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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성도의 외모

아빠와 함께 2026. 4. 27. 08:28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여기에 나오는 ‘형제’라는 개념이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개념이나 ‘믿음’이라는 개념은 결코 인간들의 상식선에서 수용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완전히 다른 차원을 말해주십니다. 곧 ‘인간들의 하나님의 복수(復讐)의 대상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나 뿐인 아들을 이 땅을 보내셨는데 그 아들을 죽인 이들은 사람들입니다. 곧 아담의 자손들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묵과하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그 신랄하고 잔인한 보복을 시행하십니다. 그래서 생긴 공간이 지옥입니다. 단순히 교도소가 아닙니다. 몇 년 살다 나오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영원한 분의 영원성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을 근거로 두어야 비로소 ’죄‘의 개념이 완전히 정립됩니다. 자신의 아들의 죽음에 대한 분노는 인간의 선한 행위나 업적으로 지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는 이런 죄개념을 갖고 있기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시 65:3) 그리고 “우리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시 79:8)

 

즉 자기가 누구인지 주제 파악이 되는 것과 관련지어서 죄사함을 알아야 합니다. 죄사함을 요청하는 것으로 자기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서 받아주는 외모는 다음의 외모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사 52:14) 그리고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3,7)
예수님께서 십자가 돌아가시므로서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의 판단은 모두 거꾸로 되어 있으며 죽을 때까지 그동안 반대로 살아온 삶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만큼 악마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온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국이 받아준 외모의 소지자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는 모세입니다.
출애굽기 34:29-34에 보면,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모세는, 인간으로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구역인 하나님께로 갔다가 다시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온 사람입니다. 내려오면서 그는 빈손으로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들고 왔습니다. 그 율법이 제시된 그 영역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들어 살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은 모세의 얼굴에서 빛나는 영광의 차이에서 드러납니다. 즉 모세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하지만 그가 사는 것은 그와 함께 하는 말씀의 영광, 곧 죽은자로 살리시는 능력이 발하는 것은 영광 안에서 살아 있는 겁니다. 

 

성도에게는 예수님께서 지상을 다녀가신 그 과정이 각자 내부에 작용할 때, 이것이 바로 진정한 천국에서 받아주는 외모요 얼굴입니다. 그 이유는 말씀이 들어와서 인간의 마음을 주님의 십자가 지신 마음으로 바꾸시는 작업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7) 말씀은 땅에 오셨지만 땅에 그냥 떨어지지 않고 그 완성도를 챙겨서 하늘나라로 들어가셨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 3:19) 이는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하나님의 무섭고 맹렬한 보복의 대상인 줄 모르고 안일하고 거꾸로 된 사회생활로 가득 찬 땅을 위한 삶에 기대걸지 않게 하려 하심입니다. 시작은 죽음이지만 끝은 감사에 닿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세상 보는 시선에서 주님의 심정이 반영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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