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마태복음3강a 100304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4. 5. 21. 21:04

마태복음 3강-a

시작합시다. 마태복음 2장 할 차례입니다. 지난 시간에 한 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이렇습니다. 신약 밑에 구약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어디에 가있느냐면. 우리 현재 눈은 현재 마태복음 2장에 가있습니다. 마태복음 2장을 쓰신 분의 눈은 구약에 가있습니다. 구약의 완성으로써 신약인데, 우리는 구약을 안거치고 바로 신약에 가니까, 사도 마태는 구약을 거쳐서 신약을 가는데, 우리는 바로 성급하게 신약 가지고 구원받겠다고 들이대지요.

그래서 마태복음 2장6절같은 경우에는, 옛날 성경은 약간 띄어져있지요. 그게 뭐냐하면은, 마태가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보고, "구약을 거쳐서 신약을 봐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구약을 거치게 되면 뭐냐하면은, 구약은 문제지였고, 신약은 해답. 문제지 반대가 뭐지요? 해답이지요? 그러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지금 현재 우리는 어디에 살고있습니까? 우리는 문제를 주는 시대에 살지않고, 어디에 살고있지요? 해답이 이미 주어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게 참 행복한 겁니다.

새삼스럽게 도 닦으란 말이 아닙니다. 계룡산에 간다던지, 새삼스럽게 깊은 산에 기도원에 가서 도닦으란 말이 아니고. 우리는 이미 아파트에 앉아 있어도 우리는 그냥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따고 나서 한 말이 있어요. "이제는 끝났다"하는 거요. 제가 중앙일보에서 봤어요. "이제는 끝났다". 아~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소리를 하겠습니까? 울면서.

이걸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시킵시다. 우리에게. 이미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끝난거에요. 그게 뭐냐하면 바로 '해답'입니다. 이미 구원문제에 있어서는 끝난겁니다. 문제는 문제도 우리가 만드는게 아니에요. 물론 우리는 문제아지만. 문제아이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치고 다 문제아잖아요. 하지만 이 문제아같은 우리는 문제지의 넓은 범위 안에 한 사람으로 가입이 된거에요. 이 문제지에 올라타야 뭐가 보이느냐하면은, 해답이 보이지요. 만약에 이 문제지에 안타면, 해답이 왜 해답인지를 모르게됩니다.

그래서 이 마태는 우리로 하여금 구약을 거쳐서 신약을 보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만들어준 문제지위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비로소 해답이 보일수있도록 그렇게 조치를 하는겁니다. 구약과 신약을 하나의 세트처럼 유지가 되어야한다 이 말이지요.

그렇기때문에 신약이 해답입니다. 이 해답이란 말을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김연아 같은 경우에는 이제는 끝났다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이것을 성경 자체에서는 뭐라고 하느냐하면은. 이걸 가지고 네글자로. '기쁜소식'이라 하는데. 이 기쁜소식을 두자로 줄이면 뭐가되죠? '복음'이 되죠. 그래서 마태 그 다음에 뭡니까? 마태 '복음'이에요. 기쁜소식이에요. 복된 소식이에요. 기쁜소식이라는거에요.

그러니까 구약을 안거치면 이게 왜 기쁜지를 모르겠지요. "그게 뭐가 기뻐~". 그래서 사람들이 요새 제일 기쁜 순서가 뭐냐하면은. 역시 돈이고. 두번째 특히 여자들같은 경우에는 자녀 잘되는거. 남편 잘되는거. 이렇고. 세번째는 주름이 없어진다든지 자기 미모가 이뻐지는거고요. 저기 제일 끝에 뭐가있느냐 하면은. 복음이란게 있단말이죠.

그런데 만약에 문제지에 들어가면, 복음이 제일 위에 올라가요. "세상에 온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마태복음 16장에 있는 이야기거든요. 그러니까 저 밑에 가있는 복음을, 위에 올려버리면, 자녀문제-남편문제-이러한 자기의 건강문제, 이거보다도 기쁜소식. 복음이 제일 위에 얹혀져있으면 이사람은. 김연아처럼 "이제는 끝났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김연아가 은메달 땄으면 이런 말을 할 수있겠습니까? 안되지요. 뭘 땃습니까? 금메달 땄기때문에 이제 끝났다고 했죠. 아사다마오는 4년후를 기약 하겠다는 거에요. 왜? 아사다마오는 뭐가 남아있어요. 아직 자기는 끝이 안났다는 거에요. 그런데 김연아는 이미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모든 것의 완료상태에 들어가버린 겁니다.

그 완료상태에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을 초청한 겁니다. 완료상태에 우리를 초청한거에요. 그래서 마태의 기쁜소식이니까. 이 기쁜 소식에 우리가 같이 공부하면서 우리가 같이 참여되기를 바랍니다.

이 기쁜소식을. "다 끝났구나". 이 밑의 돈문제 무슨문제 그 어떤 문제 있더라도. 그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다 끝난 문제구나~". 그래서 제대로 마태복음을 안다면. 여러가지 사업이라든지 돈문제 자녀문제, 이런 것들때문에 이 기쁨이 상실되는 법은 아마 없으리라 저는 그렇게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고싶습니다.

 여기에 하나의 원리가 있는데, 이 원리를 기억하면 뭐라고 했지요. 제가 적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보통 교회에서 "예수믿으면 여러분들 잘 살수있습니다. 여유있게 살수 있습니다. 축복받기 위해 살기위해서 예수믿으라"라고 하는데. 제가 알기로는 예수를 믿는 이유가.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때문에 예수믿는거에요.

