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2014년 6월 12일 오전 10:26 (자아중심에서 자리중심으로)

아빠와 함께 2014. 6. 12. 10:50

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로 사셨던 그 처지를, 이제는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걷게 하신다
물론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한 길인데, 마누라나 자식이나 아비를 사랑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그야말로 낯선 길이다.

평소에 논과 밭에는 길이 있는데, 그런데 함박눈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되어서 길을 전혀 알 수 없을 때는, 우리는 그냥 논이나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갈 수밖에 없다
길은 주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우리에게 "이 길이다" 라고 하시면서 보여주고 가시는 게 아니고,
우리를 데리고 온 것 자체를 새로운 길이 되게 만들어버리신다.
그러니 인생은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고, 새롭게 세우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길을 알아서 가는 게 인생이 아니고 자기가 가는 그 길이 곧 자기 길인 것이다.

언제나 가보면 길은 없는데, 그런데 주님께서 가게 하시면 그게 곧 주님이 이끄시는 좁은 길, 즉 생명의 길이다.
그러니 이 '나' 라는 것은, 살아보면 그제야 그게 곧 '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하겠다" 라는 것은 전혀 쓸데없는 소리일 뿐이다.

살다보면 난관에 부딪치고 좌절하게 되는데, 하지만 그런 좌절조차도 자기 인생에 집어넣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 죽음도 자기 생명의 일부가 되는데,
우리가 죽는다는 게 끝이 아니고,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께서는 죽이시는 것이다.
즉 생명 안에 죽음이 한 부분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말이고 그러니 죽음은 곧 쉼이 되고 안식이 된다.

바로 그러한 효과를 주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제공하게 될 때,
우리 자리가 곧 귀한 자리이고,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자리가 아니고,
주께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공간으로서, 그래서 주님께서 매일같이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성도와 불신자의 차이점은, '자아중심'에서 '자리중심'으로 변화를 겪는다는데 있다 .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따로 챙기거나 만들지 않고,
앞으로 그 어떤 인생이 주어질지,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남아 있는 우리의 이 인생을 오직 주께서 말씀대로, 생명이 보이는 쪽으로 만들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대구강의 "주의 자리" 12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