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23서

캘거리강의25강 160920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6. 10. 13. 04:34
2016-10-13 00:10:51조회 : 5         
20160920 요한1서 캐나다 캘거리강의25-이 근호 목사이름 : 이미아 (IP:122.43.165.245)

20160920 요한1서 캐나다 캘거리강의25-이 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듯이예수님의 십자가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는 것이고거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반대했잖아요그 반대의 증거가 십자가 죽음입니다그러면 왜 반대했을까?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사탄은 자기가 갖고 있는 그 자체에 몰입합니다내 것에 대해서 지적질 하지 말라는 거예요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잔소리하지 말라는 이런 식이죠그 자체가아까도 이야기했지만계속 연속적으로 동질성동질성동질성을 지속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동질성 유지자체가 뭘 거부하느냐 하면숨겨진 진짜 하나님의 모습을 거부하는하나님이 반대세력이 갖고 있는 본질이라는 겁니다이것이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는지난 시간에 이야기했지만요한일서를 누가 요청했습니까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사도요한은 우리에게 계속 제시하는 겁니다이게 현실이라고성경의 이야기가 현실이지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이 말이죠아까 화장실에 가보니까 저기에 있는 간호사아주머니들이 딴따딴따~♬ 딴따딴따~♬ 이러며서 춤을 추더라 말이죠저게 현실이냐 말이죠저게 현실이냐?

 

이건 이런 뜻입니다한 번 적어볼게요. “죽은 사람들이 모두 아는 어딘가에 살아있다.” 이 문장의 뜻은 뭐냐 하면사람이 살다가 죽게 되게 되면죽은 자들끼리는 다 아는 어떤 한 장소에 모여 살고 있다이런 내용이잖아요이런 내용이.이 내용이 이야기하는 것은 뭐겠습니까이 내용이 우리에게 추가적으로 어떤 내용을 더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까추가적으로 더 이야기하는 것이 없죠여기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처럼죽어서도 한 데 모여 산다추가적인 다른 의미가 없죠추가적인 의미가 없다는 말은그래서 어쩌라고?

 

이 문장에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는 지금 안 나타나있죠사람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문장이이게 하나님의 뜻 맞지요라고 억지로 추인을 해달라는 거예요내가 아는 이것에 대해서우리가 편하게 생각하는 이것에 대해서아마 천국이 이런 나라이지요라고 인정해달라고 강요하는 셈이 된다 이 말이죠그런데 이렇게 돼버리면 우리는 어디에 살아있죠산다죠그런데 여러분살기 위해서 행동합니까살아있는 것이 행동이 나옵니까아니면 행동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걸까요?

 

살아있기 위해서 행동을 해버리면살아있다는 자체에서 어떤 추가적인 의미가 안 나와요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면어제 이야기한존재에서 기능이 뽑아져 나온다면그 기능이 비로소 우리가 사는 목적과 이유가 되겠죠그런데 사람들은 뭘 하느냐 하면동화에 보면둘이 사랑했대요뭐 했대요둘이 열심히 어떤 행동을 하는구나그래서 둘이 결혼했대요결혼하면 그거 사랑이잖아요사랑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종결지어버려요계속 어떤 행동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바로 사탄은악마는 모든 것을새로운 기능을인간이 행동하는 것을자기가 여기 영원히 있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그 사탄의 생각에 오늘날 우리 생각이 갇히고 말았는데.

 

성경 요한일서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여기 어디 살아 있다가 아니라천국이 있다면 천국다운 행위를 계속 보여주는 거예요여기 천국 가는 사람이라면 천국 가는 사람끼리 계속 행위를 보여주는 거예요그래서 본문을 쭉 보세요.요한일서 3장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미워하는 행위죠. 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우리가 형제를 뭐하므로사랑함으로행위가 나오죠그러니까 사망에서 생명으로 거주를 했다면그 거주 자체가 끝이 아니고거주한 행위를 보여주기 위해서 먼저 거주를 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미 확정시킨 것은너를 구원한 것으로 끝이 아니라구원했으면 구원받은 사람답게 행위를 보여준다 이 말이에요이 이야기 들으니까기존교회에서 목사들이 하는 이야기하고 별반 다를 것이 없이 똑같이 들립니다헷갈립니다이런 생각이 들죠구원받았으면 티를 내야지이런 생각하고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리 사람들이 구원받은 것을 행위로 보이라고 한다 하더라도여전히 사람들의 본성이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니고행함은 중간과정으로 다 집어넣어버리고, “이렇게 했더니만 이런 최종적인 결과에 도달했습니다.” 하고 그냥 사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은 뭐냐마귀의 생각입니다어쨌든 살면 된다는 동질성을자체적인 동질성을 고집을 하는 거예요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아까 주님의 사랑을 이야기했는데, 10절을 다시 봅시다제가 방금 전 시간에 했던 취지가 나와요.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라고 되어 있죠이 말 그대로 하면 이쪽 영역은 하나님의 자녀라면이쪽 영역은 뭐라고 할 수 있습니까여러분 답변해보세요이쪽 영역은 어디에 속했다 할 수 있습니까마귀에게 속했죠그러면 끝났네끝났죠그럼 우리가 이렇게 사네산다존재한다이걸 자꾸 목표로 잡지 마라 말이죠.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뽑아내기 위함입니까마귀에 속한 자는 마귀에 속한 일을 뽑아내고하나님에게 속한 자는 하나님의 일을 뽑아내는데그 행위가 예수님에 의해서 나타난 행위임을 드러내고이거는 사탄에 행위에 의해서 드러낸 행위임을 보고자 함입니다너 행복하게 살라는 목적이 아니라 니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 행위를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그걸 원했다는 겁니다주님의 행위를.