이것이 분명치 아니하면. 만약에 예수믿고 집안 일이 안되면. 그만 예수를 안 믿을 수가 있다고요. 사람으로써는 마땅히 해야될일을. 마치 '해주는 것'처럼. "하나님 안해도 되는데 제가 해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저에게 반대급부를 주셔야 되는겁니다. 이렇게 성의를 표했으면 주께서도 성의를 좀 표해주세요. 그래서 하나님 믿는 보람을 좀 느끼게 해주세요. 남으로 하여금 하나님 믿는 사람은 복받는다는 티를 좀 나게 해주세요"

이런식으로 하면, 예수를 믿는게 잘사는 식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게 뜻대로 안되게되면. 그 사람은 예수를 원망하게 되겠지요. 예수를 믿으면 그 자체가 피조물로써 마땅히 해야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겁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내가 영광이 되야되요.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보면, 이렇게 되어있어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더이상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날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분을 위해서 살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 대목은 아주 끔찍한 대목입니다. 거기 '위해서'가 목적이 두개가 서로 바뀌어야 되요. 처음에는 누구를 위해서? 날 위해서 출발했던 것이. 이제는 나중에 뭘로 빠지느냐하면은. 예수님을 위하여 내가 있다는 거에요. 나를 위해서. 이야기가 재밌어요. 나를 위해서 주님이 하실때. 나는 나좋아라고 나를 위해서 하는줄 알았더니만, 나를 위해서 주님 주신 그 통채로 몽땅 다시 분리됨(나위해서 주님위해서)이 없이, 몽땅 그걸 그대로 들어다가 몽땅 주님을 위해서 갖다 바치기 위해서  먼저 주님께서 선수를 치신거에요.

그래서 날위해서, 예수를 위해서 할때에 그중에 뭐가 빠져야되느냐하면은. 교회를 위해서를 좀 빼주세요. 이것은 아주 위험한.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 위해서'라 하면 아주 큰일날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누구 하나를 교인만들려고. 이거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는 것이 교회에서 충성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지난시간에 4시간동안에 얘기하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평소에 놓쳐버린 작은 것 속에서 주님의 은혜가 듬뿍듬뿍 담겨있다. 제가 이 가정에 와서 제일 먼저 운을 땐 것이 이거였습니다. "저, TV 바뀌었네요?" 제일 먼저 보았거든요. 제 집 TV바뀌는 것처럼 제가 기분이 좋아요. 이것보다 더 좋은 TV있는 사람은 시큰둥하겠지만. 저는 기분이 좋아요. 작은 것 하나하나가 은혜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한번 찾아보세요. 찾아보면, 굉장히 내가 놓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왔다면. 예수님을 위하여 살기위해서 했다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되고. "아~ 내가 예수 잘믿으니까, 내 좋아라고 하는구나, 나 잘살라고 하는구나"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안되는 겁니다.

다시 얘기하면, 예수를 믿는 것은 잘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야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이지. 이 짧은 생애에 내가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이땅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머릿속에 이 그림으로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림으로 시작해서 언어로 나오기때문에. 항상 그래서 그림으로부터 제가 시작을 합니다.

  2장에서 동방박사가 뭐를 따라오느냐하면, 별을 따라왔죠. 여기서 신기한게, 신약에 보면 별따라왔어요. 사람이 있는 별을 보고 가는 것은 쉬운데, 별이 이동한다는 것은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이 별의 이동까지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신약은 해답이고, 구약은 문제지이니까 어디서 나왔겠어요? 구약에서 나왔죠. 신약의 모든 것은 구약에 예언대로 된다. 신약은 해답이니까요.

그러면 동방박사가 몇명입니까? 모르죠. 보통 세명이라 하는데. 성경에는 세명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냥 전통적으로 그렇게 전해져오니까. 하여튼 관습-습관-전통, 이런게 상당히 문제가 많아요. 그러니까 동방박사 세명이라는 말은 성경에 안나오고요. 그리고 십자가 오른편에 있는 사람 강도가 구원받았다는 내용도 성경에 안나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구약의 말씀 그대로 성취됐다하는 말도 안나오고요. 나중에 나오지만, 구약이 그대로 성취를 않아요.

이 별을 따라왔을때, 이 별 따라 온 이것을. 구약에서, 찾아내야되요. 보통작업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일반 평신도들이 성경 큐티 하면서 볼때, "헤롯시대에 동방박사가 별따라와서 아 그때 그런일이 있었구나"라는 이걸로 끝이 잖아요. 이렇게 끝나버리면 우리 속에 뭐가 있느냐 하면, "옛날에 그런일이 있었데, 그런데 왜 그런일이 있었는지는 몰라 하여튼 그런일이 있었데"만 알잖아요. 왜 동방박사가 별을 따라와야되느냐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신구약을 알아야 이게 될수가 있는 겁니다. 신구약을 알아야.

그래서 여기에 "너희들은 왜 왔느냐"하니까 여기서 하는 말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기때문에". 여기 2절에 보면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뇨" 이렇게 되어있거든요. 그렇다면 이것을 성경을 한번 찾아봅시다. 에스겔 37장 24절.

구약이 밑에 있고, 신약이 위에있다. 구약이 문제지고, 신약은 해답이다. 해답이기때문에 기쁜소식이고, 구약은 우리에게 문제를 던진다. 한번 제가 읽어볼게요.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다음에 25절에 보면,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그렇게 되어있지요. 여기 유대인의 왕이 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유대인의 왕 이름이 나와있지요. 24절에, '내 종'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지요. 여러분 이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다윗은 이미 옛날에 죽은 사람이잖아요. 옛날에 죽은 사람이, 옛날에 죽었던 사람이 다시 와서 유대인의 왕이 된다. 여러분 이것이 가능합니까? 옛날 죽었던 사람이 와서 왕이 된다.

