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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버림받았다는 인식의 자리가 구원의 자리

아빠와 함께 2026. 4. 24. 08:49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말은 구원의 자리가 아버지를 소유하는데 구원의 자리가 있는게 아니고 아버지한테 버림받았다는 인식의 자리가 곧 그 지점이 무슨 자리다? 바로 강도처럼 구원의 자리에요.

 

세상 모두에게 버림받았을 때가 버림받은 그 순간이 비로소 주께서 나의 구원의 자리로 이끌었다라는데에 대한 고마움이 와요. 이끌었다.  병을 뭐로 바꿔야 돼요? 죄로 바꾸게 되는 그 지점에 주께서 끌어당길 때 비로소 그 죄에서 십자가가 처음으로 십자가가 보입니다. 내가 죄인일 때. 내가 죄인일 때 정도가 아니라 내가 죄 자체일 때 비로소 십자가에 대한 고마움, 그 피흘림의 대단함. 우주와도 같은 만물 보다도 센 창조보다 더 센 힘. 힘이 바로 그 피에 있다는 거에요.  피가 있으면 어떤 자식의 고민거리도 이 피의 기쁨을 무효화 시킬수 없다는 것을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썽꾸러기 자식을 붙여주는거에요.

아픔을 동반해서 말씀이 주는 예수님의 아픔과 동반해서 같이 말씀이 우리 내부까지 침투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확정된 우리의 미래 모습입니다. 

 

합리와 불합리를 알고 있는 세계에서 빠져나왔죠.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이 결정했어요. 조건이 있어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지 아니하면 이 천국에 못 들어간다.  성령 받으면 누구하고 이야기를 안 해요 누구하고 이야기해요? 공중전화 부스에가서 누구하고 이야기합니까? 주님의 지시를 받아요. 주님의 지시. "아들이 저런데 어떻게 할까요?" 주님의 지시를 받는다고요. 걱정하거나 염려하는 게 있을 수가 없지요. 왜? 내 일이 아니니까. 지시에 따를 뿐이지 내가 구원받는것도 내뜻이 아니고 주님의 뜻이라면 그 주님의 뜻에 확장 연장선으로서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와 취지의 연장선으로서 주께서는 우리는 아들에게 다가가고 자식에게 다가가는 거죠. 그냥. 남들이 미쳤다 하든 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