 

그러니까 제가 당부하고 싶은 것은 구원받았으면 뭐 볼 것 없다고 하지 말고구원받은 자가 어떤 행위를 보여주는가를 더 생각하라 이 말이죠구원받은 자가 어떤 행위를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걸 보여주라는 것이 지금 사도요한의 뜻이에요그러면 여기에 마귀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이 본문이 아주 재미있어요저 혼자 재미있는지 모르겠지만.

 

뭐냐 하면 여기 요한일서 3장 18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여기 또 행위가 나오잖아요그렇다면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하나님께서 이미 메시아가 지나간 이후에여기 와서 다시 이 세상이 온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뭐로 만드느냐 하면말과 혀로 사랑하는 집단으로그렇게 규정짓기 위한 행위를 니가 보인다면너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속한 사람의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는 겁니다.

 

한 번 예를 듭시다아까 아프리카 예를 들었는데어떤 이웃에 있는 같은 교인이 간이 아프다목사님께서, “여러분 권사님께서 간이 안 좋습니다간의 생체조직이 맞아야 수술해서 살 수 있는데혹시 누구하나 자진해서 간 떼 줄 사람 없습니까?” 라고 한다면, “뭐 늙은 사람이 대충해서 죽지뭐 할라고 살라고 하나?” 이런 사람도 있을 수도 있고, “아이고그 권사님 욕심도 많다다른 사람은 간을 원하지도 않는데왜 그리 살라고 급급 하느냐?” 이런 핑계를 대면서 자기가 간 떼 주지 않는 핑계를 정당화하겠죠.

 

그런데 20대 애가 간이 아프다이식을 원합니다. “아이구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빨리 가라간 이식 원하지 말고.” 이렇게 할 수 도 있겠죠그런데 순진한 어떤 집사님이 제가 드리겠나이다.” 아내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제가 간 떼어 주겠습니다.” 했을 때에그 부흥사님이 하는 말이 이렇게 천사 같은 사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아내한테 상의했습니까?” “아니요이건 주께서 시킨 것이기 때문에제가 간을 드리겠습니다.” 아내는 기겁을 하죠그 간이 지간이 아닌데 떼 준다고 하나?

 

질문합니다그 간 떼 주는 것은 진실한 사랑일까요말과 혀로 한 사랑일까요문제 간단합니다진실할 사랑일까요말과 혀로 한 사랑일까요? 1초 2초 3초 4초 5...계속 시간은 흘러갑니다빨리 답변해주세요. “말과 혀로 한 사랑입니다.” 그게 말과 혀로 한 사랑이에요왜냐하면우리의 모든 행동이 말과 혀로 한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는 거예요그래서 구원받는 거예요하나님께 속한 자는 뭘 아느냐 하면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죠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잖아요그러면 사망도 알까요생명도 알까요둘 다 알아야죠.

 

따라서 사망이 뭔가를 우리의 몸을 가지고 여기서 뭘 보여주느냐 하면이래서 지옥가야 되는구나를 마음껏 보여줘야 하잖아요보여주는데 그 보여주는 동기가 뭐냐 하면구원받은 성령이 와서 이걸 보여주는 겁니다성령이 와서 보여주게 되면어떤 청년이 간이 없다간을 떼 주기 위해서 손을 들면서 하는 말이, “이게 바로 말과 혀로 때우는 전형적인 그러한 거짓된 사랑입니다.” 라고 하면서 간을 떼 주는 거예요지금 무슨 말인지 혼동이 되는데이해되시겠습니까어떤 행위도 항상 우리는나는 생명을 보여주기 위한 행위가 나오는 사람은 없어요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행위를 보여줘야 되지생명을 보여주는 행위는 인간에게 나올 수가 없습니다이제 좀 머리 좋은 사람은 약간 감이 옵니까?

 

내가 간 떼 주는 이것이 얼마나 자부심이겠습니까이게 바로 성령 받은 사람의 본분이다아무도 안 할 때내가 할게.이것이내가 그전에는 진실한형제를 위해서 목숨 바치는 줄 알았더니만말씀에 비하니까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이것이 전형적인 말과 혀로 때우는 가짜 사랑인 것을이미 구원 받고 난 뒤에이렇게 간사하기 짝이 없는 위장적인 가짜 사랑이구나따라서 그 가짜 사랑을 행사해야 된다안 해야 된다이걸 행사해야 돼요.