여러분 교회 다니셔서 아십니다만은, 구름타고 오실 분이 장차 누구죠?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오시잖아요 예수님이. 이 신약에는 뭐냐하면은, 예수님이 어디 가셨다가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되어있어요. 구약 전체를 가지고 이걸 모형이라고 합니다 모형. 모형이니까 아파트 모델 하우스 생각하면 제일 좋아요. 그 원본-원천-본질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있는데, 여기서 "죽은 다윗이 다시 나온다"라고하니까. 유대인들은 뭐라고 생각하느냐하면은, "아! 그 다윗! 밧세바하고 이렇게 했고, 그 우리야 죽인 그 다윗! 아 다윗이 오는구먼" 그럼 다윗을 겨냥하면 되는데, 다윗이 올때는 그냥오는 것이 아니고, 어린애가 되어가지고 오니깐, 다윗이 어릴때 구약에서 다시 나오는 구먼.

지금 신약성경을 모르는 구약학자들은 실제로 문자 그대로, 다윗의 동네에서 다윗이 아기로부터 새로시작해서 새로 성장해서 새로 온다는거에요. 이게 좀 의아하지요. 이 말이 거짓말이라면 에스겔 37장24절도 거짓말이 되는겁니다. 이런것을 세세하게 이야기 할 수가 없어요. 너무나 충격적이기때문에. 그래서 다윗이 다시온다는 생각을 안하고, 예수님이 다시 온다고 하면 "믿씁니다!"하고 다윗이 다시 온다고 한다면 "에이~그런 구라,거짓말"이렇게 되는거에요.

죽었던 다윗이 다시 살아온다는 것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장차 죽었던 예수님이 다시 구름타고 온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예표가 된다. 하나의 모형이 된다는 겁니다. 모형이 된다. 그러면 다시 올때, 또 빈손으로 오면 어떡해. 안되지요. 장보러 가는 사람이 장바구니를 안가져가서 집에 다시와서, 집에 와놓고 하는 말이 "아! 내가 왜왔지? 아참 장보러 가야되잖아. 그래."하고 또 가는 거에요. 그렇게 한 100미터쯤 가다가 "아이고~또 장바구니를 잊어버렸구나!"하고 또 집에 돌아와가지고 하는 말이 "아!내가 지금 집에 왜 왔지?". 이렇게 모르면 안되잖아요. 반드시 다시 올때는, 처음올때 실패했던 것이 두번다시 있어야 되요 안되요? 두번다시 없는 상태에서 와야되잖아요. 그것을 가지고 뭐라고 합니까? 그걸 가지고 '완료'라고 합니다. 완료.

아까전에 김연아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제 끝났다".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무언가 다 이룬 상태에서 봐야되요. 다시 오실 분을. 그렇게 다윗이 오신다고 할때. 이 다윗은 장차 예수님을 말하는데, 다윗의 자손이니까. 다윗이 실패했잖아요. 실패한 다윗이 다시 올때는, 이 다윗은 어떤 다윗입니까? 우리에게 완료된-더이상 우리가 할것이 없는 구원의 완성된 요소를 가지고 다윗이 와야되는겁니다. 이야기 하다보니 어렵게 됬는데 죄송합니다. 그러면 제가 쉽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기 구약에서 뭐라하느냐하면은, 다윗이 죽었잖아요. 죽은 다윗이 어떻게 온다? 다시 오지요. 다윗1, 다윗2. 다윗원에서 다윗투로 다시 올때, 그냥 오는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미완료. 두번째는 뭐냐? 완료된 상태를 가지고 다시 온다 이렇게 되어있죠. 완료된 상태. 그러니 이것이 이 완료된 상태에서 이것이 그대로 누가 되느냐하면은, 예수님이 되는겁니다. 로마서 1장3절에 나와요. 다윗의 자손으로써 아들되심을 얻었다하는데. 예수님이란말이이요. 

그러면 예수님 안에 이것이 그대로 그림자처럼 들어가니까. 오신 예수님-예수님원과 다시오실 예수님투. 이렇게 되지요. 그러니까 이것이 구약의 모형에 대한 실체 맞잖아요. 예수님은 구약 그대로. 구약은 문제지고. 그것에 대한 해답으로 예수님1, 예수님2가 오는거에요.

다시 오시는 것은 말씀대로 오시는 겁니다. 말씀대로. 사람들은 이걸 구약을 짤라버리고, 신약만 이야기하니까. "오신 예수님이 또오신데"이러거든요. 왜?냐고 물어보면. "몰라 오신데~". 아니 왜 오시는데? 처음 오실때 한꺼번에 다 처리하지 왜 두번째 오시는데. "글쎄 그건 몰라. 그건 모르겠는데. 하여튼 무조건 구름타고 오신데. 한번 기다려보지 뭐" 이렇게 된다 이말이지요.

구약에서의 이런 취지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 다시 오시는 겁니다. 그러면 취지가 뭐냐? 첫번째 다윗이 실패할때는 다윗 말고 다윗밑에 뭐가 있느냐하면은. 다윗은 무엇의 대표자에요. 무엇의 대표자냐 하면은. 다윗은 전체 이스라엘을 대표합니다. 왕 하나가 잘되면 덩달아 잘되고. 왕하나가 죄지으면, 덩달아 벌받게 되어있어요. 그것을 무슨 언약이냐. 이것이 약속인데. 그것이 무슨 약속인줄 알아요? 왕하나 잘되면 덩달아 복을 받고, 왕하나가 못되면 저절로 저주를 받는 그 언약이 무슨 언약이냐. 그걸 가지고 '다윗언약'이라고 합니다. 다윗언약.

아담이 선악과 따먹으니까, 나머지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지요. 모세가 기도하니까 복을 받고, 이것이 무슨 언약이지요? '모세언약'이에요. 노아가 제사를 드리니까 땅이 은혜를 받는 것을 '노아언약'이라고 하지요. 예수님께서 다 이루셔서 예수믿는 사람들 다 구원받는 걸 이것을 무슨 언약이라고 합니까? 예수님이 이룬 언약이라고 하는데. 이걸가지고 '새언약'이라고 합니다. 새언약.

