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익

사태의 본질(오용익)

아빠와 함께 2013. 1. 29. 13:40

어떤 분이 최근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질문을 해 오셨기에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복음적으로 차이가 뭐냐를 묻는 질문이시지요?

 

저들의 주장은 복음에 이 내용을 넣어달라는 겁니다.

 

"인간의 가치, 곧 나의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나의 욕망에 호응해줄때만 하나님 답다.'

 

복음에 이런 주장이 들어가게 되면 예수님은 인간들이 보기에 이런 취지로 십자가를 진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동안 악마로 인해서 방해받았던 나의 욕망달성을 완성시키기 위한 근거와 기초가 마련되었다.'

 

그러면 그 다음수순은

 

성경의 모든 말씀은 자기가치, 자기 행함의 가치를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일에 마음껏 동원되면서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자기를 통해서 자기자신에게로 귀환하는 절차를 밟게 됩니다.

 

물론 저들이 이런 말들을 천편일률적으로 늘어놓고는 있습니다. 다 자기들의 속내를 감추기 위해서 지어 입은 종교라는 옷입니다.

 

나도 십자가 복음만 전한다.

나도 인간은 무조건 죄인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나는 죄인이기에 긍휼만 바라본다.

 

그에 반해 복음의 내용인즉

 

"인간들의 손에 살해당한 하나님의 피로 가득하다. 이 하나님의 피만으로 자기약속을 성취하심은 모든 인간을(곧 인간배후의 악마를 겨냥해서) 심판아래 가둠으로써 예수님만 심판주가 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은밀한 뜻이었다. 따라서 그 취지대로 십자가복음이 전해지는 경우란 주님의 흘린 피 앞에서 인간의 모든가치, 인간의 모든 행함의 가치는 예외없이 부정되고 무산될 경우뿐이다." 입니다.

 

저들의 주장을 다시 정리해보면 '나도 구원받을만한 가치, 의가 있다. 그 이유는 나도 구원받을만한 가치있는 행동이 나오기 때문이다.'입니다. 헌데 십자가복음이 이런 악마의 궤계를 들춰내니 그 점이 못마땅해서 십자가복음을 되려 공격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할례를 전했으면 내가 지금 핍박받겠느냐 그러면 그리스도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라, 고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이 몽땅 받으신 하나님의 저주안, 곧 십자가안만을 유일하게 영원한 속죄의 영역으로 삼고 그 영역만을 천국으로 삼으신 것(갈 3:13-14)은 천국이 애초부터 사람구원이 최종목적이 아니라 주님의 행위만을 자랑삼기 위한 주님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죄인을 부르시는 겁니다.

 

이 죄인은 평상시 사람들이 양심상 알고 있는 죄인이 아니고 주님께서 부르심으로 죄인으로 생성시켜서 용서의 공간 안에서 비로소 죄인으로 드러나는 죄인을 의미합니다. 용서를 돋보이기 위한 기능을 하기 위해 특별 조성된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성령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러한 취지에 합하여 복음 전했다는 의미로 '내가 사람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했습니다. 십자가의 저주가 저주답게 선포돼야 십자가공로만으로 구원되는 긍휼도 긍휼답게 증언된다는 뜻입니다. 어느 한쪽도 분리시키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