 

헌금하는 것이 죄다같은 논리입니다헌금하는 것이 죄니까헌금 안 한다가 아니라헌금하면서보세요내가 이런 식으로 지옥 갔던 인간입니다에이묵으라이런 짓 하면서 지옥가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이런 모든 죄를 누가 없애줬다?십자가에서 주께서 이미 합격시켰습니다이제는 말한다이게 바로 죄인 것을헌금한 것이 죄고선교한 것이 죄고교회봉사 한 것이 죄고기도한 것이 죄인 것을이것이 영생 받은 사람이 보여 줄 행위입니다이게 바로 행위에요행위.성경말씀 하나도 어렵지 않죠?

 

그래서 이 본문은 자기계발서가 아닙니다자기성화의 책이 아니라이것은 뭐냐 기이한 책이고우리가 요청하지 않은 내용만 담아서 우리에게 준 거예요우리가 요청하지 않았는데 이 내용을 주었을 때우리는 뭐로 오해하느냐 하면우리가 옛날부터 요청한 것처럼그러한 선입감을 여기다가 집어넣고집어넣은 견해를 도로 끄집어내면서이거는 주님의 해석이라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우길 수밖에 없어요.

 

요한일서 3장 17절에 보면,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이렇게 되어 있죠이 말씀을 우리가 지킬 수 있습니까없습니까못 지킵니다아무리해도 못 지킵니다왜 못 지키느냐우리가 그 형제를 위해서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서 못 지켜요도와주면서 왜 못 지키느냐도와주게 되면 마치 그것이도와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을 보여주는 행동인양 오해하게 돼요제가 지금 계속 꼬고 있는데, “목사님그만 꼬세요어지럽습니다.” 하겠는데.

 

마태복음 25장에서 뭐라고 했던가요소자가 뭐라고 했던가요제가 언제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했습니까? “이 소자한테 한 것이이 형제한테 한 것이 곧 나한테 한 것이다.” 할 때에 그들의 의식을 했습니까못 했습니까전혀 의식을 못했어요그러면 오른편에 있던 양이 평소에 아무런 의식 없이 행동합니까무심코 좀비처럼 이렇게 행동합니까전부 다 생각해요이거는 형제사랑이거는 목마를 때 도와줘야지한시도 생각 없이 행동한 것이 없어요다 생각하고 행동해요.전부 다염소도 마찬가지고 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뭐다이거는 니가 저 사람한테 한 것이 나한테 한 것이라고 한그 해석은 누가 한 해석입니까미래에서 찾아간 주님의 해석이죠그러니까 현재에서 찾아간 해석과 미래에서 찾아온 해석이 이게 어떻게 됩니까정면으로 빠빵하고 충돌을 일으킬 때콘택600처럼 우리 자신의 행동이 깨어지면서그 틈 사이에서 뭐가 나온다고요진짜 하나님의 본질십자가가 나오죠. ‘나 같은 인간은 십자가가 없으면 벌써 지옥 갔었어.’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대해서 감사하게 되는 겁니다.

 

어부는 고기 잡는 기능을 한다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죠어부라는 존재는 고기 잡는 기능을 보여준다그런데 주님의 십자가가 삽입될 때는 존재에서 존재로 가는 것이 아니고 기능에서 기능으로 나와요고기 잡는 기능이 십자가가 투입되고 난 뒤에는 고기 잡는 기능이 아니고고기 잡는 그것이 십자가를 증거 하는 나의 존재행동이 아니라 주님의 행위고,나는 그저 도구로 쓰일 뿐임을 알죠도구로.

 

그럼 내가 형제가 배고픈 것을 알고 도와주게 되면우리가 옛날식 같으면, “형제여배고프제내가 도와줍니다.” “아이고만안 도와줘도 되는데?” “요한일서 3장 17절에 보니까 형제를 위해서 가만히 있으면 용서치 않으리라해서 제가 도와줍니다.” 이렇게 되면 뭐가 빠져버렸어요뭐가십자가가 빠져버렸죠십자가가 왜 빠졌습니까이게 뭐가 안 깨졌어요중간에 콘택600처럼중간이 부러지질 않았죠이게 부러져야 여기서 십자가가 나오잖아요십자가 행동이 나올 때 그게 영생이거든요.

 

십자가라는 것은 영생의 행동이 아니고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그 관계성이 십자가에서 나온 거죠이웃을 위해서 헌금하는 그러한 죄인을 십자가만이 그런 행위를 한자기 동질성 유지책을 주께서는 분질러서 오직 십자가만이 구원했다는 것을감사히 여기죠. “아이고뭐 없는 돈을 주십니까?” “제가 돈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사실은 십자가 전하러 왔습니다당신은 내가 돈 주니까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죠이거 다 나의 의로 돌아옵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뜻이 무슨 뜻이냐 하면오른손이 한 것은 왼손이 반드시 알게 마련이다그런 뜻이에요.

