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사45;15)
①이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이번에 민수기 수련회 하면서 숫자로 제로, 0으로 한 겁니다. 0인데요,
0이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면, 빛과 어두움이라는 숫자 2가 나와요. 빛과 어두움이니까 2잖아요?
우리의 상식은 0에서 1이 되는 줄 아는데, 0에서 1이 되는 것이 아니고 0에서 2가 돼버려요.
그러한 숫자이야기가 정확한 이유가 있어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선, 악, 1과 2거든요.
그런데 생명나무는, 선악과가 선, 악으로 나누어져 1과 2라면, 그럼 생명나무는 1이 아니고 0이 돼버려요.
선악과 따먹는 순간, 생명나무는 못 따먹는 나무가 되어 버려가지고 우리 쪽에서 숫자로 쳐 줄 수가 없어요.제로가 되는 거예요.
인간들은 다시 에덴동산을 찾아가기 위해서 2를 뭐로 만드느냐면, 1로 만들어요. 신으로 만들어버려요.
근데, 1은 0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땡! 탈락!이에요. 신을 믿는다는 게 땡, 탈락이 돼버려요.
다시 제로가 와서 1을 없애주는 기능을 해줘야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겁니다.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겠다. 아니에요. 그거는 틀려먹었어요.
주님이 오실 때, 나는 죄인이고, 이렇게 해야 구원받는 겁니다.
내가 예수 믿으면 1이 1을 믿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거는 제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1로 돌아가요.
“예수 믿겠습니다. 삼위일체 믿겠습니다.” 이거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 하나의 몸부림치는 것이지, 이거는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이라 하는 것은,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이게 구원이에요. 자기가 제로로 변하는 겁니다.
1은 주의 처소가 될 수 없어요. 0이 돼야 우리가 하나님의 처소가 되게 되어 있어요. 숨어계시니까,
이 땅에서 1부터 시작하는 인간세상에서 0은 없는 게 되고,
없는 것이 실제로 1을 만들어내는, 이 세상을 만들어내는 그러한 환경이 되는 겁니다.
②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우상숭배자들입니다.
자기를 위한 처소를 만들면서 거기에 부합되는 주체상을 형성해 있습니다.
자기만의 자리를 위하고 보존하기 위한 기억만을 간직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나의 처소를 위한 너”라는 겁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설쳐도 하나님의 처소에 일어난 일의 확장에 불과합니다.
‘불과 어두움’의 조합은 곧 심판 기능을 전제로 한 조합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신의 처소 마련에는 심판없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심판 받아야 될 이유는 오직 하나 ‘우상숭배 죄’입니다.
우리 안에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기에 우리는 늘 우리 자신 기대와 현실을 비교하게 됩니다.
“아버지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누가복음 22:42)
예수님 마저도 이 땅의 생애에서 빛과 어두움이 공존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입장보다 예수님의 증인이라는 입장이 늘 우리 내부에서 우선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교회 주일오후설교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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