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관련

언약설교2(옛언약과 새언약의 관계)-메시야의 새언약(사60;4-9)

아빠와 함께 2013. 2. 10. 07:44

본문 : 이사야 60장 4- 9절
제목 : 메시야의 새언약
듣기 : 음성 , 보기 : 동영상
 우리교회 08-10-08 21:08 
메시야의 새언약

2008년 10월 8일                          본문 말씀: 이사야 60:4-9

(사 60:4)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사 60:5)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사 60:6)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 60:7)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사 60:8) 『저 구름 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 오는 것 같이 날아 오는 자들이 누구뇨』

(사 60:9)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이 세상에 무대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그 한가운데 두시고 주변 국가들은 배치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은 그 이스라엘과 함께 계십니다. 이로서 이 세상은 중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이 이 중심점을 드러내기 위해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다 나라 주변에 있는 민족들이 감격에 못 이겨하면서 각양 예물을 들고 유다 나라로 날아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이러한 확연한 태도 변화는 마지막 때에는 인간들의 그 어떤 차이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아니하시고 평준화 되게 하심을 뜻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이방나라는 원수지간이었습니다. 둘 중의 하나는 멸망당하고 둘 중의 하나는 구원받는 관계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마저 오늘 본문에 의하면 무색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하나님 백성과 이방나라와 구별 지었던 기준은 율법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율법이란 무엇입니까? 계약서입니다. 일반 사회에서 거래를 하거나 부동산 매매를 할 때에 계약서를작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냉정하고 차가운 계약서 내용을 두고서는 사적인 감정이나 뜨거운 마음 같은 것은 소용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면서 계약서 작성해서 구원하시면 얼마나 우리 인간들 입장에서 편리하겠습니까. 일반 계약서에 보면, 인감증명서 몇 통이라든지 주민등록등초본 몇 통, 혹은 납세 증명서도 토지대상 같은 것을 첨부해서 직인난에 도장을 찍으면 계약이 성립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면서 인감도장이나 주민등록초본 같은 서류 몇 통을 떼 오라면 우리는 신나라하면서 그런 서류를 준비하는 것으로 구원완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계약서를 가지고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계약서를 썼습니다. 모세를 시내산 위로 불러다가 계약서를 전달해주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이 하나님 쪽에서 제시한 계약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 계약에 위배하면 저주요 이 계약을 준수하면 축복입니다. 이런 하나님 계약서 앞에서 인간들의 재롱이나 타협이나 협박이나 동정 같은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이 계약서 내용대로 준수하면 그것으로 구원입니다.

바로 이방인들에게 그들이 아무리 잘 살고 대단하고 큰 나라를 갖고 살아도 이 모세 계약서, 즉 모세 언약이 없는 한 그들은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아무리 고생하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계약서 믿고 자긍심을 유지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과 이방민족은 구분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이 개같은 이방민족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메시야 앞에서 마구 달려들어오고 있다는 겁니다. 이는 곧 전의 계약서와는 달리 다른 계약서가 새롭고도 최종적으로 수립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즉 더 이상 이스라엘과 이방민족이라는 차이가 성립되지 않는 새로운 계약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새 계약서입니다. 새언약입니다. 그러면 이 새언약이 나타난 상항에서 이방인들은 어떤 처지에 놓여있게 되는 겁니까? 누가복음 11:29에 보면, 예수님께서 요나 기적을 언급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여기에 이방민족들이 나옵니다. 남방 여인이 등장하고 니느웨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개 역할을 하는 자들이 더 이상 아닙니다. 도리어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우기는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을 도리어 정죄하기 위해 활동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 집안에 계시는 아버지를 부인이나 자식들이 대단히 무시했는데 막상 바깥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 집의 가장되시는 분이 얼마나 훌륭하고 소중한 분이라는 점을 일깨워지는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방 민족들이 새언약의 체결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적을 언급하시면서 이방민족의 역할을 연이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거룩한 백성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기적을 보여달라고 예수님에게 요청할 때, 예수님께서 도리어 그들을 책망하기 위해 언급하신 기적이 곧 요나의 기적입니다.

요나의 기적은 곧 십자기 죽으심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들려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옛날 모세 계약서가 통용되던 그런 시절에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자기 백성을 물어 죽게했습니다. 그 재수없는 징그러운 불뱀 형상을 한 놋장대를 모세가 만들라고 하나님께 지시했습니다.

뱀은 쳐다보기만 해도 흉측합니다. 뱀과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본인이 바로 그 흉측한 그 뱀의 모습으로 높이 달려죽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만큼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시선인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놋뱀의 자리에 올라가서 죽으시면서 피를 흘렸고 살을 찢었습니다. 바로 이 찢어진 살과 피가 새계약성입니다.

인감도장이나 주민등록등초본이나 직인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사람들에게 제시한 계약서는 예수님의 몸으로 친히 완성하신 새언약 뿐입니다. 다른 계약서는 이 새 계약서를 위해 찢어버려야 했습니다. 아직도 율법에 속했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끊어진 자입니다.

바로 이 새언약을 알아채고 도리어 옛계약서에 매달려있는 유대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 바로 구원받은 이방민족들이 할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그동안 신봉했던 신을 버린 것을 뜻입니다. 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에게 그 어떤 불이익이 온다할지라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종말이란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어버립니다. 그것은 새계약서라는 기준이 지금까지의 모든 계약서를 무효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함이나 감정이나 느낌 같은 것은 새 계약서 앞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신에게 한 일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민 계약서가 뭔지를 다시금 분명히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