 

니가 오른 눈이 범죄 하거든 빼버리라는 말이 뭐냐니가 처음부터 범죄 할 수밖에 없는 스포트라이트를 양쪽에 두 개를 달고 다니고 있다이런 뜻이에요마음속으로 간음한 것도 간음죄라는 말은간음은 타고났으니까 니가 고칠 생각하지 말라는 그런 뜻이에요맹세하지 말라는 것은니가 한 번도 맹세 안 하고 하루일과를 출발한 적이 있는가를 한 번 보라 이 말이죠맨날 목적을 이끄는 삶인데요목적을 이끄는 삶이 맹세입니까맹세 아닙니까먹고 말거야치토스맨날 이런 식으로 살아왔잖아요이런 식으로내 자식 아이비리그에 들어가게 하고 말거야맹세하지 말라는데.

 

그래서 이게 참 기이하고 특이하잖아요주님의 십자가가 너무나 기이하고 특이하기 때문에그 어떤 세상지혜로도 그것을 알 사람이 없는데이미 구원받은 사람한테는 뒤돌아보니까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었고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그 지혜를 감추어진 지혜누가 알았으리요성령 받은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지혜를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겁니다요한일서를 통해서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계속 앞으로 가면서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을 주께서는 범람케 하는마치 이 세상이 홍수로 범람하듯이온 천지가 말과 혀로만 하는 그런 사랑으로 범람케 하실 거예요.

 

사랑함으로써 구원받고자 하는 그런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인간들의 그 행동을 보세요그들의 소망은마귀의 속한 사람들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들의 소망은 지속적인 발전” 다 지우고 이거만 지속” 동질성또는 동일성의 지속만 소망할 뿐입니다. “하나님이여지금 이대로내년에도 지금 내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여기도 교회에서 그런 것 하는지 모르겠는데신년, 11일에 무슨 행사합니까행사해요설마돈 내고 성경 한 구절 뽑고 그런 짓은 안 하죠그건 한 때 지나간 노골적인그걸 가지고 보이스피싱 이라고 합니다있지도 않는 복을 돈 내고 받는.

 

신년 때 하는 설교 내용이 뭘까요할 일 없는 지속입니다동질성을 붙들고 사수하자나의 나 됨을 잃어버리지 말자!왜냐하면 사람은 꿈이 있는데그 꿈을 놓치지 말자이 꿈속에서 깨어보면 그게 지금과 그 꿈 사이에는 지속으로 이어져있어요그러니 얼마나 우리가쉽게 말해서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도와줬다. “그거 제가 한 거 아니에요.” 하면서 화내는 사람 있습니까? “제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나는 어제오늘 끊어져있어요.” 이런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거 제가 했습니다이거 말 안 할라고 했는데제가 했습니다.” 그거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행위죠그걸 말씀이 계속 유도하는 거예요.

 

이런 행위를 통해서이런 경우를 통해서 우리가 다시 한 번 행위와 관계없이 우리한테 일방적인 합격통지서를 내려버린그 주님의 숨어있는 본질을 다시 한 번 감사하는 거예요그 다음에 15절을 봅시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그것이 무슨 자다살인자고살인자는 영생이 없는 자다이렇게 규정했습니다.

 

여러분겁나는 겁니까아니면 즐겁습니까형제라는 것이 없어요왜냐하면 가인과 아벨은 누가 만들었습니까하나님께서 만들었죠하나님께서 형제간으로 만들었잖아요가인과 아벨이 모든 하나님의 현실 속에서 이야기하는형제의 모델형제의 원형이 가인과 아벨이에요형제라고 하는 것은 니가 나를 사랑하냐미워하냐그런 뜻이 아니고그 형제 됨의 관계에 대해서 니가 어떤 식으로 거기에 개입되어 있느냐그걸 보고자 하는 겁니다.

 

말로 하면 참 어려운데요가인과 아벨 사이에 하나님께서 일부러 형제의 원형형제의 모델을 만들었죠형제인데 나중에 어떻게 됐습니까한 사람은 맞아 죽었죠맞아 죽었다는 이 전체가 형제의 개념에 포함돼요십자가 형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보고 뭐라고 했습니까내 친구라고 했죠나중에 로마서 8장에 보면내 사랑하는 맏아들이 되죠형제가 돼요이 말은 형제라는 이 관계가 주어질 때까지는 형제가 없습니다형제가 없고 내가 선택한 자들내가 혈통으로 태어난 자들을 그냥 형제라고 쳐주는 것이지하나님의 본질과 관련된 형제라는 것은하나님께서 이런 관계를 없는데서 발생시켜야 비로소 형제라는 것이 발생되거든요.

 

그런데 형제라는 것은 이 둘 사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두 사람 만들어놓고 그 관계까지 포함해야 이 형제 개념에 합당합니다그러니까 형제를 미워한다면가인이 아벨을 미워한 게 되잖아요결국은 이 미움을 미움 되게 들추어내기 위해서주께서는 그 들추어내는 작업으로없는데서 뭘 집어넣느냐 하면 형제라는 개념을 집어넣어버립니다그러면 졸지에 우리는 나타난 형제 때문에나타난 사람으로 인하여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미워할 수밖에 없죠.