참 쉽지요잉? 쉽지요. 특징이 뭐냐하면은,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보편적 단독자. 내 대신 하는 분이 하나님과 만나서 모든 이야기를 끝내버리면, 우리는 내 모든 일을 대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 효력을 보는 겁니다. 그 효력을.

로마서 8장32절에 나오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내주었다? 우리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내어 주셨기때문에. 누가 너를 정죄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이런 겁니다. 하나님하고 나하고 상대를 하면, 나는 죄인이고, 나는 저주받아야되는 자인데. 이 안경통이 예수님이라고 합시다. 하나님하고 나하고 관계가 있으면, 나는 저주받아서 지옥가야되는데. 하나님께서 품속에서 뭘 끄집어 냈느냐 하면은, '안경통'. 그러니 예수님. 예수님을 끄집어 내버리면, 하나님은 저하고 상대를 안하고 예수님하고 상대를 해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대신 씻어주면, 하나님은 주님과 상대해서 우리를 구원하는 방식이다 이말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널 위해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니, 누가 너를 정죄하리요. 우리의 실수와 죄에 대해서 우리 양심도 정죄하고, 남들도 막 씹고 이러잖아요. 그런데 중간에 나서서 "어! 누구야 누구! 내가 대신 구원한 사람을 누가 감히 정죄해! 이것은 내 피를 사고 산 내사람인데! 누구야!"하고 다 캇트 시키는 겁니다. 캇트(cut)시키는 겁니다. 그때 그 정죄할때 최고의 무기가 뭐냐? 악마입니다. 악마가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우리를 독수리가 심장을 쪼아대듯이 계속 쪼아대는거에요.

"기도를 안하더니만 꼴좋아?"이런식으로. 계속해서 "성경을 안보더니만 벌받았어"이런식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쪼아대는 거에요. "다음에는 똑바로 하란말이야. 잘하란 말이야" 내가 나에게 자꾸 이렇게 율법을 주고, 자꾸 쪼아댑니다. 그러면 우리는 견딜수가 없습니다. 행동을 제대로 할수가 없습니다.

하루에 성경을 3장 읽었더니만, 한달 수입이 백만원 늘었다. 그러면 6장을 더 읽어버리면 몇만원 더 늘어요? 이백? 그럼 아홉장을 읽어버리면 몇만원 더 느는거에요? 삼백만원 가져오는거에요? 이거 동박삭입니까? 한번 넘어질때마다 얼마 못사니까, 열댓번 넘어지니까 삼십년 산사람처럼.

그런데 이 이야기가 상당히 말도 안되잖아요. 말도 안되는 그러한 습성이. 세상에 우리 양심속에 유유히 살아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겁니다. 이게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긴데. 정말 우리와 별로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관성을 자꾸 엮어볼려고 하는거에요. 그 엮어볼려는데, 그 점을 누가 잘 이용하는가? 목사들이 잘 이용하지요. 간증집회를 통해서. 그러면 교인들이 "아니야, 아니야"라고 하면서도. "그럴수도 있겠어"라고 그렇게 마음이 바뀌어 버리면, 이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겁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아니고서는 일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마귀는 예수님 빼고 일해요. 항상 예수님 빼놓고 마귀는 일하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일합니다. 여러분 욥기에서 욥의 친구가 몇명이죠? 욥의 친구가 몇명이라고 생각할수가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3명이고, 뒤에는 1명. 4명이지요? 네번째 친구가 욥에게 뭐라고 이야기 했죠? 잘 기억 안나시지요? 네번째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욥아, 너 앞에 너의 대속물이 있는데, 왜 그건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내가 뭐때문에 고난받는가, 왜 자꾸 그것을 하나님께 닥달하느냐" 이말이죠. "하나님 제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고난받습니까?" 그랬는데. 엘리후라는 네번째 친구가 하는말이. "욥아, 제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어려움을 줍니까라고 자꾸 너의 행위를 보지 말고 너앞에 하나님이 주신, 그 대속물에 좀 눈을 돌려다오"라고 욥기 36장 18절에 보면 나와요. 거기에 대한 논문을 제가 안썼는데.

그것을 주목해보시면, 그렇게 하고난뒤에 누가 등장하느냐하면은, 욥한테 하나님이 등장하는거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욥아, 내가 너한테 고난을 주는 것은, 바로 그 대속물. 그 대속물의 의미를 주기위해서 내가 일부러 고난을 줬다. 이제부터 너는, 너가 친구들을 위해서 대신하는 대속물이 되어라"라고 해서. 욥기 마지막에 보면, 욥이 친구들을 위해서 대속물의 제물을 잡고 기도해주니까, 친구들이 용서받고 나중에 욥이 다시 부자됬다고 해요. 딸을 세명 다시 났는데, 그렇게 이쁘데요. 미스코리아처럼.

