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익

[스크랩] [성령의삶 과 성령의 열매]의 의미가 무었인지 궁금합니다

아빠와 함께 2013. 1. 29. 13:45

[성령의삶 과 성령의 열매]의 의미가 무었인지 궁금합니다

 

'성령'을 '그리스도 영'이라고 내용을 집어넣어서 이해하면 무엇이든지 쉬워집니다.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그리스도 영의 열매'가 되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아버지와 함께 하셨기에 나타난 일들입니다. 바로 이 업적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작용해서 성도에게 주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성도 안에서 맺히는 열매들은 '오직 아버지와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그 예수님만의 업적이요 결과물이 됩니다. 이 열매에 대해서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없는' 인간들의 열매로 귀속시킬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반드시 '아들과 함께' 하면서 제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즉 아들 따로 받고 성령의 은사 따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드님과 함께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외부에서 받은 선물 안에 있으며 그 선물은 우리 성도로 하여금 자신의 행한 열매에 시선이 가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뭐든지 예수님의 공로에 시선이 가게 되는데 그것은 원래 주인을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을 '그리스도 영'으로 인하여 생긴 열매라고 해서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이 성령의 열매는 항상 반대로 '육의 열매'와 견주면서, 혹은 폭로시키면서 규명됩니다. '육의 열매'란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 상태에서 발휘되는 열매를 말합니다. 즉 십자가 안에서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 사는 식"이 아닌 상태에서 나오는 사는 모습이라서 '하나님과 함께' 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대비가 됩니다. 결국 예수님의 열매 맺기는 우리 성도를 십자가로 데려가서 날마다 죽이는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왜 죽일까요? '유일하게 아버지와 함께 하신 분을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 시선을 어디에 두고 성령과 성령 귀절을 해석하느냐가 관권입니다.

 

'육의 열매'와 견주어보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열매는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이러한 일을 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육의 열매'를 모든 인간이 수시로 맺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신다면 십자가로서 적용하시는 '성령의 열매'는 어디까지는 나의 행함의 몫이 아니라 살아계신 성령의 행함의 몫임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3-14) 예수님의 일의 영속성은 인간 안목에서 연결되고 영속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관점에서 영속되고 연결되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시선과 생각은 순간 순간 딱딱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다가도 밖에서 크게 타이어 펑크나는 소리가 나면 정신은 창밖으로 쏠리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간 입장에서는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한다"라고 우기지만 예수님 입장에서는 "내가 성령을 너에게 보내어 성령께서 탄식하시면서 너를 관리하도록 조치했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주님보고 "지금 내가 주님을 제대로 믿고 있고 행하고 있습니까?"라고 묻게 되지만 예수님은 "이미 전체 안에 너를 집어넣었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순간 순간 끊어진 경험들의 조각된 기억의 연결체로 살아가고 있고, 예수님깨서 그 끊어지는 순간들 마다 '영원성'을 담고 쏫아오르게 하십니다. 끊어짐을 책망하시면서 말입니다.

 

(십자가마을 질문답변 코너에서, 답변/이근호목사)

 

 

출처 : 화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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