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에게 찾아왔던 주님은 사울이라는 사람을 파괴시켰어요. 나의 세계, 나의 세계, 내가 속한 이 세상이 파괴되면서 어디로 이동했는가? 말씀의 세계로 옮겨줬습니다. 나의 세계가 파괴되고 말씀의 세계로 옮겨줬습니다. 그거는 이 세상의 시간과 공간 차원을 넘어섰죠.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아닙니다. 저보고 살았다. 하지 마세요. 제 안에 주님이 살아있지. 내가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 라고 고백한 거예요. 시 공간이 섞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가 안에 들어온 거예요. 기존의 시간과 공간이 섞이지 않는 이 시간과 공간이 섞이지 않는다는 말은 미래 과거 현재가 없이 모든 게 확정되었다. 운명이 확정된 거예요. 그래서 이 인간의 운명은 뭐냐 하면 그 차원, 현재 우리가 사는 차원을 돌파했느냐 돌파하지 않느냐로 이미 인간은 두 종류로 확정이 되어 버렸어요. 돌파하려고 애 쓰는 건 소용없어요. 돌파 안됩니다. 내가 성경을 보고 이해하는 모든 의미는 돌파하지 않는 이 세상에 짐승의 인간들의 다른 인간들이 사용하는 그 의미 밖을 못 벗어나서 그걸 사용하기 때문에 내가 이렇다고 나를 규정하는 의미 자체가 마귀가 용납해주는 의미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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