 다시 이야기 할께요. 여러분 언약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약이라 하는 것은 우리를 배제 하는 겁니다. 자 그럼 한번 물어볼게요. 언약이 처음에 만들어질때에, 어디에서 언제 만들어졌습니까? 질문이 두가지 입니다. 언약이 처음에 만들어질때에 어디에서, 언제 만들었습니까? 첫번째. 어디에서? 하늘나라에서. 언제? 창세전에. 누구와 누구랑? 주께서 내 주에게. 성부와 성자에게. 이게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면 나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우리를 붙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태어나기도 이전에,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여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기위해서 이미 언약이 완성 되었습니다. 그걸 실제로 그 의논된 언약을 펼치는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아니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문제 하나 던질게요. 그러면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다윗이 그렇게 하고, 다윗을 또 회개케 한 그 모든 주인공은 누구십니까? 다윗 본인입니까. 아니면 우리 예수님이십니까? 예수님입니다. 그게 어디 나오느냐하면은, 베드로전서 1장10절에 나오지요. 구약에 있는 선지자들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해서, 이미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그들에게 임해서, 그들의 행동 모든 것을 그들이 장차 오실 예수님이 주관하고 계시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구약도 그렇다면, 오늘날 신약에 살고있는 여러분들 속에 누가 오게 되어있습니까? 예수님의 영이 오게 되어있지요. 예수님의 영이 몇자입니까? 5자이지요. 예수님의 영을 두자로 줄이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이 되겠지요. 성령. 사람들이 성령이라고 하니까. 어떻게 하느냐면은. 거룩한 영이다라고 이렇게 생각하는거에요. 자꾸 거룩하다 하니까. 고상하고 거룩하면 영인줄 아는데. 요한복음 16장에 보면, 성령은 거룩한 영이 아니고, 예수님의 영이 성령이에요. 그러니까 거룩한 분은 누가 거룩합니까? 예수님이 거룩하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이렇게 거룩하니까. 그 예수님의 영이 오니까. 성령이 거룩한거에요.

그렇다면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은 거룩합니까 안거룹합니까? 안그러면 거룩해 질려고 하는겁니까? 어떻게 되는겁니까? 이미 거룩해 져버렸어요. 그걸 히브리서 10장에서는 "너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저 거룩을 얻었노라"에요. 거룩을 그냥 얻었어요. 하나님은 우리 말고 딴 몸을 준비하사, 그 몸에게 모든 율법을 다 이루게 함으로 말미암아. 지난시간에는 깔대기라고 비유했지요. 다 잊어버렸죠? 깔대기라고 해가지고. 모든 말씀을 예수님께 쏟아부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하나의 깔대기의 역할을 해가지고. 예수님께 쏟아부은 그 모든 말씀이 예수를 통해서 완성형태가 되고. 완성형태가 되면, 우리가 이룰수 없는 거룩이 되고. 거룩이 소세지나 떡가래처럼 삐져나와서 그 떡가래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를 칭칭 감아버리면, 우리는 졸지에 뭐가되느냐면. 죄인이면서도 예수안에서 의인이 된다 이말이에요. 완전히 주님의 떡가래가 칭칭 감아버리는거에요. 이걸 성신에 감겼다고 에스겔은 그렇게 이야기해요. 성신에 의해서 둘둘 감겼다.

이렇게 되면, 성부-성자-성령에 의해서 구원되는거죠. 성부,성자,성령에 의해서. 이것을 가지고 간단하게 네자로 말하면. '삼위일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교회 교회목사-이근호 목사때문에 구원받았다는 소리 하지 마세요. 십자가 지신 분은 제가 아니고 오직 누가 지셨나? 예수님만이 십자가 지시고. 성령 오라고 요청하신 것도 제가 아니고, 예수님이 자기 구원받을 자에게 성령을 주셨기때문에. 모든 영광은 성부성자성령에게만 돌려져야됩니다. 교회 나가시더라도, 그것을 잘 유념해야되요. 그것을 안 돌리면, 교회 아니겠지요.

 자 그렇게 되면, 아직 별 이야기를 아직 끄집어 내지 않았습니다. 언약 이야기만 끄집어 냈다 이말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별하고 언약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아까 다윗언약에 의하면 다윗이 다시 오지요. 뭐로 옵니까? 왕으로 오지요. 다윗언약은 왕으로 오지요. 그런데 민수기에. 민수기 24장 17절을 보면.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한 별이 야곱에서 나오는데, 그 별이 뭐냐하면, 그 뒤에 말이 "한 별이 이스라엘에게서 나오며". 그 다음에 뭐가나와요? '한 홀이'. 홀이 뭡니까? 춤추는 홀을 말합니까? 아닙니다. 지팡이거든요. 그 지팡이는 백성들 지팡이에요? 아니면 총무대신 지팡이? 누구 지팡입니까? 왕의 지팡이에요. 왕! 왕의 지팡이라고 되어있거든요. 민수기 23장 21절을 다른 한분이 읽어보세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왕이 하는 일이 뭡니까? 왕이 함께 동행하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아니하시는 기능을 누가 한다? 함께 동행하시는 왕께서 그렇게 하시는 거에요. 왕이! 왕이 그렇게 해주시는거에요. 계속해서 용서해주시는 거에요. 그런데 왕을 안 부르면 용서가 없고. "주여 이런 죄를 지었어요 용서해주세요"하면 그 함께 있는 왕이 쪼르르 달려와서 용서해주시는 겁니다. 그런 나라의 특징이 뭐냐? 아주 특이한 특징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거에요. 이스라엘에서 왕을 부르는데 그 왕과 함께 있는 사람은 패역과 죄. 죄와 허물을 왕이! 왕이 용서를 해주고. 그 패역에 대해서. 그것에 대해서. 용서를. 다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해준다 이말이죠.

그 왕이 올때는 표시가 있는데. 그게 뭐가 떠야된다? 별이! 민수기 24장에보니까. 별이 떠야되죠. 그 별을 보고 왔다는 말은. 그 유대인의 왕을 찾으러 왔다는 말이고. 그 유대인의 왕이 뭐냐하면은. 그 유대인의 왕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평생 지은 모든 죄를, 패역과 허물을, 그 왕이 대신 용서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는 왕을 찾으러 이 베들레엠, 이 예루살렘까지 왔나이다라는게 이 동방박사의 고백이다 이말이지요.