 

이 땅에 형제라는 사람은 없어요형제 될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그때그때마다 우리 속에 담겨있는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 형편 따라 형제의 관계를 하나님께서 유발해버려요그러니까자 한 번 물어봅시다되게 나는 형을 좋아한다.어떤 때는 미워한다다시 좋아한다미운 관계입니까좋아하는 관계입니까종잡을 수 없죠미워했다가 좋아했다가,좋아했다가 미워했다가그럼 백번 좋아했는데 한 번 미워했다어떻게 살인자가 되는 겁니까그러면 천백번 좋아했는데천백일번 째 미워했다그럼 살인한 자가 되죠미워했으니까?

 

형제를 미워 안 한다고 하지만지금 형제를 미워 안 하지만또 무슨 일이 벌어지면형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되면 미워할 수밖에 없어요그러니까 어제까지 내가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다가그 다음날 갑자기 뭐가 됩니까?마귀에 속한 자가 돼버려요그럼 이 말씀을 주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이미 너는 구원받았다는 거예요구원받았기 때문에니가 어떠한 죄에서 구원받았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라는 거예요우리가 요청하지도 않는 말씀을.

 

제가 이야기한 이 말이 제가 말 해놓고도 참너무 어렵게 이야기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양심에 가책이 들어서 쉽게 이야기하겠습니다우리의 죄는 가인 죄 속의 일부에요우리가 죄라고 여겼는데 실제로 성경말씀 보니까우리의 죄가 사실 큰 죄였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리고 그 죄에서 자비를 베풀어서 구원을 받았다면우리가 생각한 자비보다 그 자비가 과잉자비에요과잉자비우리가 생각한 용서보다도 더 넘치는 용서로 우리가 구원받은 거예요우리는 세상을 다 안 살아봤으니까전부 안 살았으니까항상 내가 아는 죄와 내가 아는 자비와 자꾸 연결시켜서 용서받았다고 하는데실제로는 우리가 지은 죄보다 더 큰 죄에요.

 

그게 뭐냐이 성경말씀을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 저에게 형이 있습니다지금 형을 15년째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래그럼 16년째 한 번 보자.” “15년째로 마감하면 안 됩니까?” “아니마감하면 안 돼!” 그럼 16년째 아버지 유산 때문에 싸웠다면, 15년째 사랑한 것은 완전히 물로 돌아가 버리고 소용없어요한 순간에 형님이 그러면 안 되죠?” 하니까, “어어이게 뭐야이게?” 그것도 노골적으로 형님한테 한 것이 아니고그것도 돌아서서. “형님이 저러시면 안 되는데?” “어어이게 뭐야이게?” 이게 뭡니까형제를 미워했죠그럼 졸지에 뭡니까살인자죠.

 

그럼 원천적으로 소속이 앞으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처음부터 15년 동안 사랑했어도 원천은 비로소 도출됐다고 봐야죠처음부터 나는 마귀에 속했기 때문에, 16년째 그것도 유산문제 때문에그것도 노골적으로, “아버지 앞에서 이러시는 것이 아니에요?” 이게 아니고, ‘형이 그러시면 안 되는데?’ 이렇게 마음속으로 미워한 것 때문에졸지에 16년 했던 사랑이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그 책임을 어떻게 할 거예요이 문제를 기존교회 목사한테 물어보세요방금 한 이 문제. 15년째 착한 형제인데한 순간에 잠시그것도 오래간 것도 아니에요잠시 한 5초 동안에. 5초도 너무 길면 2초로 줄이세요. 2초 동안에 미워했을 때원천적으로 그 사람은 마귀에 속한 사람입니까라고 물어보세요.

 

성경 본문 그건데아무리 봐도 그 본문 밖에 안 나오는데형제를 미워하는 순간 그때부터 마귀에 속했다는 말이 아니고형제를 미워하는 순간 처음부터 니는 마귀에 속했다는 티를 냈다는 식으로성경 요한일서 3장이 나왔잖아요제가 지금 거짓말 하는 겁니까맞죠지금 너의 근본이 뭐냐를 묻는 거예요형제를 미워하면 그 미워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고니 바탕 자체가 처음부터 니는 어디에 속했다마귀에 속했다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그 이야기를목이 쉬어도 할 수 없다.

 

바닥문제에요바닥문제똑바로 해그 문제가 아니고바닥문제라니까요바닥이 그거니까 행함이 15년째 하다가 16년 어느 날 9월 21일 오후 2시 45분에서 45분 2초까지 미워한 것이 드러난 거예요세상에그걸 누가 지킵니까누가 지켜요그러니까 하나님께 속한 자는, ‘내가 죄인 맞네!’ 그게 바로 하나님께 속한 자가 맞다는 말이죠다시 말해서 형제사랑아이구우리 둘 사이 얼마나 좋다고이런 것은 뭐냐 하면 큰 자비의 의미를 몰라요모든 게 바로 주님 말씀 앞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게 맞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구원의 합격통지서 가슴에 붙이세요유치부 애들이 손수건 달듯이합격통지서를 가슴에 떡하고 다세요.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수용소에 갈 때 뭘 달은 줄 알아요이스라엘의 표징인 별을다윗이 별을 표시하듯이그 별을 달고 가듯이 하나님의 인을 팍 찍어버리세요인은 빼도 박도 못해요노예나 말 뒤축이나동물들에게 내가 주인이라고 표시할 때완전히 찢어서 박잖아요주의 구원의 성령으로 아예 인을 박아버리세요박아놓고 난 뒤에, ‘도대체 무슨 큰 자비가 필요해이같이 착한 사람한테?’ 하고 성경을 보니까 아차모든 게 내 행함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이것이 악마에 속한 짓거리를 그동안 해왔구나!’ 하는 태도를 나타낸다면그게 영생에 속한 행위가 된다이 말입니다.

