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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그 이름은 주의 이름

아빠와 함께 2026. 4. 23. 21:39

노아 홍수 뒤의 환경은 개인적일까요, 환경적일까요? 환경적이에요. 개인에 대해서는, 이미 날 때부터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개인에 대해서는 묻지 않습니다. 이미 버린 자식이기 때문에요. 환경이 집단적인 환경이라고요.

그러면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 가서 죄를 씻은 것이 아니고, 요단강에,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self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자기 자신을 요단강에 빠뜨린 거죠. 요단강에 자신을 빠뜨리고 여호와의 날개, 여호와의 용서의 날개, 그 집단에 합류되어서 그 새로운 집단의 부분이 된 겁니다.

그 증거가 뭐냐? 나아만 장군이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딱 부탁한 게 있어요. 이스라엘 흙을 가져가겠다는 거예요.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왕하 5:17).

 

‘너의 이름이 그 집단의 소속에 등록된 것을 기뻐하라.’ 그 집단의 이름이 무슨 이름이냐? 주의 이름이에요. 그래서 주의 이름으로 구원받는 겁니다. 자기가 소속된 집단이거든요. 로마서 10장에 나오고 사도행전 2장에도 나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행 2:21)라고 할 때 개인은 탈락해요. 개인은 없애버리는 거예요. 고정된, 고유한 내 이름은 주께서 인정도 안 해요.

이게 복음입니다. 주의 이름에 합류한다니까요, 등록된다니까요! 펄럭이는 그 천에 하나의 무늬로서 들어가는 겁니다. 복음을 이렇게 전하고, 강의해도 끝나고 난 뒤에 나오는 이야기 보면 전부 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또 나와요. 개인은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어떤 소속된 집단, 성도를 한 묶음으로 묶는 집단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서 “그 집단에서 주님은 어떤 활동을 합니까?” 이런 질문이 나와야 할 텐데 “그러면 저는 어떻게 살까요?” 갑자기 개인 문제, 개별 문제가 또 나와요.

 

약속의 땅에는 일체 더러운 것들이 닿으면 티가 나고 표가 난다는 거예요. ‘네가 딛고 있는 땅은 약속의 땅이다’라는 말이죠. 무지개와 연관되어 있는, 천국과 연관되어 있는 땅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더러운 것 배출 용도, 그게 인간이에요. 더러운 배출물을 배출하는 용도가 인간입니다.
집단화된 주님의 의로 이미 천국을 갔다면 기쁨은, ‘주님의 의’ 자체로서 기뻐해야 하지 그 외에 다른 기쁨, 나의 사적인 기쁨을 따로 가지는 이것이 바로 주님의 공로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게 복음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죠.
내 소속이 어디냐, 어떤 곳에 있느냐? 집단이에요. 그 집단은 예수님의 피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받습니다. 다른 것은 안 받습니다. 

 


자기 소유가 없는 사람은 더 이상 방어할 게 있어요, 없어요? 방어할 것이 없어요. 개인주의가 그래서 나쁜 거예요. 방어할 게 있어서 그래요, 방어할 것이. ‘남은 모르겠고, 나만 잘 되면 되잖아.’ 이런 식이에요.
이게 바로 복음입니다. 주님께서는요, 게하시를 나무라는 게 아니에요. 사태 파악, 이 세상 자체가 이렇게 집단화돼 있다는 것, ‘저주 보존의 법칙’, 저주가 떠돌고 있다는 것을 지금 게하시는 개인주의 때문에 그걸 모르는 거예요. 교회 와서 복음 들어도 몰라요. 복음 듣는 이유가 나 하나 행복 하려고, 내 문제 해결하려고…. 그것은 복음이 아니죠.
문둥병 걸렸다고 지옥 가고 그런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약 자체가 하나의 비유이고 인간을 가지고 하나의 증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거저 주신 천국의, 영생의 복을 네가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하느냐?’ 그리고 그 증거가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오늘 이 말씀을 주신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참 세상을 닮아도 너무 닮아서, 나만 챙기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혹은 오해해서, 나도 행복하지만 남들도 행복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그것도 죄인 줄 모르고 착한 일로 여겼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서 홀로 일하신다는 것을, 이미 일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놓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