 아이고 참 복잡하지요? 이야기하는데 지금 몇분 걸렸습니까? 그걸 마태복음 2장에서는 간단하게 하는거에요. 왜냐하면 마태복음은 이미 유대인이기때문에. 그는 메시야를 고대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단군의 자손 아닙니까?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거든요 단군의 자손.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기때문에 아브라함, 이삭이 교과서에 안 나오잖아요? 그것을 초등학교때 안 배운다고요. 이게 힘들어요. 

그러니까 바로 신약에 가서 구원받을라 하지말고, 구약을 통해서 이렇게 가게 되면. 구약은 문제를 이야기하고, 그 해답은 신약에서 해답을 주는 겁니다. "아! 이제끝났다. 우리를 구원할 왕이 왔구나!". 그 아기예수님이 태어나서, 아기 예수를 믿으면 안되잖아요. 아기예수가 태어나서 무엇까지 성취해야? 십자가에서! 이제는 이 피는, 너희를 위해서 대신 저주받는 피다. 이 피까지 흘려 줘야! 흘려주어야! 이제는 그 십자가에서 뭐냐하면. 다 이루었다가 되는겁니다. 그러니 주께서 십자가에 지실때까지 제자들도 얼마나 오해했고, 거기있는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미워했습니까? 핍박했습니까?

 지난 토요일날 제가 서울 방배동에서 신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강의 도중에 예의가 아니에요. 강의 도중에 지금 제가 발표 하고, 강의를 하고 있는데. "누가 불렀어!! 계룡산에서 계시 받았구먼!!" 선동이에요 선동. 말 못하도록. 강의 하고 있는데. 제 시간이 40분인데. 적어도 그런 소리 할려면, 40분 끝나고 해야되는게 이게 예의 아닙니까. 아~ 이게 살인충동을 느꼈어요. 재떨이 있으면 면상에다 던지고 싶었어요.

제가 뭐라고 했느냐하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때부터 시작했어요. 예수 십자가에 죽으실때. 누가 죽였는가? 바리새인이 죽였다는거에요. 그 바리새인들이 구약성경을 어떻게 해석했느냐하면은. "누구나 이해되는 역사적해석을 가지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신학을 모아놓으면 이게 아마 우리가 메시야를 알아볼것이다"라고 했는데. 마태복음 8장에 보니까. "너희 애비는 마귀다"라고 했고.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너희들이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웃기지마라. 너희들이 지옥가고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이방인들이 너희보다 먼저 천국간다". 이 이야기부터 먼저 끄집어 냈어요. 그러니 그들이 정말 돌맹이가 곁에 있었으면 던졌을꺼에요. 저는 못느꼈는데. 주위에 참석하신 분들이 아~치열했답니다. 뭐 이거. 한기가 느껴지는. 오한이 느껴질정도로.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어이~ 이목사. 여기 전부다 박사들이야"라고 말하는데. 아~ 박사들이라서 이 성경말씀을 믿지를 않는구나. 그래서 논문 제일 마지막에 뭐라고 했느냐면. "복음전하는 사람들은 자기 신학과 성경가지고 밥벌이 하지말고, 죽으라"했어요. 이 말씀 가지고, 그냥 죽어버려라!

다 사람들이 그렇게 순교했다. 이제는 이 말씀 가지고 죽어야되지! 이것가지고 목사해서 밥벌이하고, 신학교수해서 밥벌이 하면 안된다. 그러니 처음부터 시작된 그들의 분노가, 끝부분에서는 폭발!해버렸어요. 정말 눈물나는 이야기입니다.아주.

 이제 다시봅시다. 동방박사가 성경 연구한 사람입니까? 아니죠. 동방박사는 그냥 별을 보죠? 이방인입니다. 저기 이란사람. 현재 이란사람인데요.  그런데 별이 떴어요. 그렇고 그런 별이였어요. 그런데 무빙스타(moving star). 별이 움직입니다. 움직일때. 동방박사는 바로 구약성경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니까. "야~별따라가자". 이렇게 해서 몇명인지는 모르지만 별 따라온거에요. 따라오고 보니까 별이 어디서 멈추었습니까? 예루살렘에서 멈추었지요?

이게 아주 재밌습니다. 원래 다윗은 예루살렘이 아니고, 어디서 태어나야 합니까? 베들레헴이죠? 왜 예루살렘을 경유합니까? 왜 예루살렘에서 별이 없어졌습니까? 이게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때, 그냥 좋게 좋게 좋은 말로 구원 하시는게 아니고. 한번 푹꺼지고! 푹꺼지고 사흘만에 부활해가지고 우리를 구원하거든요. 푹꺼지고 다시 되살아나는 이 능력이 바로 부활의 능력인데. 이 부활의 능력이 주어져야 죽은 우리도 부활됩니다. 죽은 우리도 부활되요.

예수님이 우리속에 능력으로 오게되면. 이 능력은 그냥 보통 잔소리하는 능력이 아니고. 죽었다가 사흘만에 살아나신 분의 능력이기때문에. 그게 우리 안에 들어오게되면. 우리 안에서 똑같은 역할을 하지요. 죽은 우리를 다시 영생으로 살리는 역할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 별의 모습이, 뭔가 푹꺼지고 다시 올라오는데. 이 푹꺼질때.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서 죽게 할때에 십자가에 죽게 하게 만드는 그 주변인물들을 소개합니다. 그들이 누굴까요? 누구한테, 누구의 손에 죽을까요? 바로 헤롯이지요, 헤롯. 그 당시에 힘있는 자들. 헤롯이고, 헤롯 주위에 누가 배치되어 있느냐 하면은, 바로 신학자들. 헤롯이 묻습니다.

"아이고 동방박사님들, 왜 오셨습니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시는 분이 여기 나셔서 왔습니다. 별이 여기서 멈추었습니다"
"그래요? 언제쯤인데요? 언제언제쯤 뒤입니까?"
"어이~우리나라 박사들, 신학박사들 불러라. 유대인의 왕이 오시긴 오는데, 그 장소가 어딘지 말해봐라"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이야?".