 

, 22절 봅시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똑같은 이야기에요계명이 몇 개입니까요한일서의 계명이 몇 개입니까달랑 한 개에요한 개의 계명은 뭐다 했습니까사랑사랑은 어디서 나온다사랑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고사랑이 뭘 쑤셔요나의 동질성을 콘택600으로 깨트릴 때그 틈 사이에서 뭐가 나옵니까사랑이 나오죠틈새에서.

 

동질성은 마귀에 속했는데동질성을 깨트려버리니까. “목사님동질성을 왜 자꾸 깨트린다깨트린다 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가 이게 깨어졌거든요깨어짐누구에 의해서 깨어졌어요예수님은 반대로 누구한테 깨어졌어요주께서 인간한테 깨어져서 거기서 뭐가 나왔습니까내 살과 내 피가 나왔죠요한복음 6장에 보면누구든지 내 살을 먹지 않고내 피를 마시지 않고는 뭐가 없다영생이 없다예수님 몸 자체가 영생을 담고 있는 콘택600이에요안에 들어있어요.

 

누가 깹니까인간이 와서 깨트리죠인간이 깨트리니까인간과 예수님 사이는 서로가 서로를 깨트리는 관계죠주님이 왔다는 말은 무슨 뜻이에요우리를 곱게 간직하려고 온 것이 아니고우리를 파괴하고해체하고분열하고그 동질성을 깨트리기 위해서 온 거예요그걸 깨트리면서 이미 구원되었음이 우리한테 확하고박하사탕처럼핀란드 자일리톨 껌처럼 확하고 이게 퍼지죠그게 뭐냐계명이 온 몸에 확 퍼지는 거예요.

 

주의 사랑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 자체가 기도응답이고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행위가모든 기도가결국 목적이 뭡니까십자가 사랑의 깊이와 높이를 더욱더 알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에베소서 3장을 한 번 봅시다너무 잘 들으시니까 제가 목이 가는 것도 아깝지 않아요에베소서 3장에 기도가 나오는데제발 이 기도를 표준기도로 삼으시기 바랍니다.성령 받은 사도바울이 한 기도에요뭐라고 하느냐 하면, 17절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니 주체를 이제 그리스도로 바꾸라는 말이에요기도제목이.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충만하다는 것을 제가 방금 무슨 용어로 했습니까그 충만함을 뭐라고 했습니까과잉안 해주셔도 되는데과잉이에요과잉입니다.

 

오래간만에 아들이 공부하고 집에 오게 되면, “야야니가 몸이 부실하구나내가 삼계탕 했다자 닭다리 뜯어 먹어라.” “아이구어머님고맙습니다.” 하고 한 두 번은 그래요. “야야이것도 먹어야지?” “제가 알아서 먹겠습니다.” “야야이것도 먹어라아빠 안 먹는단다.” 남편이 먹고 있는 것을 뺏어가지고. “여보그거 내 건데?” “당신은 많이 먹잖아야가 지금 몸이 부실한 것 봤나당신은 야한테 신경이나 썼나?” 하면서 갑자기 삼계탕도 빼앗기고일주일 전 집에 늦게 온 이야기까지 다 해요. “당신의 행동은 하여튼 도움이 안 돼.” 갑자기 삼계탕 뺏긴 것도 억울한데이미 잊고 있었던 일까지 끄집어내서 잔소리하고.

 

이게 뭐냐오버한 것과잉이죠우리는 이 땅에서 재미나게 살다가 천국 갔으면 좋겠어요그런데 주께서는 과잉으로 오는 거예요. “아이구야야이번에 니가 TV를 새로 바꿔달라고 얼마나 기도했으면 이렇게 응답받아서 다 바꾸게 됐나?” TV응답한 적 없어요. TV는 돈만 있으면 사면 돼요또 주의 응답받아 주신 걸로 쳐줘가지고 또 과잉사랑을 주는 거예요.과잉사랑을. “아이구자식을 이렇게 잘 키웠다니?” 지금 자식이 마약해서 해롱해롱하고 있는데. “아이구 자식을 이렇게 잘 키웠나?”

 

모든 게나한테 일어나는 모든 일이사랑 아님이 없음을 깨닫게 하는그래서 감사로 이어지는범사에 감사로 이어지는 과잉적인 사랑그게 뭐냐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와 높이그걸 항상 알기를 원하노라이게 누구의 기도라고요사도바울이 교회를 위해서 하는 표준기도입니다오직 사랑에서 사랑으로다른 말로 하면 오직 깨어지고깨어지고또 깨어지고사업으로 말하면부도나고부도나고또 부도나고부부로 말하면싸우고싸우고또 싸우고어제는 사랑하라고 해놓고오늘은 또 싸우라고 하고싸움이 사랑입니다사랑하니까 싸우지 미워하면 싸우지도 않아요.

