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베뢰아 사람들

아빠와 함께 2025. 5. 4. 19:50

베뢰아 사람들 250504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사도 바울의 전도하는 것과 전도하는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림에 나와 있는 빨간 옷을 입은 사람 이게 사도 바울인데 사도 바울이 성경에 보면 그렇게 인물이 잘 생기지를 못했다고 돼 있어요. 그래서 너는 뭐 인물은 별론데 말하는 것도 잘하지도 못하는데 그런 힘이 있구나 그런 평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자기가 움직이는 게 아니에요. 볼품없지만 속에는 성령님이 들어 있죠. 성령님께서 이제 하는데 하나님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오늘은 저기 가, 내일은 저기 가, 지시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제는 뭐 완전히 배짱이죠. 자기 일이 아니니까. 여러분의 일이 여러분의 일이 된다면 그다음부터 힘들어요. 여러분의 일은 주님께서 여러분의 일이라고 주신 적이 없습니다. 주신 적이. 나중에 여러분들이 나중에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그럼 선생님이 되었으면 나는 뭐 애를 가르쳤다. 누가요? 내가요. 내가 가르쳤다고 하다가 나중에 신앙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내 안에 주님께서 그렇게 가르쳤다. 그 말은 뭔 뜻이냐 하면은 내 일이 없어지는 데서 오는 가벼움, 이 땅에 앞으로도 내 일이 아예 없다는 데서 오는 가벼움, 내가 책임지고 뭘 해야 된다는 부담이 없는 거 그런데서 오는 그 가벼움, 그런 것으로 살아가는 것을 사도 바울은 말해요. 그게 성령의 삶, 성령으로 사는 삶, 내 힘으로 살지 않는 삶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사도는 어디를 가든지 이 시공간 시간과 공간은 주께서 한, 주님의 하나의 무대이기 때문에 자기의 인생 논하고 이런 거 인생이 어떻고 팔자가 어떻고 그런데 신경 전혀 쓰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주의 일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주의 일은 뭐냐? 주의 일은 이 그림으로 나와 있어요. 이게 주의 일은 이렇습니다. 주의 일은 예수님께서 사셨다가 죽어 사람들 손에 죽었는데 지금 살아계셨다, 딱 이 이야기예요. 모든 기초는 이 이야기에서 비롯됩니다. 주님께서 죽으셨는데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서 죽이셨는데 주님의 생각에 의해서 주님은 다시 살아났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것은 주님 손에 있다. 앞으로 주께서 또 계속 일을 하신다. 그 이야기한 겁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세요. 훌륭하게 사세요. 지금 그 이야기한 게 아니에요.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주께서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느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고 그걸 바라보면서 사세요. 그 이야기한 겁니다. 그 이야기 하니까 그 당시에 유대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유대인이 뭐 하는 사람이냐 하면은 성경 공부해가지고 하늘나라 가려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에요. 성경 공부해서. 성경 공부할 때 이 사람들이 뭘 빠뜨렸냐 하면은 내가 가게 하는 게 아니고 살아계신 주님이 가게 한다는 이 사실을 그만 빠뜨린 거예요. 이 사람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아요. 그런 것은 나중에 구원자가 왔을 때 하는 일이지 이러고 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사도가 말하기를 구원자가 왔다니까. 구원자라 하는 것은 똑똑하다고 구원자가 아니고 기적을 베푸는 게 구원자가 아니라 죽었다가 사람들에 의해 죽었다가 살아남으로써 어떤 사람들도 구원자를 못 알아봤다. 이걸 분명하게 드러냈을 때 그게 구원자인 거예요. 어떤 인간도 아 저 사람은 구원자라 믿어야지 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때 그때 구원자가 등장하는 거예요. 왜? 내가 알아봐서 알아본 걸로 내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나를 알아봐서 그분이 나를 건져줄 때 구원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유대인들은 뭐냐? 구원자는 이렇게 되고 구원자는 저렇게 되고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니까 사도 바울이 예수님 이야기했거든요. 그러면 그 유대인들이 화가 난 거예요. 내가 나를 내 잘 되기 위해서 내가 구원되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그럼 뭐가 되느냐? 니 우리를 완전히 바보 등신으로 만드느냐? 죽여라. 잡아라. 없애라. 이런 식으로 하니까 그다음에 등장한 것이 밤입니다.

