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2015년 1월 23일 오전 07:22 (거절당한 모세)

아빠와 함께 2015. 1. 23. 07:51

우리 속에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연초에 제일 중요한 말인데, 

내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말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요소가 내 안에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요소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분노케하는 요소가 내 안에 있는 것을 알 때, 

그 분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모세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붙잡혀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반대로 생각하는데, 나의 건전함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나의 기도와 헌신이 기쁘게 한다고 생각을 해요. 나의 착함과 구제가. 

그거는 마귀가 조작한 거고. 그거는 사기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나님을 좋게 한다면, 그들이 애굽에서 풍족히 살 때 얼마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을 거예요. 

하나님은 애굽에 살면서 영광 돌리는 것, 그거 인정하지 않습니다. 

“니가 아직 현실을 몰라. 나와! 인간들 나와! 니가 그 짝에 있지 말고 나와 보란 말야!” 

나와서 보게 되면 하나님과 함께 있는 현실이 뭐냐 하면은, 

우리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요소로서, 노엽게 하는 대상자로서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왜? 노엽게 하는 것이 있어야 그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냐면, 그것은 로마서 3장에 보면 그 이유가 펼쳐집니다. 

그게 뭐냐, 하나님의 화해라는 것은 우리 힘으로 성사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화해. 로마서 3장 그 유명한 구절인데요.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4)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롬3;25) 

예수님의 피가 화목이에요. 우리의 건전함이 화목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피를 왜 흘렸습니까? 피를 흘릴만한 요인이 우리 속에 있다는 거예요. 

왜, 피를 흘려요? 촐랑대면서 자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착각하는 그러한 노엽게 하는 요소가 우리의 의로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말로 해서 되겠어요? 우리가 얼마나 고집이 센데.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니대신, 그 노엽게 하는 것을 니 스스로 반성할 수 없으니까, 

차라리 내가 니한테 맞아 죽을게. 맞아 죽어서 흘린 그 피로 말미암아 소급해서, 사후적으로 소급해서 보니까 

“주여, 내가 주를 노엽게 하는 요소로 가득 찬 존재에 불과하군요. 제가 내세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리 하나님 믿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확정지으세요.우린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자신이 얼마나 잘난 존재며, 대단한 존재며, 멋있는 존재인지, 

나라는 행동에 어떤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자부하면서 행동에 옮기거든요. 


2007년도에 보스니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부부인데, 결혼해가지고 사이가 너무 안 좋았어요. 

온갖 것이 맞는 게 없어, 뭐, 성격도 안 맞고, 취향도 안 맞고, 맞는 게 없어 가지고 먼저 여자 쪽에서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니고, 도저히 결혼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남편만 보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자기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이게 사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고 전에로 돌아갈 수도 없고, 자기 인생에 너무 환멸을 느껴서 인터넷 채팅을 했어요. 권사님들 채팅 아세요? 아, 너무 무시하나요? 

인터넷 채팅을 해보니까, 세상에! 얼굴은 모르는데, 오고가는 그 편지글에 너무나 자기에게 딱 맞는 정말 이상적인 남자를 만났어요. 생각하는 것, 그 깊이, 말, 상식, 교양, 정말 찾고 있던 그 남자였어요. 그래가지고 오랫동안 채팅을 해서, 여자는 남편에게 받지 못한 결혼의 그 아픔을 인터넷에 가서 그 남자와, 몰래하는 게 재밌거든요. 몰래하는 연애재미에 푹 빠졌어요. 

저쪽 남자도 자기가 이상형이라고 하고. 어느 날 용기를 내서 직접 만나기로 했어요. 딱 만나고 보니까 지금 남편이에요.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못남을 알아야 하는데, 자기는 역시 잘난 존재가 되고, 현실이 나한테 받쳐줘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피 묻은 그것이 화목, 화해입니다. 그 이외에는 화해가 없어요. 

니가 아무리 착해도 그것 때문에 화해하지 않아요. 니 말고 예수님 피 때문에 화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피를 본받기 위해서 몽땅 다 망해야 되는 겁니다. 

어떻게? 분노의 증거를 가지고 망해야 돼요. 그냥 망하면 안 돼요. 하나님이 분노했다는 증거로써 망해야 돼요. 

십자가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분노가 담겨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건을 믿어야 되는 겁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분노하는 것은,사실은 아버지가, 하늘에 계신 창조자가 나보고 분노하는 것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돼요. 

자기의 몸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옮겨가는 과정이지요.


-우리교회 주일오후설교 ”거절당한 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