 

주님의 계명이 우선이고우리는 나중이에요말씀의 현세상이 현실이고우리는 그 현실을 위해서 복무하고봉사하기 위해서우리는 이 땅에 엉터리 몸으로이미 주의 사랑이 앞서서톰과 제리처럼너무 빨리 내 뺀 주님의 그 합격통지서가너무 일찍 과잉으로 우리에게 들이닥치니까우리가 물 마시는 이것도 구원받는데 도움이 돼요모든 행동이 다 엮어서 연결되어 가지고 또 도움 받는 겁니다그게 사랑의 세계에요.

 

그럼 이 사랑의 세계가 어떻게 한 그림으로 형성될 수 있느냐그림으로 그리겠습니다이 그림을 그리면 어떤 분은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라고 생각될 거예요그리고 한국에 있는 사람은 이 그림이 상당히 생소할 겁니다.

 

누워있는 고운 강아지풀처럼 있고여기 소나무인지 뭔지 나무가 있고요여기 뭔가 숲이 깎여져 있고이게 무슨 산이냐 하면 설퓨릭 마운틴황산으로 된 황산의 산이에요여기 케이블카가 있어요케이블카에 뭐가 달렸어요어디서 본 적 있죠그런데 현재 로키산맥에 있는 황산 산의 케이블카는 산 위에서 해주고 밑에서 내려버려요내려버리는데이미 구원 안에 있는 사람은 내리지를 않습니다안 내리고 다시 올라갔다가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고이렇게 합니다내려오면서 뭘 보여주느냐 하면바로 요한일서 3장을 계속 보여주는 겁니다. 20대에, 30, 40, 50...계속 죽을 때까지계속 보여주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지키는 것이 아니고방금 뭐라고 했어요보여주는 거예요왜 제가 케이블카를 예를 들었느냐 하면케이블카에 앉아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한 적도 없어요가만히 앉아서 내려오는 거예요그게 뭐냐 하면 바로 말씀의 표현형이에요이 자체가우리가 행동해서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갈증 나서 물 마시는 것도 보니까어디에 해당되는가 하면 바로 주의 계명에 해당돼요또 사랑을 행했네미치겠어또 사랑을 행했어우리는 케이블카에 앉았을 뿐인데표현형이라고 하는 것은 주께서 이 사랑의 세계를 보여주는 거예요.

 

누구한테하나님께 속하지 않는얼레리꼴레리너희들은 미래를 몰랐지라고 지금 뽐내고 있는 거예요누굴 통해서?어설프기 짝이 없는오직 자기 이익만 챙기는성경말씀에 관심 하나도 없어요그저 이 땅에서 성공만 하고이 세상에서 자랑거리고 되고 싶은 그런 인간들을 어디다 집어넣는다전부 다 케이블카에 다 집어넣어가지고 내려오면서이런 인간도 계명 다 지켰고저런 인간도 계명 다 지켰고이런 인간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고이런 인간도 뭐든지 하나님께 감사한 기도를 드리고이런 식으로 쭉 가는 거예요이런 식으로표현형이니까이게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이걸 가지고 요한일서 4장에 보면 바로 이게 영이라는 거예요영의 세계에요성령이 너의 행함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겁니다성령한테 니가 지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우리가 어디 안에 거한다이 산이 황산 산이 아니고 성령의 산이에요성령의 산에우리는 케이블카 안에 갇혀있는 거예요.

 

갇혀있어서 뭘 보여줘요성령이 보여주는이미 합격시킨이미 구원 이후에메시아가 오신 이후에 있는 낯선 상황을,톰과 제리가 공중에 붕 뜨는 기이한 상황을아무것도 행한 것이 없는데 천국에 붕 떠서 살아가는 그 기이한 상황을다시 도로 이 세상에 있는 우리 몸으로그냥 성령으로 미리 앞당겨서 주셔서 그 안에 놓여있는 사람으로 살도록성령께서 사랑으로 그렇게 인도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3장에 나오는 내용은 뭡니까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그에게 받나니” 우리가 받죠그럼 우리가 현재 누리가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주님으로부터 전부 다 받은 거예요.기도한 것도 없는데그러나 기도했다고 쳐요왜 그러냐 하면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기도를 한다고 할 때처음부터 기도한다고 하면 설거지하다가, ‘아차기도시간이지기도해야지.’ 일단 앞치마를 풉니다앞치마를 풀어서 놓고, TV는 끄고애들한테, “엄마 기도한다옆방에서 조용히 해라.” 오늘은 관절염이 있으니까 꿇어앉기보다 편하게 앉아서 기도를 해야겠다여러 가지 선택을 하죠손을 이래 모을까아니면 편하게 할까또 하기 전에 시계를 보고 남편 퇴근할 시간 됐으니까 한 6분 동안 해야지선택을 하게 되죠그래서 문 닫고 꿇어앉고 손 모으고 하는 7분 동안의 그 시간을 우리는 기도한 시간으로 보는 겁니다그렇게.