밤에 여기 밤에 도망가는 장면 봐요. 이 장면. 밤에 도망을 가요. 어디로 도망가느냐? 데살로니가에서 피신해가지고 베레아라는 곳으로 도망을 갑니다. 현재 나라는 뭐냐? 현재 나라로서는 그리스 북쪽 마케도니아, 마케도니아라는 나라는 현재 약간 더 있긴 있지만 하여튼 그리스 북쪽으로 보면 돼요. 그 나라에서 활동하면서 밤중에 무서워서 이제 도망을 가죠. 안 가면 잡히니깐요. 주의 일 그러니까 주의 일로 잡히겠다, 잡히겠다 하지 마세요. 주께서 도망하라고 하면 도망하세요. 다들 잘난 척하지 말고. 괜히 고난 받는다고 잡히고 그런 식으로 자꾸 위장할 필요 없어요. 그냥 도망가면 돼요. 또 도망 못 가면 참 재수 없다 하면 돼요.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게 내 일이 아니니까 나의 책임이 없으니까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살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중량감이라고 하죠. 인생의 무게가 너무 갈수록 무거워집니다. 내 할 도리는 해야지? 우리 할 도리가 없어요. 우리 할 도리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갔는데 이제 갔어요. 갔는데 거기도 거기 가면서 베뢰아 사람들한테 물어봤어요. “혹시 여기 유대인들 모여 있는 회당이 어딘 줄 아십니까?” 이래 물었어요. 사도 바울이 자꾸 유대인들 모인 곳 회당이라고 하는데 그 회당을 묻는 이유가 그들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율법대로 이미 오실 분이 오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찾아간 겁니다.

그렇게 유대인이 있어가지고 “그래. 회당은 왜 찾는데?” 하니까 그때부터 이야기 시작하는 거예요. “왜 찾느냐 하면은 당신들이 지금 들고 있는 게 뭡니까?” “이게 성경입니다.” “성경을 나도 성경 좀 알거든요. 아는데 성경대로 하신 분이 성경대로 하셨던 그 약속된 분이 이미 부활되어서 이미 오셨습니다.” 오셔가지고 이 어린아이들 (어린아이들 있죠? 어린아이들 보면 어린이날 같아요.) 어린이들이 예수님을 안다고 어린이들이 어른들 말고 어린이들이 죽었다가 사신 분이 나를 천국으로 보낸다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믿는다는 거예요. 죽어가는 인간들은 소용없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야 그 능력으로 죽은 우리를 살린다는 그런 정도는 어린아이도 알고 있어요. 어린아이도.

만약에 여러분 초등학교에 음악 선생님이 왔는데 음악 선생님이 “여러분들은 노래를 이렇게 불러야 잘 부르는 겁니다.”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를 못 불렀다. 박자 다 틀렸다. 그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다른 선생님 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했죠. “아니 아닌 것 같아. 이론만 알고 실기는 하나도 모르고 무슨 음악 선생이.” 하겠죠. 주께서 실기를 보여준 거예요. 사람은 죽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내가 살려준다는 겁니다. 뭘 걱정하느냐는 거예요. 그게 어린아이들도 알고 있어요. 어린아이도 알고 있는데 어른들만 모르죠.

그래서 어른들은 너무 아는 게 많아서 모르죠. 이 베뢰아 사람들은 왔는데 여기에 베뢰아 사람의 그 당시 무시당하던 공부 안 한다고 무시당하던 여자들, 그리고 귀족들, 잘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소위 유대인 말고 일반 사람인데 “야. 세상에 그런 소식도 있었어요? 이거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죽었다 살아나신 분이 죽은 우리를 살린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진짜 성경에 들어 있는 내용이에요?” 하면서 그들은 베뢰아에서 성경학교를 만들어서 사도바울이 본격적으로 복음을 이야기했어요.

유대인들은 그냥 율법 공부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지시했기 때문에 복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기뻤고. 여기 표정 보세요. 두 손 모으는 자세 보세요. 고맙다는 표시 아니겠습니까? 입은 헤 벌려 있죠. 이거 뭐 돈 좀 벌었다고 벌리는 입이 아니죠. 이거는 나는 살았다는 뜻이죠. 내가 예수님을 알면 산다. 간단하게 주님 모르면 죽는다. 지옥 간다. 예수님을 알면 나는 오늘 죽어도 천국이다. 이걸 얼마나 기뻐하는지. 예수님은 그 당시 어린아이까지 거기에 참석해서 온 가족이 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똑같은 현상이 주님의 성령에 의해서 여러분 가정과 이 모일 때마다 계속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이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살려주신 이유는 복음 들으라고 지금까지 살게 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살더라도 죽지만 죽더라도 산다는 이 이야기가 성경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늘 성경을 바라보면서 복음을 찾아내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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