도 안 해요. ‘지옥에나 가라니는 사영리 들을 자격도 없어!’ 꼭 이래요교회에서 목사가 심방할 때꼭 돈 되는 이런 사람들돈 되는 사람들가가지고 거지꼴 하고 있으면에이왜냐하면 하나님이여하나님이 시킨 대로 다 했습니다.” 라는 어떤 성과를손에 성과급을 내가 쥐고 싶은 거예요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도 이걸 당당하게 내밀고 싶은 거예요. “주님을 위해서 이 정도까지는 했습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그거 아니야더더더 더 완벽하게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6절은 이렇게 해석되는 겁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대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나는 나 자신을 그대 앞에서 잃어버리게 됩니다그대 때문에형제가 없었는데형제가 누구냐 하면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나는 나 자신이 잃어버린 게 되죠잃어버린 이것이주님이 아벨이 되시고 우리는 가인이 되어서아벨이 드러나기 위해서 가인이 이용당한 것처럼죄인으로 드러난 이것을 주님이 사용함으로 말미암아우리는 형제의 형제 됨을 위해서 내 목숨을 잃어버린 자로 규정을 받는그러한 것이 성령 안에서 기쁨으로 확인되는 겁니다지키는 것이 아니고확인되는 것이에요.

 

조금만 더하겠습니다모든 매사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주님께서 내가 너를 사랑해서 내 형제로 받아줬다” 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우리로 하여금 확인하는 차원에서그 결과로 사귐이사랑이 기쁨으로 오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 계명들을 주신 겁니다. “역시 주님이 주가 되셔야 되겠습니다성령이 오셔야만 구원되는군요.”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런 말씀을 주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