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1/2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아빠와 함께 2026. 1. 26. 22:35

후패해야만 할 것이 마땅히 수모을 입고 창피를 당하고 조롱을 받는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은 우리 주님께서도 먼저 개인적으로 받았습니다. 메시아의 개인적인 고통에 참여하는 자만이 자신의 육신도 마땅히 후패해야 됨을 받아들립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온갖 아픔을 겪고 난 뒤에 3일 만에 영광스럽게 부활하셨기에 이제 성도에게는 ‘날로 새롭도다’는 실제 사실로 전환되는 것이 마땅한 겁니다. 그동안 인간들이 육신 그 자체로 여겼던 것이 메시야의 안목에서는 보면 ‘옷’이었습니다. “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후 5:1-3) 썩어가는 몸으로 영광스러운 몸을 사모하는 것조차 본인의 여망이 아니라 예수님의 여망과 ‘다 이루심’이 효력을 부여받은 결과입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겁니다. 이 좋음이 이제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는 자신에 대해 자기를 주인으로 여기지 말고 히브리인들처럼 노예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 곧 해방의 기쁨에 감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