그래서 그 뒤에 마태복음 2장 16절에 보면. 그 헤롯이라는 왕이 군대를 보내가지고, 어떤 마을에 있는 애들을 죽입니까? 이거 다 아는거죠? 베들레헴에 있는 몇살 밑에 애들요? 두살 밑에 애들. 다 죽이죠. 아주 몰살을 해버립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게 재밌죠. 갓난애들을 왜 죽일까요? 그 안에 누가 섞여있죠? 누가 섞여있습니까? 다윗으로 온 왕. 예수님이 섞여있죠?

그게 바로. 악마는요. 악마는 우리를 노리지 않습니다. 악마는 예수님 믿는 사람을 노리지요. 노립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같으면. 악마는. 자기편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아요. 왜? 같은 편이기때문에. 그러나 성령이 임해서 천국 갈 사람 같으면. 악마가 노리고 들어옵니다. 노리고 들어올때 악마의 무기는 아담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습니다.

 오늘 이거 아시면, 여러분들 잘 오신 겁니다.
악마의 무기!!!!!
악마의 무기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게 뭐냐하면. 선악적으로 봐서 "당신 죄지었잖아!" 그게 무기에요.

악마는 딴게 아니에요. "선악적으로 봐서 당신은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으니까, 당신은 벌 받을거야"라는 이것! 이것이 악마가 쓰는 선악적인 무기입니다. 다른 무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악마가 무엇을 가리느냐하면은, 이런 죄마저 용서해주신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우리속에서 기억나지 않도록, 믿지 않도록, 사라지도록.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서하시고, 용서하신다는 것을 그걸 안믿어지도록, 안믿어지도록 그렇게 하는 겁니다.

 제가 어제 수요일날 이랬잖아요. 제가 설교를 하면서 예화를 들었습니다. 무슨 예화를 들었냐하면은. 버스가 있어요. 인삼파스. 서울에서 인삼파스 파는 버스 있죠? 인삼파스를 파는데. 사람들이 사더라 이말이지요. 그걸 보고 제가 느낀 점이 있어요. 사람들이 인삼파스를. 그 중국산 파스를 왜 살까? 필요하니까 사잖아요. 돈주고 사잖아요.

그러면 목사는 뭘 파는 사람일까? 성경에 있는 내용을 파는 사람이죠. 성경에 있는 복음을 파는 사람이죠. 그런데 인삼파스는 사서 자기한테 붙이면 시원하고, 자기한테 유리하죠?
 
그런데 성경내용을 사람들이 유리하게 느낍니까? 아니면 예수를 믿어야되는데, 그 고난의 길로 가야되는데, 돈주고 누가 사요? 그래서 저는 섬뜩하게 느껴졌어요. 저 파스파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은 좋겠다.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팔아서. 그런데 나는 뭐고?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지도 않는 말을 팔아야되니. 진짜 만약에 안사게 되면 나는 굶어 죽자". 이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 말은. 이런 복음을 믿는 다는 것이, 사람의 힘이 아니고, 하나님이 점지해주고, 구원받기로 작정한 사람이 아니면, 이 복음은 절대로 안받아 들이게 되어있어요. 실컷 한 10년 교회 다니고 하는 말이. 그래서? 나한테 어떤 이익인데?

자기 이익을 따지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얼굴을 돌려버려요. 이 성경자체에서 얼굴을 돌려버려요. 이 성경 자체에서 눈을 돌려버려요. 성경이 도대체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느냐 이거에요. 국가가 해준게 뭐가 있느냐 이말이지요.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도대체 나라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느냐 이말이지요. 도대체 하나님이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느냐 이말이지요. 맨날 내보고 죄인이라고 그러고. 그 소리밖에 더있느냐? 이제는 그마해라! 마이 묵었다! 듣기싫다! 끊어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이제는 마구 내 힘모아서 남한테 기죽지 않는 인생을 살겠다. 이렇게 나오면. 그건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기때문에. 어쩔수가 없어요. 참~ 그래서 참 아슬아슬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별따라 와야 된다". 별따라 와야돼. 이 별이 오늘날 어디에 뜹니까? 이거는 여러분들 다 아시지요? 베드로후서 1장 19절에 보면. 제가 읽어볼게요.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샛별이 우리 맘속에 떠오르게 되면. 무엇을 알수 있느냐 하면은. 베드로 전서 4장에 보면은. 바로 사도바울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쓴 것을 영적으로 편지썼다는 것을, 영적으로 해석할 수가 있어요. 샛별이 떠오르게되면, 위에 왕이 떠오르게 되면, 그 왕이 모든 성경 말씀이 다윗왕, 왕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을 우리가 알게되는 겁니다. 성경 해석이 되요. 어떤 성경 말씀도. 우리를 데리고 오기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이런분이 이 말씀대로 이루기위해서 오셨구나.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고. 나는 하나하나 못이루고. 오직 주님께서 다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구나.

 제가 다니엘의 70이레에 대해서 강의를 하니까. 옆에 두사람이 서평했어요. 두 사람 다 이야기했어요. 다니엘 70이레는 구약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이고, 최악의 늪지. 그 표현이 있어요. 최악의 늪지같은 곳인데. 그만큼 어렵다고 했어요. 그걸 반박할라고 딱 준비했는데. 아까 선동한 사람이 "반박하지마! 당신은 반박할 자격도 없어"하느라고. 반박도 못했어요. 세상에 이런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어요. 이 70이레가 최악의 늪지. 해석이 어려운 곳이라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해요. 성경은 전체가 그만 최악의 늪지다. 성경 전체가. 예수그리스도의 샛별이 안떠오르면. 아무것도 해석이 안되는. 그게 성경입니다.