 

그럼 그 기도는 누가 정한 거예요내가 정한 거죠그거는 기도 아닙니다오늘 본분을 보세요요한일서 3장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그러니까 앞치마 풀 필요 없죠오늘 순두부 하는데 남편이 빨리 와가지고 맛있게 한 순두부를 먹었으면 좋겠다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 주께서 다 이루어 주리라앞치마 풀 필요 없습니다.여러분사도바울의 편지 보면 기도를 어떻게 하라고 했어요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죠무시로 라는 것이 뭐냐 하면 시간이 없는 거예요무시로~♬ 무시로~♬ 시도 때도 없이 기도하는 거예요시간 재서 하는 것이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의 사랑 안에서의 성도의 행함은 뭐냐 하면이 메시아 이후잖아요메시아 이후메시아 이후가 될 때는 이게 무슨 시간이냐 되냐면시간의 종말이 돼요시간의 종말이현재 시간여기에 들어와 버리면여기서 뭐가 만들어지느냐 하면이게 만들어져요종말의 때가 만들어집니다지금 말장난하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시간의 종말이라는 것은 메시아가 오게 되면 세상 끝이에요유대인 말이 맞아요.

 

메시아가 오게 되면 더 이상 시간의 끝입니다무엇의 끝이다시간의 종말입니다시간의 종말인데성령을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찾아와버리면우리는 이미 이만큼 와 있는데여기에 이 취지를 알리기 위해서이 시대에 옛 생각이 있으니까,여기에 들어와 버리면거기서 뭐냐 하면 더 이상 시간에몇 시부터 몇 시까지 기도한다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시간이 있으면서도 뭘 느끼느냐 하면 종말을 느끼는종말을 체험하는 순간을 갖는 거예요.

 

그러면 뭐냐 하면 이 책을 어디서 내가 샀다가 아니라주께서 이 책을 구입하도록 이미 종말론적으로 작용했지요이게 우리가 믿어지는 겁니다모든 게오늘 순두부 맛이 좋았는데순두부 내가 맛있게 해야지 하면 과거에서 현재로 가잖아요그게 아니고, “주께서 이미 맛있게 하도록저에게 손을 놀리고 입맛 돌도록 했지요내가 다 알았다니까.” 이런 식으로.

 

이미 시간 끝부분에종말의 때를시간이 흐르는 이 시간 속에서 종말을 수시로 맛보게 하시는 겁니다그럴 때 그 종말이 뭐냐다 이룬 거예요종말이기 때문에시간의 종말 때 다 이루어진 것이 앞당겨서 온 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이걸 선취라고 합니다선취미리 취한다이걸 성경적 용어로는 뭐냐성령의 보증이다성령의 보증사도바울의 용어입니다정말 어려운 용어에요성령의 보증이라는 것은 미래에 만나야 될 그 분을 앞당겨서 미리 만난다는 그 뜻입니다.

 

끝으로 이 한 말씀만 하고 마치겠습니다우리 형이 군에 갔을 때에우리 외갓집 친척 가운데 보안대가 있었어요보안대군에 안 가신 여자 분들은 보안대가 얼마나 센지 모릅니다한국에서 군에 간 남자 분들은 보안대가 얼마나 센지 아시죠훈련받고 난 뒤에 후방으로 빠져야 하는데빽 안 쓰면 후방으로 안 빠져요빽 안 쓴 인간들은 전부 다 전방으로 가서 어떻게 된지도 몰라요.

 

그런데 우리 외가 친척이 보안대 하사가 아니고 중사에요중사가 와가지고대구에 있는 54사단 있습니다와서 형을 만나요. “니가 근수가?” “충성!” “니 외사촌 형이야.” “형님이십니까?” “내가 니를 마산통합병원으로 빼줄게.” ,우리 형이 마산통합병원으로 갔을까요안 갔을까요갔어요.

 

마산통합병원에 가게 하신 그 형님이지금 훈련 끝날 쯤 되어 미리 앞당겨서두 자로 뭐라고 했습니까선취확실한 그것을 뭐라고 합니까보증. “야야이거 초코파이 하나 먹으라내가 보안대야보안대걱정하지 마나한테 다 벌벌 떨어.” 왜냐하면 보안대가 장교들 비리 캐서 퇴직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구보안대!” 이래 하거든요. “이근수 불러와몇 번째야?” “윈래 카투사로 몇 명 빠지고 그 다음에 마산통합병원인데요.” “마산통합병원에 이근수 집어넣어!” 공작 다 했어요.

 

요거 성도입니다그렇게 해서 성도된 거예요그렇게 해서그래서 성도된 거예요. “초코파이 하나 먹어라괜찮아.” 그럼 그 초코파이는 뭐냐훈련받은 대가가 아니고보안대 형님 덕분에 먹었다면여러분 앞에 귤은 누구 덕분에 먹습니까?마트에서 산 것이 아니고성령께서 주신 귤입니다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