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고전4;6-8)
사도바울의 편지는 이런 겁니다.
“여기 예수 사람 있어요?”라고 묻는 거예요. “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 겁니다.
“이미 여러분은 왕 맞지요? 그런 거지요? 아니라고요? 내가 잘못 알았나? 내가 엉뚱한 곳에 왔나?
여러분이 왕이 맞지요? 여러분은 세상 것 가지고 자랑할 일이 없지요? 이젠 그런 과거의 산물을 자랑할 필요 없지요?
오직 미래에서 오신 분이 여러분을 낚아챈 그것이 유일한 자랑거리 맞지요? 아니라고요? 내가 편지를 잘못 전달했나?”
지금 사도바울은 이러고 있다는 말이지요.
인간세계에서 주고받는 모든 의사소통이 전부 다 과거의 이야기에요.
“저, 어르신! 자식 키운다고 애 많이 썼지요?” 과거. “지난 번 놀려가셨을 때는 그렇게 정정하시더니만.” 과거지요.
전부 다 과거예요. “앞으로 어르신은 살날이 얼마 안 남았네요.” 과거지요. 그 인식 자체가.
그런데 과거의 말을 사용안하면 못 알아들으니까 과거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살날은 얼마 안 남았는데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야 되지 않습니까?”
역시 방향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서 미래 쪽으로 가지요.
“이 밤의 끝을 잡고” 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이 끝을 하나님과 한 번 연결시켜 보시지요.” 과거.
“그래, 지금껏 하나님을 안 믿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믿을게.” 역시 과거. 구원 받습니까?
“이제 어르신의 마지막이 되었으니 예수 믿으셔야지요.” “예수 믿습니다.” 과거지요. 그래서 구원받습니까? 안되잖아요.
왜냐하면 토대 자체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려는 성향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에
과거마저도 전부 다 미래가 되게 하는 그런 능력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 어르신이 진짜 예수님을 알고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고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성령이 와서 순간적으로, 참 그런 기적이 오면 좋은데요, 완전히 이건 로또인데, 순간적으로 그런 기적을 받아가지고
내가 예수 안 믿던 시절도 예수 안 믿어야 하기 때문에 안 믿었다는 것을 미래의 관점에서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아, 이거 얼마나 좋을까요? 그 순간에 빵 터지는 거예요. 그게 바로 구원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빵 터지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어떻게 확인하는가? 또 물어보는 겁니다. “어르신, 과거에 애들 키운다고 고생 많이 했지요?”
어르신이 하는 말이, “애 키우는 것도 다 죄지요.” 비로소 의사소통이 뭔가 되거든요.
“참 정정하셨는데요.” “건강한 것도 은혜지요. 제가 운동 많이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게 의사소통이 되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더라도 왕노릇 하고 있는 겁니다. “자랑할 것은 주님밖에 없다.” 이게 오늘 본문 내용이거든요.
그런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그런 대화가 가능한 집단입니까?”라고 하면서 사도바울이 편지를 보낸 겁니다.
-우리교회 주일설교 ”기록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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