그래서 떠오르게되면. 모든 성경해석은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런이런일을 하셨구나. 일방적으로 다 해주셨구나. 다 이루었구나라는 것을 알게되는 그런 해석만이 나올때. 바른 해석이 되는겁니다.

 자, 이제 진도 나갑시다. 그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 자 그렇다면 왜 별이, 여기가 베들레헴. 줄 긋는 것은 구약신약이니까. 베들레헴. 여기 예루살렘. 왜 베들레헴으로 바로 갈수 있는데. 왜 예루살렘을 거쳐서 가는가? 예루살렘을 거쳐가야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그 아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모진 고통을, 고난의 길을 가야된다는 것과. 그리고 거기에 아기 예수님에 의해서 구원받아야 될 모든 사람들도. 이 고통에 동참. 동참 해야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거쳐서 베들레헴에 갔습니다.

예루살렘을 거쳐서 베들레헴에 가니까. 그냥 베들레헴으로 가면, 이 예수님을 공격할 공격에. 이 악마적인 공격의 주체가 안드러나잖아요. 예루살렘을 거쳐서 가니깐.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왕이. 누구를 공격합니까? 첫번째는 아기 예수님을 공격했고, 두번째는 누구를 공격했습니까? 방금 거쳐서 가는 누구를 공격했지요? 동방박사를 공격했잖아요. 결국 동방박사라하는 사람은 결국 뭡니까? 동방박사가 왜? 잠에서 깨다가 딴길로 가야 됩니까? 왜 자기 마음데로 결정 못합니까?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 그런 수난을 당해야되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예루살렘을 거쳐감으로 말미암아 하여튼 예수와 같은 편이라면, 전부다 예수님과 같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왜? 이 세상이 너무나 악하니까.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세상이니까.

특히 이 베들레헴에, 아기 예수가 죽을때에. 2장18절을 한번 봅시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해서 애곡하는 것이라"

라헬이 누구시지요? 라헬은 누구의 본처입니까? 야곱의 처가 두사람이 있지요? 레아하고 라헬인데. 둘중에 누가 본처지요? 라헬이 본처입니다. 동생이 본처입니다. 레아는요. 레아는 덤으로 준거에요. 기획상품이에요. 마트에서처럼. 야곱이 라헬을 얻기 위해서, 구차없이 레아를 거쳐서. 거쳐서라고 하면되요. 그렇게 된겁니다. 그래서 라헬이 야곱의 본처입니다. 라헬이 애기낳다가 죽는다는 사실, 그것 가지고 십자가에 연결시키면 또 복잡해요.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죽습니다. 그 이야기는 십자가와 연관되요. 이건 아주 어려워요. 이건 딴 주제니까 이건 시간있으면 하고요.

라헬이 여기서. 라헬의 자식을 위해서 크게 통곡했다.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은. 여기서 라헬은 이스라엘이. 사라지는 거에요. 이스라엘이 어디가있느냐하면은. 여기에 15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어디가있느냐 하면은. 애굽에 가있습니다.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러낸거에요. 예수님이 애굽에 내려간 것이 아니고. 애굽에서 뭘 불러내는 거에요? "어이~아기 예수 일로와! 아기 예수 여기 와서 살아!" 아기 예수를 애굽에 내려가게 하는 겁니다. 이것은 뭐냐? 구약을 그대로 다시 재현! 짧은 시간에 압축해서, 예수님이 태어난 어린 시절을 통해서 구약 전체를 한꺼번에 확! 다 보여주는 거에요.애굽에 내려가야, 애굽에서 출애굽이 되고. 그 출애굽 하는 그것이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되는겁니다. 말이 좀 어렵게 되었지요? 이것만 하고 10분 쉽시다.

예수님께서 애굽에 내려간 것은, 무엇때문에 내려갔지요? 지금 현재 이 세상이 헤롯-악마가 장악해서 그렇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애굽에 내려갔다는 말은. 예수님마저 악마의 세계에 잡혀있다는 뜻이고. 예수님이 애굽에서 나왔다는 말은. 결국은 뭐냐? 악마의 세계에서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표가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 잡혔던 세계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땅을 벗어날 수 있다면. 예수님 따라서 이땅을 벗어난 사람들도, 진짜 이스라엘이고. 옛날 이스라엘은 하나의 모형이니까. 진짜 성도라고 할 수 있다 이말입니다. 그런데 그 성도가 예수님때문에 어떻게 되느냐? 남편을 잃어서 야곱을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려가지고. 거기서 뭐냐? 라헬이 아버지 없으니까. 아내이름인데. 라헬이! 뭘위해서? 그 자식을 위해서 울지요?

그 자식이 누굽니까? 라헬의 자식이 어떻게 되었지요? 그 라헬의 자식이 뭐냐? 베들레헴. 두살 밑에 죽었던 어린애들이죠? 그 애들 왜 죽었습니까? 전염병 들었습니까? 아니잖아요. 신종플루? 아니죠. 예수님때문에 얼떨결에 죽었잖아요.

결국은 이건 뭐냐하면은, 예수님과 한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본의아니게. 구원받아야 하기에 예수님때문에 고난 받아야 되는 사람들. 본인이 순교하겠다고 날 뛰는게 아니고. 지하철에서 전도지 뿌린다고 고난받는 것 말고. 집에 가만히 앉아서 설겆이 하고 있는데! 예수님때문에 고난받는. 그런 운명의 사람들.

예수님하고 관계 끊었으면, 아무 일이 없는걸! 괜히 예수님을 알아가지고! 괜히 난데없는 고난이 찾아온 무리의 지파. 그것을 라헬의 자식이라고 여기서 표현하는 겁니다. 다음시간에 3장합시다 10분 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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